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Artist

권병준, 소리가 뻗는 길을 만드는 자 _Inter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17. 15:01

이번 앨리온 인터뷰에서는 얼마전에 열렸던 "사운드 디자이너" 공연에 참여했었던 3명의 사운드아티스트를 만나보고자 합니다. 최수환 작가에 이어서 두 번째로 권병준 작가를 소개합니다. 과거의 밴드활동부터 현재의 엔지니어까지, 다양한 각도로 '음악'을 접하고 있는 그가 생각하는 사운드아트는 무엇일까요.

[Aliceon]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권병준입니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거주하며 STEIM(the Studio for Electro Instrumental Music)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비롯한 그 주변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고 가끔 공연도 합니다.

[Aliceon]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운드 아트란 무엇인가요.

전에 다른 곳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개념을 잡아 나가는 중이라 반복되는 질문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소리를 가지고 진지하게 작업하는 사람들의 결과물'이라고 답했습니다. 

[Aliceon] 사운드 아트라는 용어는 미술계에서 소리로 작업하는 영역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와 함께 공연을 보았던 아일랜드 친구는 공연이 끝나고 좋은 일렉트로닉 어쿠스틱, 이라고 하더군요.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게 들릴 수 있는, 그와 같은 용어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일렉트로 어쿠스틱은 시스템 외부의 소리(저의 LIG공연의 경우 목소리, 라디오, 아날로그 신디사이져, 기타 등등)를 전기 전자적으로 프로세스하여 만들어진 음향입니다. 

[Aliceon] 대중음악 분야와 사운드 아트 분야 등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각 영역마다 다른 지향점, 혹은 동일한 지향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고 계속 잘 도망다니는 것이 제 할일 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활동한다기보다는 익숙함이 버겹고 힘들어서 도망다니는 꼴입니다. 


[Aliceon]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사운드 아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에 대한 논의가 길게 진행되어왔습니다. 그 말을 뒤집으면 그만큼 사운드 아트라는 것이 잘 와닿지 않는다는 것도 될 것 같습니다. 사운드 아트에 있어 사운드와 음악이라는 구분 역시 이를 이해하는데 모호하게 하는 장치인 것 같습니다. 음악을 형식으로 접근하자면, 더욱 규범적이고 규칙이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현재의 사운드 아트를 상정하는데 있어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서부터, 토시오 이와이의 테노리움, 테싯의 게임적 공연, 나아가 다이토 마나베의 얼굴 근육을 이용한 연주까지 다양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작가님은 현재의 사운드 아트 신(Scene)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하고 계신지요.  

그러면 뭐든지 아트가 될 수 있는거냐고 물었을 때 존케이지 왈 If you celebrate it, it's art, if you don't, it isn't
케이지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는 이 마당에 잘 셀레브레이트 하기만 한다면 사운드가 어찌 아트가 안될 수 있겠습니까? 궁금하면 공부하세요 그래서 위에 쓴거 같은 말장난에 현혹되지 마세요. 그리고 굳이 아트라는 짐을 지겠다면 아트는 아트를 깔 수 있어야 아트입니다.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은 이후로 많은 발상의 전환이 있었고 미술의 영역은 아우르지 못할 것이 없어졌습니다. 자칭 '무한'히 넓어졌고 경계는 사라졌습니다. 아직도 그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도 못하는 변기 중 하나에 '사운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술품 전시장에 소리를 가져다 놓으면 사운드 아트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있습니다. 헤매다 정반대의 곳에서 변기를 찾아 똥싸고 있는 꼴입니다. 그들에게 아티스트라는 허명을 씌워주고 계속 그안에서 '그럴듯한' 맥락을 만들어 나가는 자들과 함께 편안히 공생하는 시스템에 머물러 있는 한 소리는 변기 속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흐르고 뻗어야 소리입니다. 

[Aliceon] 멀티미디어나 다중 미디어라고는 하나, 확실히 시각이 비대한 시대입니다. 현재 보여지는 사운드 아트 작업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사운드 자체보다는 이를 들려주고 '보여주기' 위한 인터페이스나 시각적 요소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각중심시대의 모습일런지요. 혹은 시각 대비 간접적 소통 매체이기 때문인지요. 이에 대한 견해 부탁드립니다.

욕망의 가장 단순한 일차적인 표현수단이 시각적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끓어 오르는 욕망들… 색을 밝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Aliceon] 작가님이 사운드 아트로 진입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경험이거나, 작품이거나 모두 좋습니다. 

기실 저는 사운드 아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내가 한없이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작아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양현대미술사의 잣대를 내게 들이대는 순간 그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물망보다 작은 물고기가 되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덩치 큰 물고기가 되어 누구 밥상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Aliceon] 사운드 아트 작업들의 경우 가장 기본 요소인 사운드를 감상할 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화성과 리듬, 규칙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사운드 아트를 어떻게 들어야할 지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는 셈입니다. 혹시 작은 가이드 라인을 주실 수 있으신지요.

앞에서 저는 익숙함이 힘들고 버겹다고 했습니다. 주로 기억과 관계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익숙한 소리가 좋으면 거기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게 싫거나 힘들면 다른 소릴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억지로 관객을 모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Aliceon] '음악'에서 믹서 등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기기들의 도입과 MAX/MSP 등의 프로그램이 보급되면서 변화하게 된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음악만들기가 쉬워지고 많이 비슷해진 거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두고 봐야겠죠.

[Aliceon] 사운드 아트에서도 악기에 담긴 기술적 속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악기를 이용해 음악을 생산하는 뮤지션에서 악기 자체를 생산하는 엔지니어까지 경험하신 작가님이 생각하는 이들 기술과 기계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기술과 기계를 공부하다 보면 사람이 계산적이 됩니다. 부품을 조합하여 또 하나의 부품을 만들고 그 부품을 조합하여 또 하나의 부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품을 오브젝트라고 부르건 객체라고 부르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예상된 결과를 내뱉는 작은 시스템입니다. 그 결과물은 정확히 예측가능하여야 하고 예측범위 이외의 결과를 내는 것은 오류 혹은 불량품이 됩니다. 참 잔인하죠? 이성에 뿌리박고 냉철함으로 가장해도 그 세계는 참 얄짤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바로 이런 서양에서 출발한 객체기반의 생산방식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건축가가 도면치고 작곡가가 곡을 쓰고 안무가가 무용짜고 김성근이 작전짜고, 부품으로는 목수, 바이올리니스트, 무용수, 김광현 등등등.  물론 이런 생산방식을 모두 부정하고 그러진 않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논리에 기반하여 기계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모순된 것 같지만 그것을 넘어 보고 싶어서 공부하는 중입니다.

[Aliceon] 작가님이 STEIM에서 설계한 '악기'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몇몇 작품에 대한 프로세스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Blow Job(2006)
    스타임에서 만든것은 아니고 학교 다닐때 처음으로 만든 악기입니다. 누운 스피커에 피에조를 넣어 피드백을 만들고 그것을 완전히 덮어 입의 공기압으로 스피커의 떨림과 피드백을 조절하는 악기입니다.
    http://byungjun.pe.kr/xe/?mid=performance&document_srl=11427&listStyle=&cpage=

  • Piezo Camera Pen(2007)
    역시 학생시절 만든 것이고 이번 LIG공연에도 사용한 펜입니다. 펜촉에 피에조로 소리를 받아 아날로그 신디사이져로 프로세스하고 그 소리는 증폭이 되어 카메라 위에 부착된 LED로 빛으로 전환되고 그 빛이 나올때 펜촉에 포커스된 카메라가 이미지를 내보내고 동시에 펜에 부착된 작은 모터가 피에조와 피드백을 만들어 빛과 소리에 불규칙성을 유도합니다. 나중에 adafruit에서 dwaruino라고 비슷한 것이 제품으로 나오더군요. 
    http://byungjun.pe.kr/xe/?mid=performance&document_srl=13034&listStyle=&cpage=

  • pied piper(2007)
    스타임에서 처음으로 만든 악기입니다. Crackle Box라고 스타임의 아이콘같은 70년대에 만들어진 사람의 손가락의 전도성과 저항을 이용해 소리를 바꾸는 간단한 신디사이져가 있습니다. 그것의 터치패드를 리코더에 붙이고 각 아날로그 전압의 값을 유에스비로 컴퓨터로 전달합니다. 예측하고 제어하기 힘든 값들이지만 그것을 이용해 피리소리를 제어하는 것입니다. 입쪽에 피에조 센서가 있고 오른손  엄지로 제어할수 잇는 압력센서가 별도로 부착되어 있습니다. 
    http://byungjun.pe.kr/xe/?document_srl=15244

  • 36 speaker system(2008)
    터널에서의 사운드 설치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외부 제어가 가능한 오디오플레이어를 무선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입니다. 500m의 터널에 18개의 유닛을 설치하였고 무선으로 제어되며 각 유닛에는 밝은 LED가 소리의 피크를 찾아 밝혀집니다. STEIM에서의 시연 영상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6QC-8QVRrSg

  • Radio Motor (2010)
    턴테이블로 라디오의 프리퀀시를 물리적으로 제어하는 악기입니다. 턴테이블에 부착된 로타리인코더로 값을 받아 두개의 서보 모터로 프리퀀시놉과 바늘을 제어합니다. 엡롬에 프리셋을 저장하여 자동으로 플레이 할수 있고 템포 조절 가능하며 미디 아웃이 있어 드럼머신이나 기타 미디장비와 연동할수 있습니다. 
    http://byungjun.pe.kr/xe/?document_srl=20854

  • InterFace (2010)
    얼굴을 이용하여 소리를 제어하는 퍼포먼스입니다. 얼굴에 부착된 자력 센서와 자석들을 이용해 소리를 제어하는 옷기는 퍼포먼스입니다. 제가 만들진 못하고 방법만 알려주고 dirty sound orchestra가 만들고 연주하였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SrNjNlaPg48

[Aliceon] 이번에 진행하신 LIG의 사운드 디자이너 공연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어떠셨는지요.

전체적으로 잘 기획된 공연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솔로 공연이라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LIG스텝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Aliceon] 공연 제목이 "모든 것을 가진 작은 하나" 인데 이것의 의미와, 아울러 이번 행사의 주제인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셨는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에서 얘기한 객체기반의 생산방식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개인이 하나의 완성된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시간' 곡은 제가 전에 작업한 '두개의 아날로그 메트로놈과 하나의 디지털 딜레이'라는 곡과 함께 류한길씨가 협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두개의 아날로그 메트로놈과 하나의 디지털 딜레이'는 제가 이런쪽의 작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곡이라 나름 애착이 있는 작업이고 또 시간을 거슬러 류한길씨의 리디미컬한 소리들과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liceon] 함께 공연을 진행하셨던 류한길 작가, 최수한 작가 오래 전부터 잘 아시던 분들이 만나셨습니다. 그들의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한 협주에서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류한길씨는 많은 공연에서 오는 내공이 느껴졌고 악기의 구성이나 공연의 짜임새 면에서 완성도 있고 섬세하다고  느꼈습니다. 최수환씨는 본인이 얘기한 것처럼 탐미적인 영상과 감성적인 접근, 역시 짜임새 있는 구성이 좋았고 추악미가 나올수 있을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Aliceon] 작가님의 앞으로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일단은 산적한 STEIM의 프로젝트들을 엔지니어로서 하나씩 해결해야 하구요. 내년에는 달파란(강기영)씨와 같이 LIG에서 공연을 올릴것 같습니다. 재밌는 공연으로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Aliceon] 위의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습니다. 권병준 작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의 출처는 권병준 홈페이지(http://byungjun.pe.k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