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저항, 그리고 건강한 담론의 시작_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9. 17:35



조각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동시대 조각에서 목격되는 현상들을 조망해보기 위해 기획된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은 전시의 제목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조각 혹은 조각적인 속성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관념과 지금의 현대조각에서 그에 대한 저항적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경향들이 과연 무엇인지, 아울러 장르의 경계가 어떻게 희석되어 가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전시다.

 

기본적으로 전시는 전통적인 조각이 지닌 양감, 재료와 더불어 조각이 지녔던 기념비적 속성에 대한 반향이 동시대 작가들의 손끝에서 어떻게 변화, 변주하는지를 살펴본다. 그에 대한 고민으로 전시는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는데, 조각의 매스, 덩어리 속성을 관통하고 있는 ‘힘’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힘의 자장-불안한’, 전통조각의 재료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버려지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한 작품들을 모은 ‘물질적 상상력과 오브제-사소한’, 마지막으로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요소를 작품의 주된 재료로 끌어들인 작품들을 모은 ‘기화하는 조각-유동적인’이 그것이다. 각각의 파트별로 유독 눈길을 끌었던 작업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힘의 자장-불안한’에서는 3차원의 입체라는 특성을 지닌 조각의 기본속성을 양감으로 보았을 때, 이로써 파생될 수 있는 무게와 중심의 핵심을 이루는 중력에 대한 고민을 작품의 구성요소로 적극 끌어들인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파편화된 숯의 유닛들이 모여 하나의 물방울의 형태를 이뤄나가는 선기의 작품의 경우, 중력은 각각의 숯 덩어리가 모여 하나의 커다란 형상을 이루는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조형적 원동력이다. 투명한 낚싯줄에 엮은 숯 조각들이 제각기 다른 길이로 모여 하나의 커다란 물방을 형태를 이뤄내려면 구성에 대한 치밀한 계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공중에 매달려 공간에 속한 하나의 조각으로 의미를 지니고,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형태로 인지되기 위해서는 무게를 지닌 사물이 정확하게 수직으로 낙하하는 중력의 속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강옥의 경우, 추를 작업의 중심 소재로 이용하여 조각 자체의 물리적 속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작업을 보여주는데 추의 형태와 색뿐만 아니라, 추가 매달려 있는 선의 방향성과 긴장감이 일궈내는 조형성에서 작가의 감각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그가 선택한 작품의 필수불가결한 제 3의 요소이자 작품구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전시벽면은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타틀린(Vladimir Tatlin)의 작품 <역부조>(1915)에서 작품을 물리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두 벽면이 만나는 코너, 즉 실재공간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끌어들여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이 제시되는 특수한 상황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경험이 가능하다고 지적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으로 ‘물질적 상상력과 오브제-사소한’에서는 작가의 소재선택, 이로 인한 조각적 상상력이 발휘되어 이것이 어떻게 시각화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일상의 오브제 자체와 조각이라는 프로세스에 의해 ‘작품’으로 완성되는 형태 간의 관계를 비교, 대조,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오귀원은 이번 전시에서 일상 속 버려진 폐자재들을 수집하고, 그것이 지닌 시간, 역사적 맥락을 전복시키고 재구성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공사장이나 건설현장에서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폐목들의 표면에 무자비하게 박혀있던 못들을 제거한 후 나무표면을 푸른색 물감으로 칠하고, 못을 빼버린 자국 주위에는 금빛 물감으로 별무늬를 그려 넣는다. 이리저리 부러진 각목들을 엮어서 이어붙이면 금빛 별들이 수놓아진 푸른 성이 완성되고, 버려진 널빤지를 조각조각 구리선으로 이어 엮으면 커다란 별자리 지도가 만들어진다. 잘못 만들어진 유리판의 울퉁불퉁 굴곡진 표면을 따라 사물의 형태를 인지하는 작가적 시선을 구겨진 나무액자로 재탄생시키거나,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A4용지로 사물을 만들어 인간이 지닌 편견, 고정관념의 전복을 꾀하는 박원주의 작업도 눈에 띈다. 정승은 기성공산품을 작품형태의 기본단위로 활용한 설치작업을 선보이는데, 전기 멀티탭을 이어 끼워나가면서 증식하는 형태를 만들고, 기계적 조작으로 헤어드라이기를 우발적으로 작동시켜 관객과의 현대조각의 주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의 실제성(literality)을 작품 안에 끌어들이고 있다. 천영미의 작업은 시멘트라는 재료 자체에 주목한 작업이라기보다는 그것으로 만들어낸 공간 자체가 흥미롭다. 별의 형태를 회색의 시멘트 색과 구별되는 핫 핑크색 와이어, 형광등,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것 같은 운석형태로 만들어내면서, 관념을 시각화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언가 특별한 공간 속에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전시장 바닥을 시멘트로 얇게 처리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연출력 또한 조각적 공간 해석에의 빌미를 제공한다.

전시의 마지막 파트인 ‘기화하는 조각-유동적인’에서는 공기, 바람, 소리, 빛과 같은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요소가 작품의 존재양식으로 자리한 작품들로 구성되는데, 오유경은 선풍기 바람에 의해 끊임없이 형태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업 <큐브먼트>, 박혜수의 경우 할머니의 임종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호흡과 떨림, 죽음의 상황을 사운드를 활용한 공간설치작업으로 선보이며, 오니시 야슈아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비닐 백에 채워 넣고 공중에 띄운 후, 이것이 은은한 하얀색 형광등 불빛이 가득 차 있는 환상적인 공간에 부유하고 있는 상황을 연출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점은 장르의 구분이라는 것이 모호해진 현대미술의 상황 속에서도, 내용물을 담는 그릇의 형태가 변형되었을 뿐 여전히 조각이 지닌 장르자체의 고유성은 유지되면서, 작가 개인의 소소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각과 개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한 작품들이 동시대 미술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성 속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장르 자체의 고유성이 존재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탈장르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현대미술의 향방과 그 귀결점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끝으로 전시에서 아쉬운 점은, ‘저항’의 구체적인 측면들을 좀 더 깊이 있고 세부적으로 다루는 구성의 전략적 측면과 작품의 특성을 고려한 전시연출이다. 자칫 세 가지의 전시구성이 현대조각의 주된 흐름을 단순하게 일반화하는 오류가 될 수 있다. 전시를 통해 현대조각의 조형적 실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면, 현대조각에 대한 기존의 담론들에서 각각의 작품들이 어느 정도의 해석적 위치에 놓일 수 있는지를 보다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모더니즘 조각에서 다뤄진 개념과 분명히 차별되는 속성들을 제시하면 더욱 전시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조각이 공간과 시간성을 동시에 포함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디스플레이 측면에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조각이라는 광의의 개념을 전시의 제목에서부터 다루는 만큼, 작품의 방대함 속에 가장 합당한 작품을 고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양질의 작품들이 전시된 것에 비해 효과적인 작품 배치가 이뤄지지 못해 안타깝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는 최근에 들어 동시대의 미술경향, 흐름을 미술사적 측면에서 진단해보는 전시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전시였다는 점, 완성도 높은 작업들이 눈에 띄었다는 점, 조각이라는 개념을 전시의 타이틀 전면에 내세운 결과, 현대조각을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의 욕구를 상당부분 충족시키는 동시에 조각에 대해 일반 관객들이 지녔던 생각들을 전환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건강한 담론이 이뤄질 수 있는 진정한 저항의 시작이다.


글. 황정인 (독립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