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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와 교육' #1-2 : 변화에 대한 책임 _column

yoo8965 2010. 3. 7. 02:02


오류와 친해지는 프로세싱 워크숍

셋이서 하는 스크래치 워크숍 이외에도 수업에서 실험한 것 중에 하나로는 TDD(Test Driven Development)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와 친해지는 프로세싱 워크숍'이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경우는 특히나 에러메시지를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잘못이 일어났고 이해하기 힘든 메시지가 나올 때 이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오류와 친해지는 프로세싱 워크숍은 이 에러메시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여 에러메시지가 친절하게 다음의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안내이며 컴퓨터와 대화하는 방법을 연습을 통해서 체험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가치는 이 워크숍의 외연에 있다. 실제 TDD에서는 기계적(Mechanical)인 리듬(Rhythm)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켄트백(Kent Back, eXtreme Programming을 제안했고, 소프트웨어에서 디자인패턴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으로부터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리드미컬하게 프로그래밍 작업을 한다. 프로그램이 더 살아 있는 상태로 펼쳐나갈 수 있도록, 가능하면 작은 단위마다 테스트를 만들어 나간다. 컴퓨터가 주는 메세지를 경청한다. 이는 60년대의 천공카드로 프로그래밍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어쩌면 너무나도 단순한 개념이지만 이를 충실히 실천해 나갈 때, 각각의 작은 한 걸음은 확실히 이전보다 더 나아간 상태로 전진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비단 프로그래밍의 영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애자일을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를 이야기 할 때,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가치를 말로만 하고 넘어갈께 아니라. 실천(Practice)하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해 반영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코치의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펼쳐내는 과정의 중요성

여기 두 개의 그림이 있다. 왼쪽과 오른쪽 동그라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왼쪽의 동그라미 안에는 너무 강한 중심(Strong Center)이 존재한다. 교사의 역할이 강조되고 참여의 여지가 매우 적다. 물론 이런 방식이 가지는 장점도 있다. 오른쪽의 동그라미 안에는 역시 강한 중심이 있긴 하지만 왼쪽 보다는 축소되어 있다. 이는 교사가 되는 것 보다는 코치가 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강한 중심과 바깥 동그라미와의 사이에 충분한 여백이 있고 그 공간(Positive Space) 안과 밖에서 다양한 잠재적 가능성들이 나타나며 다음의 그림과 같이 매 단계 펼쳐져 나갈 수 있다. 


 

[The Nature of Order : A sequence of six transformation, starting from an empty circle
52 page, THE PROCESS OF CREATING LIFE (book two)]

각각의 단계는 다음의 단계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 처음에 그린 원을 경계(Boundary)로 시작한다. 원의 안쪽으로 흔적을 축소시켜 보면 가운데의 점을 그릴 수 있다. 일단 점을 그리고 나니 경계와 점이 만들어 내는 공간이 더 생생하게 보이고, 이를 4개의 다른 공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이렇게 이전의 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연이어 나타나는 그림을 계속 더 살아있는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보다 정교한 그림으로 발전한다.


위 그림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가 The Nature of Order라는 책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자연현상, 자연발생적 도시 등의 의미있는 구조에서 이런 양상이 발견된다고 그는 이야기 한다. 이 것은 미리 정교하게 디자인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펼쳐내는 과정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매번 똑 같이 재생산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다. XP(eXtreme Programming)등 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수업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도 이 처럼 펼쳐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것은 어떤 가능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켄트백이 TDD에 대해서 한 이야기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하는 이야기에서 유사성을 느낀다. (켄트백이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저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the timeless way of building' an original inspiration behind incremental development and having users on the team. the timeless way of building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또 다른 저작물이다. c2.com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반응

4회째의 수업을 마칠 즈음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은 과분할 정도의 소감을 전달해주었다. 

교수님과의 수업시간은 제게 새롭고도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그동안 잊었었던 참 이해와 함께 마음 깊이 즐기며 배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신 교수님의 사려깊은 태도와 진솔한 말씀들 그리고 따뜻해서 마냥 기대고 싶어지는 밝은 웃음은 잊지 못할것 같아요. 많은걸 느까면서 배울 수 있었어요. 이런 경험을 갖자마자 헤어지게 되어 너무나 섭섭하고 아쉬워요. 또 다른 많은 친구들도 이 체험을 통해 배움의 특히 대학에서의 다른 새로운 면모를 깊히 깨달을 수 있는 즐거움을 갖었으면 하고 바라게 돼요. 짧지만 제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더 많은 이야기(아쉬운 점에 대한 토로를 포함한)는 학생들의 반응 모음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짧은 6번의 교육과정에 대해 오히려 학교측에서 과정의 요약과 학생들의 인터뷰를 모아주었다. 

타과 중에서도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임베디드과'의 수업이라는 것부터가 시간예술과인 나에겐 겁이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이 아주 혁신적이어서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마치 놀이 같았다. 각자의 파트를 맡아 팀워크를 이루어 협력을 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내가 맡은 부분에 있어서 직접적인 체험을 하고 몸으로 습득할 수 있었으며, 그 파트들도 교류가 가능했기에 친구들과도 진정한 팀워크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갖고 있던 두려움이나 겁이 많이 사라져서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역시 더 많은 이야기는 인터뷰 모음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또 하나는 '도취'입니다. 저 스스로도 이런 경험에 도취되어서 뭔가를 잘 못하고 있는 것, 또는 놓치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또한 학생들도 잠깐 도취되어 진정한 의미를, 실천을 하지 못할까봐 걱정도 되지만, 벌써 한 두명 정도는 쿨다운 해서 짧게 인상적으로 만나는 것도 좋다. 앞으로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겠냐는 내용이 회고를 보면 나옵니다. 한편으로는 짧다면 짧은 경험인데.... 이렇게 영향력이 있다니 약간 두려워지는 부분도 있고, (유치원에서도 '행복'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큰 보람과 동시에 걱정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책임감이 많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감동의 순간과 변화의 지속


학생들의 반응 모음글에서 등장하는 김창준님이 언급한 이야기는 6번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동료들과 나누었던 60여통의 이메일에서 발췌한 것인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동감하는 부분이다. 감동을 주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까지는 차라리 쉽다. 하지만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상태, 변화를 지속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이 서로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학습 공동체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마지막 6번째의 수업에서는 메일링 리스트를 만들고 위키(구글 사이트)를 만드는 등의 작업을 함께 했지만 그 것은 너무 촉박한 시간(3시간의 수업시간)에 이루어졌고, 결국 이후 활발한 에너지 교환을 위한 매체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학생들은 6차시 이후의 블록강의를 맡은 강사에게 앞의 수업에 경험했던 내용을 소개하고 몇가지 방식을 제안하고 실천했다고 한다. 가능한 수준에서 그들의 경험을 스스로 확장해 나갔던 것이다.


내 경우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서 함께 이 맥락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토론했던 동료들과 지속적인 활동을 했다. 이 동료들은 RealEdu, PINY, 회고 촉진자 모임 등에서 중첩이 일어난다. 또한 이 때 얻었던 경험을 재방문하며 다른 장소(아트센터 나비 등), 다른 대상(아티스트, 디자이너, 개발자, 중고등학생), 다른 형태로 실험해 보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결국 학생들의 반응, 그리고 이에 바탕을 둔 학교측의 제안과 동료들의 관심과 참여로 현재 2009학년도 2학기에는 세명의 코치가 한팀으로 2학기 16차시 과정을 함께 펼쳐내 가고 있다. 기회를 얻었고, 변화를 지속해가고 있다. 이번 이터레이션에서는 그동안 발견된 개선할 점(학습 공동체 형성 등)들을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다루고자 한다.

오른손, 왼손 그리고 소통

우리는 오른손이 바른손이라고 불려지기도 하는 문화에서 살아왔다. 학창시절 원래는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으로는 서예를 배워서 결국 양손잡이가 되었던 친구를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양쪽 손을 다 잘쓰게 되면 더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 선택의 시기가 온다. 문과, 이과, 예체능 등 어느쪽으로 진학을 할 것인지 내가 더 잘하고 적성에 맞는 분야가 어느쪽인지 선택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서 선택했던 하나의 길을 걸어가게 되면 다른 길을 걸어갈 기회는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박탈 당한다. 오른손잡이가 스스로가 편한 손 만큼은 아니더라도 필요한만큼 충분히 왼손을 잘 쓸 수 있는 것이 분명할텐데도 잘 안쓰는 한 손은 마치 열중쉬어를한 체로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쓰는 언어조차 다른 사람이 되어 사회에서 다시 만난다. 예술가,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사회활동가, 교육자, 큐레이터 등등. 내가 가진 손들을 다 잘 쓰는 것은 커녕 다른손잡이들을 잘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애자일을 시도하고 있는 개발자 조직에게 '그 함께 펼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문화에 같은 팀의 디자이너는 어느정도 참여하고 있는지?'라고 물어보면 아직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기민함과 소통을 추구하려고 하는 우리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같은 생태계에 살면서 소통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서로가 있다.

교육, 애자일 문화, 그리고 책임

다시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학제간 연구, 통섭 등의 단어들이 한 때의 유행처럼 스쳐지나가고 있다. 심지어 학부제 폐지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인식을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사회적 시스템이 그런 장을 준비해 주길 기대해야 할까? 기존의 시스템이 제공하지 않느다면 스스로 시작할 수도 있는일이다. 학교(대학)을 다니는 시절은 친구를 사귀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한다. 함께 성장할 다양한 친구들, 다양한 전공의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며 서로 배우는 일은 차라리 학생들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관심가는 강좌를 청강도 해가면서 말이다. 경쟁 지향의 현재의 학습 생태계가 물론 이를 일어나기 어렵게 만든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생태계는 여느 특정 조직에 비할바가 아닌 보다 엄청나게 얽히고 섥힌 복잡계임이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어쨋든 학생들은 결국 사회로 진출할 것이고 만만치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다이나믹하거나 전혀 다이나믹하지 않은 일터에서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 하다가 어느새 이 정글에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슬금슬금 고민하기 시작한다. 마주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애써 외면한체. 어쩌면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일상에 순응해 가며.


보편적 가치를 가지는 애자일이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나와 내 주변을 위한 변화에 대해 내가 책임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불편함이 느껴질 수 있다.


불편할지 모르겠으나 그 것이 문제의 핵심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자일을 조직 안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비슷한 어려움의 토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조직의 하부에서 접근하는 분들은 나의 현재의 위치에서는 힘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동료와 상사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들 하며 비교적 조직의 상부에서 접근 하는 분들의 경우도 계몽주의적 성향을 띄어야 하는 역할에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레시피(Recipe)적인 정답,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비전의 해결책은 없다고 말한다. 열심히 하자며 서로를 격려하는 것 정도가 종종 일어나는 대화의 마무리 부분이다.


이 것이 마주한 현실이며, 어쩌면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나눠가져야할 책임일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공간을 탐색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변화의 중추가 되는 것. 학생, 개발자, 어떤 시스템의 구성원이던 변화에 대한 책임이 있을 것 같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무시하고 외면하고 싶은 이 책임에 대해 요즘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애자일, 다양한 사회적 층위에서의 실천이 필요한 이유

발현적 교육과정을 추구하는 유치원의 자유로운 문화에서 놀이와 학습의 큰 구분없이 경험을 펼쳐나갔던 한 어린이가 제도권인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짜여진 교육과정에 맞춰 그날에 해야될 무엇인가를 작성해야 하는 시간이 주어지고, 교사는 이 할당된 시간이 되면 일괄적으로 결과물을 수집한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유치원에서는 내가 스스로 이 것을 해내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나에겐 그 시간이 매우 중요해요.'라며 제출을 하지 않는다. 이 당돌한 말에 교사는 갑자기 어이가 없어진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사회적 층위를 넘나들 때, 이렇게 단절적인 경험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충격을 발생 시키며 사람을 변화하도록 한다. 때로는 긍정적으로(도전으로 인식하는 사람 등), 때로는 부정적(좌절의 경험을 하게되는 사람 등)으로.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을 위해서는 그 충격이 없진 않더라도 그 사람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는데 도움이 될만한 수준의 것이 좋을 것이다. 학교에서 경험했던 문화와 일터에서 경험하는 문화는 얼마만큼의 간극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되돌이켜 생각해보자. 간극이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문제다.


문득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성과 교육의 질과 경쟁적인 측면을 타협하지 않는 어떤 가능성이 있고 이를 학창 시절에 경험할 수 있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만약 현재 대한민국의 IT문화에서 거론되는 애자일의 담론이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한참 배울 수 있는데 집중을 더 하는 것이 가능한 시기에 이런 문화에 대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치원에서,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의 교육과정 및 교육기관이라는 조직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사회적 층위 하나를 대상으로 열심히 프로세스를 돌리기 보다는 시스템 전반에서 병렬적으로 프로세스를 돌리는 것이 무어의 법칙이 종언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에 더 적합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부한 주제인 '더 나은 개인과 사회'를 펼쳐내기 위해 한걸음씩 향해 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교육의 변화에 대해 작은 책임감을 가지기 시작해 본다.


뉴미디어와 교육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능성공간을 줄여가며 뾰족하게 갈고 닦는 고통스러운 인고의 과정을 수반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그 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가능성들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협업, 지속가능한 창작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뉴미디어에 걸맞는 새로운 방법들을 탐구하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최근에 소개된 책 '제4의불'에서 휴먼 에너지를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사람이야 말로 어느시대에나 '뉴미디어'다. 그런 맥락에서 교육이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함께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다음 예고

다음은 '아트센터 나비'에서 진행되었던 '셋이서 하는 미디어아트'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겠다.

참고

2009학년도 2학기를 위해 계획한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9-2학기 아트프로그래밍 교육과정

현재 이 교육과정은 기민하게 개정이 되어 진행이 되고 있다. 실제 일어난 교육과정은 다음 연재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의 바탕이 된 기록이 있다. 그간의 과정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 알림 : 본 글은 미디어아티스트인 최승준 작가의 <'뉴미디어와 교육' #1 : 변화에 대한 책임> 글을 앨리스온 편집분량에 맞추어 2 부분으로 구성하였음을 공지하는 바입니다. 다음 원고 ('뉴미디어와 교육' #1-2 : 변화에 대한 책임)는 15일 후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뉴미디어와 교육' #2 예고

다음은 '아트센터 나비'에서 진행되었던 '셋이서 하는 미디어아트'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겠다.




글. 최승준 (미디어아티스트)

최승준은 단순한 원리로 부터 창발할 수 있는 복잡한 현상에 관심을 갖고 이와 같은 일이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뉴미디어를 통해 들어내고자 한다. 또한, 쉽고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고안하여 누구라도 쉽게 작품의 맥락을 형성하는데 참여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여기에 작가 자신이 미디어로써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며 없는 것(0)과 있는 것(1) 사이의 어슴푸레하고 흥미진진한 구역에서 자유롭게 사유하고 실천하기를 즐겨하고 있다.

미디어아트가 가지는 잠재능력이 다양한 교육의 층위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조형, 디자인, 음악, 문학, , 무용 등의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함께 배워가는 한편, 컴퓨터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과학적인 소재들을 예술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을 병행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토대로 지식, 마음, 문화와 관계 맺고 이를 함께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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