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유석재의 다리놓기

[유석재의 다리놓기] 유기 전자 공학이 여는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

yoo8965 2009. 10. 28. 18:33


미디어 문화예술 채널 앨리스온(AliceOn)은 2009년 10월부터 다양한 매체 예술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의 글을 연재합니다. 

두 번째 외부
연재기사는
[두 문화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젊은 과학도 유석재님의 과학과 예술 사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코너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1. 과학-기술의 발전과 예술 표현의 확대


 흔히 생각하기를 과학 기술과 예술은 전혀 상관이 없는 상이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사와 과학 기술사를 살펴보면 그러한 생각은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예술은 과학에 대해, 패러다임에 대한 새로운 시선, 이미지를 통한 창의적 사고에 대한 도움, 과학 기술의 산물에 대한 반성, 과학-기술의 대중화 등을 제공하였다. 반대로 과학은 예술에 대해 혁신적인 진보에 의한 사회의 변화와 그에 대응하는 패러다임 전환, 새로운 표현 수단의 제공, 새로운 소재의 제공 등에 기여하였다. 통섭 혹은 융합이 사회 전반의 유행이 된 오늘날에는 이러한 예술과 과학 간의 상호작용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부상하고 있는 유기 전자 재료(Organic Electronics Material)는 위에서 언급한 과학 기술-예술 간의 상호작용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유기 전자 재료는 기존의 전자 재료들이 가지는 예술 재료로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분야인 유기 전자에 대해 소개하고, 유기 전자 재료가 여는 새로운 예술 표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유기 전자 공학(Organic Electronics)이란?


 튜브 물감의 발명, 철도의 보급, 광학 이론의 정립, 사진기의 발명과 같은 일련의 과학 기술의 진보가 인상주의 미술의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유기 전자 재료 또한 튜브 물감이 했던 역할을 오늘날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유기 전자 공학이란 어떠한 것인지 소개하도록 하겠다.

 유기 전자 공학은 탄소를 기반으로 한 폴리머1), 플라스틱 등을 전자 제품의 재료로 다루는 학제간 학문 분야(Interdisciplinary Studies)2)이다. 유기 전자 공학은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주변의 전자 제품을 열어보면 대부분이 구리, 철, 금과 같은 금속 재료와 실리콘과 같은 무기 물질3)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도를 전후하여 전자 재료로써의 유기물이 가지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오늘날에 와서는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와 있는 기술이 되었다.

 유기 전자 재료의 일반적인 특징으로는 기존 무기물 기반의 전자 재료와는 달리 가볍고, 구부러질 수 있고(flexible), 더 저렴하다는 것이다(low cost). 이와 같은 유기 전자 재료의 특징들은 예술가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전자 재료를 예술에 이용하도록 할 수 있다.4)



3.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


 유기 전자 재료로 이루어진 장치(device)들을 살펴보고, 그로 인한 새로운 예술 표현의 가능성에 대해 모색해보겠다.


 -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 / 플렉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OLED는 Organic Light Emitting Diode의 약자로, 유기 물질로 이루어진 발광 다이오드를 뜻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삼성의 아몰레드 핸드폰 또한 OLED의 일종인 AMOLED를 디스플레이로 사용한 것이다. OLED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1) 매우 얇고

 2) 구부러지며(flexible)

 3)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하여 인쇄가 가능하여 직물과 같은 소재를 디스플레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고

 4) (이론적으로) LCD나 PDP와 같은 기존 디스플레이에 비해 낮은 가격에 생산이 가능하며

 5) 사용되는 전력이 낮고

 6) 색 표현이나 밝기, 반응 속도가 기존 디스플레이에 비해 우수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예술가들이 기존 디스플레이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첫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곡면 디스플레이 혹은 불규칙한 표면을 가진 디스플레이의 가능성이다. 기존의 디스플레이들은 평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모든 영상은 유클리드적인 2차원적 평면의 한계 안에 속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표현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예술가들이 이러한 표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Gustav Klimt - Adele Bloch-Bauer's Portrait>


클림트와 같은 몇몇의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담길 액자까지 직접 제작했다. 그들에게 액자는 작품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성 미술을 만드는 컴퓨터 또한 자신의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하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생성 미술이 오프라인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생성 미술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기초로 한 여러 가지 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 외적인 부분, 즉, 전시 방법 자체는 여전히 기존 미술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의 발전으로 평면을 벗어난 디스플레이가 가능해진다면, 컴퓨터가 디자인하는 비평면 디스플레이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즉, 작품의 전달 수단까지 컴퓨터가 참여하는 높은 자유도(컴퓨터의 입장에서)를 가진 새로운 형태의 생성 미술로의 시도가 가능한 것이다. 더 욕심을 내본다면, 전시 공간까지도 컴퓨터가 구성함으로써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전시공간도 가능할 것이다.

 다음으로, 곡면 디스플레이 이외에 예술 표현의 확대에 기여를 할 만한 OLED의 특성으로는 매우 얇다는 것과 저전력 구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삼성 전자에서 시제품으로 만든 전자 신분증을 찍은 영상을 보자.




<삼성 전자 여권 영상 >


 영상을 보면, 두 가지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매우 얇은 신분증 위에서 영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디지털 재료인 디스플레이와 기존의 아날로그 재료를 사용한 작품 사이의 이질성을 해소시켜줄 수 있다. 즉, 디스플레이 자체가 어떠한 이질감 혹은 분리감 없이 작품 속에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분증에 어떠한 자체적인 전력 공급 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인데, 신분증이 RFID를 통해 전력을 무선으로 빌려오는 것이다. RFID를 통해 무선으로 전송 가능한 전력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영상에서 나온 디스플레이가 얼마나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저전력 구동을 통해, 예술 작품의 심미적 요소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전선과 같은 전력 공급 수단을 무선으로 대체할 수 있고, 이는 곧 전선이나 회로와 같은 것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전자 종이 (e-paper)



<아마존 킨들>


 아마존 킨들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전자 종이는 이미 친숙한 것일 것이다. 기존의 디스플레이가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낯선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처음 전자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종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오늘날 그러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전자책이 종이를 대체하지 못한 이유는 기존의 디스플레이가 종이만큼 텍스트나 이미지를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는 처음 한번 인쇄할 때만 비용이 들뿐 그 뒤로 볼 때에는 추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으며, 전자 디스플레이들이 가진 시야각의 한계도 없다. 또한 자체적인 백라이트(Back-Light)가 없이 외부의 광원(태양광, 실내조명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밝은 곳에서도 컨텐츠를 볼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편의를 위해 자유롭게 휘거나 접을 수도 있다.

 이러한 종이의 장점과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동시에 누리기 위해 발명한 것이 전자 종이이다. 전자 종이의 기본적인 원리는 전기장을 통해 종이 위에서 잉크 입자를 제어하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잉크 입자가 한번 배열되고 나면(즉, 한 페이지가 전자 종이 위에 구현되고 나면) 디스플레이를 위한 추가적인 전력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또한 전자 종이는 현존하는 디스플레이 중 가장 잘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어, 전자 종이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장점을 이용하여 예술 표현의 확대에 대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볼만할 것이다. 다음 영상은 에스콰이어 75주년 기념판을 찍은 영상으로, 전자종이가 실제 잡지에 어떤 식으로 적용이 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에스콰이어 영상>


 에스콰이어 기념판 영상은 전자 종이가 예술 표현의 확대에 대해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단편을 제공해주고 있다. 아직은 전자 종이가 실생활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전자 종이가 예술 표현의 확대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유기 태양 전지(Organic Solar Cell)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는 보통 전자 기기를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 아트 작품들은 전력 공급이 용이한 실내 또는 건물 외벽이나 건물 주변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기 태양 전지는 미디어 아트 작품들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할 수 있다. 튜브 물감의 발명이 인상주의 화가들을 실내 공간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다면, 유기 태양전지는 작품들을 실내 공간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태양 전지는 실리콘으로 이루어져 있어 굉장히 비쌌을 뿐만 아니라, 무기물의 특성(두껍고 무겁고 형태가 고정된)으로 인해 미적인 측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부족했기 때문에 예술 표현에 이용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유기 태양 전지의 경우, 기존 태양 전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생산할 수 있으며, 매우 얇다는 특성(박막, Thin Film)과 구부러지는 성질(Flexibility)으로 인해 미술 표현에 이용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심지어 최근에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 직물(Solar Textile)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5)

 그렇다면, 이러한 유기 태양 전지는 예술 표현의 확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들은 작품의 미적 요소를 저해시키지 않게 작품에 포함되며 작품을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다. 작품이 위치한 공간은 감상자의 해석에 대해 의미 맥락(Semantic Context)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작품이 미술관, 건물의 외벽 혹은 주변에서 벗어나 공간 점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예술가(혹은 감상자)는 작품에 대해 더 폭넓은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것은 곧 예술 표현의 자유의 확대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Surrounded Islands - Christo & Jean Claude / Copyright © 2009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이러한 유기 태양 전지를 예술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 Christo & Jean Claude의 Surrounded Islands에서 섬을 감싸고 있는 천이 Solar textile이고 추가로 값싼 유기 디스플레이가 대면적으로 적용된다면? 즉, 미디어 아트로서의 랜드 아트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맺으며

 지금까지 유기 전자 공학의 정의와 유기 전자 재료를 이용한 몇 가지 기술과 각각이 예술 표현의 확대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모색해보았다.

 위에서 언급한 유기 전자 재료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를 소개하고 마치고자 한다.


 1) OLED

 - Flexible OLED YouTube 영상 : Sony와 Arizona State University의 Flexible Display Center에서 공개한 Flexible OLED 영상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TDuP8PtDJbE

http://www.youtube.com/watch?v=VNDDVbNyrxs

 - WorldChanging "WC Retro: OLED's - The Future of Light?" 기사 :

http://www.worldchanging.com/archives/004669.html


 2) 전자 종이

  - Wikipedia “전자 종이” 항목 : 한글로 된 전자 종이 소개 글 중 가장 폭넓고, 기술적인 부분까지도 잘 설명해 놓은 글이 아닌가 싶다.

http://enc.daum.net/dic100/search.do?cpcode=10&query=%EC%A0%84%EC%9E%90%20%EC%A2%85%EC%9D%B4

 - 삼성 “SNE-50K” 소개 기사 : 얼마 전에 삼성에서도 아마존 킨들과 같은 전자 종이 단말기 SNE-50K를 시장에 내놓았다.

http://www.kmobile.co.kr/k_mnews/t_news/news_view.asp?tableid=solution&idx=252015

 
 3) 유기 태양 전지

 - Wikipedia "Organic solar cell" 항목 : 유기 태양 전지의 작동 원리와 종류에 대해서 잘 설명해놓았다. 약간의 물리, 화학적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하지만, 잘 쓰여진 소개 글이다.

http://en.wikipedia.org/wiki/Organic_solar_cell

 - 네덜란드 University of Groningen에서 공개한 Plastic Solar Cell 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v=xY-vymWNQR0

 - WorldChanging "Best In Show: Solar Clothing" 기사 : Solar Textile이 실제 예를 아주 잘 소개한 글이다.

http://www.worldchanging.com/archives/009621.html



[각주]

1) '많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polys'와 '부분' 또는 '단위'의 뜻을 지닌 그리스어 'meros'의 합성어로, 비교적 작은 크기의 화학 물질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고분자를 일컫는 말이다.

2) 대학에서는 물리학과, 전자 공학과, 재료 공학과 등 여러 학과에서 유기 전자 재료를 연구하고 있다.

3) 물질은 크게 무기 물질과 유기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서 말한 것과 같이, 무기물은 금속이나 실리콘과 같은 물질을 뜻하며, 유기물은 생물체를 이루는 분자와 같은 탄소 기반의 물질을 뜻한다. 여기서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유기 물질은 생물체에 존재하는 화합물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탄소가 중심이 된 화합물을 일컫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는 생물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탄소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유기물이다.

4) 물론 유기 전자 공학은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른 기술이 아니지만, 10년 안에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보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삼성 전자에서는 유기 전자 재료 중 하나인 AMOLED(Active-Matrix Organic Light Emission Diode)를 이용한 핸드폰인 “아몰레드”를 선보였고, 가까운 미래에 삼성이나 LG 같은 국내 기업에서 대형 OLED를 사용한 TV를 선보일 것이다. 또한 유기 전자 재료에 내구성과 같은 단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예술 재료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5)  물론 유기 태양 전지는 낮은 효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전력이 필요한 데에는 쓰이기 힘들 것이고, 심지어는 작품의 주 전력원이 되기에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OLED와 같은 저전력 기술과 함께 쓰인다면 분명히 예술 표현의 확대에 대해 어떤 가능성이 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