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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라고 많이 언급됩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많은 이미지들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지의 생산자이자 또한 소비자가 되었고 이제 이미지는 마치 우리의 피부인 양 제로 거리에 위치하며 사고하는 방법과 지각마저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커버스토리는 이러한 이미지 중 ‘지도’ 이미지를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지도는 20세기 이후 우리의 삶 속에서의 비중이 급격히 바뀐 독특한 매체입니다. 그 이전까지 지도는 항해를 하거나 비행할 때, 교육 목적이나 지리적 정보를 획득할 때 등 특정 목적으로 특정 장소에서, 특정 시간대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이 데이비드 볼터(J. David Bolter)가 언급한 '규정기술(Defining Technology)'인 컴퓨터와 디지털의 등장 이후 이러한 양상은 크게 바뀌게 됩니다.

지도는 우리의 피부인 양, 우리의 손발인 양 늘 우리 주위에 떠 있으며 늘상 지도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지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유희를 위해 지도 매체를 꺼내들곤 합니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지도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수많은 수용자들이 자신만의 지도 이미지를 만들고 가공하며 공유합니다. 이러한 상황 아래 본 커버 스토리는 지도의 의미변화, 지도 안의 내용, 그리고 현재의 지도 양상에 대해 서술해 보려고 합니다.

지도는 인간과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있을까요. 일본의 사회학자 와카바야시 미키오(Wakabayashi Mikio)는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를 통해 그 관계를 설명합니다.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소설집 『오욕의 세계사』에 수록된 지도와 관계된 한 우화를 풀어놓습니다.

어떤 제국에서 황제의 명령을 받은 지도 전문가가 대단히 정확한 제국의 지도를 완성한다. 그 지도는 정확한 것을 넘어 크기도 제국과 같아 제국의 영토 전체를 덮어버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도는 낡고 너덜너덜해져갔고 제국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국력이 쇠퇴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지도는 몇몇 조각만이 사막으로 바뀐 옛 제국의 영토 위에 간신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이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영토가 지도에 선행하는 것도 뒤따르는 것도 아니며 이제부터 지도가 영토에 선행한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도는 세상을 모사할 뿐 아니라 이제 세계가 역으로 지도를 모방하기 시작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계가 그 자체 위에 지도를 겹쳐 놓음으로써 하나의 영토, 원형과 같은 것으로 기능하며 인간은 지도를 읽을 때 그러한 역설을 경험합니다. 미키오는 이런 재인식이 지도 이미지 상에서 드러난 대표적 예로 동유럽 냉전 전-후의 지도를 들었습니다.



1989년 동유럽 혁명과 소비에트 연합(이하 소련)의 붕괴 이후 우리들이 지금까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세계지도는 어떤 의미에서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육지나 하천, 바다 등의 자연 지리적인 지형지물의 분포와 형상을 보여주는 지형도로서는 사용 가능 하지만 그 곳에 표현된 즉 국가의 모습은 세계의 현실과 다릅니다. 동-서독의 통합, 동유럽 국가들의 국명 변경과 분열, 구 소련 안에서의 여러 공화국의 독립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의 국가적인 판도는 뒤바뀌었습니다. 지금껏 사용하던 지도가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소련과 동유럽 체제의 붕괴라는 현실의 반영입니다. 이러한 사건 이전의 지도는 쓸모없게 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상으로서의 새로운 지도가 만들어집니다. 여기에서는 원본인 세계가 복사본인 지도에 선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유럽 지도자들과 그 국민들은 스스로가 속해 있는 국가의 모습과 규모 전체를 지도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도에 그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의 세계를 사실로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간에 영향을 주는 인간-지도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점은 결국 이런 순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세계를 지각함에 변화가 일어나며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주는 외부적 요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외부요인은 20세기에 이르러 현대 지리학계에서 연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또 한번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전자의 모습을 이번 파트 1에서 다루며 후자를 다음의 파트 II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헤러포드 마파문디, Richard of Haldingham and Lafford, ca. 1300, 158 x 133cm, Hereford Cathedral in Hereford, England.

먼저 지도의 역사와 지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세계지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서구 중세의 대표적 세계지도인 마파문디(Mappa Mundi)에서는 오늘날 지도를 떠올릴 때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구획 절단, 즉 국경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도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육지와 바다 외에도 당시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 신화속의 동물이나 상상속의 토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지도의 정 중앙은 예루살렘이 위치해 있고 지도의 상단부, 동쪽의 끝에는 낙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예수가 전 세계를 조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스스로가 직접 본 적이 없는 세계 전체를 지도적 표현을 매개로 한 눈에 볼 수 있게 가시화하고자 했습니다. 존 윌포드(John N. Wilford)는 이러한 고중세 세계 지도를 평하며 “토지의 경계선이나 도시의 성벽 등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땅 저편의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거나 조작한다” 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물리적 거리에 비해 지리학적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전근대적 사람들의 지도는 더욱 초자연적이 됩니다. 이를 통해 알수있는 점은 이들 지도가 그 조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세계의 확장이며 이러한 지도적 공간이 언제나 신체적으로 이해되는 공간에 대한 초월성이나 상상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을 토대로 완성된 지도를 통해 재차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사회를 인식했습니다. 이 시기 세상은 무한했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닿을 수 없는 무한한 세계였죠. 그 지리적, 공간적 공백을 상상력을 통해 채워 완성한 지도의 시기입니다.


Klaudios Ptolemaeos world map, 150.

이러한 인식과 지도는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 영어명 Tolemy)의 『지리학(Geographike Hyphegesis)』의 재발견을 통해 변화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스 시기의 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위도와 경도'라는 좌표 시스템을 통해 객관적인 시각을 통한 지도 제작을 시도했습니다. 그의『지리학』은 중세에는 잊혀져 있다가 이슬람 세계를 경유하여 재발견되고 그것이 대항해 시대로 이어집니다. 대항해시대에는 유럽인들이 지금까지의 자신들이 확인한 세계였던 지중해를 넘어 탐험을 개시하여 미지의 영역이었던 비유럽권 세계를 기지의 세계로 전환시키게 됩니다. 즉 르네상스 시대 이후 유럽의 세계관은 프톨레마이오스적 세계상이 가진 구체상의 유한한 넓이로서의 세계의 의미를 통해 이전과 다른 실천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제 세계는 직관이나 계시, 상상력에 의해 표시된 손에 닿지 않는 무한했던 세상에서 인간이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즉 가 볼 수 있는 유한한 세상이 됩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이었던 지중해 바깥의 세상은 구체적이고 현실화되어 도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상상에 의해 채워져 있던 지도는 이제 경험적인 사실로 채워져 나가게 됩니다. 그 모습은 그 시기 제작되었고 가장 많이 사용된 지도의 대명사인 메르카토르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르카토르 세계지도(Mercartor's World Map), 1569년, Encyclopaedia Britannica, 11th ed., 17:647에 수록

메르카토르 지도는 무엇보다 항해시의 실용성 때문에 폭넓게 보급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을 계승한 메르카토르는 위도와 경도 시스템을 이용하여 기존의 지도와 비교했을 때 더욱 정확하고 편리한 지도 제작법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이름을 딴 메르카토르 도법입니다. 선원들이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지도(이후 메르카토르 지도)에 깊은 신뢰를 가졌던 이유는 무엇보다 쉽게 추적할 수 있는 항로를 표시하는 지도의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이 지도는 항로를 직선자로 표시할 수 있었고, 단순한 반원형의 플라스틱 각도기와 비슷한 도구를 사용해 방위를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프리카의 케이프 타운에서 대서양을 지나 뉴욕에 이르는 항로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제작된 지도에서는 자오선 대비 49도의 각도를 지니는 ‘항정선(rhumb line)’을 그으면 만들어집니다. 즉 항해자는 직선의 항로를 따르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런 실용적 목적 이외에 근대에 이르러 유럽 열강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 메르카토르 지도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긴 기간동안 세계 이미지의 대표적 도상으로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게 됩니다.


항정선의 예시

지도를 바라보는 시각의 가장 급격한 변화는 20세기 중반 페터스 도법(Peters Projection) 논쟁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 이전, 즉 근대시기 지리학에서는 지도를 ‘투명한 거울’로서 인식했습니다. 즉 지도는 현실의 정확한 재현이며 객관적이라는 인식입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객관적 지도’는 이데올로기로서 취급되며 지도가 지닌 또 다른 측면이 부각되게 됩니다. 데니스 우드(Denis Wood), 브라이언 할리(Brian Harley), 제레미 블랙(Keremy Black) 등의 영미권 지리학자들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입장에서 지도를 하나의 텍스트로 바라았습니다. 그들은 지도란 지식의 한 형태이며 권력의 개입이 지도 제작과 의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지적합니다. 즉, 푸코의 권력 담론을 들여와 지도가 지닌 주관성과 지도 내 권력의 위계를 밝혔습니다. 뒤이어 마크 몬모니어(Mark Monmonier)와 아서 제이 클링호퍼(Arther J. Klinghofer)가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다음 장을 통해서 이들이 연구한 권력에 근거한 '지도의 주관성'으로서의 의미론적 변화 양상 중 대표적인 예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의미 변화

지도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요소는 도법(혹은 투영법.Projection)입니다. 또한 이 도법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지도 제작법인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을 권력의 개입으로 인해 의미가 변한 대표적 예로 들고 있습니다. 20세기 지리학자들은 메르카토르 도법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진행합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메르카토르 스스로가 제작할 당시 분명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과 비유럽간의 위계를 드러내려는 권력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근대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메르카토르 도법의 특성과 표현상의 한계점을 이용해 서구 편향적 시각구조를 은밀히 주입시켰으며 이는 근대의 시각주체의 시각구조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메르카토르 지도의 왜곡 예시. 지나치게 거대한 남극과 아예 표시되지 않는 의미없는 북극을 제거한 상태에서 결국 유럽이 중앙에 위치하게 된다.

메르카토르 지도는 유럽에서 만들어졌기에 자연스럽게 유럽의 시각이 투영되었습니다. 우선 소비자인 유럽 항해자들의 편리를 위해 유럽이 중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관 및 관리의 편의를 위해 직사각형 모양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런 포맷상의 특징과 원통도법인 메르카토르 도법의 한계상 메르카토르 지도는 반드시 잘라내져야 했습니다. 지구를 원통형으로 투영시켜 2차원 상에 표시한 지도이기에 남극과 북극은 필연적으로 표시될 수 없었습니다. 각각 남, 북위 89도에서 자른 메르카토르 지도에서는 북극 부근의 그린란드의 경우 중국보다도 크게 표시되며 또한 남극을 모두 표시할 경우 남극대륙이 전 세계의 모든 육지보다도 크게 표시됩니다. 사람들에게 크게 의미가 없는 남극을 전부 잘라낸다면 지도의 중심에 바로 서유럽이 위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럽 중심적 시각은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 유럽 열강에 의해 강화되고 새로운 의미가 투입되게 됩니다.

메르카토르 지도는 근대에 이르러 실용성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이 일어납니다. 제국주의 시기 영토 확장을 위한 해외 식민지 개척을 위해 방위가 변하지 않는 경위선 지도는 항해자들에게 꼭 필요한 지도였으며 이를 만족시킨 메르카토르 지도는 세계 지도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메르카토르 스스로가 유럽 중심주의자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의도는 상업적이었습니다. 그의 지도에서 나타나는 편향성은 유럽 출신의 고객을 향하였던 것이지 적도와 남쪽 지역을 무시하거나 식민지 정책의 확장을 장려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근대에 이르러 국가에 의한 의미론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그 의미가 새로이 지도에 투영된 것입니다. 한참 팽창주의를 실현하고 있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메르카토르 지도는 식민지 개척을 통한 세계 제국을 그려보기에 아주 적합한 지도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의해 국가가 유도하는 위계와 권력의 모습은 지도에서 시각적으로 투영되었고 이는 지도를 받아들이는 시각 주체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지도를 보는 사람들은 그 지도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에 유도되며 그 방향대로 세계를 인식하게 됩니다.


페터스 도법(Peters Projection) 논쟁

20세기 후반 마르크스 주의,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 후기 식민지주의, 비판이론 등 다양한 지적 풍조들이 지리학의 접근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통신 및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환경의 변화는 명확한 국경선을 가진 정치적 단위로 세계를 나누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과 함께 식민주의가 쇠퇴함에 따라 급진주의자들은 지도학에서 유럽 중심주의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많은 논란 중 가장 유명한 급진적 지리학의 논쟁은 바로 아르노 페터스(Arno Peters)의 지도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유럽 도법을 지배해 온 메르카토르 도법과 그 지도를 유럽 중심주의의 전형으로 보고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평등하다고 강력하게 내세운 페터스 도법(Peters Projection)과 지도를 선보였고 이에 따라 지리학의 논쟁이 발생했으며 이는 언론을 통해 대중 전반에까지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를 통해 지도의 이데올로기성과 지도가 가지고 있는 권력적 편향성, 그리고 인식적 파급력이 일반에게 알려지며 지도의 진실성의 신화는 급격히 무너집니다.


페터스 지도(Peters world map), 1973

메르카토르 도법의 다양한 층위에서의 왜곡 모습은 패터스가 그의 패터스 도법을 선전하면서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모습에서 과장되었지만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패터스 지도라 불리는 이것은 정확성이라는 기술적 관점이 아니라 지도의 상대적 가치에 근거, 지도와 지도학의 본질에 대한 논쟁을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지도학에서 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티소(Tisso) 지수를 이용한 메르카토르 지도와 페터스 지도의 비교. 메르카토르 지도의 경우 축척(티소 원에서 보이는 원의 면적)이 변하나 비율(티소의 원에서 보이는 원의 비틀림)은 변하지 않는다. 반대로 페터스 지도의 경우 축척은 변하지 않지만 비율이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간단히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위의 설명에서 언급되었듯 기본적으로 메르카토르 지도는 전 세계에 대해 '평등'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의 평등의 의미는 축척이 위도에 따라 다르며 이에 따라 면적이 다르게 표시된다는 의미입니다. 메르카토르 지도에서 면적의 왜곡은 적도에서 극지로 갈수록 커지는데 북극 부근에 위치한 그린란드의 경우 중국보다 크게, 아프리카와 비슷한 크기로 지도상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실제 그린란드의 크기는 217만㎢로 중국의 1/4, 아프리카의 1/14 크기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왜곡은 근대 시기 동안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국가적, 서구적 위상으로 포장되어 국민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페터스는 이러한 시각적 투영이 서구-비서구간의 불평등한 시각을 드러낸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지도야말로 그 한계를 넘어선 '평등한' 지도라는 주장을 폅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많은 지지를 얻었고 다수의 국가와 단체에서 그의 지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패터스 논쟁은 지리학계 내부에서 논쟁이 진행되었던 지도에 있어서의 서구 편향성의 문제와 권력의 가시화를 본격적으로 폭넓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지도는 사실 그 자체를 전달하는 이미지가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존 지도 안에 내포되어있던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권력적 시선이 드러났고 사실(fact)로만 전달되던 지도의 정보는 단순한 정보를 넘어 텍스트로서 다양한 측면의 내용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페터스 도법과 당 논쟁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손일, 이한방, 「페터스 도법과 이에 대한 논쟁의 지도학적 의미」, 『한국지도학회지』 제4권 제1호, 2004 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리 벡(Harry Beck)의 런던 지하철 노선도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해리 벡(Harry Beck)의 런던 지하철 노선도의 예입니다. 기술 발달은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해 주었을 뿐 만 아니라 공산품 생산량의 급격한 증대를 가져왔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는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 환경 하에서 규율권력이 시각 주체의 시-공간에 대한 지각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너던 크래리는 모더니티(modernity)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모더니제이션(modernization)은 자본주의가 뿌리가 단단히 박힌 것을 뽑아 움직이게 하는 과정이며 순환을 막는 것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단일한 것을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이는 상품, 부, 노동력 뿐 아니라 신체, 기호, 이미지, 언어, 친족관계, 종교적 관습, 국적에도 적용됩니다. 모더니제이션은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와 소비, 생산을 창출해 냅니다. 

19세기 말, 관찰자는 맥락이 끊기고 낯설어진 도시 공간에서 철도 여행, 전보, 산업생산, 문자적이며 시각적인 정보의 흐름이 일으키는 지각적이고 시간적인 탈구(dislocation)을 겪으면서 기능해야 했습니다. 사회적 이동성이 적었던 과거에 비해 근대 사회는 사회적 소통의 속도와 양이 많아졌고 이를 통해 기호 이동의 질적 변화도 오게 됩니다. 시간과 공간의 이해가 과거와 다르게 이루어지며 이는 여러 시각 매체에 의해 표현되는 동시에 새로운 사회적 질서로서 재차 인식됩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 기존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지도가 등장하게 됩니다. 즉 기존의 지형적 정보를 근간으로 한 지도의 모습 대신 등장한 위상 지도가 그것입니다. 이 위상 지도는 사물들 간의 관계를 우선시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지도에서 가장 중요했던 공간상의 정보, 즉 지형정보가 완전히 삭제되고 전달 정보가 기호화된 지도입니다.

재닌 하드로(Janin Hadlaw)는 해리 벡의 노선도를 분석하며 또다시 변한 지도의 모습과 그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밝힙니다. 위에서 밝힌 사회적 질서의 이미지로의 투영은 런던 지하철 노선도에서 드러납니다. 런던 지하철 노선도의 제작자인 벡은 지도를 디자인함에 있어 지리적 요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런던 교통 박물관의 감독이었던 켄 갈란드와의 인터뷰에서 "지도는 상식에 근거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하철을 탄다면, 지형 때문에 골치를 썩을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연결, 즉 열차 갈아타기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그 당시의 독일의 역사가였던 칼 람프레히트(Karl Lamprecht)의 언급에서 역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세기 말에 포켓 시계의 소유자가 현저하게 증가한 것과 함께, 5분 인터뷰, 분 단위의 전화통화, 그리고 5초만에 자전거 갈아타기 등과 같이 사람들이 짧은 간격으로 시간을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당시의 노동 현장에서 시간의 절약은 돈의 절약으로 인식되었고 결국 시간 엄수와 시간 절약의 관례는 일상 생활 전반으로 확대되었다는 자본주의 논리와 규율이 투영된 사례입니다. 벡은 지도라는 사회 재현의 이미지에서 지리적 요인을 무시함으로써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거리와 지속의 개념, 그리고 효율과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런던 지하철 센트럴 라인(Central Line) 지도, 1902


런던 지하철 노선도, 1920


J. H. 스팅모어의 지하철 노선도, 1927

초기의 지하철 노선도들은 지역들 간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호수, 혹은 숲 같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지역을 표시했지만 벡은 테크놀로지의 요구 조건에 맞춰 지리적 공간을 재구성했습니다. 그는 시간의 관습적 개념들, 특히 장소들 간의 시간적 관계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공간적 구분을 탈피하여 오로지 역이라는 눈금과 환승역이라는 다이아몬드만을 구분했고 이를 통해 지역 간의 차이는 사라지고 공간은 시각적인 명쾌함과 균형을 위해 표준화되었다. 르페브르는 이러한 표준화가 자본주의 체제 하의 공간 생산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표현 방식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해리 백의 지하철 노선도, 1931

하드로는 벡의 지도에서 이러한 공간의 물리적 거리가 완전히 무시되는 점을 예로 들며 이는 자본주의의 시간관념을 정확하게 포착한 시각적 결과물이라 언급합니다. 지하철역간의 거리는 다소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는데 이는 근대 당시의 시간의 전형적인 재현 논리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시간은 돈이다" 라는 관념은 널리 퍼져 있었지만 노동에 소모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은 정확히 구분되었습니다. 노동에 소모되는 시간은 가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고용자와 노동자 모두 이를 모두 정확하게 계산한다 라는 인식이었습니다. 또한 여가 시간은 노동 현장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해야 하는 노동자에게도, 이들에게 시간 소비적 오락과 여흥을 제공하고 이윤을 얻어 내는 레저 산업에 있어서도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여가나 노동에 사용되지 않는 시간, 즉 통근에 사용되는 시간은 이러한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벡의 노선도에서 중요한 지점은 시간의 소비를 표시하는 거리와 공간 배치가 아닌 생산과 소비의 장소로 탑승객을 이동시키는 지하철의 속도였습니다. 기존의 지형도 위에 표시되던 지하철의 노선은 그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지하철 노선도에서 지형도와 그를 통해 보이는 거리와 시간은 삭제되었고 각 구역은 추상화되어 선으로 역과 교차가 명확히 표시되었습니다. 각 역 간의 거리는 일정하게 통일되었고 역 간의 위치와 도달을 위한 교차만이 강조되었습니다.

즉 벡의 지하철 노선도는 자본주의라는 19세기의 근대 사회적 체제를 유지하고 작동시키는 구조를 시각적으로 투영한 이미지이며 동시에 그 사회를 보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도는 생산관계와 권력관계가 투영되고 드러난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각 주체는 이러한 규격화된 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그 담론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입니다.

해리 벡의 노선도와 자본주의에 대한 더욱 자세한 정보는 재닌 하드로, 박해천 외, 박해천(등) 역 , 『디자인 앤솔러지(Design Anthology)』, 시공아트, 2004 내에 있는 Janin Hadlaw, The London Underground Map: Imagining Modern Time and Space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도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인식, 의미의 변화를 살펴보았습니다. 박상우는 디자인 저널 양귀비 1 에 실린 지도 이미지의 존재론에서 지도 이미지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지도는 ‘왜곡 시스템’이다.
지도는 ‘선택 시스템’이다.
지도는 '다이어그램(diagram)'이다.
지도는 인간의 인지 공간을 ‘구축’한다.

지도는 블랙이 지적했듯 왜곡을 통해서만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지만 지도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지도는 실제 세계를 정확하게 옮기기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이를 왜곡함으로서 자신의 목적을 이뤄냅니다. 즉, 지도에서의 기능은 형태를 좌우하게 됩니다.

또한 위의 맥락과 연결되는 지점으로 지도는 현실을 100% 옮기지 않습니다. 지도는 선택을 통해서만 자신의 역할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 구글의 지구 인공위성 이미지 위에 정보 레이어가 올라가야만 비로소 기능성이 발현될 수 있듯 현실을 전부 옮겨낸다면 지도는 이미지 이상의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합니다. 지도는 현실적 지리 정보나 역학 정보의 대부분을 제거하고 선택을 통해 목적에 맞는 핵심만을 추려내어 지도화하며 이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목적을 이뤄냅니다.

다이어그램 역시 마찬가지로 사물이나 현상에서 쓸데없는 것을 제거하고 관계, 본질, 구조만을 제시하는 선입니다. 즉 현실을 요약하고 핵심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박상우의 이러한 지적에서 드러나듯 결국 지도는 정보 전달의 목적성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객관성과 그 효용성을 위한 주관성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주관성 뒤에 숨어있는 권력 위계 파악을 통한 지도의 새로운 의미들이 생성된 것입니다. 주관성에 대한 지도 읽기의 새로운 접근은 지도 이미지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의미들을 생산하게 됩니다.

위 지도 이미지 속성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이영준 외, 디자인저널 양귀비 1호 - 지리 정보와 지리 감각, 계원 디자인예술대학 출판부, 2009 에 수록되어 있는 박상우, 지도 이미지의 존재론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도는 우리가 바라본 세계를 이미지 결과물로 나타낸 것이며 동시에 세상을 지각하는 매체입니다. 이러한 지도 이미지의 의미와 인식적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바로 인간의 지각과 사고에 깊숙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지도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공간적 지각이 구축되는 공간인 것입니다. 이 변화의 속도는 이제 거의 실시간적으로 드러납니다. 또한 양상도 바뀌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개입 이후 변화한 지도 상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next key : 구글 맵 서비스, 인공위성 이미지, 네비게이터,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한 지도 서비스

reference
마크 몬모니어, 손일 역, 『지도전쟁(Rhumb line and map wars)』, 책과함께, 2006
마크 몬모니어, 손일 역, 『지도와 거짓말(How to Lie with Maps)』, 푸른길, 2003
아서 제이 클링호퍼, 이용주 역, 『지도와 권력(The Power of Projection)』, 알마, 2006
와카바야시 미키오, 정선태 역, 『지도의 상상력』, 산처럼, 2002
재닌 하드로, 박해천 외, 박해천(등) 역 , 『디자인 앤솔러지(Design Anthology)』, 시공아트, 2004
존 클락 외, 김성은 역, 『지도 박물관(Remarkable Map)』, 웅진 지식하우스, 2007
제레미 블랙, 『지도, 권력의 얼굴(Maps and Politics)』, 심산출판사, 2006
제레미 블랙, 『세계지도의 역사』, 지식의 숲, 2006
이영준 외, 디자인저널 양귀비 1호 - 지리 정보와 지리 감각, 계원 디자인예술대학 출판부, 2009
손일, 이한방, 「페터스 도법과 이에 대한 논쟁의 지도학적 의미」, 『한국지도학회지』 제4권 제1호, 2004
손일,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한 대안과 지리적 시각화」, 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 4권 1호, 1998

글. 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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