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현실이 배어든 삶의 색을 밝히다_함양아 개인전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31. 16:37


형용사적 삶 > 넌센스 팩토리 Adjective Life in the Nonsense Factory
함양아 개인전, 아트선재센터, 2010.3.5 ~ 4.25

 

세상의 많은 것들이 형용사로 묘사된다. 그 가운데 인생혹은 이라는 말만큼 다양한 형용사와 짝을 이루는 것이 또 있을까? 누군가는 인생을 아름답다고 했고, 혹자는 잔혹하다고 했다. 살맛 난다고 하는가 하면 더럽고 진절머리가 난다고도 한다. 싱그러움으로 터질듯한 초록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아무 맛도, 향도, 촉감도 없는 회색으로 그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과연 어떤 형용사로 표현될까? 내 삶에는 내가 처한 현실의 색이 배어있고, 또한 내 삶의 색은 바로 우리의 현실을 물들인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 함은 복잡다단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관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사회 속 어디인가에 대단히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다만, 그 복잡함을 우리는 간과하곤 한다. 무심해지곤 한다. 때문에 우리 삶의 색은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이다. 함양아의 작업은 바로 드러나지 않은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가 처한 그 복잡다단한 현실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우리 삶의 색과 모습을 함께 찾아낼 것을 제안한다.

함양아 작가의 이번 전시는 앞서의 두 개인전 Dreamin Life(2004), Transit Life(2005)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 고백컨데, 앞선 두 전시를 보지 못한 탓에 이전의 개인전들과의 연계 속에서 이 전시를 보았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번 형용사적 삶 > 넌센스 팩토리전시는 함양아 작가의 과거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방향성과 작업 방식이 충분히 전달되는 전시였다. 아마 이번 전시로 함양아 작가를 처음 접한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넌센스 팩토리라는 큰 틀 안에 유기적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현실 혹은 사회라는 큰 구조 속에서 물들여진 개인을 발견하도록 이끄는데, 그것은 비디오, 미디어 설치, 퍼포먼스, 다양한 다큐멘테이션과 참여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 진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발길을 멈추게 한 작품은 <사회 안의 개인들로서의 기둥 설치>작품이다. 모니터, 스피커, 텍스트와 오브제들이 기둥과 기둥을 구성하고 있다. 처음 보았을 때 뭔지 모를 이 기둥들이 곧 각각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소리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일관성 없이 차갑게 고립되어 있는 듯한 이 기둥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이 각각은 서로 연결된 듯 분리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왼편으로 <넌센스 팩토리 + 사회 안의 개인들로서의 기둥 설치를 위한 작업실>이 설치되어 있어서 관람객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이후의 기둥 작업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를 원한다. 이 공간은 이러한 욕구를 끌어내고 번잡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업실인 듯 하다.


사회 안의 개인들로서의 기둥 설치 일부, 2007-present, multi media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


전시장 공간 안으로 좀 더 진입하면 초콜릿으로 만든 조각 작품과 관련된 영상 작품을 볼 수 있다. <초콜릿 두상><Out of Frame>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큐레이터들을 모델로 하여 초콜릿으로 만들고 그것을 접한 다른 문화와 공간으로부터의 사람들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것이다. 초콜릿이라는 재로가 가진 매력. 왜 작가는 하필 초콜릿을 재료로 삼았을까? 해석하는 이에 따라 혹은 작가 자신의 의도가 각각 다를지 모르겠다. 초콜릿은 달콤쌉싸름하고 어떤 단맛보다도 혀에서 녹는 부드럽지만 다소 뻑뻑한 감촉을 쉽게 연상케 한다. 처리에 따라 얼마든지 표면을 매끄럽고 깨끗하게 만들 수 있지만 금새 녹아 내릴 수도 있다. 초콜릿 두상은 서서히 녹아 내리면서 그 인물이 가진 권력 또한 무너져 내리는 소심한 통쾌함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초콜릿 두상을 두고 벌이는 사람들의 퍼포먼스 또한 흥미롭다. 관찰하고 만지고 냄새 맡고 멀어지고 다시 개입하고분명 돌이나 나무로 된 조각과는 다른 반응. <Out of Frame>의 뒤집힌 영상과 다른 작품의 감상에 간섭 혹은 침투하는 소리는 견고한 힘과 권력에 침투하는 틈으로 작동하는 듯 하다.


또 한 편에서 설치된 영상 작품 <보이지 않는 옷>에서는 완벽한 기술로 가상의 옷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와 옷이 가진 권위를 주장하는 패션 스타일리스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첨단 기술은 인공위성으로 사람들의 표피에 버추얼한 옷을 입히고 스타일리스트가 우려하는 옷의 질감, 텍스처등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 옷은 단지 몸을 가리것이 아니라 욕망의 표출이나 카타르시스라고 말하는 스타일리스트. 둘은 다른 것을 말하는 듯 하지만, 실은 같은 위선에 빠져 있는 지 모른다. 이 둘의 논쟁은 이미 선점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새로운 소유로 새로운 권력을 행사하려는 다툼에 불가할 수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벗은 몸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만든 것은 결국 둘러싼 상황이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인은 점점 힘을 잃고 자신을 감추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의 무색이 되고 만다.


예술은 사람과 함께하고 사회 속에서 숨쉰다. 이를 벗어난 예술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것을 추구한 듯 방식은 서로 다루다. 소통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쉽게 사용되어 그 의미가 퇴색되고 다수 진부하게 추락해 버린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을 소통의 장으로 끌어온 것이 과연 얼마나 되었는가? 작품을 사람들 속에 내놓고 관찰하고 호흡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감행했을까. 함양아의 작품은 지금 그 과정에 있고, 다양한 시도들은 진형이다. 그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 회색도시를 보다 많은 사람들의 풍부한 색깔로 물들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초콜릿 두상, 2007-present, curator’s head chocolate sculpture, before & after Performance


보이지 않는, 2008, HD video, color, sound, 14 min. loop, drawing printing and wall drawing installation, Sponsored by HERMES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