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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답장치問答裝置 5화_전쟁의 선전기록, 그것이 끝나는 날_2부

  + 이번 문답장치는 2009.11.28-2010.2.20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한국전쟁기념비]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었던 사진작가 

    강용석의 인터뷰입니다.


+ 동감합니다. 다큐멘터리의 주관성과 다변화가 강조됨으로 인해, 다양한 언술로서 기존의 다큐 사진이 다루지 못했던 영역까지도 작업 가능하지 않을까 점쳐 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꼭 여쭤봐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얼마 전 프레시안에서 다큐멘터리와 저널리즘 사진에 대해 대담기사[각주:1]가 실렸습니다. 간단하게 언급하면 현재 사진가들의 작업이 예전의 다큐·보도 사진가보다 너무 연성화·예술화가 되어버렸고 담론적 거대성을 버리고 있다는 거였어요. 또한 다큐·보도 사진조직의 구조적 견고성을 다시금 거론하며 잡지 사진의 매력을 되짚는 것이 너무 변화된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습니다. 지금 말씀과는 거의 반대편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반대가 맞습니다. 저는 다큐멘터리와 저널리즘의 차이는 주관적 혹은 객관성이냐를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자면 똑같은 자신에 관한 내용이라도 일기와 주민등본은 같은 관점에서 볼 순 없습니다. 주관과 객관을 나눠야 한다는 거죠. 매체에 실리는 사진을 가지고 개인의 주관을 강조할 순 없으며 저널리즘은 태생적으로 자본과 가까운 상업적 속성을 가지고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따라야 하죠.

+ 저도 이에 대해 답답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고 사진으로 이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난 100여 년 동안 도출되어 온 저널리즘 사진의 다양한 문제점과 한계로 인해 작금의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로인해 여러 통신사와 에이전시의 자본·영향력의 퇴보를 가져온 것일 텐데 그에 대한 진단은 대담에서 부재했죠. 상황 변화에 대한 반성은 없이 “지금도 인쇄나 지면 쪽 시스템은 잘 살아남아 있고 매체 안의 견고한 조직에는 좋은 사진가가 남아 있다.”는 말씀들이 너무나 간절히 과거로의 희구를 염원하는 담화 같았습니다.

Walker Evans <Bethlehem> Pennsylvania,1936

Walker Evans <Bethlehem> Pennsylvania,1936

* 다큐멘터리(대담에서는 아트워크)와 저널리즘의 명확한 분류가 선행되지 않았고 저널리즘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하는 상업성에 대한 막연한 거부가 있었지 않았나 봅니다. 자기 시각을 사진으로 일정 개진하면서도 시장성을 가지고 저널리즘을 작업한단 것이 합리적으로 나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급화된 사진”과 “사진의 사상적 가치”같은 추상적 단어들로 저널리즘을 고급스레 언급하는 건 너무 예술과 저널을 경계를 혼란케하려는 의도로 보이더군요.

+ 저널리즘이 소속집단과 자본구조의 틀 안에서 발언할 수밖에 없음에도 그것의 가치를 이상화하여 저널 사진의 전성기[각주:2]였던 20세기 초반으로 시간을 돌리고픈 욕망이 슬쩍 보이는 듯도 했습니다. 이번엔 좀 가벼운 질문입니다. 요즘 전시작업들을 보면 1m이상의 대형 와이드 프린트는 대부분 디지털 인화로 만들어집니다. 또한 실제 일반인들이 다루는 사진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디지털이 쓰이고 있죠. 그러나 이전 개인전에서도 젤라틴실버프린트[각주:3]를 채택하셨었지만 이번엔 크기도 대형화되어 더욱 거대한 2m전후의 롤지 프린트까지 등장했습니다. 어쩌면 일반적인 흐름과 반대의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 처음 사진작업을 한 이후에 가장 흥미로운 매체가 아날로그 흑백사진이었고 제 스스로 가장 잘 콘트롤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필름이나 약품에 관해 스스로 연구한 결과도 제겐 유용하며 이것을 사용해야할 근거도 명확한데 남이 컴퓨터를 쓴다고 손에 익은 도구를 버릴 필요는 없죠. 새로운 매체가 나왔다고 자기 작업방식을 바꾸는 것이 되레 자신의 상식에 반대로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젊은 작가들은 처음 접한 매체가 디지털이니까 당연히 그 방식으로 작업성향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저 또한 몸성에 익혀진 자세가 아날로그 프로세스란 거죠.
한편 작가가 가진 메커니즘이 있고 거기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구조가 있는데, 외연의 도구가 바뀌면 세상을 보는 태도와 시각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함부로 자신의 시각을 바꾸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저도 초창기 디직스라는 디지털SLR 카메라를 95년도에 구입해 사용했었습니다만 저널리즘이나 커뮤니케이션 용도로 판단되더군요.

+ 디지털로 인해 이미지-사진의 필요 때문이 아닌-를 일반 대중이 실질적인 소통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시대적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급격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치면서 사진과 타 미디어와의 간극 또한 적어지고 있고요. 다시 말하자면 디지털을 거치면서 렌즈로 만드는 이미지인 사진의 속성과 개념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고 유추되는데···, 다큐멘터리 또한 그 영향 아래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사진과 그림이 점차 가까워질 겁니다.  "photography"의 뜻이 그리스말로 빛으로 그린 그림이란 건데 디지털의 출현으로 더 확연해졌다랄까요. 꿈과 상상을 비전문인도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숍으로 표현가능한 상황이 도래하면서, 누구에게나 미디어 속성의 이해도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봅니다. 다양한 뉴미디어 출현 또한 사람들의 도구개념의 인식을 확대시키면서, 기계 장치를 통해 현실의 피사체를 반영해 보여준 장르인 다큐멘터리 사진은 필연적으로 변화-발전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는 더욱 다큐멘터리가 새롭고 다양한 태도를 가지고 깊이를 더할 것을 기대합니다.

+ 이어서 다큐멘터리 작업의 다양한 경향성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전편에서 언급하신 다큐멘터리의 정의는 유효한 팩트입니다만 실제 현장에서 작업되고 있는 사진들은 그보다 더 방대한 경향을 가질 텐데요. 더불어 최근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이전과 궤를 달리하고 있으면서도 유형학 사진같이 또 다른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읽힐 수도 있는 다채로운 작업들이 출현하고 있죠. 더불어 시장적인 면에 있어 다큐멘터리 사진이 점하고 있는 상황이 어떠한지도 말씀해 주십시오.

* 방금 언급한 것처럼 사진이 발전과 퇴락을 거듭했지만 반대로 다큐멘터리 사진 자체는 그 개념이나 작업방식이 확대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LIFE[각주:4]>같은 지면들을 통해 스트레이트한 저널리즘 사진 특성이 강화되었지만 이후 TV나 디지털로 인해 그 한계 또한 명백해졌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 다큐멘터리의 노선이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사진의 속성을 분명히 쥐고 있으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 가능한 예술로 거듭났으며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는 역동적 가변성도 내재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상업적인 면에서는 아직 산재한 문제가 많죠. 국내 갤러리에서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로 불리는 장르의 사진은-더구나 사회정치적인 작업이라면-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마켓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게 침체적이고···.
유형학 사진[각주:5]을 말씀하셨지만 그건 현실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숙성시켜서 제시하기 보단 말 그대로 아카이브 형식이 새로운 컨셉의 아트로 전용된 사례라 여겨집니다. 사회/역사적 맥락으로 전시장에 걸리고 소통으로서 관객에게 읽히기 원하는 다큐멘터리 입장이 아니라, 유형학 사진은 피사체가 일정 구조를 드러내는 본질적 원소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측면이 분명 다큐멘터리의 사회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저는 봅니다. 그렇기에 유형학 사진을 다큐멘터리 스타일로서 보기엔 제 관점에선 무리가 있죠. 다른 작업들보다 제시된 구조를 조망하려는 피사체의 물성에 대한 유형학 작가의 욕망이 크다고 느껴져요.

Nan goldin <gotscho kissing gilles> Paris, 1993

Nan goldin <gotscho kissing gilles> Paris, 1993

+ 지금 작업하시는 대상들이 주로 한국전쟁을 위주로 하는 거대담론의 소재들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다른 측위의 작업들, 예를 들면 낸 골딘[각주:6]의 개인적인 담론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고 이에 대한 작업계획은 없으신지요. 그리고 이런 큰 담론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계시는 이유가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 아주 사적인 이야기라도 사회적인 공감을 줄 수 있다면 당연히 다큐멘터리 스타일에 포함됩니다. A.D.Coleman[각주:7]이란 비평가가 이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분류한 적이 있죠. 클래식 다큐멘터리(1950년도 이전부터 있어왔던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헤비텍스트 다큐멘터리(강한 이론적 베이스를 가지고 만듦), 참여파 다큐멘터리(작가가 직접 피사체의 상황에 몰입해서 작업함), 방금 언급된 일기 형식의 다큐멘터리, 이렇게 네 가지 형식입니다. 참여나 일기 형식처럼 시대상을 반영하는 개인 담론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만큼 이에 필적할 좋은 작업들이 나오겠죠. 하지만 전 개인 이외에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담아야 된다고 보고 그것을 사진으로 작업합니다. 사실 젊은 작가들의 이미지와 같은 재치 가득한 흥미로움은 전 없습니다만.
저 개인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나가기엔···, 뭐랄까요. 간략히 언급하자면 표현하고픈 내 스스로의 이야기가 없는 것이죠. [Mirrors and Windows 展[각주:8]]에 대입해서 이야기 하자면 저는 창파에 확연히 해당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이후 흔히 말하는 고뇌하는 예술가상으로 불러지는 감수성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지극히 굴곡 없고 평범한며 예술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어요. 단순히 기계를 좋아해서 사진기를 만지작거렸고 파인더를 통해 외부를 관찰함을 좋아하는 사람, 단어 그대로 다큐멘터리 사진가였고 계속 그 구역을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 사실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윤리적이면서 탈신화적인 자세로 스스로를 가늠하며 자신의 사회적 견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상식과 객관을 도구로서 사회를 바라보시는 작가님이 현대적으로 정말 의미 있는 예술가가 아니실까 생각합니다만···. 각설하고 이제 그런 거대 담론을 다루는 형식과 방법에 대해 질문 드릴 텐데요. 

강용석 <경기도 연천군 태국 참전비> 2007

강용석 <경기도 연천군 태국 참전비> 2007

[매향리풍경]부터 [민통선풍경]을 거쳐 이번 [한국전쟁기념비]까지, 어떤 외연적 공통점이 있고 거기에 흑백의 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모든 작업에 있어 톤(계조)은 중립적인 회색으로 객관과 거리두기를 위한 방도입니다. 매향리의 경우 실제 소재들이 매우 강하게 시선을 압도하기 때문에 이미지에 몰입되는 걸 차단해야 했었죠. 단순히 강한 이미지의 보도사진처럼 매향리를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가 컸기 때문에 좀더 미니멀하며 밀도 있는 중립적 톤이 필요했습니다. 작업이 끝난 후 매향리가 폐쇄되고 개인전을 통해 시립미술관과 과천현대미술관에서 [매향리풍경]이 소장되었는데, 한국전쟁의 역사적 자취를 다큐멘트한 작가로서 큰 의의를 두고 있어요. [민통선풍경]은 전시에 장갑차를 막기 위해 도로를 폐쇄할 목적으로 거대한 원석들을 노변에 고인돌처럼 쌓아 놓은 풍경을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유적의 일부처럼 보이는 바위의 모습이 역사의 무덤처럼 보이면서도 실제 전쟁의 도구로서도 기능하고 있는 상황이 아이러니했었죠.

+ [민통선풍경]은 형태로서도 매우 재미있는 시리즈입니다. 실제 전시를 보진 못했지만 하이키로 처리된 회색의 이미지여서 바위면서도 무겁지 않은 느낌이 모순적인 블랙유머처럼도 보여요. 그것에 이은 작업인 [한국전쟁기념비]는 밝은 계조의 방식을 이어가면서도 화면에 인물이 등장합니다.

강용석 <충남 당진군 송악면 나라사랑공원 한국전쟁기념비> 2008

강용석 <충남 당진군 송악면 나라사랑공원 한국전쟁기념비> 2008

* 프레임에 담긴 피사체들의 관계성을 많이 고려했습니다. 기념비의 딱딱한 모뉴멘트와 함께 거기서 일상을 보내는 인물들을 같이 담아냄으로서 현실의 기념비와 사람들을 같이 다루었죠. 4x5대형 카메라를 가지고 스냅의 방법을 구사했기 때문에 지난한 기다림이 많았지만 일상의 인물들이 허울의 위압을 가진 기념비와 이질적으로 혼용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진 대형흑백롤지 아날로그 인화는 체력적으론 힘들었으나 기념비와 일반인들의 관계/대립의 상황을 커다란 이미지로서 강화할 수 있었죠.

+ 제가 사진을 만드는 사람이어서인지 몰라도, 여리여리한 계조를 부드러이 구사하면서도 실제 피사체는 매향리나 기념물처럼 거친 텍스쳐의 사회적 함의를 지닌 물상을 함께 다루는 방식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다른 것들이 콘트라스트하게 작품에서 부딪게 되었을 때 굉장히 자극적인 상업성까지도 전 느끼는데, 이 때문에 반전운동을 하는 지인이 [매향리풍경]이 가지는 이미지가 그곳의 실상과 너무 다르지 않느냐는 언급도 있습니다. 매향리는 저런 부드러운 톤을 느낄만한 곳이 아닌데 저런 방식이 바른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던 거였어요.

*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스트레이트하게 찍어서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사진이 오히려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날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자극을 주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재가 가진 서사와 의미를 사진적으로 해석하고 제시해서 소격효과[각주:9]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죠. 제가 구사한 톤으로서 피사체를 현장에서와 다르게 느껴졌다면 제 의도가 적확히 반영된 결과입니다. 톤이 상징으로서 제가 심은 의도를 실어 표현되었다면 그건 좌우와 무관한 중립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합니다. 이처럼 계조의 아름다움에 메시지가 탑재되어 관객과 조우하는 것이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제 방식이며 보임의 가치이죠. “매향리는 거칠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폭력적이지 않을까요? 알프스나 요세미티를 굳이 예쁘게 포장할 필요가 없듯이.

+ 세계와 시대가 복잡다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반영해야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어디에서부터-얼마나-어떻게 다변화된 시선과 태도로서 대상에 접근해야 올바른가란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좀 막연한 질문입니다만··· 그렇다면 미래의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고민해야 되는, 변화하는 현재를 카메라로 담는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져야 할까요? 어쩌면 모든 작가들이 간원하는 궁극의 고원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세계를 다시 해석하는 수천만 배의 태도가 곱해지니 한 가지 길은 아니겠습니다만.

* 그렇죠. 어쩌면 지금 제가 어떤 것을 제시함이 도리어 다양성을 저해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에게 어떤 지향점을 던져주었던 작업은 언급해야 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유학시절 보았던 로버트 아담슨의 [Our Life and Our Children] 이라는 사진집이 있습니다. 핵무기를 제조하는 공장 주변의 마을과 주민들을 스냅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사진집을 넘기면서도 크게 특이한 점은 보여주지 않아요. 핵무기 제조 공장도 텍스트로만 서두에 명시되고 이미지 자체도 핵무기 관련 사물들이 드러나지는 않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차 희미하게 불안한 느낌이 블러된 스냅과 사람들의 인상/포즈 등을 통해서 묘하게 일그러지듯 증폭시켜 표현됩니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하게 변하는 표정과 이미지들로 끝을 툭, 잘라버리는 사진 시리즈죠. 결국 핵무기에 관한 다큐멘터리이지만 피사체나 소재에서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핵에 대한 공포를 사진이미지로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다큐멘터리 작업이라고 봅니다.

Our Lives and Our Children: Photographs Taken Near the Rocky Flats Nuclear Weapons Plant / by Robert Adams

Our Lives and Our Children: Photographs Taken Near the Rocky Flats Nuclear Weapons Plant / by Robert Adams

 
미래 다큐멘터리 사진의 관건은 어쩌면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리플래쉬하는 것이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이미 로버트 프랭크로 인해 1950년대에 입증되기도 한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다르게 보인다.는 건 결국 생각의 문제이니까요. 다큐멘터리에서 소재의 역할은 반세기 전에 이미 묘비명으로만 남겨진 거죠.

+ 굉장합니다. 증강현실같이 실제가 아닌 비가시적인 것들이 생활에서 중요한 파이로 확대되고 있고, 그렇다면 당연히 소재주의를 떠나 보이지 않는 구조/개념을 비평할 다큐멘터리가 절박한 시점인데 정말 중요한 논의입니다. 실상만을 반영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이 이제 더 나아가 비가시적 상황도 사진으로 거론 가능한 작가들의 출몰이 매우 기대됩니다. 후우,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다른 미공개 작업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라고요, 사진학과 교수로서 사진작가를 열망하는 젊은이들께 드릴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강용석 <강원도 철원군 유곡리>2003

강용석 <강원도 철원군 유곡리>2003

* [민통선풍경]도 아직 전시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또한 [철원군 유곡리]를 소재로 한 작업이 많이 애착이 갑니다. 선전마을이란 것인데 1973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DMZ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선전용 주택단지입니다. 약 50호 정도의 주택을 제작해서, 군인출신 등 신분이 명확한 사람들로 주민을 모집했죠. 무상으로 논밭을 나눠주고 거주하게 했습니다. 북한에 선전용 유령마을이 있다지만 남한도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무슨 데칼코마니 같죠? 검문소를 3-4개 이상 지나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전방에 위치한 외진 마을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여러 지역에서 모였기에 실제 관계할 이유가 없었던 사람들이 모인 가상 마을이라, 주민들 간의 내부 알력과 마찰이 꽤 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누구도 의도하진 않았으나 결과적으론 이데올로기로 급조된 한국적 아이콘의 집약으로도 느껴졌었죠.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취재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분위기였으나 여러 방향으로 주민들을 접촉하면서 촬영 작업이 진행되었죠. 하지만 여건상 전시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강용석 <강원도 철원군 유곡리>2003

강용석 <강원도 철원군 유곡리>2003

마지막 질문은 음, 단순한 것으로 하지요. 물리적 과정만을 보면 사진이 나오는 건 쉽게 이뤄집니다. 기술은 계속 발달하고 셔터는 손가락만 있으면 되니까요. 그렇기에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깊고 무거운 책임이 동반합니다. 작업에 있어 개인 생각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당위인 만큼, 사진이 못 박힌 전시장에 작가의 입장과 생각도 공표되는 것이죠.

+ 전시를 볼 때 이따금, 작품이란 것이 결국 작가가 관객에게 가격하는 모호한 복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작품에 대해 작가가 가지는 책임은 정말 중요한 지점이겠죠. 사회학자인 사라 손튼Sarah thornton이 말했 듯, 현대예술이 자본적 무신론자를 상대할 대안 종교의 기능이 있다면 말입니다.
긴 시간 감사했습니다. 꼭 미공개 작업이 전시로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자벨의 문답장치問答裝置는 새로운 작가로 계속됩니다.

강용석


작가프로필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 미술학 학사(B.F.A In Photography), 1984. 2.
  •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사진학 전공
  • 미술학 석사(M.F.A In Photography), 1986. 8.
  • 미국 Ohio University 대학원 사진학과 사진학전공
  • 사진학 석사 (M.A In Photo Communication), 1991. 4.

개인전

  1. "매향리 풍경", 서울 대안공간 풀 (1999. 7) / 부산 영광갤러리 (1999. 9)
  2. "동두천과 매향리", 서울 SK 포토갤러리 (2000. 6)

그룹전

  1. "나남사진전", 서울 관훈미술관(1983. 6)
  2. "Dr. Peter Smith", Seigfred Gallery, Athens, Ohio, USA(1991. 4)
  3. "한국사진의 수평전", 장흥 토탈미술관(1991. 11)
  4. "한국사진의 수평전", 서울 시립미술관(1992. 11)
  5. "한국 현대사진전 - 관점과 중재",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1993. 6)
  6.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전 - 1945~1994",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1994. 1)
  7. "한국인", 인데코 화랑(1994. 2)
  8. "이세상 아이들", 삼성포토갤러리(1995. 5)
  9. "우리의 환경 사진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1995. 6)
  10. "사진은 사진이다", 삼성 포토갤러리(1996. 2)
  11. "1996 우리사진, 오늘의 정신", 인데코 화랑(1996. 11)
  12. "1997 서울사진대전", 서울시립미술관(1997. 9)
  13. "한국사진역사전", 서울 예술의 전당(1996. 11)
  14. "Seoul-Berlin, Seoul Alive Through the Eyes of Photographers", Kommunale Gallery, Berlin, Germarny(1999. 9)
  15. "시간의 선분", 서남미술전시관(1999. 10)
  16. "35mm Personal Scenes", 서울 SK 포토갤러리(1999. 10)
  17. "새로운 세기, 정착과 비정착에 관한 12개의 팜플렛", 전주 서신 갤러리(2000. 2)
  18. "한국 현대미술 중심의 이동전, 이동하는 몸, 흔들리는 땅", 서울 문화예술진흥원 미술관(2000. 8)
  19. "하우아트 사진 컬렉션 2000", 서울 하우아트 갤러리(2000. 12), 부산 영광 갤러리(2001. 3)
  20. 서울 판화 미술제 사진 특별 초대전,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2001. 4)
  21. 광주 비엔날레 2002 "Project 1- Pause",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2002. 4)
  22. 동강사진축전, 강원도 영월군 영월군청(2002. 7)
  23. "The American Effect",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USA(2003. 7 - 2003. 10)
  24. "분단의 벽을 넘어-Borders and Beyond", 휴전협전 50주년 특별전, 서울시립미술관(2003. 7. 29 - 8. 24)
  25. 동강사진축전, 강원도 영월군 영월군청(2004. 7)
  26. 포토트리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2005. 9)

작품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2005년)
  • 서울시립미술관(2005년)

이미지출처

  • 강용석 사진 - 작가본인
  • Walker Evans / Nan Goldin / Robert Adams : 구글이미지 검색
  1. [이미지프레시안을 시작하며] 사진작가 성남훈-이상엽 대담 : 우리를 위한 사진이 설 자리는 없는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15152144 [본문으로]
  2. FSA 사진과 루이스 하인, 제이콥 리스가 활동한 시기부터 1950년도 전후까지를 말한다. 저널리즘 사진이 실제로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여론 형성과 관련법 제정까지 막대한 발언권을 가졌던 때이다. [본문으로]
  3. Gelatine Silver Print : 흑백은염사진. 기존의 아날로그 흑백사진을 뜻하는 것으로 종이위에 은으로 된 감광재료를 입힌 인화지를 말한다. [본문으로]
  4. 1936년 타임지의 회장 H.R.루스에 의해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 그래프 저널리즘 잡지. 생생한 박진감과 고도의 편집기술로 당대의 저널리즘 사진의 바이블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당대의 유명 사진가들이 대부분 거쳐 가는 잡지였다. 폐간과 복간을 거듭하면서 최근엔 웹사이트로 존재한다. http://www.life.com [본문으로]
  5. 참고 : http://webzine.iphos.co.kr/webzine/Upload/ContentsImg/features/zabel/090805/6.jpg | http://webzine.iphos.co.kr/webzine/Upload/ContentsImg/features/zabel/090805/7.jpg 독일의 베허부부와 가 대표적이다. 사전에서 적용되는 방식처럼, 사물의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형태들을 비교한 작업을 말한다. 같은 종류의 사물들을 모아 아카이브해 놓음으로서 그것이 가지는 미적 맥락을 살핀다. [본문으로]
  6. Nan Goldin : 자신과 관계있는 친구, 연인 등의 지인들을 피사체로 이들의 생활과 자신과의 관계를 솔직하고 자극적으로 촬영한다. 일기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엮어 보여주는 스냅 숏방식의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미국사회의 게이, 레즈비언, 마약중독자, 에이즈환자 등의 주변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부터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7. Allan Douglass Coleman : 미국의 사진비평가이자 작가. 뉴욕 타임즈의 첫 사진비평가이며 120편 이상의 비평 칼럼을 연재했음. 1967년부터 빌리지보이스와 뉴욕옵져버 등에 기고했으며 American Photo Magazine 에 의해 미국의 사진인 100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본문으로]
  8. 1978년 미국 뉴욕의 근대 미술박물관(M-OMA)의 사진부장인 존 사르코우스키(john Szarkowski)가 1960년 이후 등장한 미국 사진가들을 거울(mirros)과 창(windows)이라는 두 가지 미학적 카테고리로 정리하여 발표되었던 미국 현대사진의 기념비적 단체전의 명칭. 거울(mirror)파는 사진을 자기표현의 한 수단으로 하는 작가들로 분류하여 제리 올스만, 듀안 마이클, 브루스 데이비슨, 랍프 깁슨, 앤디 워홀 등을 배치했고 창(mirror)파의 경우는 사진을 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다이안 아버스, 게리 위노그란드, 리 프리들랜더, 켄 조셉슨, 촌시 헤어, 에드워드 루샤 등의 작가들로 선정했다. 전시회에서는 200점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배열시키면서 거울파는 회색의 벽면에, 창파는 흰벽면에 전시시켜 분류시키고 있다. 사진집에서는 제1장에서 거울파를, 제2장에 창파를 수록시키고 있다. 너무 이분법적인 잣대로 작가들의 담론을 한계 지었다는 비평도 있으나 사진비평에 있어 미학적 틀거리와 분석의 단초를 창안하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본문으로]
  9. Estrangement Effect : 독일 표현주의 희곡작가인 베트톨트 브레히트에 의해 주장된 개념으로, 관객과 배우의 심리적 거리 즉 낯설게 느껴짐으로 인해 생겨나는 감응을 말한다. 관객이 배우 연기에 몰입되지 않게 함으로 객관적으로 극을 해석/평가하는 비평적 시각을 가지도록 한다. 배우가 객석에서 연기를 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무대장치를 허술하게 노출하는 등의 방식을 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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