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CoverStory_TAG 9. 한국의 미디어아트 바라보기 _2010년 비엔날레-페스티벌을 중심으로

yoo8965 2011. 2. 28. 17:05


0.

아마도. 백남준 작가로부터 시작된 미디어아트의 줄기를 예전부터 주목했던 분들이라면, 2000년대를 훌쩍 넘어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대 예술(미술)에서 변화된 미디어아트의 위치(지위)를 궁금해 하시리라. 과거 미디어아트는 아방가르드 들이 즐겨 추구했던 형식 실험 이상의 것으로는 인정 받지 못하였고, 최근 다양한 예술 전시에서 파급력있게 다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인 유통구조를 만들지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쯤되면 다양한 각도에서 미디어아트가 어떻게 조명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특히 첨단의 IT 기술을 보유한, 그리고 백남준이라는 영향력있는 아티스트를 배출했던 한국 미디어아트의 상황은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앨리스온에서는 지난 2010년을 돌아보며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4개의 국제 비엔날레/페스티벌(광주-부산-서울-인천)을 통해 나타난 (한국의) 미디어아트의 상황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다만 아래 전개되는 각각의 리포트가 비엔날레/페스티벌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리뷰는 아님을 미리 공지드리는 바이다.

현대 예술에서 미디어아트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동시대의 예술로서 미디어아트는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한국에서 2010년 가을을 보낸 분들이라면 다양하게 펼쳐진 국제 규모의 전시들 속에서 아마도 이러한 질문들에 도달했을지 모른다. 물론, 광주나 부산 비엔날레의 경우 미디어아트에 대한 활용 관점으로 보기에는 행사의 성격 자체가 다를지 모르나, 2010년도에 진행되었던 두 비엔날레는 주제나 형식면에서 미디어아트에 관한 의존도가 높은 행사였음을 상기해본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사용한 나머지 두 개의 아트 페스티벌 (미디어시티 서울-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과 동일한 수준에서, 그러나 다른 관점으로 비교-분석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다.


처음 살펴볼 행사는 1995년 한국에서는 처음 개최된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이다. 2010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는 해로서 광주 비엔날레는 그 8회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고은 시인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되었을 때부터 쓰기 시작한 연작시편의 제목인 '만인보(萬人譜, Maninbo/10000 LIVES)'를 그 주제로 선정하여 다양한 인간의 삶 속에서 광주 비엔날레의 정체성을 표출시키려 한 듯 하다. 예술 총감독인 'Massimiliano Gioni'는 행사 이전부터 광주 및 아시아 문화-예술에 관한 관심을 피력해왔다. 물론, 이러한 관심과 의지 표명은 외국인 총감독이 국내 행사를 맡았을때마다 천명되었던 것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2006년도의 제 6회 광주비엔날레(열풍변주곡)과 어떠한 차별점을 지니고 아시아 문화예술을 조명할 것인지, 또한 '만인보'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어떻게 현대예술의 장면과 접목시킬 것인지 걱정과 기대가 섞인 채 비엔날레가 시작되었다. 


1. 광주비엔날레 2010 / 만인보
 

이미지에 투영된 인간  
l   글. 선윤아 (앨리스온 에디터)

"산다는 것은 곧 사진 찍히는 것이다."라는 수잔 손탁의 정의는 이전보다도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말일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인터넷만 떠올려봐도 이를 수긍할 수 있다. 혹은 이제는 유행도 지나버린 싸이월드 미니홈피, 혹은 페이스북, 혹은 개인 휴대폰 안의 사진첩을 떠올려보면 어떠한가.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을 증거로 남기고, 순간에 대한 기억을 이미지로 붙잡아 놓으려 한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본능적으로 이미지의 대상인 실체와 이미지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미지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불멸성'의 조각이기 때문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비약적으로 사진이라는 매체가 주요하게 활용된 비엔날레였다. 그러나 역시나 광주비엔날레에 있어 미디어는 자료를 담는 '틀'로서 말 그대로 '매개하는 무엇'으로 표출되었을 지언정, 그 자체로 주제에 근접하는 면면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부분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광주비엔날레는 현대 예술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우선적 목표이며, 특히나 이번 비엔날레이 경우 기록보관소의 기능을 수행하려 했다는 점은 행사 전부터 피력되었던 사실이다. 다만, 자료를 모으는 행위 - 또한 그것을 해석하는 행위가 예술의 한 요소가 될 수 있고, 그러한 경로에서 미디어가 전유된다는 사실만은 짚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살펴볼 행사는 역시나 광주 비엔날레와 여러 부분에서 비교되는 행사인 '부산비엔날레'이다. 부산의 경우, 앞서 아시아의 비엔날레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광주와의 선명한 차별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러 각도에서 그간의 부산의 시도와 노력 그리고 차별 지점들이 발견될 수 있을테지만, 이번 커버스토리에서 주목하는 '매체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광주와는 다른 자세와 입장을 보여주었다.


2. 부산비엔날레 2010 / 진화속의 삶 
 

진화속의 삶을 담는 미디어라는 그릇   l   글. 류임상 (앨리스온 아트디렉터)

30평 남짓 되는 검은 공간을 빛 조각들이 가득 채운다. 중앙의 기괴한(?) 유아 형상은 웃는듯 우는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인류의 시작처럼, 어딘가 낯선 곳에 떨어진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한다. 그것은 생존의 본능을 넘어 ‘편리한것’ ‘쉬운것’을 거쳐 ‘즐기는것’으로 연착한다. 인류의 진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 되어왔다. 인류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원인(猿人)이 직립을 시도하고, 도구를 취하여 세상을 정복해 나가던 고대에 비해서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진폭이 지극히 미비해 보일지 몰라도, 인류는 지금 이시간에도 끊임없이 부단하게 진화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기술로 인해 우리의 감각이 확장되며 시 공간이 축소되어 가거나 확장 되어가는 요즘. 더이상 우리의 정신(혹은 지성)은 신체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네트워크를 따라 흐르며 더 큰 의식을 만드는 현대 인류의 진화는 과거의 물리적 진화에 비해 그 진폭이 깊고 넓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은 한 호흡만 늦춰도 따라갈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어 간다. 어쩌면 수천년이 지난 후의 후대들은 선사 그 어느 시기 보다도 지금의 우리를 가장 치열한 진화속의 삶(Living in Evolution) 을 살아간 세대라고 부를지 모를일이다. 앞서 인용했던(부산 비엔날레에 전시 되기도 했었던), 코노이케 토모코의 <지구아기> 울음은 그래서 더욱 진폭이 크다. 더 멀리 날아가는 빛의 잔향이 진화를 향한 인류의 울부짖음을 대신 하는 듯 하다.


2010년 부산 비엔날레의 주제는 '진화속의 삶'이다. '진화'라는 테제가 어쩌면 유행을 거듭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제시되고 회자되는 단어라는 점에서 부산 비엔날레는 좀 더 광범위한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려 한 듯 하다. 또한 매체적 관점에서 보자면, '진화(evolution)'라는 테마는 자연스럽게 미디어를 통해 표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반가운 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쉬운 접근이 왠지 불안하다. 그 이면으로 나타날 수 있는 주제의 광범위함과 모호함이 드러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진화-미디어'는 너무나 많이 사용된 짝패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광고 속에서도 '진화'라는 개념을 가시화하기 위해 항상 뉴미디어를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일본인 총감독 '아주마야 타카시'는 이러한 점들을 우려했던 것인지, 이번 비엔날레가 표방하는 '진화'의 개념을 '인류의 지적 진화'로 제한시켰다. 당연한 제한이자 전제이다. 최소한의 이러한 '틀'이 제시되지 않는 '진화'라는 개념은 너무 모호할 수 있다. 더더군다나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등장시킨 행사들에 주목해보려고 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광주와 부산 - 두 개의 비엔날레에서의 미디어의 역할은 크게 보자면 결국 '주제를 표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예술에 있어 미디어-매체의 역할은 그저 단순하게 '매개하는 그 무엇'을 넘어선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에서 미디어아트'를 주요하게 다루는 국내외 행사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한국의 대표적 미디어아트 행사인 '미디어시티, 서울 (2008년까지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지만,)을 통해 현시대 미디어아트의 현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3. 미디어시티 서울 2010 / 신뢰(Trust) 
 

미디어 아트, 모더니즘적 접근   l   글. 허대찬 (앨리스온 에디터)

"미디어 시티 서울 2010은 <신뢰Trust>를 통해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이념을 시사하고자 하지 않으며, 미디어의 기술적 이고 학구적인 이론을 제시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보다 우리는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의미를 좀더 인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자 하며, 좀더 개인적인 시각에서 현대사회의 트라우마를 공유하고자 한다." -전시서문 중-

올해의 미디어시티 서울은 그 여느회차의 행사와도 달랐다. 지금까지 미디어시티는 당대의 미디어 아트의 모습들, 기술 매체와 기술환경을 기반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 아트의 모습을 '미디어 아트'라는 이름 아래 보여주었다면 올해는 다시 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미디어'란 무엇인가. 2000년, 제 1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의 송미숙 총감독이 언급했듯 본 비엔날레에서의 미디어아트는 새로운 테 크놀로지를 방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산업과 연계된 새로운 예술의 영역이었다. 이번 2010년의 주최측은 이후 5회 에 이르는 행사 동안 긴장감 없는 전시 주제, '미디어 아트'라는 형식적 분류 안에서의 선택과 집중이 결과적으로 안일한 기획으로 진행되었다는 지점을 문제제기하고 행사의 제목부터 새롭게 접근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사용되던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라는 명칭 대신 '미디어 시티 서울'을 사용했다. 이는 미디어, 도시, 서울을 동등하게 배치하고 세 개념과의 관계를 다시금 고찰하려는 의도이다. 지금까지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는 도시 혹은 서울 이라는 키워 드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기획진은 이를 묶을 수 있는 주제로 "신뢰(Trust)"를 들고 왔다. 미디어란 무엇이며 미디어에 있어서 신뢰란 무엇인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디어시티 서울 2010'은 우리가 최근 기대한 '미디어아트'에 대한 예측을 전복시켰다. '비엔날레'라는 형식적 요소를 제거하고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닌 감성에 기댄 초기명을 복원시킨 이번 행사는 어떠한 측면에서는 '미디어아트'에 관한 대중들의 근본적 자세 교정을 요구하는 듯 하였다. 깊이가 없다고 비판받던 미디어아트가 현 시점에서 예술의 장르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다만, '신뢰'라는 어쩌면 진부한 미디어에 따라붙는 주제어가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되었을지 의문이다. 주제를 통해 미디어가 지닌 '신뢰'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최근 젊은 세대들이 사용하는 뉴 미디어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TV나 신문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제기된 신뢰 문제를 현재의 시점에서도 과거와 동일한 미디어에서 끄집어낼 수 밖에 없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보다 새로운 미디어에 집중했던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은 어떠할까?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은 2010년 그 2회째를 맞이하는 행사이다. 2009년 '인천세계도시축전'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총감독 : 김형기) 행사에 비해, '아트센터 나비'라는 미디어아트 전문 센터(총 기획 : 노소영)가 기획/진행을 맡은 이번 행사는 어떠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하였을까?


4.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 2010 / Mobile Vision : Unbounded Aesthetics
 


정렬되지 못한 파편들의 잔상   l   글. 이은아 (앨리스온 에디터)

인천미디어페스티벌2010(이하 인다프)에서는 여러 관점을 볼 수 있었다. 이미 구체화된 테크놀로지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을 적극 활용한 작업들이나, 새로운 매체형식실험에 대한 고민을 접할 수도 있었으며, 미디어아트의 발현 과정에 대한 단초들을 얻을 수 있는 계보까지 포함해 크게 3가지 정도의 포괄적인 관점을 두루 제시하였다. 미디어아트의 지속적인 발달상, 진보적 입장을 대변해왔던 과년도의 서울시립미술관의 미디어아트비엔날레들과는 달리 올드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전달에 초점이 맞춰져 버린 <미디어시티서울2010>에서는 볼 수 없었던 최근의 뉴미디어에 기반한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인다프에서는 더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2010년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은 앞서 소개되었던 미디어시티 서울 2010에 비해, 대중들이 보다 편하게 미디어아트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게 만들었던 행사였다. 모바일 기술을 활용한 예술적 시도라던지, 미디어아트의 초기 역사를 엿볼 수 있게 만들었던 시도들은 관객들에게 미디어아트'가 차세대 예술로서 분명 공고한 위치를 잡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미디어아트가 지닌 단점 내지는 약점 또한 노출시켰던 행사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앞서의 미디어시티 서울이 다소 어려운, 그리고 맥락을 파악해야만 하는 미디어아트를 소개하여 대중들에게 난해한 미디어아트를 경험시켰다면, '인다프'는 '이것이 과연 예술일까?'라는 근본적 질문을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5. 마치며

4개의 행사는 저마다의 기획된 취지와 놓여진 맥락이 다르다. 그러기에 조심스럽다. 더군다나, 각 행사에서 활용된 혹은 투영된 '미디어의 역할과 미디어아트의 위상'이라니. 이러한 고민들에서 본 기획 기사를 발행하기까지에 많은 고민과 지연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또한, 2011년이 벌써 몇달이나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이 기사를 내보내는 것에 관하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미디어아트는 20세기 후반에 소개된 이래, 지속적인 견제와 혹평들을 겪어왔다. 몇 가지 주요한 비판들을 열거해보자면, '기술적 요소들에 치중하여 예술로서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라는 점을 첫 번째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본질적인 미디어아트가 내포한 딜레마일 수 있다. 이러한 딜레마는 '예술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속성들을 예술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라는 연이은 질문들을 발생시킨다. 또한 저작권 문제 및 그로부터 기인한 상업적 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운 점 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아트는 시간이 갈수록 보다 근본적 예술적 경계들을 건드리며 양적으로 또는 질적으로 성장하고 팽창하고 있다. 국내에서 미디어아트에 관한 관심이 적극적으로 표명된 해를 2000년 남짓으로 보자면(2000년 서울에서 '미디어시티 서울'이라는 미디어아트 전문 페스티벌이 만들어진 이후 여타의 지역에서 앞다투어 미디어아트 전문 행사들이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는 다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이제 '미디어아트가 과거의 예술과는 어떠한 점이 다른가'라는 해묵은 질문을 또 꺼내놓는 것보다는, '어떠한 매체를 통해 예술이 우리에게 새로운 감성을 전달하고 있는가'에 집중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디어'라는 '아트'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점점 그 모습을 감추어간다. 마치 처음 미디어아트가 소개될 때, '미디어' 앞에 붙는 '뉴'라는 수식어구가 없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에는 필요한 것이 있다. 미디어아트가 지닌 진정성에 관한 반성과 다양한 실험에 대한 추구가 그것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미디어아트가 보여주는 화려한 쇼만을 무비판적으로 즐기기보다는 보다 실험적인 미디어아트의 수용과 소개가 시급한 상황이다. 화려함과 반짝거림을 강조한 미디어아트의 일면을 체험하고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미디어라는 기술적 시도가 결합된 예술'이 제시할 수 있는 광범위한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 국내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현대 예술의 장에서 이러한 미디어아트의 다양하고 진정성있는 모습을 계속하여 만나기를 희망해본다.


글. 유원준 (앨리스온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