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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답장치問答裝置 8화_태도로 사실을 현상하다

 + 이번 문답장치는 지난 2011.1.12.~2.27 까지 갤러리 학고재 개인전을 가졌던 사진작가 권부문의 인터뷰입니다.  작가는 여러 다양한 대상을 고려하면서도 사진을 기반으로 하여 이미지 현상에 대한 밀도 있는 표현에 골몰하는 작가입니다.

흰색의 벽. 지하2층 깊숙이 내려 자리한 갤러리, 투명할 정도로 하얀 벽면에 걸린 눈과 바닷물의 평면들. 소소히 점점으로 흰 눈이 내리는 너무나도 고요한 바다, 아무 감각조차 존재치 않을 것 같은 이미지가 흐르고 있다. 맞은 벽면에선 다른 공간의 낙산들이 건너편에게 손사래를 친다. 눈과 파도의 뫼비우스, 빛이 시간으로 흡수되어 점차 굳건히 비어가는 현존의 기록. 무서운 혼돈으로 흩어지는 눈과 바람이지만 사실 어떤 무엇도 움직이지 않는다. 순간 바라보는 시선 밑, 검은 실크 목도리를 향해 눈물방울이 내려간다. 파도소리가 그녀의 발치를 적시고 흐느낌에 꺾이는 무릎, 빈 공간에 가라앉는다.

+ 작업의 시작

* 고교시절에 미술부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미술교육 시스템 자체가 나와 동떨어진 부분도 있었고 긴 과정을 직조해 나가면서 작업이 운용되는 회화의 구성방식 또한 맞지 않았죠. 더불어 사진기란 도구를 사용해서 눈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는 쾌감도 큰 비중을 차지했었고, 대상을 기계적인 명료함으로 재현함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론 영화의 환타지적 측면에 많이 경도되어 영상작업을 하고도 싶었으나, 70년대이다 보니 영화 작업을 깊이 있게 하기 어려운 열악한 상황이기도 했고 협업의 과정을 거쳐야한단 것도 껄끄러웠죠. 결국 일인 작업 체계를 궁구하다 사진으로 전향되었습니다.
사진을 전공하던 75년도에 개인전을 열었을 땐 사진가로 불리는 사람들한테선 많은 악평이 난무했었습니다. 어떤 사진원로 분께선 지팡이로 사진을 때리기까지 하셨죠. 차라리 미술이나 영화하는 사람들이 더 흥미를 가지고 작업을 논해 주었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현대미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담론들도 제게 큰 영향이 되었구요. 그러면서 사진/미술에 관한 경계가 많이 무화되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진이란 매체를 일별할 수 있었던 듯싶습니다.

Photopoem : daegu. 1974

+ 개념 혹은 철학적 영향

* 인문학적 소양이 사물 앞에서 정묘한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됩니다. 명징한 관점을 지닌 시선을 단단하게 프레임 안에서 견지해야하죠. [on the road]나 도시작업을 할 때는 현상학이나 메를로 퐁티, 비트겐슈타인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죠. 그런 텍스트의 접점이 생기면서 작업의 해석이 풍부해지고 일정의 질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양한 매체를 전전하는 작가들의 유행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읽은 일정 철학이나 담론을 단순히 차용해 오는 것을 스스로 매우 경계했던 탓도 큽니다. 학습하는 텍스트들이 세포 깊숙이 각인되는 감응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지만, 단순히 오려내듯 일정 철학을 따와서 사진화시키는 것이 절대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없었죠.

andong sebmerged district : dosan. 1975

+ 작가로서 경계해야하는 것

* 상업 작가로서 꺼림칙한 면이 많죠. 특히 종교적 관점에서 작업 담론을 함부로 오용하면서 종교적 깨달음을 말함이 너무 횡횡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구요. 개인적으로 전 이런 문제들을 교육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보다 작가가 좋은 작품을 보여줌으로 보는 이가 직접 느껴야한다고 봐요. 제 스스로 납득이 되는 작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난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작가로서 스스로 첨삭해야할 부분이 산재하지만, 이제야 그 정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니까요.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 담론에 잘 맞는 작가로 자리매김 되는 것도 중요하다 봅니다. 작가가 예술이 아닌 작전세력이 되어가는 몇몇 장면을 목도할 때마다 안타까운 느낌이 듭니다.
확연한 사유 없이 안이하게 매체 속성에 매몰되는 경우에 더불어, 유행처럼 미디어를 전환하는 것은 작가 자신에게 문제를 야기하기 쉽습니다. 힘든 고민을 거치지만 곱게 표출되어진 간결한 결과로 마무리되어야 하겠죠. 저는 사진이란 하나의 매체를 고집하면서 그것 자체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지 않도록 근성을 다듬고 싶었어요. 무리하게 작업을 스페셜하게 보이려는 의도가 작품을 치장해 버리는 결과를 막고 싶었죠. 저 스스로가 쉽게 매체를 교체할 수 없는 세대이기도 하지만, 경륜있는 작가들이 퍼포먼스나 설치작업으로 갑작스레 전환하는 모습이 많이 위험해 보였습니다. 사실 다루는 미디어뿐만이 아니라 철학이나 비평, 미학 같은 인문학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죠.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 함몰케되는 대상들은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on the road 1 : seoul. 1982

+ 사회로서 나를 삼투하다

* 우선 군이라는 것이 저에게 큰 화두였었지요. 입대전 첫 전시를 하면서도 사회 시스템과 개인 간의 측면에 대해 숙고했었습니다. 하회 마을과 군인을 다루었던 초기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에 대한 인식/표현이 나와 사진에 있어 어떤 의미로 자리해야하는지를 고민했죠. 결국 개인적인 아이덴티티의 중심에서 사물을 스트레이트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점차 변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객관적 방관과 주관적 해석의 사이에서 의미의 장이 형성되었다할까요.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객관의 거리를 두어 결과적으로 다의적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는-혹은 의미 없음으로-방향으로 [on the road]가 진행되어 나갔습니다. 이어서 [on the road2]부터 자연스럽게 컬러로 작업이 바뀐 것도 중요한 변화구요. 당시 컬러티비가 등장하면서 텍스트 외에도 사유의 도구로서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작업방식의 변화도 중요하겠죠. 카메라를 핸드헬드로 움직이면서 외부 대상과의 교감을 면밀하게 조절하는 것이 초기작에선 중요했었는데, 속초에서 들어가면서 포맷이 커지고 트라이포드를 쓰면서는 많이 바뀌었죠. 이젠 사진기를 가만히 세운채로 어떤 사건/상황이 오롯이 드러나도록 순간의 조응을 기다리고 있다는 차이랄까요. 이런 방식이 이제 스스로에겐 독트린doctrine의 수준일 정도인데, 상황을 조절하고 대응하는 입장의 태도가 위 두 방식 사이에 많이 틀립니다. 그러면서 사진을 내가 찍는 것이 아니라, 되려 작업된 이미지가 나라는 작가를 구축하여 어떤 뭔가를 채근한단 느낌도 듭니다. 필름에 담기는 카메라 너머의 빛들이 셔터를 누르게 하는 지도요.

on the road 3 : baikal lake. 2000

+ 작업수칙 & 디지털 프로세싱

* 이미지에게 부름 받아 동원되는, 작가란 종내는 자신을 빌어서 출현하는 이미지의 종사자라고 봅니다. 세잔도 자신이 그림의 주인이 아니란 말을 했었는데, 작가란 필터를 통해서 이미지가 출현함을 또렷하게 자각함이 중요하죠. 또한 흑백보다 자극이 강한 컬러의 임펙트를 고려한다면 작가가 더 지켜야할 수칙이 산재합니다. 컬러에 현혹되지 않으면서도 결과의 엄정한 해석 및 완벽한 통제력도 필요합니다. 흑백에 비해 과정상 다른 변수가 많은 만큼 차원이 다른 고민이 필요합니다. 일반 사진가들이 컬러를 짧은 시간에 작업하면서 간과하는 부분이 많죠. 제 경운 디지털작업도 포토샵과 제반 기술들을 독학으로 터득하면서 여러 사소한 절망도 수없이 겪어야 했지만, —alt 나 ctrl 키가 그렇게 많은 기능이 있는 줄은— 끊임없는 테스트와 이미지 프로세싱을 혼자 풀어나가는 막막한 상황이 스스로를 강화해나가는 힘이 되었죠. 어떤 누구라도 간절한 갈망의 욕구가 없는 채로 진화되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to the stones : untitled #2627. sudursveit. 2008

+ 타국의 풍경을 궁구하다 : 전환점

* 이전 작업과 다른 공간을 다룬 것은 대상과 장소, 분위기의 확장으로 보시면 될 듯합니다. 시베리아에서 북유럽 등지를 거치면서 다른 장소에서 전작과 비등한 입장을 가지고 촬영했으나, 일정 부분에서 변화된 방식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서 작금의 풍경작업까지 오게 되었죠. 이때 작업을 제외한 모든 활동을 털고 속초에 자리잡으며 작가로서 재정비되야 했던, 저에겐 절박한 변화죠. 더욱 치밀하고 극한 작업환경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갱도의 막장같은 자리를 만드는 결정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초기작업이었던 [on the road2] 마지막과 2000년도에 나왔던 작품들이 그때 심정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사진작업을 하면서 나름의 성과나 인식 받음도 있었지만 작가로서의 방점이 되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Stargazing at sokcho #1. 2001 c-print, 40.6x50.8cm/ 100x150cm

+ 대형인화와 사진의 현장성

* 촬영장소와 컬러로의 전환이 같이 이뤄지면서 인화크기 또한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공간과 크기 그리고 주제와의 관계를 숙명처럼 항상 되뇝니다. 1989년 인공화랑의 전시[각주:1]부터 대형 프린트를 시작했고, 박영덕에서의 [on the cloud]도 실상이 사진 이미지로 맞닥뜨리는 디스플레이를 대형프린트로 구현하려 했죠. 21세기에 와서 대형프린트의 프로세스가 안정화되었고 본격적으로 사진의 속성을 크기와 관계 지었습니다. 말씀처럼 현장에서 제가 목도했던 사실을 다시 전시장에서 재현되어짐으로, 당시 감흥을 사진으로 증명하고 싶었죠. 셔터가 열린 순간 대상과의 호흡을 분명히 표명 가능하도록 하는 크기가, 제 사진의 현실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며 현존하는 대상과의 사진적 피드백인 것이죠. 35mm 로 작업할 때에는 짧은 찰라의 순간에 잘리워져 나오는 순간의 겨룸의 프레이밍이었다면 지금은, 긴 시간 화면을 응시하면서 스며나오는 총체적 뉘앙스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죠. 단순한 시장성으로만 이미지를 크게 작업할 순 없는 것이겠죠. 사진작업에선 팩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

on the cloud #3578 #3577. 2007. c-print. 167x117cm each

+ 사진의 선택, 잘못된 해석

* 촬영하면서 최종 인화사이즈 및 셀렉까지도 동시에 고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결과를 가늠하면서 개념과 행동이 같이 구성되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 전시세팅에 임해선 스스로에게 가하는 해석을 정밀히 교정하고 끊임없이 제련하는 긴 과정도 필요합니다.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평면의 전반을 장악해야하는 어려움을 견뎌야하죠.
앞에 놓인 시공을 사진으로 표현함에 있어 명확한 전달의 희구는 간절하죠. 작가에 관련된 좋은 인터뷰를 보면 더욱 작업의 밀도를 높여야 겠다는 바람도 있고. 때문에 스스로 사진에 관한 아티클을 작성해달란 이야기를 듣습니다만 창작하는 입장에선 무관한 요구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론 전시의 정독을 위해 관람객을 계몽하는 작가의 자기 언술을 매우 경계하는 편입니다. 물론 적확한 기능의 평론이 간절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waferfall#3. 2007. c-print. 200x150cm


+ 절대지평과 광활

* [on the road3] 후반부부터 점차로 롱샷이 증가되면서 [northscape]에선 확실히 파인더에서 바라보는 시야각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지평에 대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사진에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스스로 염원했던 절대적 이미지를 가진 풍경에 대한 갈망이죠. 도시풍경을 다루면서 태동되었던, 의미를 극단의 최소화로 유도하는 촬영방식이 구체화된 것입니다. 피사체로 이름붙이지 않는, 무화된 대상을 사진 찍는 양식이죠. 의미와 무의미의 현상을 사진이미지로 변주하면서 망막에 새겼던 광활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 보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눈으로 판단 불가한 풍경일 수도 있습니다만. 대상을 대면하는 저의 액션/태도가 결과적으로는 평면으로 귀결되어 막막한 형상을 유도하는 듯합니다. 그 과정을 사진작업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제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사진가를 사이에 둔 대상과 관람객의 삼투압은 참으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northscape : untitled#3393 Breidamerkursandur. 2007. c-print. 100x150cm

+ 특히 신관에 걸린 낙산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눈풍경의 단순한 기록으로 보이는 외양만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현실적이지만 복합적인 감상을 낳는 이미지가 대단했습니다. 단순히 서정이라고는 절대 칭할 수 없는 놀라운 대면을 관람객이 느끼게 됩니다. 어떤 다의성을 생각하고 전시를 구성하셨는지, 또한 시간성의 측면에서 많은 지점을 논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나 같은 공간에서 전시했었던 로만 오팔카[각주:2]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다의성은 어떤 작가라도 작품을 논함에 있어 가장 핵심이죠. 물론 필연적으로 각 개별 사람들에 의해 다른 맥락에 놓이는 것처럼 사진이미지로서 일정 대상과 현상을 명확하게 담론화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작업에서 작가의 의도와 그 구조의 얼개가 정확히 제시되고 있다면 구심점을 가지는 다의의 장은 굉장히 흥미로운 장을 형성할 겁니다. 결국 해독은 관객의 몫으로 남겠지만, 다의성의 춤사위가 확대된다면 적극적으로 관객과 작가 관계가 의미로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 자체가 시간성을 담보한 미디어입니다. 향처럼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성에 관해 확정지어 말하는 건 아까 말한 다의성을 억제하잖을까 싶군요. 눈오는 낙산 사진이 시간 순의 시퀸스로 전개되긴 하지만 제 입장에선 다채로운 현상으로 다양히 판독 되길 원합니다. 작가로서 똑똑히 감당해야하는 시간의 숙명적인 부분을 제외하고선 관심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오팔카의 시간과 운명에 대한 인식고 깊은 숙고를 거친 작업결과는 대단한 성찰의 결과로 출현했다고 여깁니다만.

+ 기계를 다루는 사진작가로서 어떤 일정 노선이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진을 작업하는 작가로서 거칠게 분류하자면 두 가지 방향성이 생기리라 보는데요. 하나는 조형의 구축된 발전과 다음은 응축된 감정의 표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시장에서 제가 받은 느낌도 그랬었고 전술하신 내용들도, 위의 두 가지 경우와는 어떤지 모두 다르게 여겨집니다. 현상이라는 말씀에서 어떤 단초가 느껴집니다만, 조형과 감정의 방법을 다 아우르고 계신건가요? 

* 제가 젊은 작가들에게 분명히 하고 싶은 말도 그런 내용입니다.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도 깊이 침잠해선 절대 안 되죠. 오히려 대부분의 작가들이 둘 중의 한 노선만을 선택해, 스스로 스테레오 타입을 즐기면서 자기담론을 축소재생산하는 관성이 참으로 한심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진을 찍는 작가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가 조형성이나 서정을 추구함이 어릴 땐 당연하다고 여겼었죠. 그러나 점차 여러 작업을 거치면서 사진가가 외부에 맞서 어떤 태도를 견지함이 효과적 일까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 프랑스에 전시할 때 [태도][각주:3]라는 제목을 붙인 연유가 거기 있습니다. 단순히 상황이나 최종 이미지를 통제하는 것 이상의 조절이 무언의 태도로서 사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대상이 결국 나를 감응시켜서 사진을 찍게 하는 것이죠. 태도가 나에게 상황에 맞는 시각을 가지게 한다고 정의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문인화 장르와 무관하게 산수를 대하는 태도로서 단어를 가져오고, 그 시공간에 적합한 눈으로 대상을 바라본 결과입니다. 당신이 보는 것을 명확하게 감당하도록 렌즈 너머의 무언가에게 오롯이 손을 내미는 행위, 그것이 사진 찍는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관객이 인화지를 바라보면서 시나위처럼 인식이 소통되는 장을 마련해야는 것이죠. 소재나 철학에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전략적인 제스추어만 태도로서 취하는 경우를 목도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 영향받거나 관련 있는 기성작가

* 스테판 쇼어[각주:4]의 작업이 어린 시절 일정의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미지와 대상과의 연결점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위치까지는 제게 영향을 주진 못했다 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전 타 장르의 여러 작가들과 관련성을 개방해논 부분이 많지만 명확한 연결점이 있는 작가는 없는 것 같아요. 아까 작가로서 제스추어 이상의 태도를 이야기했었는데, 창작하는 순수한 자세를 구축하는 면에서 보르헤스의 경우를 예로 들고 싶군요. 그처럼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온전히 흡습하여 작업하는 사람이 되었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가 인터뷰에서 새로운 세대들에게 아무런 충고도 하지 않았던 것도 제 입장에선 중요한 자세였다고 생각합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시 & 인터뷰

권부문 작가 약력



  1. [권부문,사진]이란 타이틀로 열렸던 권부문의 개인전. 당시 한국 개인사진전으로는 최초로 2M 이상의 대형 프린트를 시도한 전시였다. [본문으로]
  2. Roman Opalka : 폴란드 개념예술가. 1965년 이래로 숫자 1부터 한 단위씩 더해 나가 캔버스에 적어나가면서 자신의 얼굴을 사진 찍어 같이 전시하는 작업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캔버스에 하나하나 쓰여진 숫자들로 흐르는 시간의 흔적을 기록한다. 시간과 존재, 덧없으나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케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작가. [본문으로]
  3. Boomoon, Attitudes : 1997년에 파리의 쌀페트리에르 쌩루이 성당에서 열렸던 대규모 개인전 [본문으로]
  4. Stephen Shore : 미국의 컬러사진가. 십대에 이미 스타이켄에게 발탁되어 유명세가 시작되었다. 앤디워홀의 팩토리를 장기간 촬영했고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한 두 번째 생존작가다. 이후 35mm를 놓고 대형카메라로 미국의 풍경과 일상을 작업한 컬러시리즈가 있다. 윌리암 이글리스톤 등과 함께 미국의 뉴컬러를 이끈 작가로 평가받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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