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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스펙트럼 속에 자리했던 백남준, 그리고 예술_world report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4. 10. 12:00


2010년의 끝자락,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에서는 12월 17일부터 이듬해 3월 13까지 약 3개월 간 뒤셀도르프 쿤스트-팔라스트 미술관(Museum Kunst-Palast, Düsseldorf)과의 공동기획으로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회고전이 열렸다. 테이트 리버풀의 이숙경 큐레이터와 쿤스트 팔라스트의 큐레이터 Susanne Rennert의 기획으로 진행된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작고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자 1988년 이후의 작업들을 영국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도 전시의 기본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점은 작품 자체를 넘어서 예술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었던 전시구성과 동료 예술가들과 나누었던 시대정신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게 한 방대한 아카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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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리버풀 이숙경 큐레이터의 인터뷰

먼저 전시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시기와 작품주제에 따라 ‘Post-Music’, ‘Fluxus, Performance, Participation’, ‘Meditation & Manipulation’, ‘Opera Sextronique’, ‘Electronic Nature’, ‘Beuys' Voice’, 그리고 ‘Robot Family’ 등 총 7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구성별 명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제작시기에 따른 배치를 지양하고 각각의 구성마다 작가의 작품세계의 핵심 주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다. 'Post-Music', ‘Beuys' Voice’에서는 실험적인 그의 작업의 핵심을 이뤘던 아방가르드 음악을 공부했을 독일 유학생 시절, 당시에 영향 받았던 작곡가 Karlheinz Stockhausen와의 관계, 1958년 John Cage와의 첫 만남, 196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핵심멤버이자 서로 간에 예술에 대한 철학을 공유했던 Joseph Beuys와의 협업을 통해 백남준의 작업 행보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이 두 개의 구성에서 눈여겨 볼 점은 작가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던 주요 인물들을 특징 있게 다룸으로써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시에서는 1963년 <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그의 첫 개인전이 지녔던 의미를 작품과 함께 전시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 홍보물, 전시준비를 위한 서신 등의 자료를 통해 상세하게 다뤘는데, 작가가 그의 첫 TV 작업을 선보인 전시였다는 중요성과 더불어 그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받은 주요 인물들이 전시에 참석한 모습을 담은 자료에서 음악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그의 실험적인 전시가 당시의 예술계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어서 ‘Meditation & Manipulation’, ‘Opera Sextronique’, ‘Electronic Nature’, ‘Robot Family’에서는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모색하는데 있어서 ‘예술과 기술이란, 과학의 장난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매체를 얼마나 인간적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작가의 말처럼, 기술과 정신적인 것의 상호연결성(<TV Buddha>), 기술과 인간의 관계와 친밀성의 탐구(<TV Bra>), 변화하는 자연과 기술의 관계(<TV Garden>, <Video Fish>과 <Moon is the Oldest TV>), 기술에 의해 변화하는 인간관계와 그 둘의 상호관계성에 관한 연구(<Family of Robot>시리즈)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대규모 회고전인 만큼 <TV Buddha>, <TV Bra>, <TV Garden>과 <Moon is the Oldest TV>는 별도로 할애된 독립적인 전시공간에 설치되어 작품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참고로 <TV Bra>에서는 첼리스트 Charlotte Moorman과 백남준의 협업을 상세하게 다룸으로써, 앞서 'Post-Music'과 ‘Beuys' Voice’에 대해 언급했듯이 당시의 주요 인물들과의 교류가 작가의 작업에 미친 영향을 재차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공적, 사적인 자료들이 함께 전시되어 전반적인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마지막으로 백남준의 회고전의 일부로 플럭서스 운동과 그것의 영향관계를 전시장 한 구성으로 할애하여 보여준 ‘Fluxus, Performance, Participation’의 경우, 1958년부터 1963년 동안 작가가 쾰른에 머물면서 실험적인 작품구성과 퍼포먼스를 탐구하던 시절, 플럭서스의 창시자였던 George Maciunas와의 만남 그리고 기존의 체계와 국가 간, 문화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플럭서스의 움직임 속에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는지를 방대한 자료수집과 전시를 통해 보여줬으며, 관련된 영상을 전시장 곳곳에 상영함으로써 당시 플럭서스 운동이 표방했던 예술의 새로운 형식과 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특징 중 하나는 테이트 리버풀과 리버풀 시내에 위치한 FACT(Foundation for Art and Creative Technology)의 연계 전시였는데, 이곳에서는 백남준의 1998년작 <Laser Cone>과 더불어 <Global Groove>(1973)과 <Good Morning, Mr. Orwell>(1984), 그리고 <Bye Bye Kipling>(1986)을 포함한 16개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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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레이저 아티스트 Norman Ballard와의 협업으로 완성된 은 그의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실험정신을 통해 소재가 지닌 습성을 이해하고 거기서 발현되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 중 하나로서, 작업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설치된 상황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 작업은 어둡고 커다란 FACT의 메인 전시공간 안에서 관객들이 바닥에 누워 깔때기 모양의 구조물을 통해 유동하는 레이저 광선의 현란한 움직임을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한편 전시의 일환으로 오후 4시와 11시 사이에 하늘을 바라보면 Albert Dock에 위치한 테이트 리버풀과 FACT사이의 거리가 레이저 광선으로 이어지는데, Peter Appleton이 제작한 라는 작업을 통해 두 개 공간 간의 물리적 연결성을 재치 있게 시각화한 것이다.




끝으로 이번 전시는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 규모면으로 보더라도 약 9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으며, 대부분이 영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있는 전시였다. 하지만 단순히 전시규모에 머무르지 않고, 다년간의 연구와 유관기관의 협업을 바탕으로 전시장 곳곳에 작가의 작업과 관련된 사진, 영상, 서신, 포스터, 리플렛 등 종류를 불문한 방대한 양의 다큐멘터리 자료를 함께 선보임으로써 좁게는 당시의 전시, 공연실황, 관객의 반응,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제반 사항들에서부터 넓게는 플럭서스 운동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당시의 주요 인물과의 영향관계, 그것이 빚어낸 예술계의 커다란 흐름을 통합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글. 황정인. 독립큐레이터. 403simb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