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곳곳에서 발견하는 은폐된 기억_플랫폼 인 기무사 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23. 21:15



     기무사. 국군기무사령부를 줄어 부르는 이 단어는 우리에게 낯설고도 지울 수 없는 어릴 적 트라우마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왠지, 기무사 건물은 두텁고 높은 회색 담벼락으로 둘러쳐져있고, 누군가 들어가면 자신의 의지로 나올 수 없는 미로와 아무리 소리쳐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는 깊고 깊은 지하가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도심에 있지만, 마치 도심 속 성곽처럼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그리고 들어가는 것조차 원치 않을 장소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곳의 문이 활짝 열렸다. 여전히 그 음산한 기운과 회색빛 외벽에 둘러 싸여 있지만, 수많은 기괴한 이야기와 두려움을 묻어버린 채 우리의 발걸음을 막지 않는다.



사무소(SAMUSO:)에서 주최한 ‘플랫폼 2009’의 메인행사인 ‘플랫폼 인 기무사’전을 통해 우리는 옛 기무사 건물이 아직 단장을 하기 전, 옛 기억들이 곳곳에 묻어있는 장소를 방문할 수 있었다. ‘기억의 공백(Void of Memory)’이라는 부제로 옛 기무사 공간과 현대예술을 묶어 보고자 한 ‘플랫폼 인 기무사’를 한번 들여다보자.


정체모를 흔적이 남은 공간

3층 높이의 본관과 크고 작은 별관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욕심에 앞서 이전에 들어와 보지 못했던 기무사 건물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그저 들은풍월 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더하여 자유 관람이 가능했던 저녁이라는 시간과 오래된 건물 특유의 돌 벽에서 뿜어져오는 한기가 궁금증을 더욱 부추 켰다.

익숙하지 않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맞닥뜨리게 된 양아치의 <Surveillance Radio: 기무사 이야기> 역시 그러했다. 반원형의 공간에 낮게 걸린 스피커들. 그리고 스피커에서는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계속해서 나왔다. 명확하지 않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분명치 않은 소리들은 분명 애국가나 안내방송이 나왔을 스피커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란히 걸려있는 스피커들은 마치 수군거리듯이 한 자리에서 저마다의 말을 하고 있었다. 손잡이가 없는 오래된 문을 설치한 아이코 미야나기의 <The Door without a Knob> 또한 어디론가 나갈 길을 찾아야할 것 같은 답답함을 주었다. 마음대로 장소를 이동할 수 없고 갇혀있는 느낌을 주었고, 특히 어디로 통하는 지 알 수 없는 낡은 나무문들은 이를 강화시켰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 뒤의 공간이 궁금한 잠긴 문들, 그리고 뜯어져있는 벽들, 음식을 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작은 부엌시설 등과 함께 건물을 이루는 각 공간의 정체를 알고 싶게끔 만들었다. 장민승과 정재일이 공동으로 작업한 <A. Intermission>은 이를 더욱 극대화하였다. 과거 운전사들이 머물렀던 숙소를 비롯하여 작은방과 복도에 노란 조명을 넣고 각 장소에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음향 설치가 되어있는 작업이다. 그래서 하나의 통일된 음향이 설치된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장소를 이동하면서 저마다 다른 소리를 듣게 된다. 동시에 정형화되지 않은 음악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옛 기무사의 흔적이 남은 침상, 의자, 문, 창문을 더욱 기묘한 시선으로 경험하게 하였다.


기억의 억압적 은폐

낯선 공간. 그렇지만 누군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기무사 건물. 그곳을 보면서 사람들은 많은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한 기억들이 사실이건 아니건 말이다. 사실 그건 중요치 않다. 단지 이제는 그 기억을 증명할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고, 그저 잔향처럼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기억의 공백(Void of Memory)’이라는 전시의 주제가 공간과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또한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정연두의 <공중정원>은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만큼을 받았다. “여러분은 비밀의 공중정원을 아십니까?...”라는 멘트로 시작되는 유명 아나운서의 설명을 중심으로 우리가 몰랐던(?) 비밀스러운 한국의 ‘공중정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게 된다. ‘우리한번 진실을 파헤쳐봅시다!’ 라고 부르짖는 수많은 시사교양프로그램처럼, <공중정원>은 그 미스터리를 우리에게 신나게 폭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진실’로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거짓’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 조금이나마 국사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아니 설사 공부를 안했더라도 사극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도록 아나운서는 ‘거짓’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불확실한 의심을 하는 사람을 위하여, 작가는 출구 한 견에 살짝 열린 문틈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거짓임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스태프의 땀과 노고가 여실히 보이는 다른 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명백한 가짜를 너무나 진실 되게 표현하고 있는, ‘사실의 은폐’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정연두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은폐, 이것은 우리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기무사의 단면이기도 해서 관람객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를 떠올리게 한다. 척박한 현실을 외면한 채 아름다운 이상만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빅브라더. 빅브라더 역시도 존재하는 지 끝내 알 수 없지만, 그 통제 속에서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억압당한다. 그리고 대신 아름다운 ‘가짜 현실’을 알게 된다. 이는 이불의 <Aubade>에서 반짝거리는 유토피아에 대한 단어일 것이고, 백정기가 <푸르게 푸르게>에서 만든 과장되게 파란 연못과 녹색의 풀이 가득한 정원일 지도 모른다. 또한 지니 서가 요구하는 대로 <Keep looking beyond>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가 떠나가고 미래를 기다리는 플랫폼

근대기에 지어진 문화재. 어두웠던 억압의 역사의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곳. 기무사. 이곳은 새천년이 시작된 지 십년이 된 지금,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플랫폼이 되었다. 과거, 자유를 억압하고 현실을 외면했던 장소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자유롭고 전위적인 예술작품이 가득 채워지는 장이 될 것이다. 그러한 만큼 ‘플랫폼 인 기무사’ 전은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과거의 에너지와 이를 다시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 예술작품의 열정이 혼재된 시간이었다. 낯설고 혼란스러운 건축의 공간과 함께 그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예술작품을 찾아다니며, 점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혼재된 시간을 탐험할 수 있었다. 일정한 동선도 필요 없었고, 명확한 구획도 없었다. 단지 흔적이 남은 공간과 그 속에 담긴 작품만이 우리에게 소통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무엇이 작품인지, 건축물의 부분인지, 그리고 내가 과거의 폐허에 서있는 것인 지, 미래의 첫 걸음에 놓여있는 것인 지 혼란스러웠다. 이는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가 <Entre temps(Between times)>에서 작가의 과거의 어느 순간을 마주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 혼란 속에서 자신,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를 우연히 맞닥뜨린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혼란에는 비선형적인 전시의 형태도 한 몫을 했다. 그래서 혹자는 일관된 주제없이 공간에 흩어져있는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특정한 주제에 따라 이 전시를 나누었다면, 그리고 그 틀 안에 작품을 가두어두었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가 아는 기무사의 억압 혹은 은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각 공간의 비밀을 찾아내려 한 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을 감상하면서 숱한 혼란을 가진 우리들은 옛 기무사에서 있을 수 없었던 자유를 이 공간에 부여하였다.

우순옥은 반원형의 창이 있는 공간에 <등대>를 설치하였다. 오랫동안 화석화되어버린 옛 기무사터에 빛으로 생명의 숨결을 넣고 싶어서이다. 이렇듯 ‘플랫폼 인 기무사’를 통해 과거의 망령을 회색빛 건물에서 털어버리고 플랫폼에 서서 새로운 기차를 기다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허나영 (예술학, 미술비평, psyche3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