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티스토리 툴바



자벨의 문답장치問答裝置 4화 _세상을 망치(ㅁ으)로서 예술이 구원하다_2부
금번 문답장치는 시각예술매체를 이용해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본차이나와 젊은 사장 yBa


= 극심한 사회변화로서 개인을 교조 시키는 현실구조를 그려나가는 부분에선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영국과 중국의 작가들을 둘러싼 상황의 편차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낙폭만큼이나 크지 않을까 싶은데. 중국은 198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왕광이를 위시한 4대천왕[각주:1] 또는 탕즈강[각주:2]같은 작가들이 보여준 바와 같이 중국공산화가 파괴되고 인민의 삶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의 혼란스런 고통을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잖아.


- 그에 비해 비근한 시기의 yBa는 그 현실의 성격이 통으로 틀린 경우겠군. yBa가 태동된 이유 중 하나가 폭압적인 대처리즘[각주:3]의 폐허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면서 더욱 자본화의 길을 걷게 된 결과이니까. 지금이야 그들이 상업적 작가그룹 쯤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멋들어진 홍보 전략으로 유명 인사들을 섭외해가면서 시작된 [Freeze][각주:4] 전은 그들이 버려진 공간을 'DIY'적으로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출발부터 분명한 자본의 속성을 무장했다고 보여져. 전시로서의 사회적 대안개념을 엎어버리고 자본 경제적 대안으로 변모되었어.


= 음음, 하지만 분명한건 두 나라의 작가들이 각국의 현실에 대한 피드백을 확연하게 작업 안에서 드러내주고 있다고 봐요. 물론 작가들 각자의 특이성은 분명하지만 근저에 흐르는 당대 사회의 분위기가 은은하게 스며있다는. yBa 작가들의 초기작을 논할 때 항상 따라 붙는 '대처의 아이들'이란 대목에서도 드러나 듯, 경기침체로 인한 무기력과 개혁경향 혹은 비합리성과 이성논리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불안함을 접하게 돼. 반면 90년대 전후의 중국은 공산화된 자본주의라는 기묘한 집단 전체성을 발달·전파하면서, 어떤 구조주의의 이론실험에 휘둘리는 중국인의 이미지가 그들의 작업에 비춰지고 있는 느낌이야.


- 하지만 다른 점은 그런 고통스런 변화로서 중국인의 삶이 척박해 짐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구가하는 강한 생명력 또한 똑똑히 표하고 있잖아. 영국은 오래된 자본화에서 새로운 자본구조로 옮길 수밖에 없는 답답함이 있겠지만, 중국은 오래된 공산화에서 벗어나 경험치 못했던 카오스로 내딛는 두근/어지러움이 더 활발히 드러나고 있다구. 당신 말대로 두 나라의 작가들이 자국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앞서 전술한 아타김이나 정동석 작가가 작업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이슈화했던 경우와는 많이 틀리군.


2. 전략가의 정략혼 그리고 정력

= 아타김과 정용석 작가의 경우는 작업 대상을 다루면서 방법적으로 자기 견해를 명확히 함으로 스스로의 정치성을 명확히 표하는 편이라면, 영국과 중국의 작가들은 자국 사회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받아들여 변화하는 의식들이 작업을 통해 어쩐지 조금은 수동스레 투영되어 보여. 그런데··· 좀더 다르게 예단해보면 정동석을 제외한 앞서 나머지 작가들은 ‘정치적’이라는 수사와 함께 ‘상업적’이라는 태그도 같이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아.


- 그렇지? 자국상황이던 사회적 이슈가 되었건 그들이 언급하는 외부 맥락들은 분명 현실 자본미술시장에 포섭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 상업적이란 것이 문제란 게 아니라 작가의 정치적 자세와 시장성을 얼마나 잘 어울리도록 컨트롤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봐. 강력한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 20세기 초반의 전위적 작업들이 권력이나 미술시장과 어느 정도 분리되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탓이 있잖을까. 대표적인 케이스가 존 하트필드[각주:5]겠고.


= 오움···. 당시 그런 식의 강력한 메시지를 표방하는 근거는 정말 지금의 미술들과는 정말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쩌면 21세기 전후에 보이고 있는 여러 캠페인 광고들이 외연적 측면에서 가깝지 않을까 싶으다. 아! 그러고 보니 한참 전 입방아에 오르내린 베네통 광고가 딱 맞는 경우겠다. 희한하네···. 파쇼를 배격한 공산주의자의 정치적 발언 형식이 작금의 유행 의류 광고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니.


- 당연히 목표로 하는 부분은 틀리긴 해. 존 아저씨는 투쟁으로서의 선동이었다면, 베네통은 자극적 선동을 통한 이슈화가 결국 자사의 이윤으로 돌아와야만 하니까. 하지만 둘 다 당시에 중요한 사건과 이슈를 사람들에게 토해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국 및 yBa 작가들이 사회에 대한 반영적 측면이 두드러지는 것과 변별되는 지점이야. 분명한 건 자신이 '절박'하게 말해야만 하는 사자후를 '진정'으로 벌겋게 각혈함이 중요한 작가들은 항상 잔존해.

= 옛날옛날에 말이야, 아이포스에서 구송이[각주:6]란 학생 사진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어. 당시의 심사평엔 들어있지 않지만, 실업계고교에 다니는 졸업반학생들이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직업·결혼·차별 등의 불안한 미래의 자화상을 잘 보여줬어. 기묘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거친 만듦새지만 작가의 속엣 말이 너무나 투명하게 비춰지고 있잖아. 저어, 아저씨? 이젠 미술에 있어서 ‘정치’란 말을 좀더 바르게 세팅해야지 않을까요. 사회적으로 쓰이는 폴리틱은 분명 아니겠고 매체에서 '정치적 예술'이란 말을 했을 때 어떤 방향으로 받아들이면 좋을지 말이죠.

- ······. ······. ············.


= 에, 에구. 농담야, 알았어, 요즘 나이 가지고 장난치면 되게 까칠하더라.

- 자꾸 이렇게 서럽게 굴면 막 울어버릴꺼다. 흐윽···, 허리 뻑뻑한 사십대인 것도 얼마나 슬픈데···, 암튼. 아주 개인적 견해를 말하자면, 현실 사태/사건에 대해 작가가 적극적으로 발언하거나 그 감응을 분명하게 표출해서 관람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려 한다면 '정치적 작업'이라고 봐야지 않을까. 이와는 달리 작가로서 아트마켓이나 사회구조를 잘 통섭해서 나름의 '전략'을 잘 구사하는 것은 다르게 봐야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정치政治 (명)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정치성政治性 (명) 정치에 관계되는 성질


= 사전적인 정의를 보면 이렇긴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정치'의 사전 내용처럼 나라를 다스린단 단순한 뜻일 수만 없잖아. 오히려 뒤에 있는 이해와 질서를 바로 잡는다에 가까울 것 같아. 또한 정치성도 작가입장에서 보면 '내 삶이 담겨있는 사회에 대해 말해야할 것을 표현하는 자세.' 정도? ‘모든 현대예술이 정치적이다.’라고도 하지만 전술했던 대로 작가들의 심중에 있는 모든 계산과 수동적 반영들이 그렇게 측정될 필요가 있을까.

3. 게릴라 뱅크

- 응. 정치/전략에 대한 개념적 분별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까. 아까 이야기했던 구송이의 [My self] 시리즈처럼 현실 상황에 대한 진정의 토로가 정치성을 가지는 중요한 출발의 근원이라고 생각해. 더 나아가면, 잘못된 사회구조의 질서를 바로 잡길 원하는 급진적 게릴라 걸즈[각주:7] 같은 어르신들도 계시지. 또한 뱅크시[각주:8]와 같은 그래피티 작가는 기존의 사회·미술계전반의 근거를 의심하면서 대중에게 뭘 도발하고자 하는지 수월히 보여주는 능력을 보여줘. 결국 이들이 노리는 것은 파괴로서의 [망치]ㅁ일 수도 있겠지만, 종내에는 건설적인 의미를 내포한 브레히트의 망치가 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바램은 더 나은 삶이니까.


= 과거엔 존 하트필드와 같은 마초적 프로파간다 측면이 강한 작업이 너무 자극이 강한 폭력처럼 느껴졌지만, 전술한 아트테러리스트들은 이제 다양화를 포섭한 대중 미술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여. 한편 두 작가의 경우 모두 삶과 당대 사회와의 마찰/매개를 작업으로 구현함이 가장 중요한 주제와 컨셉이 된 것이 공통점. 게릴라 걸즈가 협업을 통한 강력한 네트워크로 이미지의 내공과 담론의 전투력을 궁구했고, 뱅크시는 단순한 정치풍자 거리미술의 지평을 넘어 다양한 계급의 공감을 끌어내고 계심이야. 또 게릴라 걸즈나 뱅크시의 경우 모두 제도권 영역으로 편입되는 와중에도 아직까지는! 자기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도 주목해야할 부분야. 뱅크시가 좀더 많이 팔리는 것 같긴 하더만, 부럽부럽.


- 모든 작가가 앤디워홀처럼 플라스틱과 돈을 대놓고 사랑하고, 요셉 보이스[각주:9]와 같이 학교와 미술시장을 완벽히 거부할 순 없겠지만, 자신의 중심이 어디로 향해야하는지는 꼭 짚고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봐. 자신의 언어가 명확하기 위해선 무엇을 정말 쥐어야 하는지를. 뭐 꼭 내가 돈을 못···벌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보이스의 이 전언은 정말 가슴을 에이는··· 흑흑. 우리가 캔버스와 액자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머리에 떠 올리는 순간부터 우리의 오류는 시작된다. 우리 인간에게는 모두 잠재적인 창작능력이 존재하고 있다.


= 저어기··· 나도 그의 작업 중 <코요테>[각주:10]를 많이 좋아해. 하지만 말야 2004년도에 보이스 박물관 생겼다잖아. 거기 있는 작업만 시가가 천······.

- (휘릭, 얼굴표정 바꾼다) 역시 훌륭한 작업은 상업적으로도 인정받는 것 같아. 이거 이제 재활용폐지로 내놓으면 되지?

= ······. 쯔쯔쯔.


이미지출처


  1. 王廣義 : 동서양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화폭에 표현하는 화가. 주로 유명브랜드나 예술사조의 명칭을 화면에 텍스트로 넣어 이미지와 충돌시키는 작업이 유명하다. 1990년대 들어 상업적으로 인정받은 - '장샤오강张晓刚, 위에민준岳敏君, 팡리준方力均, 왕광이王廣義' - 네 명의 화가를 묶어 중국에서 4대천왕이라 부른다. [본문으로]
  2. 唐志冈 : 군인집안에서 태어나 40대 후반까지 군대에서 전쟁의 기억을 가지고 지냈다. 그것을 바탕으로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중국식 동화'라는 전체주의적 우상을 풍자한 그림을 그린다. 최근에는 보다 상업적이고 다양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본문으로]
  3. 1979년 총선거에서 보수당의 승리로 집권한 대처수상은 노동당 정부가 고수해 왔던 각종 국유화와 복지정책 등을 포기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머니터리즘(monetarism)에 입각한 강력한 경제개혁을 추진한 정책을 말한다. 인플레이션을 극복과 경기 회복의 성과가 있었으나 더욱 심각해진 실업과 불안한 경제상황으로 인한 가족해체 및 10대 문제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대처리즘을 비판하는 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본문으로]
  4. 골드스미스대학의 이안 데븐포트, 피오나 래이, 사라 루카스, 사이먼 패터슨, 데미언 허스트, 게리 흄, 트레이시 에민, 질리안 웨어링, 앤젤라 불록 등이, 1988년 런던의 과거 공업지역이었던 도클랜드(Dockland)의 빈 창고를 대안공간으로 삼아 소위 <프리즈>란 전시를 탄생시켰다. 세련된 카탈로그와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기획된 학생들의 전시는 신선했으며, 큐레이팅의 담당도 전시 작가였던 데미언 허스트였다. 전시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참여 작가 중 일부는 미술계의 주요 무대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본문으로]
  5. John Heartfield : 베를린 다다의 일원으로 본명은 헬무트 헤르츠펠데. 독일 공산당 창단 멤버이며 나치 독일을 비판하는 정치적 저항 수단으로 1924년에 창간된 반체제 잡지 『AIZ』에 포토몽타주를 발표하였다. 그는 나치 독일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하여 이미지를 조작하고 텍스트를 병치함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뚜렷이 했다. [본문으로]
  6. 2003년 포테이토에서 주최한 전국청소년 사진공모전에서 우수상 수상. My self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미래 모습을 다양한 직업군으로 연출한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만들었다. 자신에게 놓여진 다양하고 혼란스런 삶의 향방과 정체성을 미숙하지만 솔직하게 표현했다. [본문으로]
  7. Guerrilla Girls : 1985년 뉴욕에서 급진 좌파 페미니스트로 구성되었으며 주로 성차별을 질타하는 유머와 냉소가 뒤섞인 포스터 작업을 주로 하였다. 제작한 포스터를 거리에 붙임으로 자신의 발언을 전개해 나갔으며 유명해진 뒤에는 고릴라 마스크를 쓰고 미니스커트와 망사스타킹 차림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guerrilla를 gorilla로 오기하는 바람에 시작된 마스크를 썼다고 알려졌으며, 테러적인 공격성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 안에 포섭되어 여러 유명박물관에서 전시를 가지기도 했다. [본문으로]
  8. Banksy : 1973년생 가명을 사용하며 주로 스탠실을 사용하며 전쟁과 사회에 대한 그래피티 작업이 유명하다. 자본과 권력·전쟁의 부조리에 대한 강한 풍자와 유머가 특징인 그의 거리낙서화는, 관광책자의 지도에 표시될 정도로 주목도가 높다. 또한 대영박물관, 뉴욕 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등에 자신의 작업을 장기간 몰래 걸어놓아 제도권 미술관을 아연케 했으나, 대영박물관의 경우 그것을 영구 소장했다. 최근엔 미술시장에서도 인정받아 여러 유명인들에 의해 수억 원까지 작품가격이 상승했다. [본문으로]
  9. Joseph Beuys : 2차대전에 참전 중 죽음에 이른 그를 타타르 원주민이 살려내는 영적인 경험을 하고 그것을 작품에 반영하는 작가. 삶 자체를 예술로 인식하고 동물과 토템을 사용한 시적인 퍼포먼스로 유명해 진다.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했고 자신이 교수로 재직 중 학과의 입학 정원을 없애는 급진적 정치성을 보여준다. 2004년에 그의 작품 1000억원 상당의 미술품을 소장한 박물관이 독일의 클라베라에 지어졌다.(동아일보기사_ 요셉 보이스 ‘환생’한 듯…전용박물관 문 열어) [본문으로]
  10. <코요테 :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나를 좋아한다> : 뉴욕의 화랑에서 가졌던 퍼포먼스로 3일 동안 코요테와 담소하는 퍼포먼스. 펠트로 몸을 둘러싼 요셉 보이스가 지팡이만을 가지고 코요테와 공존을 시도하여 결국 코요테와 같이 숙식이 가능해 지는 정도까지 된다는 내용이다. 바닥에 깔린 월스트리트 저널에 코요테가 방뇨를 하게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장치들을 자연의 상징들과 병치시켰다. [본문으로]
신고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