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동시대 조각에서 목격되는 현상들을 조망해보기 위해 기획된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은 전시의 제목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조각 혹은 조각적인 속성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관념과 지금의 현대조각에서 그에 대한 저항적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경향들이 과연 무엇인지, 아울러 장르의 경계가 어떻게 희석되어 가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전시다.
기본적으로 전시는 전통적인 조각이 지닌 양감, 재료와 더불어 조각이 지녔던 기념비적 속성에 대한 반향이 동시대 작가들의 손끝에서 어떻게 변화, 변주하는지를 살펴본다. 그에 대한 고민으로 전시는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는데, 조각의 매스, 덩어리 속성을 관통하고 있는 ‘힘’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힘의 자장-불안한’, 전통조각의 재료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버려지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한 작품들을 모은 ‘물질적 상상력과 오브제-사소한’, 마지막으로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요소를 작품의 주된 재료로 끌어들인 작품들을 모은 ‘기화하는 조각-유동적인’이 그것이다. 각각의 파트별로 유독 눈길을 끌었던 작업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시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점은 장르의 구분이라는 것이 모호해진 현대미술의 상황 속에서도, 내용물을 담는 그릇의 형태가 변형되었을 뿐 여전히 조각이 지닌 장르자체의 고유성은 유지되면서, 작가 개인의 소소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각과 개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한 작품들이 동시대 미술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성 속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장르 자체의 고유성이 존재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탈장르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현대미술의 향방과 그 귀결점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끝으로 전시에서 아쉬운 점은, ‘저항’의 구체적인 측면들을 좀 더 깊이 있고 세부적으로 다루는 구성의 전략적 측면과 작품의 특성을 고려한 전시연출이다. 자칫 세 가지의 전시구성이 현대조각의 주된 흐름을 단순하게 일반화하는 오류가 될 수 있다. 전시를 통해 현대조각의 조형적 실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면, 현대조각에 대한 기존의 담론들에서 각각의 작품들이 어느 정도의 해석적 위치에 놓일 수 있는지를 보다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모더니즘 조각에서 다뤄진 개념과 분명히 차별되는 속성들을 제시하면 더욱 전시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조각이 공간과 시간성을 동시에 포함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디스플레이 측면에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조각이라는 광의의 개념을 전시의 제목에서부터 다루는 만큼, 작품의 방대함 속에 가장 합당한 작품을 고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양질의 작품들이 전시된 것에 비해 효과적인 작품 배치가 이뤄지지 못해 안타깝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는 최근에 들어 동시대의 미술경향, 흐름을 미술사적 측면에서 진단해보는 전시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전시였다는 점, 완성도 높은 작업들이 눈에 띄었다는 점, 조각이라는 개념을 전시의 타이틀 전면에 내세운 결과, 현대조각을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의 욕구를 상당부분 충족시키는 동시에 조각에 대해 일반 관객들이 지녔던 생각들을 전환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건강한 담론이 이뤄질 수 있는 진정한 저항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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