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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답장치問答裝置 5화_전쟁의 선전기록, 그것이 끝나는 날_1부

  + 이번 문답장치는 2009.11.28-2010.2.20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한국전쟁기념비]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었던 사진작가 

    강용석의 인터뷰입니다.

+ 본격적인 작업이야기를 하기 전에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작가로서 본인의 사진작업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큰 개념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제 작업은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연결고리를 갖고 그로인해 한국 전반을 관찰하려 합니다. 실질적으론 6.25 발발의 명확한 원인이 한국 자체의 내전이 아니라 트루먼과 스탈린의 대리전일 뿐인 거죠. 이제는 잊혀질 정치가들이지만 그로인해 한국에는 반공과 주체사상 같은 잉여의 이데올로기가 생겨버렸고 전쟁 후에도 한반도는 지금까지 이에 관계된 여러 집단의 아집과 지엽적 분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내전임에도 불구하고 원인과 결과가 모두 외부에 있는 이 아이러니를 사진으로 객관화시켰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친이 남한의 입장에서 전쟁을 치르시기도 했었고 10대 시절에 훈육되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을 20대에 학습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지금의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 현재의 신자유주의와 고도자본주의를 분석함에 있어 19-20세기 전후 전지구적 맹위를 떨친 식민주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엔리카 두셀[각주:1]같은 여러 학자들의 주장과도 맥락을 같이 할 수도 있는 예제가 한국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작업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보죠. 83년도 [동두천 기념사진]은 당시 주둔하던 미군을 대상으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한국여성과 찍은 기념사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 처음에는 동두천의 다양한 면모를 담으려 했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나 혼혈아 혹은 당시 농촌이었던 동두천의 우마차 같은 소재들과 미군기지의 묘한 조화를 흑백으로 촬영해서 졸업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기지촌의 유흥업소 홀 내부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방도를 강구했었죠. 수소문하다가 카메라를 들고 드나들 수 있는 업소 사진사를 자청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졸업 후 84년 즈음에 직업 사진사이면서 한편, 다큐멘트 작업으로 그들을 필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런 사회상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고요. 학부 시절 본격적인 첫 사진작업이 정신박약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촬영한 시리즈였는데 여기서부터 촬영 대상에 대한 방향성이 잡히지 않았을까 해요.


+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 마음을 쏟게 된 피사체는 언제나 작가에게 거대한 축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죠. 80년도 당시 한반도의 전쟁 이후 상황을 사진으로 작업한 작가들을 거론할 때 의외로 매우 소수만이 거론됩니다. 선생님의 작업과 김용태의 [동두천사진관의 기념사진들][각주:2] 정도가 아직까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작업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작업과 [동두천 기념사진]이 분별되는 지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또한 당시 다큐멘터리 사진작업들이 의외로 분단이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밀도 깊은 결과가 전체 사진가 인원에 비해서는 많지 않게 느껴집니다. 원인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용택 작가의 경우는 미술 쪽에 출발하신 탓도 있겠지만 당시 "현실과 발언[각주:3]"의 동인전을 위해 제작된 기획의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요. 컨셉츄얼한 작업의 한 방식으로 보고 있어서 제 작업과 같이 거론하긴 어려우리라 봅니다.  >끝 질문에 대한 답은 확연히 “어떻다”라고 답을 드리긴 곤란할 것 같군요. 분명한 건 동두천 작업을 할 때 저와 같이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작업을 한 작가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다루는 주제와 배경에 대해 명확한 인식과 학습을 겸비함으로 무장된 비판의식으로 작업한 작가들의 수가 얼마런지는 의문입니다. 당시 불안하고 폭력적인 한국의 상황은 사진작가로서 좋은 소재들이었으나, 그 시기를 벗어나면서 많은 수의 사진가들이 타 장르나 상업사진으로 전업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이전보다 자유스러운 분위기도 원인이겠죠. 하지만 미련 없이 손쉽게 자신이 천착해온 작업을 순식간에 뒤집는 모습은 동료로서 안타까웠습니다.

+ 진정으로 동감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찍는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세계관이 완성되진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든 결과를 완성치 않고 구축의 중요성을 손쉽게 뒤집는 작가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후우, 암튼 개념적인 면에서 [동두천 기념사진]은 당시 주둔한 미군과 한국 상황에 대한 상징의 메타포로 읽을 수도 있는 반면, 실제로 촬영된 인물들에게는 기념의 용도로 판매되어 소용되었다는 점에선 당시 다큐멘터리 사진과 비교할 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컨템포러리한 독특한 만듦새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80년대 초반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들과 일정의 틀을 달리하는 작업이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 80년도라 당시 대학에서 다큐사진을 전공한 사람들도 매우 소수였습니다. 그나마 몇 개의 사진관련 콘테스트만 전공자들이 작업을 알릴 통로일 정도로 인프라가 척박했죠. 3학년 재학시절, 당시 컨템포러리한 사진작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는 외국서적 정도였습니다. 미대사관이나 여러 루트를 통해서 구한 원서를 스스로 번역해 연구 적용하는 수 밖엔 없었지요. 그러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것이 단순하게 사실을 반영하거나 피사체에 몰입만 해가지고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죠.  기계적으로 소재만을 셔터로 베끼는 것 이상을 해야 했던 거죠. 지금도 저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록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해요. 거기에서 일반 보도사진 이상의 의도를 더할 수 있으며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믿고 개인적인 경구로서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35mm 컬러네거티브로 촬영을 하고 동두천의 사진관에서 컨디션이 나쁜 약품으로 현상해서 마무리된 탁한 화질의 이미지가, 결과적으로 당시 동두천의 미묘한 분위기를 더욱 잘 살리는 측면이 되었죠.


+ 기록에 대한 말씀은 여타 다큐멘터리 작업전반을 논의함에 있어 정말 중요한 대목 같습니다. 당시 동두천의 모습과 한국의 현실을 다양하게 목도하고 고민하시면서 사회 비평의 안목도 강화되시는 한편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갖게 되지 않으실까 생각되는데요. 그럼에도 동두천 작업 이후에 가신 유학이 미국이란 건 조금은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 사진을 배우기에 여러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다문화가 집중되는 미국이 가지는 현실적인 유리함도 있죠.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비판과 소통에 대한 사회의 수용능력이었죠. 제 경우를 봐도 유학 포트폴리오가 동두천 기념사진이었는데 입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작업에 대해 사진 비평가인 앨런 세큘러[각주:4]의 호평도 있었고, 2003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매향리 풍경] 시리즈를 전시했을 때도 그들이 정치적 비판담론에 대해 어떤 수용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계기가 되었죠.


+ 그런 선진문화가 참 얄밉기도 해요. 윤리적 측면을 떠나서 너무도 많은 것을 녹여내 자국의 인문·미학적 담론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식이 미국의 특징이자 장점 같습니다. 그럼 처음 질문을 부연해서 실제 작업에 관해 좀더 자세히 여쭤보겠습니다. 전쟁에서 출발해서 구성되고 있는 근대 이후의 한국을, 사진으로 객관화시켜서 작업해 나가는 전반적인 프레임의 과정이 있으시리라 봅니다. 어떤가요?

* 지금 우리를 둘러싼 여러 환경도 모호한 영역이 산재하지만, 우선 알려진 한국전에 대한 역사·교육부터가 어긋난 부분을 가지고 있죠. 앞서 말한 대로 한반도 외적인 문제로 출발된 국제/대리적 내전임에도 북한 정권의 야욕이 남한의 평화를 침탈하려는 전쟁으로서 정규 교육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 후 한국인의 희생에 더해 자생적 통일이 힘들어지는 한편 정치기득권의 세력유지를 위해 미국에 대해 사대적인 의존까지도 암암리에 촉발시키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제 사진은 이런 여러 복합적인 정치사태들을 관람객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형식을 가지려고 합니다.

  명확한 텍스트로 어떤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은 관람객에게 맡기면서도 지금까지의 한국 상황을 그들에게 표현으로서 어떻게 환기시킬 수 있는 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잔혹한 희생을 분명 인지하면서도 이에 대해 지금 우리 자신이 논리·객관화한 시각을 다시금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그래서 [매향리 풍경]이나 [민통선 풍경]에서 구사했던 단순화된 흑백의 톤들이 객관적 도구로서의 거리두기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선친께서 빨치산 토벌에 관련이 계셨던 것도, 제가 한국전쟁에 지속적으로 집중하게 되면서도 이 이슈를 객관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원인이기도 하지요.

+ 국제 관계가 한국에게 가한 다채롭고 명확치 않은 이해관계의 파장들을 사진으로 풀어냄 자체가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객관을 견지하고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소통시킬 수 있는가는 개인적인 작업의 향방을 좌우하는 것 이상의 비중을 갖는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객관의 형식을 가진 사진 방법론이나 자세에 대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으신가요?

* 저에게 다큐멘터리에 대해 분명한 정의를 심어준 대표적인 작가는 워커 에반스[각주:5]입니다. 제가 공부할 당시엔 FSA사진[각주:6] 정도만 알려진 사진가이지만 실제론 가장 급진적인 사진의 현대화 작업을 일궈낸 작가 중 한사람입니다. 뷰먼트 뉴홀[각주:7]이 말했듯이, 전 20세기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이 가졌던 실제 사회 영향의 측면에선 제이콥 리스와 루이스 하인[각주:8]을 끝으로 종결되었다 생각하죠. 현실의 영향력을 상실한 다큐멘터리의 기능은 TV의 등장으로 사실 지금 완벽한 사망선고를 치렀습니다.  워커 에반스 당시 이미 사진가에게는 다큐멘터리의 ‘스타일’만이 남아버리지 않았을까요? 때문에 워커 에반스는 사진이 기호와 상징 그리고 평면의 속성을 가진 매체임을 주장했고 다큐멘터리 사진이 사실 보도 이상의 문화와 역사를 나타낼 수 있음도 작업으로 증명했습니다. 이런 현대적 사진 방법을 로버트 프랭크가 이어받아 현대 사진의 거장으로 자리하고 있죠.

+ 말씀을 이어서 심화된 질문을 드릴께요.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포털 사이트나 사전에 정의된 여러 내용들이 있는데요. 한 작가로서 이에 대해 좀더 개인적인 정의, 즉 실제 '찍는' 행위에 있어 디테일한 규칙이 있을 것 같습니다.

*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사진에 대해 개인의 관점을 말씀드리죠. 우선 첫째, 사회와 역사에 대해 비판적 서술을 해야 합니다. 둘째, 스트레이트한 방식으로 연출 없이 찍어야 합니다. 셋째,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장의 사진으로 작가의 주관이 드러나야 하죠. 다시 말하자면 리스와 하인의 시대에서 벗어나 -사회에 기여하고 현실을 변화할 목적으로부터 자유롭게 말이죠- 철학·미학적 관점에서 사진작업을 깊게 논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서 다큐멘터리 사진이 예술로서의 사진으로서 자리매김되고, 갤러리와 뮤지엄에 타 예술과 동등한 위상으로 입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작가의 생각과 표현이 예술적으로 사회의 권위를 가지고 작가들의 담론을 두텁게 중층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 본문의 내용중 정동석 사진작가님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관계가 올바르지 않아, 내용에서 삭제하였음을 공지하는 바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벨의 문답장치問答裝置 <전쟁의 선전기록, 그것이 끝나는 날>은 2부에 계속됩니다.

강용석


작가프로필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 미술학 학사(B.F.A In Photography), 1984. 2.
  •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사진학 전공
  • 미술학 석사(M.F.A In Photography), 1986. 8.
  • 미국 Ohio University 대학원 사진학과 사진학전공
  • 사진학 석사 (M.A In Photo Communication), 1991. 4.

개인전

  1. "매향리 풍경", 서울 대안공간 풀 (1999. 7) / 부산 영광갤러리 (1999. 9)
  2. "동두천과 매향리", 서울 SK 포토갤러리 (2000. 6)

그룹전

  1. "나남사진전", 서울 관훈미술관(1983. 6)
  2. "Dr. Peter Smith", Seigfred Gallery, Athens, Ohio, USA(1991. 4)
  3. "한국사진의 수평전", 장흥 토탈미술관(1991. 11)
  4. "한국사진의 수평전", 서울 시립미술관(1992. 11)
  5. "한국 현대사진전 - 관점과 중재",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1993. 6)
  6.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전 - 1945~1994",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1994. 1)
  7. "한국인", 인데코 화랑(1994. 2)
  8. "이세상 아이들", 삼성포토갤러리(1995. 5)
  9. "우리의 환경 사진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1995. 6)
  10. "사진은 사진이다", 삼성 포토갤러리(1996. 2)
  11. "1996 우리사진, 오늘의 정신", 인데코 화랑(1996. 11)
  12. "1997 서울사진대전", 서울시립미술관(1997. 9)
  13. "한국사진역사전", 서울 예술의 전당(1996. 11)
  14. "Seoul-Berlin, Seoul Alive Through the Eyes of Photographers", Kommunale Gallery, Berlin, Germarny(1999. 9)
  15. "시간의 선분", 서남미술전시관(1999. 10)
  16. "35mm Personal Scenes", 서울 SK 포토갤러리(1999. 10)
  17. "새로운 세기, 정착과 비정착에 관한 12개의 팜플렛", 전주 서신 갤러리(2000. 2)
  18. "한국 현대미술 중심의 이동전, 이동하는 몸, 흔들리는 땅", 서울 문화예술진흥원 미술관(2000. 8)
  19. "하우아트 사진 컬렉션 2000", 서울 하우아트 갤러리(2000. 12), 부산 영광 갤러리(2001. 3)
  20. 서울 판화 미술제 사진 특별 초대전,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2001. 4)
  21. 광주 비엔날레 2002 "Project 1- Pause",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2002. 4)
  22. 동강사진축전, 강원도 영월군 영월군청(2002. 7)
  23. "The American Effect",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USA(2003. 7 - 2003. 10)
  24. "분단의 벽을 넘어-Borders and Beyond", 휴전협전 50주년 특별전, 서울시립미술관(2003. 7. 29 - 8. 24)
  25. 동강사진축전, 강원도 영월군 영월군청(2004. 7)
  26. 포토트리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2005. 9)

작품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2005년)
  • 서울시립미술관(2005년)




  1. Enrique Dussel : 아르헨티나 출신의 철학자. 지금도 논의·연구되어 구축 중인 라틴 해방철학의 기본 골격을 수립한 인문학자 중 주요한 인물이다. 현대 사회문화의 맥락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것이 탈근대성이 아닌 탈식민주의라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2. 현실과 발언 회원. 1984년 동인전 준비 중 미군 상대의 사진관에 걸린 기념사진에 주목. 근육질의 벗은 미군이 키치한 배경 앞에 마초적 이미지로 찍힌 사진들을 모아 <현발> 6ㆍ25 역사전에서 DMZ란 제목으로 꼴라주하였다. 이후 미8군 내부에서 전시되기도 한 아이러니한 이 작업은 미국 <민중미술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본문으로]
  3. 1979년 창립된 민중미술운동의 서막을 알린 미술가 그룹이다.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자생적인 미술의 토양을 마련하려하였고 민족을 바탕으로 한 미학과 리얼리즘의 구축을 시도했고, 본격적으로 한국미술에 정치의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표현했다. [본문으로]
  4. Allan Sekula : 미국의 미술 비평가이자 순수예술 및 단편영화를 비롯한 다매체작가. 구겐하임과 게티 연구소의 지원금을 받았으며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에 재직 중이다. [본문으로]
  5. Walker Evans, 1903∼1975 : 미국 미주리주 출신으로 앗제의 영향 아래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 분야를 개척하였다. 소설가, 증권거래소 직원을 거쳐 1930년부터 사진작업을 시작. FSA 사진 및 미국 농촌의 빅토리아풍 건물들과 실내를 정적인 분위기로 촬영했다. 1940년 구겐하임 지원을 받아 [이제 유명한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냅시다]라는 강한 사회의식이 반영된 사진을 만들었다. 대형카메라를 사용하며 일상 속의 사물에서 복잡 다양한 사실성과 은유적 서정성을 같이 구사한다. [본문으로]
  6. FSA(Farm Security Administration 농업안정국) 의 약자로 20세기 초 미국대공황 여파로 피폐해진 미국의 농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이다. 렉스토드 터그월에 의해 조직되면서 심층 있는 사진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로이 스트라이커가 사진가들을 고용하여, 미국 중서부 농민의 고통과 피폐한 상황을 기록한다. 워커에반스, 벤샨, 러셀리, 도로시어 랭 등에 의해 만들어진 사진은 당시 다큐멘터리 사진의 부흥을 가져왔다. [본문으로]
  7. Beaumont Newhall : 대표적 미국의 사진사기록인 사진의 역사The History of Photography의 저자이자 사진이론가. 1930년대 말, 세계최초로 미술관내 사진 분과가 설치된 뉴욕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이다. 근대적 사진비평이론을 정립했으며 미술관 시스템과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대규모 기획전시의 토대를 마련했다. [본문으로]
  8. Jacob Riis & Lewis Hine : 20세기 초반 FSA 이전 다큐멘터리 사진의 사회적 영향력을 입증케 한 초기 작가들. 리스는 하층민 이주노동자를, 하인은 아동노동 착취에 대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다. 두 작가 모두 사진을 통한 계몽적 여론을 통해 관련 입법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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