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화면을 넘나드는 만 개의 물결: Ten Thousand Waves: Isaac Julien_exhibition review

kunst11 2011. 6. 22. 13:45


사실 갤러리에서 영화를 튼다는 개념은 실험영화의 궁여지책 같은 것이었다. 일반 극장에서 틀기 힘든 전위적이고 까다로운 영화들은 마치 난민처럼 미술관 주변을 맴돌았고, 새로운 예술 형식을 찾아 헤매던 큐레이터들은 이 작품들에 피난처를 제공했다. 화이트큐브로 들어오면서 검은 방에 들어가서 프로젝션으로 상영되는 방식은 다소 단조로웠고 일반 극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미디어아트 씬에서 진화가 거듭되면서 갤러리에서 보여지는 투사 방식이나 설치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디어아티스트들이나 혹은 미술가들은 영화의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패러디 함으로써 순수미술의 영토를 넓혀왔다. 또 영화적 이야기나 촬영 테크닉, 영화세트 디자인과 편집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예술가들도 있다. 미디어아트와 장편 극영화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해온 감독들도 여럿이다.


                                                   Red Chamber Dream (Ten Thousand Waves) | 2010  

영화적 표현 양식이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현대미술은 단지 영상이라는 매체를 이용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내러티브와 이미지 표현기법을 적극 끌어들이고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의 뉴미디어 아트는 현대미술/영화의 개념과 영역을 훨씬 복합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예로 스크린 기반 미술과 일반적인 비디오 아트의 차이는 단지 영상을 스크린 위에 프로젝션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방식처럼 말이다.


영국 출생의 아이작 줄리언(1960-) 역시 영화와 조형예술 두 영역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있다. 줄리언은 1996년 프란츠 파농의 전기를 다룬 영화 <FrantzFanon, Black Skin White Masks>이나 200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 선보인 <Paradise Omeros>등과 같은 영화 설치 작품 등을 통해 흑인 정체성이 강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한국에서는 이미 2004년 부산비엔날레의 <Baltimore> 2008년 광주비엔날레의 <Western Union: Small Boats> 등을 통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과감한 형식적 실험으로 풀어내었고 무엇보다 그가 다루는 문제들의 복합적인 층위들을 드러내는 방식은 단지 사회적 상황 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기반하는 다층적인 기제들을 조명하고 있다. 때로는 내러티브로 때론 독백이나 해설로 삽입되는 사운드, 다큐멘터리 씬에 픽션적인 상황이 섞이거나, 허구적인 연출에 실재가 섞이고, 역사적인 사실은 개인의 사적인 스토리에 녹아 들어 시적이고 우울한 정서를 거쳐 제 3자인 관람객들에게 사유되기도 한다.



이쯤에서 이번 서울에서 선보이는 < Ten Thousand Waves >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줄리언이 4년 여의 구상과 작업 끝에 2010년 완성된 멀티스크린 영화 설치 작품이다. 필름 전체가 중국에서 촬영되었고 중국 출신의 스타 여배우 장만옥과 자오타오가 주역배우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미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그 외에도 작품에 보이스 오버로 들리는 연작 시 <SmallBoats> <The Great Summons>는 중국 시인인 왕핑이 줄리언의 의뢰에 의해 창작해 주었고 서예의 대가 공파겐, 영화 설치작가 양푸동 등이 화면에 등장한다. 상업적인 극영화도 아닌 실험적인 요소가 다분한 영화 설치작품에 이 처럼 여러 다른 예술가들이 협업을 끌어낸 것은 아이작 줄리언의 상업적 마인드도 한 몫을 한 듯 싶다. 여하튼 한국 관람객들에게도 낯설지 않는 무비스타의 출연은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에선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Mazu, Turning (Ten Thousand Waves) | 2010  

2010년 시드니 비엔날레에서 첫 선을 보이고, 상하이, 마이애미, 런던에서 9 채널 버전 작품으로 선보인 < Ten Thousand Waves>는 한국에서는 3 채널의 버전으로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줄리언은 한 인터뷰에서 “9 채널 버전은 관람객이 스크린을 따라 움직이면서 보는 공간 지배적인 전시였다면채널 버전은 시간적인 연결성을 갖고 카메라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시선 중심의 구성을 짰습니다.”라고 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조금 더 전형적인 갤러리 형 상영방식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9채널의 버전은 좀더 시각 분산적인 요소들이 있었다고 본다. 지면 마지막에서 마이애미에서의 9 채널 영상을 비교하며 참조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싱글채널, 멀티채널이라는 스크린 기반의 작품들의 설치 방식의 변화는 대중들이 실험영화 같은 극영화와의 차이점을 인지할 수 있게 했다. 설치 미학은 공간, 시간, 그리고 음향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 요즘 많이 선보이는 다채널 영상 설치물들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물리적인 시각 장에 다 들어오지 않는 여러 채널들을 설치하고, 단조로운 반복 영상이 아닌 여러 시퀀스를 이루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의식적으로 개입하게 하여 관람자들의 지각경험은 분산적이고 능동적인 시각 편집 기능을 하고 있다

                                                Green Screen Goddess (Ten Thousand Waves) | 2010  



이러한 흡사 몽타주적인 요소들은 < Ten Thousand Waves >의 세 개의 스토리라인에서도 읽을수 있다. 첫 번째는 중국 푸센성에서 유래된 바다에서 조난당한 이들을 수호하는 여신 마조(장만옥)에 대한 전설이다. 두 번째는 2004년 영국 북쪽 해안 모어캠프만에서 발생한 23명의 중국인 밀입국 노동자들의 사망과 관련된 것으로 만조시각을 정확히 모르고 있던 탓에 전원 생명을 잃은 참사에 대한 것이다. 마지막은 1930년대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이 시기에 제작된 영화<The Goddess(1934)>는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매춘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비극적 삶을 리메이크하면서 1930년대 상하이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재구성하고 있다.

줄리언은 중국의 문화혁명시기의 역사적인 맥락을 신화와 사회적 역사, 과거와 현재, 허구와 현실들을 다채널의 설치방식을 이용하여 이미지들을 전복시키고 마주하게 한다. 예로 마주가 교통체증이 심한 상하이 도심과 고층의 빌딩 숲과 이와 극도로 대조되는 대나무 숲을 날아다닌다. 줄리언은 마주(신화적인 요소)를 현대사회로 다시 불러내어 이미지를 접하는 관객들이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해석을 하도록 유도한다


서로 다른 시공간, 현실과, 허구, 영화라는 장르와 미술이라는 장르 내 영화를 닮은 혹은 지향하는 영상 작업들처럼 ‘장르’의 경계를 뛰어 넘는 이러한 혼성은 작가적 창의력과 역사적 현실이 서로의 경계를 교란하고그럼으로써 사회적 문제들의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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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스크린으로 투사된 마이애미 전시의 오프닝장면 2010

http://www.youtube.com/watch?v=Le4O0CXppF4 v
 

Isaac Julien: Ten Thousand Waves at ATELIER HERMES (2011.4.29 - 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