review/미디어아트 전시

Cross Animate 展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4. 20. 19:47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작가들의 탐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애니메이션은 최근 몇 년간의 국제 비엔날레나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에서 눈에 띠게 활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뉴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들 뿐 아니라 회화, 판화 등을 주매체로 하는 평면 작가들이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미술에 나타난 애니메이션의 매체 수용현상에 대한 접근에서 출발한 ‘Cross Animate'전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기법적 활용을 가미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애니메이션의 미학적 특성과 사유방식, 현대미술에서의 의미작용까지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을 자유로운 표현을 위한 창작의 도구로 수용한 현대미술과 작가주의 감독들의 아트 애니메이션을 한 자리에 전시하여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크로스적 양상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세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현대미술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구분보다는 애니메이션 언어가 갖는 미학적 가치, 사회적 의미작용, 시대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관습적 내러티브를 해체 변형하면서 일상과 현실을 재정의 하는 새로운 형식의 내러티브 애니메이션, 이야기 전개보다는 이미지의 연속된 변형을 보여주거나 선과 색채 사운드 등을 통해 원초적인 사고와 느낌을 전달하는 애니메이션,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여 독특한 개념을 전달하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관습적인 이야기구조를 해체한 내러티브 애니메이션에서는 사회적 이슈나 시대상황을 담아낸 애니메이션이 선보인다. 실제 인물크기의 목탄화를 그린 후 이를 애니메이팅하여 내러티브를 전개시킨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웨잉 앤 원팅>은 사회적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한 인간의 죄의식, 공허함, 슬픔에 주목하면서 권력과 거대 담론의 문제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부 후아(Bu Hua)의 플래쉬 애니메이션 <야만적인 성장> 역시 중국 상하이의 급속한 성장과 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희화화시킨다. 또한 릴릴의 연필 드로잉 애니메이션 <플라스틱 아트>는 무반주 첼로음악과 함께 리드미컬하게 표현하였다. 이 밖에도 기존의 회화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한 유근택, 김한나 등의 작품은 화면에 움직임과 시간성을 부여함으로써 회화자체의 프레임을 확장시키고 있다.


윌리암_켄트리지,_Weighing_and_Wanting_animated_film_35mm_6min_24sec_1997
ⓒ 코리아나 미술관 All rights reserved.
부후아_Savage_Growth_flash_animation_3min_51sec_2008
ⓒ 코리아나 미술관 All rights reserved.

한편 이야기없이 이미지의 연속된 변형을 보여주거나 선과 색채 소리를 통해 원초적 사고와 느낌을 전하는 실험 애니메이션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이토 존과 아오키 료코의 공동제작 애니메이션 작품인 <Children of Veins>은 일상적인 사물들과 이미지들이 쉴새없이 변화하는 단편적인 장면을 통하여 일상 이미지들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을 해방시킨다. 션 킴의 <내재된 슬픔>은 드로잉을 기반으로 추상 이미지와 인간의 얼굴 이미지가 서로 침투하고 연접하는 연속 추상이미지를 제시한다. 또한 버려진 건물에 끊임없이 벽화를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후 동영상으로 처리한 블루의 <Muto>는 얼굴, 기하학적 형태, 곤충 등이 연금술을 행하듯 자유롭게 변형된다. 특히 실제공간과 작가가 그린 이미지가 서로를 중첩되어 보여지는 이미지가 볼만하다.
 

이토_존_+아오키_료코_Children_of_Veins_animation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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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킴_Latent_Sorrow_16mm_color_sound_3min_30sec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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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_ Muto_wall painting animation_6min 45sec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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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D나 3D의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는 로라 느보넨, 김준기, 임아론, 에릭 오, 장형윤 등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지털 기법을 이용하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감동과 여운이 짙다는 것이 특징이다. 인생의 끝없는 노정과 순환, 자유, 사랑, 강박 등 함축적인 개념이 가슴 속 깊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전시장 한켠에 자리잡은 로라 느보넨의 <마지막 뜨개질>은 절벽 위에서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뜨개질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는 한 여인의 편집증적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일종의 개념 작업이다. 전시장을 돌아나와 랩실에서 마주한 네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짧지만 강한 감동과 여운으로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식량을 찾아 나선 쇠똥구리의 머나먼 여정을 회화적 색채와 리드미컬한 사운드를 통해 전개시킨 에릭 오의 2D 애니메이션 <Way Home>은 시와 같이 잔잔한 서정성과 은유를 드러낸다. 다음으로 상영된 김준기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인생>은 갓난 아기가 아버지의 등에 업혀 끝이 없어 보이는 토템 기둥을 올라가며 아기가 어른이 되고 아버지는 노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인생의 삶과 죽음을 한 마디의 대사없이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소설가인 늑대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여섯 살 여자아이 ‘영희’와의 따뜻함 감정을 표현한 <아빠가 필요해>, 감옥 속 죄수의 신분인 윙이 구름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그 꿈을 결국 죽음으로 실현하는 임이론의 <천사>가 있다.


로라_노이브넨_The_Last_Knit_3D_6min_39sec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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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오_Way_Home_2D_8min_51sec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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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윤_Wolf_Daddy_2D_10min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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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품들은 국제 비엔날레 뿐 아니라 안시, 오타와, 자그레브, 히로시마 등 세계 4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로 두 시간에 걸친 전시 관람이 지루할 새가 없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수묵 애니메이션, 컴퓨터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고, 감칠맛 나는 이야기 전개로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Cross Animate'전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애니메이션의 흥미로운 특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전시이자 시대성과 접목되는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한 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축제이다. 무엇보다 짜임새 있는 전시의 구성으로 각 애니메이션 작품이 지닌 개성이 더 부각된다는 점과 구성의 틀이 전시장으로 이어지지 않아 관람하는 동안 카테고리와 부합되는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더한다는 것이 ‘크로스’적 성격과 맞아 떨어진다.  비정형성, 시간과 공간의 혼재 등의 ‘크로스’적 성격은 현재를 가늠하는 중요한 표상이자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애니메이션이 현대미술의 의미작용에 기여할 수 있는 대목이자 ‘Cross Animate'전이 시사하는 바이다. 



글 .황혜련 (홍익대 예술학, hr0220@hanmail.net)


* 전시기간 : 2009. 4. 2 Thu - 5. 10 Sun (전시기간 중 휴관일 없음) 

* 전시장소 : 코리아나미술관 전관 

* 주최 : 코리아나미술관

* 후원 : (주) 코리아나화장품, 스위치 코퍼레이션

* 참여작가 : 작가 22명의 애니메이션 영상 총 22점, 총 상영시간 약 2시간 

  션킴, 김신일, 김준기, 김한나, 릴릴, 문경원, 에릭오, 유근택, 이광훈, 임아론, 장형윤, 전준호, 
  Blu, Rastko Ciric, Bu Hua, William Kentridge, Simone Massi, Laura Neuvonen,
Regina Pessoa, Tromarama,
  Ito Zon+Aoki Ryo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