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Jason Kahn Sound Installation @ SEOUL_exhibition review

yoo8965 2009. 12. 16. 16:11

# 서교예술실험센터, "서교(Seokyo)"

휑한 공간. 문을 열고 들어선 관객은 공간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전시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건가 싶어 의아해진다. 그러나 그가 바로 그 곳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는 이내 그 썰렁해 보이던 공간이 묘한 소리들로 채워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취리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Jason Kahn이 조성한 음향 환경, "서교(seokyo)".

전시 공간의 천장에는 전선으로 연결된 60개의 피에조 스피커가 매달려 있다. 서교예술실험센터 외부에 숨겨 둔 스테레오 마이크에 의해 외부 공간의 소리들―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바퀴와 아스팔트 바닥 사이의 마찰음, 누군가의 목소리 등과 같은―이 채집되고, 그 소리가 앰프를 통과하면서 변조, 증폭되어 60개의 스피커로 분산된다. 소리는 특별한 가공을 거치지는 않지만 스피커의 주파수 한계에 의해 변조되면서 미묘하게 다르게 들린다. 제이슨 칸은 한국에 도착해 전시 공간을 둘러본 후 이 작업을 기획했다.

뉴욕 태생으로 현재 취리히에 거주하고 있는 제이슨 칸은 사운드를 통한 장소 인식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면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퍼포먼스, 즉흥 연주 등의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시청각적으로 선보여 왔다. 이번 "서교" 작업에서 그는 외부 공간의 다양한 소리들을 전시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일상 공간의 벽을 제거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거리의 음향 환경을 전시 공간 안으로 옮겨오면서 공간 간의 문턱을 지우고 전복된 공간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에서 외부의 경험을 전시 공간으로 옮겨오는 시도들은 다양하게 있어왔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Seven Ends of the World>에서 토비아스 레베르거는 그 자신이 선택한 일곱 군데 장소(루마니아의 호박 밭, 히말리아의 산 끝자락, 일본 교토 시내의 버거킹, 독일 프랑크푸르트 내 맥주 바의 개수대, 라스베가스의 운하, 어떤 도시의 주차장과 화장실)의 빛들을 전시 공간 속으로 옮겨온 바 있다. 각 장소의 빛은 인터넷을 통해 램프와 연결되며, 그곳의 빛이 변화함에 따라 전시 공간에 설치된 램프의 조도도 조정된다. 다채로운 색을 가진 램프들은 각 장소의 시간대와 빛을 반영하며 서서히 변화하는데, 이는 관객에게 낯설고도 경이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제공 : 서교예술 실험센터

한편, 제이슨 칸의 작업은 시각적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로우테크적 방식을 통해 공간에 대한 청각 중심적 경험을 유도한다. 관객은 천장에 설치된 각각의 스피커 아래에서 머물거나 자리를 옮기고, 자신만의 동선을 만들면서 독특한 음향 경험을 얻는다. 이 때 관객의 청각은 음향을 이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스피커를 매개로 전해지는 소리 뿐만 아니라 스피커를 거치지 않은 소리(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소리) 또한 매순간 동시적으로 들려오기 때문이다. 제이슨 칸은 음향을 우위로 두는 공간 이해를 제안하고, 관습적 공간 경험을 소격화 한다.

제이슨 칸의 이번 전시는 매뉴얼의 류한길 작가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아트센터 나비와 백남준 아트센터에서의 강연 및 워크샵, 그리고 솔로 및 합동 공연들과도 함께 꾸려졌다. 제이슨 칸 작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워크샵에서 참여자들은 컨택 마이크(contact microphone)를 이용하여 주위의 미세한 소리들을 자신의 녹음기기로 채집하고 또 직접 구성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칸은 본인의 작업에서 컨택 마이크를 자주 사용한다) 클럽 보위와 닻올림에서는 제이슨 칸의 내한 활동을 기획한 류한길 작가를 비롯하여 진상태, 최준용, 홍철기, 박승준, 로보토미, 전자양 등의 한국 뮤지션들과 함께 즉흥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공연장은 충돌하고 반향하는 음향들로 메워졌다.

다양한 청각적 자극은 끊임없이 우리의 감관으로 흘러들고 사라진다. 도시는 우리의 시각 경험 뿐만 아니라 청각적 경험의 구조 또한 바꾸어 놓았다. 전자 기기를 통해 새로운 음향을 모색하고 소리들을 변조/증폭하며 때로는 자극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기도 하는 시도들, 실험 또는 노이즈 음악으로도 일컬어지는 그러한 실험들은 도시에서의 경험으로부터 파생한 것이다. 그러한 급진적인 음향 실험들과 일상 소음을 재구성하려는 음악적 혹은 음향적 시도들은 '사운드 아트'라는 모호한 집합 속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작업들과 함께 묶이곤 한다. '사운드 아트'의 어떤 부분집합들은 시각적 요소를 중심으로 청각적 요소를 도입하지만, 어떤 부분집합들은 아예 시각적 요소들을 배제하면서 시각 중심적인 세계 인식에 대한 반발을 드러내기도 한다. 청각을 통해 세계를 다르게 인식할 것을 제안하고,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일상'과 '미술' 사이의 경계, 그리고 서로 다른 장르들 간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들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오늘날에는 예술 장르 간의 견고해 보이던 벽들이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낮아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술계'는 여전히 어떤 의미에서 자기 증명에 치중하고 있고, '융합'이나 '허문다'라는 표현들은 하나의 수사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 '사운드 아트'라는 용어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다양한 예술 현상들을 포섭하기 위한 개념으로 흔히 쓰이고 있지만, 여전히 모호하게 정의된 채로 다소 편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류한길 작가는 '사운드 아트'라는 명칭 자체가 특정한 장르 중심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러한 명명 작업은 제도가, 그리고 언어가 이종 내지는 잡종(hybrid)을 읽고 흡수하는 한 과정이며, 그러한 개념적 구분 또한 다분히 편의적인 구분일 수 있다. 다만 개념적 정리는 불가능하더라도, '사운드 아트'로, 그리고 또 다른 이름들로 불리는 실험들이 문화의 층을 두텁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장치들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 어떤 가정

(우리가 항상 어떤 소리들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는 반대로)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다면, 파장을 전달할 어떠한 매질도 없는 완벽한 무음의 공간 속에 갇히게 된다면.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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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칸의 활동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www.jasonkahn.netThe Manual의 홈페이지에도 이번 Jason Kahn의 내한 관련 자료들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http://www.themanual.co.kr


글. 김신재 (앨리스온 수습에디터, momomom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