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67시간의 지적유희-클랏사신_스탠 더글라스 개인전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24. 10:17



클랏사신. 1984년 칠코틴 부족 족장인 그는 일군의 전사들을 이끌고 자신들의 영토를 가로질러 해안도로를 건설하려는 백인 노동자들을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일으켰다. 그 후 백인들의 추적을 피해 다니며 저항했지만, 결국 붙잡혀 일곱 명의 부하와 함께 포로가 되었다. 클라사신을 포함한 다섯 명은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졌고, 두 명은 풀려났으며, 한 명은 호송도중 탈출에 탈출해 다시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이 사건이 스탠 더글라스의 <클랏사신>의 단초가 되었다.




스탠 더글라스.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5년 슈트트가르트 슈타츠갤러리와 뷔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이 열릴 만큼 국제무대에서는 이미 그 인지도가 확고한 작가이다. 국제적인 인지도에 비해 국내에 본격적인 소개가 늦어진 데에는 우선 번역이나 더빙을 해야만 하는 언어의 문제가 부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그의 작품들이 빌 비올라의 비디오 작품들처럼 즉각적으로 감각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레퍼런스들을 차용하기 때문에,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고, 관객은 다양한 맥락과 형식 안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며 지적개입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작품을 다른 언어권이나 문화권에서 소화하기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클랏사신>은 이러한 스탠 더글라스의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우선 작품은 1864년의 ‘클랏사신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분할된 장면들로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수십 개로 분할된 장면들은 840개의 순열로 재구성되어 67시간 동안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살인사건을 두고 등장인물은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가 하면, 사이사이 서로 다른 시간들이 교차되어 들어온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을 통해 익숙한 이러한 비선형적인 서술방식은 살인사건을 둘러싼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미궁에 빠져든다. 67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종종 화제가 되긴 하지만, 사실 그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본래부터 작품의 시작과 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살인자를 찾아내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의 사건을 두고 펼쳐지는 모순되고 일관되지 못한 진술들, 각기 다른 입장과 환경에서 보는 시각차, 여기에 덧붙여 영어와 불어, 토착어까지 동원되면서 제기되는 언어에 대한 문제를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는 가에 대한 관점을 포착하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들은 그저 새로움을 위한 시도가 아니라, 그가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문제의식, 즉 ‘문화적인 차이, 압제적인 통치, 과잉정보, 인종의 차이’등과 같은 요인들이 우리가 일관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라는 그의 생각과 닿아 그 깊이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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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작품으로 한 작가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 개의 작품을 건성으로 보는 것보다 하나의 작품을 제대로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시의 규모와 참여 작가수로 전시를 평가하는 요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몽인 아트센터의 ‘너른’ 공간에 열 한명의 등장인물 초상사진과 한 편의 비디오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하나의 작품이라도 제대로 전시하여 소개함으로써, 쉽지 않은 그의 작업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던 전시였음은 분명하다. 




글.신보슬 (미학, 전시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