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문화
'한류'라는 말이 생경하게 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 현상에 대한 주목도 높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문화수입국이지 수출국은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했기에 더 그랬습니다. 당시처럼 안방에 놓인 TV나 책상 위에 놓인 PC가 아닌,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작은 디지털 제품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도, 우리에게 향유하는 문화나 사용하는 기술에 대해 '국가'나 '민족'적인 자의식이 강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백남준 선생의 말처럼 다양한 재료를 잘 배합하는 '비빔밥 정신'에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눈 앞의 새로움이 넘칠 때, 등 뒤에 지난 것을 되돌아보는 일도 필요할 것입니다. 비단 특정 국가나 민족에 속한 개인이라는 정체성의 근거로 삼지 않더라도 그렇습니다. 한 공간에 속한 사람들이 오랜 시간 여러 세대에 걸쳐 공유한 것이, 하나의 문화로 모이고 전통으로 남는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여지는 웹의 게시물처럼 개인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발전할 수록 '문화의 역사'에 참여하기는 더욱 수월해집니다. 또한 그 수월함은 세계의 변화에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태의 변동이 빠른만큼 자신이 속해있는 문화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함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옛 전통과 새 기술의 만남
전통은 현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용 가능한 기술이며, 검증을 마친 기술이기에 믿을만 합니다. 아니, 기술이라 의식되기 이전에 삶의 한 부분으로 밀착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이 박물관이나 문화재로 보존되어야만 할까요? 옛 전통이 불편하거나 낡았다고 해도, 전통의 정신이나 기술 중 어떤 부분은 재사용 가능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의식은 존재합니다. 물론 오래된 미술품을 복원하다 파괴되거나 훼손되는 것처럼 옛 전통을 현재화시키는 작업도 단절되거나 곡해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전시의 작업은 원본이라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융합이기 때문에 더욱 고민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시도입니다. 옛 전통과 새 기술을 결합하는 취지의 이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한 '2009년 문화원형 활용 글로벌 전시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의 한 결과물입니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산하 DATA+(Digital Art & Technology Applications) LAB이 참여했습니다. DATA+는 첨단 미디어를 활용한 콘텐츠 창작과 응용에 중점을 둔 곳으로, 예술 작품 자체에 내재된 감성작용의 촉진제로 기술을 사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다음은 전시되고 있는 작업들입니다.
광섬유를 이용한 감성 디스플레이
Emotional Display Using Optical Fiber
LED 모듈과 광섬유를 결합하여 점묘화나 픽셀 이미지와 같은 효과를 냅니다. 또한 유연성을 가진 광섬유에 바람을 쏘여 영상이미지가 변형되는 효과를 통해 관찰자가 내려다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작품입니다. 광섬유는 연결된 LED에게 색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이자 LED가 표현하는 이미지를 변형하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특성은 패션이나 건축에도 응용가능할 것입니다.
LED 라이트 큐브
LED Light Cube
‘한국천문’을 이용한 인터렉티브 에듀테인먼트 디스플레이
Interactive Edutainment Display Using 'Korean Astronomy'
LCD를 이용한 디지털 노리개
Digital Norigae Using LCD
전통 문양을 이용한 실시간 만화경 인스톨레이션
A Realtime Kaleidoscope Installation Using Traditional Patterns
새로운 전통을 위하여
과거의 선조들이 남긴 것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술은 발전했고, 더 나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문화는 이어졌습니다. 이 전시는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감성적으로 드러내는 데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은 전통의 조형적인 요소를 살리거나, 전통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나 사운드를 활용하거나, 천문처럼 선조들이 구축했던 관념을 표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도 장식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교육성이나 정보접근성까지 고려한 흔적이 드러납니다. 다양한 쓰임새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는, 이 작업들이 전통기술의 실용성까지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첨단기술로도 표현 가능한 전통적인 감성을 이 전시를 보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융합은 아직 갓 자리잡힌 수정체입니다. 첨단기술과 전통기술이 연결이 되어 있고, 용도에 걸맞게 균형이 잡힌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그 수정체가 제 힘으로 걷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요소까지 더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환경은 이 작업들이 놓여질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이 작업들이 보여질 문화적인 '맥락'이기도 합니다. 전통기술은 첨단기술에게 감수성 외에는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첨단기술에 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와 사용하는 기술이 전통으로 남을 수 있을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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