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21세기 플럭서스_산으로 간 팽귄_ex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7. 21. 21:12



백남준아트센터의 2010년 두 번째 기획전 ‘산으로 간 펭귄’은 시각예술, 무대연출, 미디어, 연극, 애니메이션 등 장르를 가로지르는 전시이다. 이 신선한 제목은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조그(Werner Herzog)의 다큐멘터리 ‘세상 끝에서의 조우(Encounter at the End of the World)’에서 펭귄 한 마리가 산으로 가는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의 서식지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인 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펭귄처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 26명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전시의 취지이다.




앨리스의 동굴 속으로

 

백남준아트센터는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공간 구성이 재미있다. 획일적이거나 정형적이지 않고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는 이 공간은 여기의 작품들과도 많이 닮았다.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2층을 헤매다보면 건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공간 계획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미로와 같아서, 한 번 간 곳은 잊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 작품 배치도 없이는 동선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빨리 작품을 파악하고 나가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니 하루쯤은 즐거이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속에서 헤매도 괜찮을 것이다.

 

먼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찾기가 쉽지 않다. 백남준 작품 사이사이에 숨겨진 폿잍의 작품을 서프라이즈로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며 1층을 쏘다니다 보면, 파란 카펫을 만나게 된다. 계단 전체를 휘감고 있는 ‘Mad Blue Carpet'에는 동물 문양들이 폭신하게 수놓아져 있다.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펭귄 문양에 발을 디딤으로써 전시가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며 곳곳에 서있는 양을 비롯한 동물들을 보면서 낯선 동화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계단을 올라와서는 검은 고무줄이 가득 쳐져 있는 공간을 만난다. 다음 작품을 보려면 건너가야 하는데 빽빽한 고무줄들에 가려 저쪽 출구는 보이지 않고, 허리를 구부려야 이 곳을 통과할 수 있기에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토끼를 따라 동굴로 들어갈까 말까하는 앨리스의 기분. 실제 공간도 동굴과 비슷하다. 적분에서 얇은 단면들이 모여 입체를 이루는 것처럼, 직선의 수많은 고무줄들로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동굴이다. 그 외에도 토끼가 지나갔을 법한 미끄럼틀,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는 듯한 무대 세트 같은 작품 등 공간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가벼운 재료들과 거친 디테일로 인해 정돈되지 않은 미완의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풍기는 것이기도 하다.



 

노이즈로 그린 그림

 

그러나 6 25일에 방문한 관람객이라면 로비 애브네임(Robbie Avenaim)의 알찬 사운드 아트 퍼포먼스를 보는 행운이 있었을 것이다. 애브네임은 호주의 실험음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로 일상적인 사물들을 악기로 사용한다. 그의 무대 한 쪽에는 드럼과 여러 가지 소품들이 놓여있고, 다른 한 쪽에는 기기들과 마이크들이 서있다. 그는 여느 드러머처럼 드럼 앞에 앉아 연주를 하지만 드럼 스틱으로 두드릴 뿐만 아니라, 비닐봉지를 구겨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먼지털이 같은 것으로 드럼 표면을 문지르기도 한다. 그의 진지하고도 분주한 움직임은 보기에 약간 코믹하기까지 하다. 사용되는 소품들은 매우 작고 그것들이 내는 소리도 아주 섬세하기 때문에 눈을 뜨고서는 그의 커다란 동작만을 주목하게 되어 사물들이 내는 다양한 진동과 다채로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눈을 감는 순간 그가 말하려는 모든 것이 보인다. 어떤 듣기 평가에서 음악을 듣고 답지에서 칸딘스키가 표현하려 했던 그림을 고르라는 문제가 있었다. 정말로 명확한 답이 보였다. 이처럼 그가 연주한 곡을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생생하고 풍부한 색감, 섬세하고 리드미컬한 필치로 공을 많이 들인 그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완숙하고 잘 다듬어진 작가의 그림.

 

시각 너머 시간

 

애브네임의 퍼포먼스 외에도 이 전시의 매력을 찾고자 한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전시는 결코 시각적이지 않다. 작품 속에 이야기가 꼬깃꼬깃 접혀있다. 윤돈휘의 ‘초우모노폴리아’는 얌전하게 전시되어 있는 바람에 넘겨보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다보면 작가가 직접 그린 글씨 드로잉으로 유머러스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Close your eyes', 곧 이어 ’Open your eyes'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데, 그 지시를 따르다보면 연극의 검은 커튼이 내려왔다가 걷히는 듯한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어릴 적 화장실 낙서를 보는 듯 가볍고 유쾌하지만, 작가의 진지함 없이는 두꺼운 책 한 권을 수작업으로 결코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첫눈에 잘 읽히지 않는 또 하나의 작업은 한 쪽 벽면을 수많은 텍스트와 티셔츠 등으로 장식한 송호준의 'G.O.D.'이다. G.O.D.' Global Orbiting Device의 약자로 꼬마 인공위성을 만들어서 우주에 띄우고자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꼬마 인공위성 제작하는 법을 인터넷으로 공유하여 누구나 자기만의 인공위성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처음엔 이것이 실현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지만, 송호준은 전기전자전파학을 전공했고,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업체에서 일했으며, 미국의 인공위성 학회까지 참여한 공학도이기도 하다. 이제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한 시대가 되었거니와, 인터넷으로 그 방법을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는 플럭서스의 우편 미술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김기문의 ‘R.I.P'도 한 눈에 파악되지 않는 입체적인 작업이다. R.I.P'는 ‘명복을 빕니다’라는 뜻으로, 전시장의 해체된 벽면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그 조각을 기념품으로 사가도록 한 작품이다. 해체된 벽면에는 ‘memorabilia(수집품)'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 크게 새겨져 있다. 일종의 개념미술로, 이 내용을 찬찬히 읽는 사람은 작품을 즐길 수 있을 테지만, 조형미를 느끼기 어려운데다 영어라는 장벽이 작품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점이 아쉽다. 제목도 풍자적이고 재미있으나 복합적이고 내러티브를 가진 이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 하다.

 



21세기 플럭서스

 

1960년대의 플럭서스는 예술 작품을 물적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는 동적인 과정으로 대체하였다. 2010년 ‘산으로 간 펭귄’전 역시 기존의 시각예술의 범주를 넘어 공간적으로, 청각적으로, 시간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다소 산만해 “보이기”도 하는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표현 형식의 다양함으로 인해 조화되지 못한 듯 보이는 이러한 점조차 플럭서스와 닮았다. 또한 이 전시 서문에서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아직 작가라고 부르기에는 학생 같은 어린 작품들도 있었으나, 이러한 작가를 택한 것 역시 실험적이라는 점에서 플럭서스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백남준아트센터만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이 전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21세기 플럭서스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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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하나 (홍대 예술학) s97120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