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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리스트 _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_book review

kunst11 2010. 12. 22. 15:50

 

기호학자이자 『장미의 이름으로』를 쓴 소설가로도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는 다시 한번 그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그 깊이에 감탄하게 되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에코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 문학과 예술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목록들과 열거의 예를 보여주면서 목록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문화사 전반에서 '목록'은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바로크 시대에, 그리고 특히 근대와 포스트모던 세계에 계속해서 등장한다. 결국 우리가 여러 다양한 이유로 목록의 무한성에 얽매여 있다는 징후이다. 원칙적으로 보면 목록은 여러 형태의 예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강박적인 리듬이 반복되는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볼레로」는 그 곡이 무한히 계속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립친스키 Rybcznski 같은 예술가가 그 곡에서 영화의 영감을 끌어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의 영화 「오케스트라」에서 특정 인물들은 어쩌면 끝이 없을 것 같은 계단을 올라간다. 형언불가의 토포스, 곧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수사법은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나온다. 예를 들어 『오디세이아』11권에 나오는, 오디세우스가 하데스에서 만난 죽은 사람들의 목록은 말 할 것도 없다.

우리는 고대 문학사에서 헤시오도스부터 핀다로스까지, 이어서 라틴 문학과 베르길리우스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수사법이 나타난 예술까지 거의 무한하게 계속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다는 두려움, 그것은 우리가 이름들의 무한함을 마주했을 때뿐 아니라 사물의 무한함을 마주했을 때에도 우리를 덮친다고 에코는 설명한다. 그래서 문학의 역사에는 강박적으로 사물을 모아 놓은 예들이 가득하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마녀들이 사용하는 불길한 재료들의 목록처럼, 때론 그것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마리노의 <아도니스>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꽃처럼, 때로 그것들은 황홀한 향기를 풍기기도 한다. 또한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묘사한 도시에서처럼, 그것들은 그저 냄새를 풍기거나 코를 찌르는 악취를 발산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 책에서 위에 설명한 사람이나 사물들을 일일이 말로 다 열거할 수 없는 것처럼, 장소를 말하고, 목록에서도 '실질적인' 또는 '실용적인' 목록과 '시적'목록의 차이 또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시적 목록이라 함은 어떤 예술 형태를 빌려서 그것을 표현했든지 간에 그 목록을 제시한 예술적 의도를 가리킨다. 그는 실용적인 목록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 나오는 레포렐로의 목록을 들고 있다. 돈 조반니는 수 많은 시골 여인네, 하녀, 도시의 숙녀, 백작부인, 남작부인, 후작부인 등 계층과 외모,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온갖 여인들을 유혹했는데, 하인 레포렐로는 주인의 그 편력을 정확한 장부로 만드는데, 그의 목록은 수학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적 목록의 필요성은 어떨까? 즉 우리가 통제하거나 명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호메로스의 함선 목록을 그 예로 든다. 반면에 박물관 카탈로그는 이미 지정된 장소에 있는 사물들을 가리키기 때문에 당연히 유한하다. 유한에서 이제 혼돈스러운 열거로 에코는 우리를 안내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들을 도입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혼돈스러운 열거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불안한 목록들을 예고하고, 에코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자면 '탐욕스러운 작가의 시선에 의해 유발되는 현기증 같은 그 시선은 일종의 언어적 폭식증을 통해 원래는 없었던 혼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에코는 예로 일관성 있는 과잉의 목록과 혼돈스러운 열거 두 가지를 생각할 때, 고대의 목록들과 비교해서 뭔가 다른 일이 벌어졌음을 우리 깨닫게 된다고 한다. 앞에서 호메로스가 목록에 의지했던 이유는 언어와 혀, 입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며, 형언할 수 없다는 표현 자체는 오랜 세월 동안 목록의 시학을 지배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혼돈의 목록은 형태를 붕괴시키는 하나의 방식이 되고, 미래주의, 큐비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신사실주의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진했던 것이 바로 형태의 붕괴였다.

에코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미의 목록을 제공하는 일은 매스 미디어를 탄생시킨 사회의 특징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언급하며 그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앞부분에서 했던 말을 떠올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이 책 속에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 문학과 예술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목록들과 열거의 예를 보여주면서 목록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목록의 미학이 수집물, 박물관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생각해 보고, 이와 함께 회화 속에 나타난 시각적 목록들도 보여준다. 에코가 문학, 예술사를 서술하는 데 목록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낸 건 절묘해 보인다. 목록이라는 말이 주는 한정적이면서도 무한히 열려 있는 양가적 의미야말로 종적인 시간과 횡적인 공간을 아우르면서 문화 예술사적인 새로운 시선의 접근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앨리스온 정세라


 

저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볼로냐대학교의 교수이다. 1932년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선회,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논문을 발간함으로써 문학비평 및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궁극의리스트문학과예술속의목록사:호메로스에서앤디워홀까지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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