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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꾸는 꿈_기계와 생명에 대한 확장된 시각과 융합예술의 가능성, 스페이스 CAN & 숭실대학교 정보과학과 미디어스페이스, 2009. 6. 16 ~ 7. 2

 

1 더하기 1 2가 아닌 무한대이다. 1 빼기 1 0 이 아닐 수도 있다. 문득 수수께끼같이 들리는 이러한 논리가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설명해 준다. 인과론적 결정론이나 환원주의로 집약되는 근대의 과학은 복잡하고 신비로운 세계에 관한 수 많은 물음들에 답을 주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연산과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놀라운 발명품 컴퓨터가 탄생했고, 운동, 생명, 진화, 우주... 설명할 수 없었던 복잡한 세계들은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온갖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세계를 모방하는데 쓰였던 컴퓨터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컴퓨터가 만든 세계. 가상의 세계라 이름 붙였던 이 세계는 더 이상 모니터 속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 들었고, 환경이 되었고, 자연이 되었다. 컴퓨터는 더 이상 놀라운 발명품이 아닌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로 생각하는 새로운 사유와 소통의 차원을 열어주었다. “기계가 꾸는 꿈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다루고 있는 생성예술(generative Art)은 바로 컴퓨터가 만든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뉴 미디어 아트의 한 영역이다. 생성예술이라는 사뭇 낯선 영역과 주제를 소개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컴퓨테이션을 기반으로 한 창발적(emergent) 예술작품이 예술에 가져온 변화, 나아가 컴퓨테이션 기반의 세계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소통방식과 세계관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중반까지, 새로운 매체와 기술의 등장과 혼란스러운 정치사회적 격동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미술에는 온갖 이즘과 운동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서 현재까지 미술에는 또 다시 새로운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은 이러한 새로운 이름들이 예술을 창작하는 매체의 변화와 매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컴퓨터의 등장은 무수히 많은 이름의 예술을 낳았다. 컴퓨터 아트, 뉴 미디어 아트, 디지털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인터넷 아트, VR 아트, Artificial Life Art, 로커티브 미디어 아트 등.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용어들이 다분히 유보적이라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좀 더 포괄적인 개념 안으로 포함되거나 다른 이름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명명을 시도하는 이유는 새로운 매체가 예술에 가져온 변화와 그 변화가 이 사회 내부에서 공명함을 주장하고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생성예술이라는 용어 역시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컴퓨터 연산과 알고리즘은 마치 원시스프(primordial soup)나 우주와 같이 그 심연을 알기 힘들지만, 분명 생명과 진화의 매커니즘을 가진 총체를 만들어 낸다. 특별한 점은 컴퓨테이션의 무한한 세계는 단순한 몇 가지 요소와 규칙들이 무한 반복되고 상호작용함에 따라 예상할 수 없었던 무엇인가를 창발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생성 예술의 속성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컴퓨팅을 기반으로 한 생성예술은 작가가 몇 가지의 규칙을 창안하고 기획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작가도 예상할 수 없는 결과들이 창조된다. 즉 생성예술에서 예술가는 작업의 초안자 또는 작업의 맥락을 규정하는 자로서, 작품이라고 하는 창조적 시스템을 설계하고 창조적 과정에 협력하는 파트너가 된다. 노르베르트 볼츠의 말처럼 디지털 미디어 아트는 곧 디자인이고, 작가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국내외의 많은 작가들은 변형생성하고 진화하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작가로서의 태도와 다양한 방식들을 보여준다.

 



먼저, 정문열의 <A Glance to Primordial Chaos of UnderSea>는 컴퓨테이션 기반의 생성 이미지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100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임의로 결합하여 변형됨에 따라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관객들은 이러한 무한한 변이와 생성의 과정 속에서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카오스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다. 이태훈의 작품 <무제>는 알고리즘을 통한 드로잉의 과정에서 작가의 변화된 역할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알고리즘 디자인이 마치 다양한 환경에 씨앗을 뿌리고 자라나는 식물을 바라보다 적절한 녀석을 선택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표현한다. 이재중, <Just Draw>은 작가와 알고리즘의 협동적 작업이 만들어내는 무작위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의미 없는 끄적임처럼 보이는 낙서도 규칙을 갖게 되면 아름다운 패턴이 될 수 있다. 컴퓨테이션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는 바로 이렇게 창조된다.



Lance J. Putnam, <Nonconnectivity>은 컴퓨터 생성 시청각 작품으로, 화석에 새겨진 지질학적 흔적들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수학적인 풍경을 구축하고, 독립된 입자들이 복잡하지만 마치 우주공간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친근한 시공간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 요소들이 스스로 확산하고, 파편화되고, 조직화하고, 재정비하는 컴퓨터 시스템의 환경적 요소에 대한 은유로서 풍경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Graham Wakefield<Makeshift>는 복잡 이론, 생각의 뇌 구조에 기반한 네트워크/그래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인터렉티브 멀티미디어 작품으로, 관객과의 참여나 스스로의 피드백 시스템을 통해 랜덤한 방식으로 영상과, 움직임 그리고 사운드를 생성한다. 작가는 컴퓨테이션을 물질이나 환경과 같은 매체 그 자체로 바라보고, 창발의 가능성을 가득 찬 열린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프랑스의 작가 Alain Bittler <Movement Serie (2008 number 41, 2009 number 2 and 14)> 3D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스틸 이미지에 운동성을 담는 작품을 보여준다. 컴퓨터 연산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오랫동안 공간의 예술이라 여겨졌던 시각예술을 시간의 예술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되게 하였고, 나아가 움직임을 통해 매개된 공간과 시간을 인식하게 한다.

Yutaka Makino<Submultiple>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동적 시스템 속의 형태를 3D 프린터로 제작한 컴퓨테이셔널 조각 작품은 컴퓨테이션의 자연발생적인 이미지가 3차원 공간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Wesley Smith Limia Shunia, <modalities of space>는 빛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기하학적인 형태와 알고리즘의 연결을 통해 정보와 공간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정보, 컴퓨테이션, 공간과 물질의 끊임없는 네트워크를 제안하고 있다. David Hall <Terrorism-Oil-Telecommunications>은 생성 시스템, 네트워크의 알고리즘 그리고 텔레커뮤네케이션이 단지 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정치사회적 차원으로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로 보고, 이러한 세 차원의 충돌과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설치작업이 전시된다.  제목에서 테러리즘은 인간을, 오일은 발생적인 알고리즘을, 텔레커뮤니케이션은 수학적인 구조의 우주인 과학을 상징한다.

 

앞서 살펴본 전시 작품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듯이, 생성예술에서 작품은 스스로 발생하고 창발적인 행동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진화함으로써 생명을 부여 받는다. 자율성을 갖는 예술작품은 작가의 역할이나 태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고, 뿐만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기존의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는 예술작품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경험하게 한다. 잔잔한 물가에 나뭇잎이 하나 떨어져 있다가 상상해 보자. 그 곁으로 던진 돌멩이는 물살에 힘을 실어주어 나뭇잎이 좀 더 빨리 떠내려가게 할 수도 있고, 물살에 완전한 파문을 일으킬 수도 있다. 변화의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생성 예술은 예술의 창작과 수용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에게 제2의 자연으로 다가온 컴퓨테이션의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한다. 모든 것을 내 손안에서 결정할 수 없는 인간은 좀 더 겸손해지게 되지 않을까? 문득 인간지성의 한계에 서 있다는 안타까운 감정 없이, 시간과 자연의 창조적 추이의 신비를 명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 화이트 헤드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제 컴퓨케이션의 우주속에서 제2의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배울 차례다.


전시정보: http://koian.org/machine_dreams_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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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아지 2009.06.23 2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뮬레이션, 컴퓨테이션, 뭐라고 부르든 컴퓨터가 하는 일은 창발적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인과론적 결정론 속에서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