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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alloonnneedle.com


보이는 것이 전부 미술이 아니고, 읽을 수 있는 것이 전부 문학은 아닌 것처럼, 소리가 어디까지 소음이 아닐 수 있을까. 약간 바꿔 말하자면, 소음은 음악이 될 수 없을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음악을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강렬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귀에 익은 멜로디나 감정 표현에 능한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런것 없이 파편화된 소리도 어떤 기분에서는 혼을 쏙 뺄 정도로 몸을 훑어내려간다. 소위 고전명작에 전율한다는 말처럼. 

이 무대는 내가 기계의 감정이라고 여겼던 소리들을 들려줬다. 백색소음에 가까운 파열음들과 톱니바퀴 소리에 가까운 마찰음들이 인간적 향수의 자극없이 나열된다. 여기서 나는 아이가 부모를 엄마아빠라 호칭하듯, 자신을 둘러싼 언어체계에서 규칙을 처음 발견하는 기쁨처럼, 이 무대의 소리에서 하나의 규칙을... 아니,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식'을 갖는 - 만들어내는 - 것을 최우선과제로 삼게된다. (소리들이 강압적으로 느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드러웠다. 관객들이 내는 작은 소리들이 별 거슬림 없이 섞여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반면 전자양+박승준 듀오에서는 과거 내가 기억하던, 달빛 담은 정안수랄까 부드럽게 일그러졌지만, 심심하던 전자양보다는 더 거칠면서도 서정성을 느낄 수 있어 신기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관객이 이 무대를 스스로 해석하도록 부여된 힘일까? 아니면 소리를 만들어낸 이들이 의도한 것일까? 의도가 있었다면, 그것이 제대로 해석됐을까? 혼란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내가 체감했던 규칙은 뽕짝의 리듬처럼 단순했다. 내가 찾은 규칙은 지금 들리는 소리들이, 그저 기존에 익숙했던 음악적인 소리의 유적처럼 보였기 때문일까. 그 이상의 다른 규칙이 있을까...?

한편, 뽕짝 메트로놈 위에 겹겹이 스크래치되는 소리는, 몸의 내부에도 영향을 주지만, 이 무대에도 파동이 유지되고 있다. 그 순간의 그 소리들은 비트맵일까, 벡터일까. 무대 공간에 비해 좁은 내 귀에서 소리는 얼만큼 왜곡된 채 자리하고 있을까. 그런 느낌이 든 이유는 이 무대의 소리들이 소재나 의미가 아닌 점과 선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리 이외의 요소는 최소화했다고 할까. 감정부터 (자본이라던가;) 이론까지 소리라는 걸 감싸고 있는 가치들을 벗겨낸 상태로 관객과 마주하는 무대. 그리고 그 소리들의 탄생 과정도 마찬가지로, 유명 뮤지션들의 콘서트처럼 주목받는 자리가 아닌, 오히려 그 배후의 엔지니어에 가까운, 소리를 내보내는 기계 앞에 붙어서 그들을 조작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그들이 이 무대에서 울리는 소리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이 공연 및 추후 공연의 상세정보 http://www.balloonnneedle.com

관련 라이브 영상이 있는 박승준 씨의 유튜브채널 http://www.youtube.com/user/anarchyinkor



덧붙여, 딱히 연관은 없지만;;; (사실은 위의 무대와는 참 상반된 느낌이었지만) 이 공연 사흘 전 무라카미 다카시가 디렉터를 맡은 LV의 프로모션 비디오가 나왔습니다. 이번 영상 제목은 First Love. 전작의 꼬마에서 성장한 소녀는 다시 한번 이세계로 가게 되는데...

링크는 이곳.

이런 코드로 브랜드의 역사랄까 내러티브를 재창조하는 광고를 볼 줄은... 이러다 중년이나 노년 버전도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또한 그게 전혀 거부감이 들지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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