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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벨의 문답장치問答裝置 7화_암호의 DNA가 독존으로서 몸을 분홍시키다_1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2. 7. 02:41


 문답장치問答裝置 7화_암호의 DNA가 독존으로서 몸을 분홍시키다_1부

  + 이번 문답장치는 화가 문범강과의 인터뷰입니다. 지난 여름(2010.06.10.-07.10.) 가회동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열렸던 개인전 [암호놀이]를 중심으로 엮여졌습니다. 이번 1부는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는 작가와 이메일을 통해 문범강의 회로도를 문답으로 추출하였습니다. 다음 2부에서는 메신징을 사용하여 근간에 워싱턴에서 열린 개인전 [Love Affair of the Empress : 황후애정행각기]에 관한 이야기와 작가세계의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대화가 기록됩니다.


1.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회화의 역사를 작가 나름의 입장에서 정의내리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버넷뉴먼Barnett Newman[각주:1]이 숭고라는 개념으로 회화를 다시금 돌아본 것처럼 말이죠.  문범강님의 그림이 이전의 회화/작업에 비추어 별개의 역사적 특성을 정의 내릴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 런지요.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깊은 사색을 통해 얻은 정신적 추출물을 표현한다고 볼 수있다. 매우 개인적인 이 추출물을 탁자위에 쏟아 놓는다면 그 속엔 생명체의 의식, 현상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암호, 과거 메모리의 탐색과 같은 내용물들이 드러날 것이다. 나의 작업은 이런 내용물들이 지닌 의미를 회화로서 또는 입체작품으로 표현하는 과정이고 결과물이다. 이런 단어들은 한 연결 고리 선상에 놓여져 있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의 이런 경향은 나를 형성시켜온 한국을 비롯한 동양 주변의 사상과 문화에 기인한다. 나 스스로 즐겨하는 것은 내면적인 고찰을 통해 길어 올린 정신적 추출물을 에로티시즘이나 감각적인 현상의 옷을 입혀 드러내 보인다는 점이다.


2. 기존에 나와 있는 기사를 보면 작가로 전향한 분명한 계기는 명확치 않더군요. 암호놀이에 적혀져 있듯 살아오신 궤적에서 작업을 하시게된 경과는 유추가능 하지만 단호히 작가의 노선을 선택하여 -전업에 대한 회의나 재고의 고려 없이 삶의 향방을 바꿔버린 이유가 무엇인지요.  단순히 운명이라기 보단 강한 의지가 동반된 확고한 어떤 방향타가 작동되지 않았을까 봅니다.

햇살이 옅어지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 목덜미가 조금 오싹해지는 찬 공기가 온 거리에 가득 들어 찬 가을. 나는 가슴을 붙들고 방황하고 있었다. 괜스리 서러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꼭이 무얼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작정을 내 삶 한 가운데 꽂아 두기엔 나는 너무 젊었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내 가슴 속을 가로 질러 바람이 휑하니 불어재키는데 그냥 그 바람따라 다니고 싶었었다. 그 바람을 따라가면 내 속에 있는 서러움이 조금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신문방송학을 공부한다고 다녔던 대학은 하나의 허영의 옷이었다. 나는 그 옷이나마 걸쳐 입고 있었기에 사회라는 고정관념이 버겁게 어깨을 누르고 있었지만 완전한 이단아로 몰려 퇴출되지 않고 간신히 버티고 다닐 수 있었다. 그 허영의 옷은 내가 재단하여 내 몸에 꼭 맞게 만들어 입은 옷이 아니었다. 때론 옷이 너무 컸고, 때론 숨이 막힐 지경으로 옷이 옥죄여 불편했다. 대학의 과목들도 나에게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신문방송학이 아닌 부전공인 국문학에서 약간의 편안함을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걸쳤던 옷을 벗어버릴 수 가 있었지만 방황은 벗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의 정체성은 무척 복잡다단했다. 나도 나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나이가 아직 젊었기 때문이라는 것 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근원적인 문제였다. 근본적으로 나라는 인간은 짜여진 구조 속에서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부적합한 DNA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내 피속을 돌고 있는 세포들이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기억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의 기억. 과거가 새겨진 정보. 나는 이 말을 앞으로 자주 사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객체를 파악하는데 이 말 보다 더 설득력을 지닌 말을 아직 발견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Mindful Time (detail), 2001. Steel and mixed media. 171x140x96cm

대학을 다녔던 4년 동안 3년 넘는 시간을 대학 밖에서 놀았다. 나의 몸의 어머니의 금반지를 전당포에 맡겼고 그 당시 꽤 값 나가는 카메라를 역시 전당 잡혔다. 덕분에 유곽을 자주 드나들 수 있었다. 마리화나를 무던히 땠다.본격적인 정부의 단속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이었으니 내가 누린 객기는 시대를 잘 만났다. 서강 언덕과 홍대 빈 강의실에 마른 풀 타는 냄새를 자욱히 남겼었다.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병에 든 감기약과 ‘분홍신’이라고 불렀던 알약을 함께 꼴깍 삼켜 몽롱과 환각사이를 넘나들었던 대학시절의 젊음은 단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를 그리 이끌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정체성를 찾고자 내가 나를 이리저리 몹쓸 곳으로 유인하고 방탕하게 만들고 아찔하게 만들었다. 그 때는 왜 그런 지 몰랐다. 영문 없이 나돌아 다녔고 그리도 서러웠다. 어느 젊은이가 내면의 소리에 끌려 입산하여 나뭇잎 속에서 선잠자고 가시 덤불 헤치며 들판을 나아가다 몇 년이 지난 후, 어느 야산에 개간해 놓은 고추밭에서 붉게 익어가는 고추를 본 순간 홀연 깨달음을 얻었다면, 나의 대학 시절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나의 몸은 분방했지만 내 영혼은 혼탁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혼탁한 내 영혼은 묘약을 허리춤에 감추고 있었다. 지하 청정수를 차고 다니면서 조용한 밤 시간에 한 바가지씩 정수리에 내리 부었다. 씻어내리는 물소리가 혼자 조아린다. 너는 혼탁하지만 자존이 영특하다. 너는 여럿이서 노는 곳에서는 어색하지만 너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무한한 자유를 맛 보리라. 나는 그 독백을 몰래 엿들으면서 벼랑에 떨어지려는 내 영혼을 붙들 수 있었다. 관심이 없는 대학 학과를 자연이 소홀히 하면서 나는 다른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커피샾이나 모텔방에서 여자친구를 그렸다. 어디서 그림 공부를 한 적도 없었지만 그림은 늘 만만했다. 나의 자존을 나의 드로우잉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미국으로 달아났다. 나를 황야로 몰아세우던 바람을 따라서 태평양을 건넜다. 거기서 아무도 몰래 그림을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나에게 그림은 바람이다. 바람따라 왔다가 바람 속에 잠시 머물고 바람따라 다시 갈 것이다.


3. 종교 혹은 어떤 철학이 작업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부다피아[각주:2] 사이트는 작업세계와 관계가 있는 것인지요.  작가님의 그림은 서구적인 터치로서 -제가 보기에는- 동양의 질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란 생각도 있고 어쩌면 속세의 툴로서 내세의 도를 닦는 느낌도 있다는.  방대한 종교 철학적 관점이 혼재된 표현인지 혹은 암호놀이와 같은 이미지를 구상하는 독창적인 메카니즘을 가지고 계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부다피아 사이트가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충실할 뿐이다.
‘나’라고 할 것이 없기에 예술이랄 것도 없다. 끊임없이 나와 대상을 탐구하고 변형시키는 작업이 바로 그의 작품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범강의 작품에는 어떤 종교적인 색체가 깃들어 있는 것인가.
나의 작품엔 종교가 없다.
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다만 선의 가르침이 그가 늘 탐구해온 깊은 내면의 자아에 대한 근원적 의문과 일맥상통하기에 문범강은 선을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8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술학부 학생으로 뒤늦게 미술공부를 시작한 문범강. 도미 후 8년만에 죠지타운대 미술과 교수로 발탁되어 미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뉴욕화단에서 5차례의 초대개인전, 뉴욕타임즈 및 아트 인 아메리카 평, CNN과의 단독 인터뷰, KBS 수요기획의 문범강의 예술세계를 다룬 1시간 특집, 조영남이 만난사람 프로에 초대 등 그의 활약은 괄목만하다. 그러나 문범강은 말한다.
지나간 일들은 의미가 없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나는 내 속에 있는 ‘그놈’과 끊임없이 사랑하며 눈물지을 것이다.
더불어 다른 뭇 생명들의 눈물을 내 작품 속에 담을 것이다.
바람이 지고 꽃잎이 날린다.
불꽃인가 눈물방울인가.

종교? 잘못 흡입하면 마약이다.
더블 샷 에스프레쏘를 흔히 도삐오(Doppio)라고 부르는 데, 도삐오 찰랑한 작은 머그잔에 촛불이 꽂혀 타고 있다. 촛불이 바람에 꺼질 것인가 아니면 에스프레쏘 커피가 위로 치솟아 우산을 만들어 촛불을 바람으로 부터 막아 줄 것인가. 촛불이 조만간 꺼질 것인지 보호막이 생겨 오랫 동안 탈 것인지는 나의 과거 업적이다. 나의 과거 업적에 지금의 나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 촛불은 생명. 언젠가는 꺼지고야마는 밝음의 제한성을 지니고 있다. 촛불은 붙는 순간 반드시 꺼지고야 마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생명이 그러하듯. 내 생명이 촛불이고 종교다. 내 생명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반드시 죽는다.
종교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믿는 허망이 바로 종교다. 신이 있다면 또는 불성이 있다면 내 몸이 사라질 때 같이 멸절한다.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스스로 안고 내 속으로 내침하여 침잠하는 현상이 나의 죽음이다. 나의 마음의 에너지가 다시 몸을 만나 밖으로 나오는 현상이 나의 부활일 것이다. 멸절과 부활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과정이 인간생명 역사다. 그 되풀이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 때 해탈이다. 한 곳에 소낙비가 쏟아진다면 다른 어디선가엔 물기가 다 증발해 버린 마른 땅이 있을 것이다. 물이 올라가고 다시 비 되어 내려오는 순환과정이 종교라는 이름보다 더 진실한 종교다.

나의 마음의 에너지를 이끌어 주는 파워를 신이라는 개념으로 등치 등치(等置) 시킬 수는 없다. 예술가로서 나의 지고가 허용할 수 없다. 내 골수 속을 흐르는 누런 진액이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라는 이름의 어떤 믿음보다는 내 마음의 빛에 배팅을 올인한다.

방황이 절정에 다달았던 대학 시절 내 몸에 1억 2천의 잡신이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잡신이 우글거리니 산란해서 살 수가 없었다. 나의 방황이 이들 때문에 시작되었나. 매일 신을 하나씩 죽여 나가기 시작하려는 데 신 하나를 죽이면 내 몸 속의 세포 50만개가 덩달아 죽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의 신이 50만개의 세포를 장악하여 나와 공생하고 있었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방법은 딱 한 가지. 이들을 설득하여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밖엔 도리가 없었다. 신들도 고정관념과 살아 온 착에 매여 있어서 설득이 쉽지 않았다. 내가 차지한 집인 데 왜 나를 꼬여 밖으로 나오라 하느냐. 저항이 완강했다. 신 하나를 설득하여 순치시키는 데 하루가 걸렸다.
어느 날 계산을 해 보았다. 앞으로 내가 이 생에 살아 있을 날자를 대충 헤아려 보았고 그 숫자 만큼 내 속의 신들을 순화교육시킨다 해도 내가 죽을 때까지 다 내 편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명백한 계산. 이렇게 해서는 끝장을 볼 수가 없겠구나.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 비쉬누 어른의 꾸지람을 감수하고 달빛 없는 어느 날 밤 잡신들을 몽땅 다 은하계로 뿌려버렸다. 그 날 이후 은하계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생겨났고 나는 무신론자로 지탄을 받게 되었다.

어떤 철학이 내 작품에 영향을 주었느냐고?
과거가 나를 이 곳으로 데려왔다. 어제도 과거이고 일 분전도 과거이지만 나를 데리고 온 과거는 그 것보다는 훨씬 더 먼 시간 저편의 메모리다. 나의 과거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나의 현재는 선택의 자유를 시시각각으로 제공한다. 선택의 결정은 묘하게도 과거의 메모리가 배후 음모자로 작용하고 있다.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상당한 힘을 발휘하여 현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Watch/Self, 1999. Acrylic on canvas. 175x231cm

나는 나의 과거 메모리를 탐색하여 조우하려 한다. 그 작업이 그리 수월하진 않지만 매력이 있는 일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과거와의 만남을 이끌어 내는 순간 빛을 발한다. 과거의 메모리는 암호와 같다. 언제나 가려져 있고 좀체 정체를 드러내질 않는다. 약간씩 그 꼬리를 드러내기도 하는 데, 주로 꿈 속이거나 깊는 명상 속에서 드러난다. 드러난 꼬리를 잡고 몸체를 밝히려 하는 과정이 나의 그림 작업 과정이다. 결과물로 나타난 ‘작품’이란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생경하게 보이고 엽기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에게 철학이란 것이 있다면 몸이 자유분방하던 대학 시절, 나를 몰아쳤던 바람이 아직도 그 마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 그 탐색에 대한 미련, 그것일 것이다.




4. 전술하신 메모리의 탐색이란 것이 단순히 기억을 바탕으로한 재료의 나열은 아닐텐 데 좀 더 명확히 했으면 합니다.  그런 몸성에 저장된 과거의 공감각들을 그림과 글의 발화를 통해서만 나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런 방식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지요.

과거 메모리의 탐색은 이 생에서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되돌아보는 기억의 탐색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만을 국한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생명들이 지니고 있는 DNA에 관한 문제다. 생명 속에 있는 DNA는 현생의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정보의 보관소다. 현생의 현상은 DNA에 내장된 메모리와 환경과의 부단 없는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는 가시적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DNA 속에 들어 있는 메모리는 현생에서 경험하거나 학습한 결과물도 포함되지만 대부분 태어나기 이전에 경험했던 메모리들을 총괄한 집단 메모리다. 여기서 자칫 종교적인 해석이 스며들면 나의 사색의 방향이 빗나갈 수 있기에 현상의 포착에만 집중하자. 내가 현생에서 화가로서 이런 작업을 추구하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를 많은 부분 내 속에 내재된 DNA의 정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암호놀이’에서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나의 모든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 나를 데려 온 푸른 에너지가 쉽사리 간파할 수 없는 비밀을 장난스럽게 들쳐 내 보인 은밀한 내막. 단지, 명민한 내 눈과 어김없는 내 손을 빌렸을 뿐. (문범강 저, 암호놀이, p.16, 2010년, 갤러리 스케이프 발간)
내가 나의 작업 과정과 결과에 대해 무척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듯한 이 발언은 진실에 대한 나의 겸허함과 오만이 함께 들어 있다. 나의 모든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 라는 이 말은 내가 나 자신에게 매우 엄중하고 공정하게 대하는 태도다. 다시 말해, 나의 그림은 내가 그렸지만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재주 있는 나의 손을 빌어 나를 여기까지 몰고 온 내 속의 근원 에너지가 그렸다라고 할 수 있다. 자만이 가득찼던 좀 더 팔팔했던 나이엔 나는 탈랜트 뛰어난 내가 내 그림을 그리는 줄 알았었다. 훗날 나는 그냥 대신 열심히 일 봐주는 심부름센타 직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놈이 주모자라는 비밀을 눈치채게 되었다. 그 놈, 나의 근원 에너지!
나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비교적 탁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 이 능력이란 것도 결국은 DNA에 귀속될 수 있는 범주다. 일란성 쌍둥이가 같은 조건 속에서 어떤 기술이나 학술을 습득한다 하더라도 습득하는 인지도나 습득한 기술의 구사가 현저히 다를 수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의 제시가 DNA다. 문제는 DNA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고 과거의 메모리를 찾을 순 없다는 점이다. 내가 DNA를 들고 나온 이유는 이 단어가 우리에게 친숙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종교적 오해 (카르마 등등)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DNA가 밝힐 수 있는 정보의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인의 행동이나 성향이 일반인과 뚜렷한 차이를 보일 때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특정인의 DNA와 다른 일반인의 DNA에서 그 상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정도인 데, 그 상이점이라는 것도 고작 염기체의 서열 차이와 형태의 상이함 정도다. 내가 얘기하는 과거의 메모리 속에는 DNA는 아주 작은 부분이다. 나머지 많은 부분은, 경험했지만 지금은 망각해 버린 과거의 에너지들이 차지하고 있다. 과거의 메모리는 ‘나’ 또는 ‘당신’이라는 한 생명을 존재 가능하게 만든 거대한 정신적 구조물이다. 내가 얼마큼 깊이 나의 과거의 메모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 또한 들어갈 수 있는 만큼 들어가 끄집어 내 온 정보를 어떻게 현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지가 이 세상에서 작가로서 내가 해야하는 업무다. 아침 9시 부터 오후 5시까지 직장에서 일하는 직장인처럼 나도 그만한 작업량을 매일 할 수 있다면 내가 부여받은 업무는 상당한 업적을 쌓을 것이다.


5. 그리고 몸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표현의 측위에서 다양한 생물종의 육체를, 더욱 정확하게 짚자면 그들의 짓물과 단백질이 담겨진 그 덩어리들을 중요한
 재료로서 사용하고 계시다 봅니다.  언론에서 엽기란 언급이 잦은 이유가 여기있지 않을까 봅니다만, 몸에 대한 작가님의 색다른 관점/견해가 있다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육체에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엽기란 수식이 따르는다른 작가들인 한스 벨머Hans Bellmer[각주:3]나 위트킨Joel-Peter Witkin[각주:4]과 같은 작가들은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또는 문범강님의 작업과 같이 논의될 수 있는 예술가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몸’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과제인 동시에 명제이며 생명체의 숨이 붙어 있는 한 고귀한 실체다. 각 개인이 지탱하고 있는 현상은 하늘에서 순간 뚝 떨어진 절단성 결과가 아니다. 현상은 과거의 시간성을 지니고 있고 메모리의 에너지로 충만하다. 인간의 현상, 그 것이 신체적 결함이나 불행한 운명, 또는 그 반대의 행복이나 건강함의 현상을 단순한 이 순간의 현상으로만 인정한다면 비통하여 울 수 도 있고 행복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상은 냉정하다. 현상은 매몰차다. 현상은 공정하다. 현상은 주고 받음에 한 푼 에누리가 없다. 이 비밀 아닌 비밀을 알아차린다면 비운하다고 울 필요가 없고 행운에 희희낙낙만 하고 있을 수 없다. 현상이 뒤짚어 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 시간을 한 생에 국한시키는가 아니면 좀 더 우주적 시간단위로 넉넉히 잡느냐에 달렸다. 몸의 현상은 유동적이고 유기적이다. 과거의 메모리의 영향을 받고 있는 동시에 현재의 환경과 부단 없이 상호작용한다. 절충하고 진화한다. 내가 나의 작품에 몸을 내세우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진화하는 몸에 대한 나의 애정 때문이다. 진화라는 단어는 정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진화의 본체는 의식이고 몸은 시각적 실체로 대변된다. 다시말해, 몸의 진화는 의식의 진화를 전제로 한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몸과 의식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며 역동적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몸에 대한 나의 관심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의식에 대한 관심과 상통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몸을 그로테스크한 유희적 측면으로, 혹은 문화의 한 양상으로 표현하는 다른 작가들의 접근 방법과 나의 접근 방법은 다른 궤도를 택하고 있다.

Man-Dog Totem, 2000. Acrylic on paper. 28x20cm

엽기라는 말. 책임감이 부족한 표현이다. 작가는 깊이 있는 성찰을 하는 사색가인 동시에 일반을 넘어서는 감성의 표현자다. 특히나 현대의 작가에겐 이러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작가가 지닌 사색의 깊이와 감성의 특수성을 가늠할 수 없는 평론가는 책임감이 부족한 표현을 하기 쉽다. 몸! 이 얼마나 리얼한가? 인간 세상에서 이 보다 더 리얼한 이슈가 있는가? 인간이 지닌 의식, 그리고 인간이 지닌 과거의 메모리를 리얼함의 덩어리인 몸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나의 의도는 그 구체화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나 스스로 덫을 친다. 에로티시즘이라는 달콤한 덫을. 누드. 여성의 누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에로티시즘은 문학적 표현이고 섹스가 직설적이고 직감적이다. 반드시 남녀간의 섹슈얼 인터코스로서의 섹스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섹슈알리티가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몸은 살아 있는 한 섹슈알리티의 속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정당하다. 솔직하다. 나는 정당하고 솔직한 섹슈알리티를 빌어서 그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의식의 얘기를 풀어가려고 한다. 우리가 지닌 슬픔도 섹슈알리티로 나타내며 정신적인 해탈도 섹슈알리티로 드러낼 때 예술의 마력이 나타난다. 마성(魔性)은 예술의 필연적 요소라 본다.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들어 본 적은 없다.






An Unexpected Visit, 2007. Graphite, pen and watercolor on paper, 20.8x13.2cm

6. 작업구조는 정말 독특하다 여깁니다.  강렬한 이미지로 자극적인 표현을 구사 하시면서도, 그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느슨한 서사적 구성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것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암호놀이]가 아닐런지, 어쩌면 2번에서 여쭤본 것과 연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제 판단에는 전시나 작품제목에서 그런 구조가 드러나 보입니다만, 이미지와 서사/글의 관계를 어떻게 상정하고 계신지 궁금하며, 어쩌면 그런 연유로 한글이란 언어가 작가에게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행운으로 느낀다. 한국 바깥에서 살고 있는 나는 온갖 지탄의 대상이 되고 부끄러움의 표적이 되는 한국인의 의식을 직면할 때에도 나는 한국인임을 부정할 수 없고 피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생에서 내가 가장 감사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무궁한 경험과 다양한 문화적인 체험, 무속과 전통,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격동하던 의식의 소용돌이, 한자와 한글, 독재와 민주화, 남북의 대치 상황. 이 모든 무형, 유형의 재산을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결코 취섭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시각 작품은 함축적이다. 또한 표현의 제한성을 운명처럼 안고 있다. 내가 드로우잉이나 에스키스에 한글로, 또는 영문을 섞어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속에서 나의 잠재의식을 찾는다. 나의 심층 구조를 글로써 되짚어 본다. 즉흥곡과 유사한 성격의 이런 글들은 사시미와 같다. 사색의 심해에서 잡아 올린 신선도 뛰어난 횟감. 그림과 같이 어우러져 현대판 문인화로 탄생한다.




7. 오리엔탈리즘[각주:5]에 대한 견해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故박이소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영합하는 작가들의 위험성과 그런 태도를 높이 칭찬하는 외국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언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춘자시리즈에서 보여지는외국 여성에 대한 한국식 네이밍이 어쩌면, 전술한 "영합과 경계"의 유쾌한 역설이 아닐까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태도에 가해지는 외부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명징한 선긋기는 필요할 텐테, 작가님께선 이에 대한 어떤 생각이 있으신지요.

AE 008 Soo-ja, 2007. Acrylic on canvas. 51x41cm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견해는 이제는 퇴색되었다. 더 이상 그 개념은 설 자리를 잃었고 지나간 하나의 편견에 머물지 않는다고 본다. 중국이 미국을 넘보고 있는 이 시점이다. 중국의 의식은 결코 미국의 견고하면서도 유동적인 의식을 잠식시키지는 못 할 것이지만 힘의 균형은 어느 정도 이루워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에 성큼 들어와 있는 이 시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예술의 어느 분야에서도 스며들 수 없는 지나간 과거의 편린에 불과하다. 내가 만든 ‘춘자시리즈’ (American Enlightenment Series) 10점은 특수성을 띄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나 자신이 누리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신, 문화적 특혜를 서구여성을 모델로 삼아 특정 지역인이 아닌 하나의 세계인으로 표현하고자 한 작가가 지닌 특수성이다. ‘해탈’(Enlightenment)이라는 부제를 달고, 성적매력을 표현하는 여성의 머리칼을 밀어 오히려 더 성적매력을 증가시키는 극적 효과를 볼 수도 있는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기도 하다. ‘춘자시리즈’는 서구여성을 불러들여 동양의 의식으로 올가미를 씌었지만 ‘황후애정행각기’(Love Affair of the Empress)는 중국황후를 내세워 동서양의 섹슈알리티와 휴머니즘을 이슈화시켜 보았다. 어떤 특정 지역을 벗어나고 있는 나의 관심은 점차 인간 보편성을 향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8. 매우 강한 리비도와 에고가 공존하는 이미지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 영혼의 눈을 끄집어내어 스스로의 욕망을 타자화시켜 외부에서 바라보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작가님이 보시는 자기 자신은 어떻게 육화된 객체로 바라보시는지요.

질문자의 관찰이 사뭇 예리하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나’라는 객체는 아주 복잡한 감성을 지닌 생명체다. 어떤 경로를 통해 지금의 인간 모습으로 나타나 에고를 주저하지 않고 뿜고 있는지 명상의 재료감이다. 지금에 와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오늘의 나는 저절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나 스스로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길 선택했다는 확철함이 심장을 향해 꽂히고 있다. 내가 선택해서 나의 몸의 아버지의 정자 속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자궁에 안착했다. 잘 생기고 바람끼 다분하며 능력 출중한 아버지를 선택했고 두뇌는 명석하지만 초등학교 학벌의 키 작은 어머니를 인정했다. 리비도는 아버지에게서 빌려왔고 명민한 감성은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았다. 에고와 서러움은 애초에 내가 가지고 온 보따리 속에 들어 있었다.
시각 예술가들에겐 리비도가 강한 특성이 있다. 불타는 리비도가 탁월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한다. 나의 작업에 나타나는 에로티시즘은 단순한 리비도의 표상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달콤한 덫이고 유혹이며 매력있는 포장이다. 그 포장지를 벗겨내고 박스 속에 든 내용물을 감지할 수 만 있다면 에로티시즘의 덫은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본다.

Fiancé(The Myth of Blue Wolf III), 2010. Acrylic on Museum board. 23X30.6 cm



9. 특히나 근작에서의 사실적인 묘사는 형용이 불가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스캔하듯이 표현된 엄청나게 디테일한 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진보다 훨씬 사실적인 질감의 감응을 저는 받았습니다.  이미지가 가지는 사실성을 어떻게 콘트롤하고 계시는지요.  더불어 이런 힘있는 묘사는 중광스님의 이미지도 떠오르는 데, 여기에 대한 견해도 여쭤봅니다.

정확히 파악했다고 본다. 나는 포토리얼리즘엔 관심이 없다. 내가 지닌 에너지의 제 맛을 내기 위해 나는 어떤 대상을 표현할 때 내가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사실주의를 선호한다. 또한 서구 회화의 전통적인 특성인 붓의 텃치라든가 물감의 두께같은 질감을 존중한다. 여기에 하나 더 중요한 요소인 색채의 미학에 늘 예민하다. 질감은 사실성의 진실을 알리고 색채는 사실성의 극렬한 칸트라스트 및 무게감을 동반한다. 좀 더 편하게 얘기한다면 질감은 시각의 근접성을 말하는 것이고 색채는 작가의 임의적 선택이다. 시각의 근접성은 과학이고 작가의 임의 선택은 창작성이다. 과학과 창작성이 동시에 공존해야 예술이 가능하다. “암호놀이”(p. 25)에 이런표현이 있다. “…그런 때 사물에 대한 경험은 정 반대로 확 다가 올 수가 있다. 이를테면 활활 타는 불꽃의 색이 통상의 붉은 색이 아니라 연녹색으로 보인다…” 색의 선택은 작가에겐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색의 조합이 아름다울 수도 있고 어글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나의 사실성 표현은 질감과 더불어 색채의 콘트롤이 핵심 요소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한 언급은 가능한 피하는 편이다. 더군다나 중광의 이미지의 영역은 동양화 내지는 선화쪽이어서 서양화와의 비교는 맞지 않다. 재료의 선택이 다르고 표현의 방법이 다르다. 5분 내지는 10분 안에 완성될 수 있는 작품과 수 개월이 지나야 완성되는 작품은 완전히 다른 표현 방법으로 구분되어야 하기에 비교 대상이 되기엔 영역이 다르다. 물론 각각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 기, 에너지가 비슷한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냉정하게 접근하면 결코 비슷함은 있을 수 없다. 다를 뿐이다. 또한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물구나무를 아무리 현란하게 잘 서 본다 한들 두 다리로 지축을 버티고 서 있는 것과는 포스(force)가 같을 수 없다.


10. 현실에 존재하는 작가로서 누구나 일정의 닮음은 생길 터이고 그로인해 작가로서 윤리적으로 경계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닮음이 생긴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나는 이 문제를 “암호놀이” (p.11) 에서 이미 설파했다. …예술 역시 그러하다. 유아독존하는 예술이 있는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내가 [내 작품이] 독존이라고 아무리 내세워도 내 작품에 누구의 혈흔이 묻어 있지 않다고 나는 장담할 수가 없다…

The Red Foot, 2008. Acrylic on linen. 116.8x91cm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예술 작품은 독존 (깊은 사색과 첨예한 직관력을 바탕으로 이룩된 독특한 아이디어와 표현방법으로 창작된 예술은 작가의 자존 차원을 상승시킨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독존은 때론 광기와 괴팍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침범하기 어려운 작품세계의 탁월성으로 대변된다)이 뛰어난다. 나의 경우 나의 독존을 내 작품 속에 넣기 위해 나 속으로 들어간다. 내 속에 있는 과거의 메모리를 탐구하고, 내 속에 있는 깊은 내면의 우물에 두레박을 내린다. 거기서 길어 올린 물로 밥 짓고 빨래한다. 그것이 내가 하는 나의 작업이기에 나의 경우엔 굳이 윤리적 경계가 필요치 않다. “붉은 발” (2008, 린넨위의 아트릴릭, 116.8X91cm)은 내가 지금까지 창작해 놓은 모든 유형의 시각 예술 작품 중에서 단연 최고의 독존을 품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암호놀이”에서 “붉은 발”에 대해 자평을 어느 정도 해 놓았지만 이 작품은 볼수록 미스테리가 깊어진다. 여기엔 타자의 혈흔이 없다. 내면의 우물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 퍼 올린 물을 드리 부었기에 물질세계에 익숙해 있는 시각으로는 그 미스테리를 쉽게 풀 수가 없으리라.




이미지출처 : 구글이미지 검색 및 작가홈페이지(http://www.bgmuhn.net)

+ 자벨의 문답장치問答裝置 7화는 2부에 계속됩니다.

  1. Barnett Newman : 미국의 추상화가. 미니멀한 색면과 선을 주로 사용했으며 수직선을 이용하여 숭고의 개념을 회화에 도입했다. [본문으로]
  2. http://buddhapia.com : 불교관련정보 포털사이트 [본문으로]
  3. Hans Bellmer : 독일 출신의 초현실주의 작가. 인간의 몸을 인형으로 치환하여 파편화된 이미지를 구사한다. [본문으로]
  4. Joel-Peter Witkin : 기형인들의 모습을 잔혹한 연출로 구성한 미국의 사진가. 역시 인간의 몸을 화두로 삼았다. [본문으로]
  5. Orientalism : 서양에 대해 과학적이고 합리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반면 동양의 경우 비과학 비합리적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을 말한다. 서구 중심적이고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생성되는 이 편견은 제국주의적 논리를 표방하는 대표적 예로 논의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