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낯익지만 새로운 세라믹 탐구생활_건축도자 Now & New : 예술, 디자인 그리고 도시展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3. 21:54

부산으로 향하는 남해고속도로 주변으로 펼쳐지는 김해의 넓은 들녘에 낙동강의 지류인 화포천이 흐른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바로 이곳이 바라보이는 진례면 송정리의 작은 마을에 안착한 건축도자 전문 미술관이다. 주지하였듯 지리적 접근성이 다소 떨어져 이름만 들어서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지 감을 잡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일단 알고 나면 근사하다며 하나같이 입을 모는 곳이기도 하다.

클레아아크 미술관 전경

클레이아크는 흙을 뜻하는 ‘클레이Clay와 건축을 뜻하는 ‘아키텍쳐Architecture에서 따온 합성어로 과학과 예술, 산업의 상호협력을 통해 건축도자Architectural Ceramic분야의 발전을 추구한다는 미술관의 기본정신을 담고 있다. 그런데 건축도자가 뭘까? 건축도자는 간단히 말해 건축의 내외장재로 사용되는 도자이다. 흙을 빚어 구워낸 기와, 벽돌, 타일 그리고 욕실용 위생도기, 부엌용 도기들이 그것이다. 생소한 어휘였으나 주변에 널린 친근한 존재로 인간이 정착생활을 한 이후 이 도자와 건축은 꽤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번에 내가 본 전시는『건축도자 Now & New _ 예술, 디자인 그리고 도시』展이다. 지난 2008년 고건축도자 재료를 통해 건축도자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했던『건축도자 Old』展에 이은 시리즈 전시로서, 20세기 이후 대량 생산방식으로 제작되어 건축과 산업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현대건축도자의 다양한 면모를 예술적, 기능적, 환경적 측면에 입각한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소개한다.

예술 into Art

현대 건축도자 예술의 향연(饗宴)

먼저, 6개국 10인의 예술가들이 지난여름 창작연수프로그램을 통해 사라져가거나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산업재인 오늘날의 건축도자 재료를 사용하여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흥미롭게 보았던 몇 작품을 소개해볼까 한다.

거대한 유리 돔과 외벽에 부착된 5000여 장의 파이어드 패인팅Fired Painting을 자랑하는 미술관. 원형의 전시 홀에 들어서면 자연채광 창을 통해 내려앉은 따스한 햇살이 야마무라 유키노리의 작품 위에 적힌 소망의 글귀들을 조명하고 있다. 우연히 들른 경주의 사찰에서 사람들이 기와에 소원을 담은 글을 적고 있는 모습에 매료되었던 작가는 한국 전통가옥의 기법대로 기와지붕을 연출했다. 관람객들은 절 아닌 미술관에서 자신의 소망을 담은 기와를 하나씩 채워나갔을 것이다. 건물 가장자리를 감싸 도는 원형계단을 오르면 2전시실에서 알록달록한 색 타일을 사용하여 ‘테트리스 게임’을 형상상화 한 양주혜의 작품이 시선을 끈다. 바닥에 설치된 유닛들은 자유롭게 이동가능하며 거기에 청각적, 시각적 효과까지 더해져 관람객들이 즉각적으로 유희를 즐길 수 있게 하였다.

다음으로 요하네스 파이퍼의 신비로운 설치작품은 그가 수년간 다루어 온 테마인 삼각분할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세상을 삼각형을 이용해 상징적으로 측정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어떠한 지역적 특성을 자신의 경험과 영감을 살려 최대한 표현하는데 그때 삼각분할은 매우 유용한 상징적인 매개체가 되어 준다. 어두운 암실에 설치된 삼각분할은 변압기에 사용되는 도자 절연체와 그것을 삼각형의 형상으로 이어주는 형광색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관람객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작동되는 블랙라이트 조명이 명멸함에 따라 그물망의 형광선들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서서히 빛을 잃기를 반복한다. 발산하는 빛과 구도에 의해 점철되어진 직선의 띠는 우리를 비물질적이고 환영적 공간에 서있게 한다.

요하네스 파이퍼_삼각분할VI-에너지장_애자설치_각 600x600x74_2009

김병호는 세라믹 박판과 나팔형태의 세라믹 관을 이용하여 인터렉티브한 사운드설치조각품을 선보인다. 작품은 그 자체가 유기체화 되어 주변의 모든 소리를 흡수 한 후 주파수로 변조 과정을 거쳐 새로운 소리를 재생산해 낸다. 모든 물질은 고유의 파장을 발산하는데 고온에서 소성된 도자는 특유한 청명한 소리로 편안하고 조용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김병호_침묵의 축척_세라믹_66x66x150_2009

마지막으로 옥외에 설치된 신이철의 작품은 철탑이나 변전소 같은 전기시설, 혹은 전선을 고정하는데 흔히 사용되는 애자碍子와 도자구가 다채로운 색을 입고 재미있는 형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뮤타몽mutation+monser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기이한 형체는 마치 애자로 이루어진 나무에 형형색색의 도자구들이 꿈을 꾸듯 열려있어 밝고 경쾌한 느낌을 전해준다.

신이철_뮤타몽_애자설치_340x200_2009



디자인 by Design

디자인, 예술, 기술의 통합과 공간의 총체적 어울림

예술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순수예술에 반해 디자인은 어떠한 목적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지며 이 목적의 중심에는 인간이 자리하게 된다. 구분 짓기를 좋아하는 대다수 사람들에 의해 디자인적인지 순수예술적인지의 논의는 항상 이루어져 왔지만, 사실 두 가지 작업은 필요에 의해서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두 영역을 적절히 병행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대량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진 현대건축도자 디자인제품 역시 재료가공의 기술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단순히 기능성을 넘어 장식적, 예술적 가치를 담아 제작하는 등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두 번째, 디자인전에 소개된 작품들은 세계 최대의 세라믹 건축자재박람회인 이태리 볼로냐 페어 ‘체르사이’에서 주목받았던 제품들로 고급화된 상품의 예술적 가치와 함께 건축자재로써 세라믹의 기능을 넘어선 총체적인 디자인 트렌드를 보여준다. 주로 건물의 내장제로 사용하는 도기나 타일들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작품 대부분이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협업에 의해 완성된 제품들이라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 민화병풍의 이미지를 전통적 공계기법으로 재해석한 안정윤과 캔버스위에 건축도자 장식을 접목시킨 김명례, 작가적 마인드로 세면기를 고안한 윤장식을 비롯한 국내외 작가들의 창작품들이 어우러져 벽체와 선을 넘나드는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한다.


이 전시의 특별한 점은 공간디자이너가 공간연출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인데, 주거문화 속에서 생활의 예술로 한발 더 다가서는 건축도자의 역할과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전시공간을 우리와 가장 밀접하고 친근한 공간인 집으로 형상화 하여 도면화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바닥에 그려진 도면은 전체 공간의 바탕이 되어 우리가 현관을 지나 집안을 거닐 때 마주하는 익숙한 느낌으로 세라믹과의 밀접함을 자연스레 상기하게끔 한다.

김명례_목련의 여정, 캔버스에 아크릴릭, 도자


도시 On City

건축과 환경으로서의 도시풍경

나는 건축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믿는 자이다. 부부가 같이 오래 살면 서로 닮는 것도 한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까닭에 그들의 삶이 그 공간의 지배를 받아 같이 바뀐 결과라고 생각한다. 윈스터 처칠경도 1960년 타임지와의 회견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 승효상

도시전이 진행되고 있는 미술관 지하 전시실을 내려가는 좁은 계단통로는 프로젝트 옆(엽)의 라인테이핑 작업으로 새롭고 유쾌하게 재구성 되었다. 별 의미 없는 기능적 공간의 달콤한 변신이 건축과 그것들이 모여져 이룬 도시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과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 새침하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좋은 건축과 환경이 좋은 삶을 만든다고 하였는데, 과연 우리의 도시환경은 쾌적하고 살만한가? 양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급속하게 획일적으로 지어진 개성 없는 빌딩들, 단지 상호를 알리기에만 급급해 그 외관을 개념 없이 가득 메운 조야한 간판들. 가끔 도시의 소음 못지않게 그런 시각적 공해가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보다 향상된 삶의 질을 공유하기위해서 뒤늦게나마 다각적인 방향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공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 전시는 건축도자재료가 가진 본연의 친환경적인 성질을 알림은 물론 현대 건축도자가 이룩한 과학적, 조형적 성과를 보여준다. 세계최초의 세라믹파사드 패널제품 생산업체인 오스트리아 아게톤의 테라코타 파사드는 특유의 고풍스런 질감과 절제된 세련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창문에 덧대어져 강렬한 자외선이나 비바람으로부터 넓은 유리면을 보호하는 일곱 가지 빛깔 테라코타 루버는 NBK의 제품으로 예술적 가치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다. 유럽 최대 점토기와 생산업체인 프랑스 테릴는 정통유럽풍의 로만스타일 기와를 선보인다. 오랜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능성과 심미성 모두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이 자연친화적인 건축자재들은 현대건축, 나아가 도시공간의 미적 향상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게돈社_세라믹 파사드 패널

이와 더불어 건축의 외피가 모여 만들어 낸, 외부공간으로서의 도시를 작가적 시각으로 풀어보는 전시 속 전시에는 손유미, 안세권의 사진설치작업이 있다. 손유미는 도시의 거대 인프라와 주거 밀집 지역의 도시 환경을 라이트패널, 수천 개의 LED조명, 전자판, 아두이노보드 등을 이용한 설치작업으로, 안세권은 10년간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겪은 변화의 모습들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한 발짝 물러서서 우리 삶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을 다만 바라보게 한다. 현실적 지표로부터 분리되어 허공에 떠있는 도시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이내 사라져 버릴 듯 아득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지속가능 한, 그래서 좀 더 살맛나는 우리의 도시를 꿈꿔보면서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예술작품도 작품이지만, 미술관에서는 이례적으로 소개되었던 세계 굴지의 건축재료 회사에서 만든 고급 제품들 덕분에 우수 고객이 되어 박람회장을 둘러본 느낌이다. 현대건축도자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예술은 물론 실생활에서 그 활용가능성을 엿 볼 수 있었던 유익한 전시로 기억될 것 같다. 친절한 설명으로 건축도자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주셨던 권미옥 큐레이터께 감사드린다.

                                                                                                                 
                                                                                                                  글. 박현희(미술사, timeless-79@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