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Sound meets Technology[1] _새로운 음향을 찾아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11. 10:02


   사운드아트를 보는 시선이 미술쪽에 국한되어 있는 것을 본다. VOICE를 통해 음악을 전공한 사람의 시각에서 본 사운드아트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필자는 작곡과 음악테크놀로지를 공부하였다. 20세기 이후 작곡가, 사운드 아티스트들의 작품 세계의 변화와 여러가지 시도들에 대해 소개하며, 과학기술을 예술영역으로 가져온 이후 작품의 아이디어와 내용, 형식의 변화들에 대해 6~7회에 걸쳐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번 호에서는 새로운 음향을 추구하던 작곡가들에 의해 시작된 전자음악에 대해, 2-4장까지는 그 속에서 분파된 사운드 스케이프, 오디오 비주얼, 현대음악의 계보를 잇는 전자음악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또한 국내 사운드 아트의 현 주소를 알아보기 위하여 사운드 아티스트와의 인터뷰를 간단하게 실어 보려고 하며, 국내 및 해외의 전자음악 공연 및 음악제들을 소개할 것이다. 




새로운 음향에 대한 작곡가들의 욕구
 

작곡가들은 '새로운 소리'에 대해 항상 갈급해한다. 20세기 초반, 음악에 테크놀로지를 도입함으로 음악 표현에 있어서, 그리고 음향에 있어서의 제한을 없애고자 했으며, 조성, 스케일, 음역, 화성, 음색과 같은 전통적인 시스템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었으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진다고 믿었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듣는 것은 대부분 잡음이다. 잡음을 무시하면 그것은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잡음을 잘 들어보면, 우리는 그 매력을 발견한다. 시속 80km로 달리는 트럭의 소리, 송전소의 전기소리, 비소리. 우리는 이 소리들을 사로잡아 조정하고 싶다. 사운드 효과로서가 아니라 악기로서 말이다." -John Cage


이러한 폭넓은 음악의 정의를 바탕으로 존케이지(John Cage, 1912 - 1992) 는 침묵도 음악의 영역으로 확대시키며 1952년 <4'33''>라는 작품을 만들게 된다.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 1887 - 1968)의 작품 <샘>처럼  존케이지의 <4'33"> 또한 기존 예술의 영역을 확대시키며, 혹은 전복시키면서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4 minutes 33 seconds
 

John Cage 

 

I

 TACET

II

TACET


III

TACET

 

NOTE: The title of this work is the total length in minutes and seconds of its performance. At Woodstock, N.Y., August 29, 1952, the title was 4'33" and the three parts were 33", 2'40", and 1'20". It was performed by David Tudor, pianist, who indicated the beginnings of parts by closing, the endings by opening, the keyboard lid. However, the work may be performed by (any) instrumentalist or combination of instrumentalists and last any length of time.


<4'33''의 악보>



새로운 음향을 찾았던 또 한 명의 작곡가. "소리의 조각가"라 불리며 새로운 사운드에 갈급해했던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Edgar Varese, 1883-1965)이다.


"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계"라는 음악적 표현의 새로운 매체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소리를 묘사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리고 드디어 (충분한 연주가 뒷받침 된다면) 이러한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만약 누군가 인간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명확하게 그 차이를 말할 수 있다. '내가 작곡하는 음악 혹은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연주자의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청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작곡가는 새로운 기보법으로 표기된 악보를 작성한 후 사운드 엔지니어와의 협업을 통해 이를 기계에 바로 입력한다. 그러면 누구나 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동작으로 작곡가가 전달하고자 한 사운드를 그대로 듣게 된다. 마치 책을 펼치는 것과 같이." - Edgar Verese <Music as an Art-Science>中


드뷔시, 스트라빈스키와 동시대를 살았던 바레즈는 음악에서의 공간감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게 탐구했다. 1958년 만국 박람회 필립스에서 위촉받아 작곡한 <Poeme electronique, 1958>는 400여개의 스피커를 이용하여 움직임 있는 음향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그는 노이즈 자체를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음색을 만들어내려 했던 작곡가들은 기존에 악기로 작곡하던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곡하기를 원했다. 즉, 노이즈를 악기처럼 다루거나 기존에 있는 소리를 흉내 내기보다는 노이즈를 만들어내고 다루는 것과 같은 구조, 알고리즘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미래주의자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악기는 무엇보다도, 표현의 일시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음악가들은 기계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이 문제를 깊이 간직해야 한다. 내가 찾는 것은 모든 사고의 표현에 빌릴 수 있는 새로운 기술적 수단이다."



다양한 음향과 음색에 주된 관심을 가졌던 20세기 가장 위대한 고전음악 작곡가 중 한 사람인 헝가리 작곡가 리게티(Gyorgy Ligeti, 1923 - 2006)는 기악음악 뿐 아니라 전자음악(Artikulation, 1952)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그래픽 악보와 함께 감상하면 초기 전자음악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Poeme symphonique,1962>는 10명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100개의 메트로놈을 위해 작곡한 작품으로 21세기인 지금도 이 아이디어에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들을 자주 보곤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악기가 아니라 메트로놈의 노이즈적인 소리를 가지고 작곡했으며, 100개의 메트로놈이 만들어내는 우연성, 미니멀리즘 음악의 효과인 청각적 번짐현상 등 흥미로운 요소들을 많이 발견해낼 수 있다. 
 



얼마 전 앨리스온 라이브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주방기구들을 이용하여 만든 음악" 또한 이 작품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http://aliceon.tistory.com/trackback/1753
 




"결국 전자음향에 대한 작곡가의 경험은 소리를 다루는 그 동안의 차원을 넘어서게 했다. 즉 비일상적인 음향세계는 이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음악을 만들게 했으며 또한 인간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여 새로운 개념의 음악을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 Ligeti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그렇다. 새로운 툴은 그것을 수용한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상상과 아이디어를 선사하며, 결국 새로운 개념의 음악과 예술 형태가 만들어지게 된다. 다만 다루고 있는 툴에 대한 이해가 선행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이후에야 진정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바레즈가 말했던 것처럼, 단지 새로운 음향, 노이즈를 작곡의 소재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발현된 새로운 아이디어로부터 창출된 곡이 진정 새로운 시대의 음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전자음악은 새로운 음향에 대한 탐구를 하는 작곡가들, 부지런하고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작곡가들, 상상력이 뛰어난 작곡가들에 의해 그 영역이 더 넓혀지게 되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곡가들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음악을 바라보며, 작품을 상상하고 있는지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하지만 분명 현대를 살아가는 작곡가, 사운드 아티스트들은 보다 넓은 관점으로 음악을 대하고 있으며,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다른 매체들과의 소통에 더욱 적극적인 행태를 취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새로운 음향에 갈급해하던 20세기 작곡가들을 통해 왜 이런 음악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며 사운드아트의 시초에 대해 다뤄보았다. 여러 가지 궁금점을 가지고 앞으로 필자는 역사적인 맥락을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작업들, 다양한 아티스트와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