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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캔버스가 되다:Smule의 재퍼(zephyr)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8. 5. 12:03



마땅히 놀거리가 없었던 어릴 적, 주위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최고의(!) 놀이는 ‘흙장난’이었습니다. 탑을 쌓기도 하고, 멋진 만화 주인공 얼굴을 그릴 수도 있었던 재미있는 놀이였었죠. 어른이 된 지금이야 흙장난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유해 세균을 염려하며 아이들을 만류하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자유롭게 무언가를 만들며 그려볼 수 있었던 그 흙의 감촉, 그리고 냄새들은 지금도 추억과 함께 새록새록 살아나곤 합니다. 오늘은 그 때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애플리케이션, 제퍼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 본 기사는 디자인 정글(www.jungle.co.kr)과 컨텐츠 제휴로 작성된 글입니다.

‘알타미라(Alta Mira) 동굴벽화’가 인류 최초의 그림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벽’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겠지요. 아마도 태초의 인류들 역시 땅 위에 그림을 그리며 의사 소통을 했을 꺼라 생각됩니다. 그때, 그들이 땅 위에 그림을 그리며 썼던 가장 오래된 의사 소통수단. 그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손가락’이겠지요.

‘터치’를 기반으로 하는 디바이스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인류는 또 다시 ‘손가락’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앱스토어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앱마켓 에선 터치로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연주하고, 화면을 만지며 새로운 예술체험을 하게 해 주는 이른바 ‘앱아트(App-Art)’ 애플리케이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요. 그 형태와 장르가 너무나도 다양해서, ‘이러한 형태의 예술’ 것의 정의 자체가 모호해질 지경입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새로운 예술’은 과거의 예술과는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어쩌면 ‘진화’ 혹은 ‘변화’ 자체가 이 ‘새로운 예술’의 특성일 수 있겠지요.
오늘 소개할 제퍼(zephyr)라는 애플리케이션은 바로 그런 ‘새로운 예술’의 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퍼’는 ‘오카리나(Ocarina)’라는 앱으로 많이 알려진 Smule(www.smule.com)사의 앱입니다. ‘오카리나’ 앱의 경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아이폰을 입으로 불며 합주를 하던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곤 했죠.


이렇게 ‘함께 하는’ 방식의 앱을 주로 만드는 Smule 사는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사용방법과 악기나 사물에 대해 독특하게 접근하는 시각이 인상적인 회사 입니다.
‘제 퍼’를 실행 시키면 지구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화면이 나타납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빈 화면에 처음엔 조금 당황할 수 있지만 본능적으로 화면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사용자는 이내 곧 그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저 화면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면 되는 거죠. 꼭 그림일 필요도 없습니다. 간단한 메시지도 좋고, 이리저리 어지러운 선들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마치 어릴 적 흙장난을 하듯 자유롭게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시면 됩니다. 손가락을 따라 조금은 신비로운 느낌의 소리와 함께 그림이 그려지고,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지우거나 흔들면 사용자가 그렸던 이미지가 지워지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오른쪽 하단에 화살표 모양의 Send버튼이 나타나는데요. 그 버튼을 누르면 ‘지구 어딘가’로, 내가 그린 그림이 지구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로 전달이 되게 되는데요. 이 과정은 마치 무인도에서 홀로 지내다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빈 병에 담아 보내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누가 그 사연을 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한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보내는 것이지요. 너무나 디지털적인 기기를 이용하면서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영화 ‘동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HAM’ 이라는 단파 통신과도 비슷한 면이 보입니다(물론 아이폰 용으로 HAM과 유사한 앱도 나와 있습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내고 난 후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감상하고 싶다면 왼쪽 하단에 있는 안테나 모양의 아이콘을 누르면 나오는 메뉴에서 지구 모양의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그러면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 그린 그림을 감상 할 수 있습니다. 지구본이 회전하면서 그림이 생겨지는 곳을 잘 보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디에서’ 보냈는지 대충 짐작할 수 도 있죠. 그리고 맘에 드는 메시지나 그림이 있다면 ‘하트’모양의 버튼을 눌러 기억해 둘 수 있습니다.

제퍼는 게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티스트가 만든 ‘작품’ 역시 아닙니다. ‘새로운 예술’은 작가의 상상력이 ‘놀이’를 기반으로 하는 감상자의 ‘참여’로 완성되는 경우가 많죠. 과거의 예술이 한 예술가의 천재성에 의해서 ‘창조’되는 작업이었다면 현대의 예술은 서로 다른 ‘지성’과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협업하여 보다 창의적인 작업을 내놓고 있습니다. 사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예술가들이 다 알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특히 미디어 아트의 경우에는 다른 예술 작업보다 기술 집약적인 요소가 더욱 많기 때문에 그 어느때 보다 ‘협업’이라는 단어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스마트폰의 ‘앱아트’라는, 다시 말해 지극히 개인적인 디바이스에서 구현되는 ‘네트워크’ 기반의 예술은, 그동안 예술가들이 꿈꿔오던 상상력을 한층 더 넓혀 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의사소통 도구인 몸(손가락)을 가지고 하는 개인의 예술적 체험이 ‘지구 어딘가’의 ‘누군가’와 공유되고, 얼굴을 볼 순 없으나 간단한 메시지로 ‘마음’를 공유하게 하는 예술. 예술가의 ‘개념’이 감상자의 ‘경험’과 만나 더 큰 예술이 되는 ‘새로운 예술’인 앱아트는 관람자와 예술가 사이의 관계나 작품의 전시 형태 면에 있어서도 기존의 예술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입니다. 단순하게 예술가들이 가지게 된 새로운 캠퍼스 혹은 전시장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예술 미디어로서의 앱아트를 기대해봅니다. 이 새롭고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새로운 예술인 앱아트는 이제, 시작입니다.

글 | 류임상 미디어아트채널 <앨리스온> 아트디렉터(nim2me@gmail.com)
에 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