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Scenic Sound_제3회 서울 국제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 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20. 11:39




사운드 이펙트 서울 2010

: 장소특정적 소리, KT&G 갤러리 상상마당, 2010.1.8~2.10, 공간 해밀톤, 2010. 1.8~1.31

 

장소특정적 소리(Sound Specific)를 주제로 다룬 이 전시의 리뷰를 쓰기로 결정하고, 스스로 내 주변의 장소 특정적 소리에 집중해 보는 실험을 감행해 보았다. 이 실험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는 어떤 특별한 녹음 장치도, 사운드를 처리할 툴이나 능력도, 그리고 그 소리를 재생할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실험은 다분히 관념적인 차원에 머물고 만다. 압구정 역에서 홍대까지 한강을 가로질러 서울 도심을 통과해 달려가는 버스 안. 아스팔트 도로와 버스의 마찰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우선 압도적이다. 속도를 높일수록 소음은 균일하고 안정적이 되고, 불현듯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을 줄일 때면 퉁그르르거친 소리로 변한다. 이 끊이지 않는 소음 가운데, 엔진소리, 핸드폰 벨소리, 버스 정차 버튼 소리, 버스 정류장 안내 멘트, 들으려고 의식하지만 귀에 속속 들어오는 뒷사람의 통화소리, 저 앞에 앉은 고등학생들의 잡담 소리 등등. 온갖 소리들은 비선택적으로,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에게 전달된다. 멈출 수 없는 소리들. 저 멀리 보이는 꽁꽁 언 한강의 모습보다, 눈을 감으면 피할 수 있는 어떤 풍경보다 좀 더 가깝고 직접적으로 이 도시의 인상을 남긴다.

 

서울 국제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은 2007년 시작되어 올해로 3회 째를 맞는 사운드 아트 행사이다. 2007년 사운드 아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제안한 전시, 학술, 퍼포먼스, 출판 활동을 토대로 이후 연례 행사로 기획되고 있다. 사운드 아트 설치, 라디오 아트에 이어 올해는 필드 레코딩(filed recording)을 주제로 다루었다. 필드 레코딩은 표현 그대로 특정 장소를 녹음한다는 의미이다. 특정 장소를 녹음하고, 사운드를 처리하고, 다시 특정 공간에서 재생하는 과정을 통해 구체화된다. 소리가 채집되고 재현되는 공간은 다양한 방식과 맥락을 통해 선택되고 구성되며, 소리를 통한 특정 공간, 문화, 사회의 경험 혹은 체험이라는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이번에 전시된 사운드 레코딩 작품들은 서울이라는 장소의 소리를 미술관 공간에서 재현하거나, 현실에 기한 가상의 공간의 소리 치환하는 작업, 혹은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심리적 공간에 탐구하거나,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의 행위의 녹음과 재현 등 각기 다른 장소의 소리 녹음과 재현하 등의 다양한 실험과 형태를 포함한다.  

 

호주 출신의 작가 제프 로빈슨은 서울에 머물면서 작가가 선택한 다섯 곳에서 소리를 녹음하고, 바로 그 소리가 녹음된 지점들 사이의 거리와 동일한 비율로 스피커를 설치하여 전시공간에 재현하였다. 양아치 작가는 현실에 기반한 가상 공간을 기반으로 한 미들 코리아 프로젝트의 기획과 같은 방식으로 이번 사운드 아트 작품으로 진행하였다. 이번 전시의 오프닝 퍼포먼스로 공연된 류한길 작가의 노이즈 음악과 새벽의 부암동이라는 물리적 시공간에서 채집한 현실의 사운드는 현실 공간의 맥락이 제거된 채 작가가 상정한 가상의 공간을 이루는 물질로 변환된다. 태국 출신의 앨리스 우히 셍 창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것이 재현되는 공간에서의 심리적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며, 소리 공간에서의 숨겨진, 의도치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고자 하였다. 김승영과 오윤석 작가의 작품은 해밀톤이라는 거칠고 날것처럼 드러난 공간에서 빗자로루 쓰는 행위를 녹음하고 그것을 바로 그 행위의 공간에서 재현함으로써 전시장을 새로운 소리 공간으로 치환하였다.

 

이번 전시는 공간을 통해 구현되고 지각되는 사운드라는 물질을 다루는 사운드 아트와 문화, 사회, 역사적 맥락을 중심으로 한 경험과 소통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교차하는 지점을 장소특정적이라는 주제를 통해 접근하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운드 아트라는 분야는 아직 한국에서 넓고 두터운 저변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사운드의 속성, 특히 미디어를 통해 결코 포착하고 접근할 수 없었던 소리의 영역에 접근하게 되면서 소위 사운드 아트라고 불리는 포괄적인 형태의 장르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다만 사운드에 대한 관심의 출발지점이 각기 다르고, 자신의 영역에서 사운드의 가능성 혹은 미학에 거는 기대나 슬로건이 미묘하게 다른 탓에 사운드 아트라는 큰 틀 안에서 소개되는 작품이나 활동의 양상은 복잡다단하다. 이점은 사운드 아트의 흐름을 주도하는 작가나 기획자를 포함하여 사운드 아트를 경험하는 관객들에게 거리감을 유발하는 듯 하다. 이 행사는 한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이다. 최초라는 것은 늘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혜택을 누리게 되지만, 그 만큼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고 또한 책임감을 안고 가게 된다.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축제를 의미하고, 하나의 주제나 예술 장르를 가지고 판을 벌이고 사람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이 축제는 사운드 아트라는 영역에 대해 나름의 지형도를 그리고 제시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사운드 아트를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전시의 형태를 통해 전달하거나 혹은 공연의 형태를 전달하건 간에 사운드 아트를 전달할 수 있는 최적에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으면 한다. 사운드는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인식하기 보다는 귀와 몸을 통해 듣고 지각하는 전달의 방식을 취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전달될 때 각별한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사운드 아트와는 다른 전시의 대상을 전달했던 공간과 방식, 그것에 익숙해진 관람객들과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고, 이 페스티벌이 선두적인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새로운 기술과 매체의 등장과 함께, 온갖 소음으로 가득찬 도시 문화 속에서 사운드에 대한 관심은 오랜 시간 폐기되고 은폐되었던 소음과 더 넓은 폭의 사운드에 귀 기울이게 한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온갖 소음 혹은 사운드에 젖어 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에 침투해 있는 사운드와 호흡한다. 사람들은 사운드 아트를 통해 듣기의 경험이 아니라, 사운드라는 물질이 살을 뚫고 들어와 내 뼛속까지 간질여 주기를 원한다. 간혹 사운드 아트 퍼포먼스에서 청력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받아 들고도 사람들은 모여든다.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이들의 관심과 욕구를 함께 채워갈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이 되기를 기대한다.

양아치 (Feat. 류한길, 권의현), 달콤하고 신 매실이 능히 갈증을 해결해 줄 것이다, 공간 해밀톤, 2009

양아치 (Feat. 류한길, 권의현), 달콤하고 신 매실이 능히 갈증을 해결해 줄 것이다, 공간 해밀톤, 2009
김승영+오윤석, 쓸다, 공간 해밀톤, 2009
Duo Alice Hui-Sheng Chang + 홍철기,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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