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x_sound :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_exhibition review

kunst11 2012. 5. 22. 16:47

1958년 독일 다름슈타트 여름 신음악 강좌에서 현대 실험 예술의 운명의 분수령이 되는 우주적 만남이 있었다. 그 해 백남준은 레코딩 테이프에 여자의 비명소리, 전화기, 거리 등에서 무작위로 들리는 소리를 담은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 발표하고, 멘토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와 함께 새로운 예술 흐름의 줄기를 만들어갔다.[각주:1] 백남준의 1962년 인터뷰에서 그 해를 기점으로 1957년이 기원전 1년이 되었다고 했다. 1992년 존 케이지의 죽음 후 다시 93년은 기원 후 1년이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2006년 미국 언론은 백남준의 부고기사에서 비디오를 개척하고 무음악(a music)추구하였던 20세기 아방가르드 작곡가로 소개하였다. 이처럼 백남준의 음악가, 아니 (고정된) 음악을 몰아내거나(ex-pel) 더 확장(ex-panded)된 의미에서 미지의 소리를 다룬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전시가 <X-Sound>로 명명되어 7월 1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크게 위대한 2인의 개척자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 사운드의 여정을 그들의 작품과 영상 자료, 그리고 연주영상으로 구성한 파트와, 연관되어서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사운드 설치 작업 위주의 국제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12인으로 구성되어있다.  

John Cage_Prepare Piano_1946

주지하다시피 친구인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berg, 1928~2008)의 핵폭탄에 의해 제거된 장소를 표현한 <신의 어머니(mother of God)>(1950)과 흰색 회화 연작으로부터 침묵의 허가에 대한 영감을 받은 케이지의 <4 33>는 디지털 사운드와 멀티미디어 개념을 제시하고 작품의 유기적 관계를 구성하는 내용을 제거함으로써 상호작용성 그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게 되었다. 그러므로 디지털 문화에 가장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평가에까지 이른다.[각주:2]

당연히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신음악에 큰 자극을 받았다. 1959년 유명한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공연 중 넥타이를 잘린 관객이 바로 케이지다. 1960<갤러리 22>에서 열린 플럭서스 연주회에서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나서, 케이지의 곡을 연주한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 1926~1996)의 머리에 샴푸를 붓고 머리를 감겨주었다. 이 유명한 에피소드는 지난 백남준의 뉴욕 장례식에서 초대받은 참석자들이 가위를 쥐고 서로의 넥타이를 유쾌하게 자르며 이를 기리는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다시 상기하게 한다. 그 때 일어선 신사들 사이에서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의자에 꼿꼿이 앉아있던 이유가 여전히 궁금하다.

하지만 두 거인의 연결점뿐만 아니라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두 작품의 나란한 제시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존 케이지가 발레곡을 작곡하려고 만든 <장치된 피아노(Prepare Piano)>(1946) 는 피아노 현 사이사이에 나사못, 볼트, 너트, 종이조각, 고무 지우개 따위를 쑤셔 넣거나 해머에 부착한 작업이다. 건반을 누르면 현에 끼웠던 나사못 따위가 튀어나와 다른 현에 부딪히며 기묘한 소리를 낸다. 이 피아노의 연주를 위해 작곡된 <우리의 봄이 온다>(1943)는 정인선의 연주 영상으로 전시장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백남준이 스승의 작품을 오마주한 <총체 피아노(Klavier Integral)>(1958)는 비록 만프레드 몬트베의 1963년 사진 자료로만 전시되어 있지만, 존 케이지보다 훨씬 더 실험적이면서 총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관객이 건반을 누르면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고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헤어 드라이기가 작동해 발을 간지럽히며 오감을 자극한다. 이런 백남준의 매체와 영상, 소리, 장치, 조각, 그리고 신체의 비위계적인 총체적 통합이 이후 가장 중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음을 여기에 전시된 <TV 정원>(1974 최초제작)<TV 피아노>(1998)로 확인할 수 있다.

총체피아노 전시 설치광경

사실상 파트2에 해당하는 전시에서는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12인의 뛰어난 최신 사운드 설치 작업들이 스펙터클하게 전개되어 있어서 전혀 다른 2개의 전시를 보는 기분이 든다. 물론 전시장이 2개 층으로 분리 된 물리적인 면도 일조하겠으나 도입부로부터의 전시 동선이나 디스플레이가 거의 차분하고 세련된 선형으로부터 다방향적인 확산형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점이 그런 느낌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다수의 작가들의 디테일한 정보에 매이지 말고 보다 존 케이지적인 작가와 백남준스러운 작가들 또는 제3의 그룹의 다이어그램으로 분류해보는 것도 기획 의도를 읽어가기 위한 좋은 관람법이 될 것이다.

Loris Gréaud_Think Loud_Photo, Sound Installation_2009 

가령 로리스 그래오(Loris Greaud) <큰 소리로 생각하라>(2009>는 직접적인 <4 33>의 오마주로 읽힌다. 미국 록밴드 소닉 유스의 기타리스트인 리 레이날도가 마음 속으로 연주하는 35분간의 침묵을 담은 이 작품은 퐁피두 센터의 무향실에서 녹음되었다. 도쿄 ICC센터의 경험에 보았던 무향실에서는 오직 소리는 내 신체의 내부에서 들리는 듯 했다. 기계적인 움직임으로부터 자연에 가까운 소음을 만들어내는 오토모 요시히데의 <위드아웃 레코드>(2008)의 작품은 넓은 홀 공간의 수평적 좌표를 각각 다른 소리로 겹겹이 에워쌓으며 격자로 된 미로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문(Zimoun) <302개의 장치된 모터>(2012)는 마찰음을 신체가 직접 경험케 하여 소리를 공간에서 촉각적이고 물리적으로 느끼게 한다. 한편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백 페이드 5(춤의 여왕)>(2011)의 다른 작가의 재해석이나 직접적인 신체적 체험을 통한 총체적 경험은 보다 백남준에 가까운 경우로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작가 중 하나인 수전 필립스(Susan Philipsz)의 목소리로 16c 스코틀랜드의 비가(悲歌)연주하는 작품 <거친 숲>(2009)을 실제 야외의 숲에서 산책하며 만나는 아름다운 경험은 백남준의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서의 참여를 강조했듯이 적극 추천하고 싶은 황홀한 일이다.

Zimoun_302 Prepared DC Motors_Sound Installation_2012

디디에 포스티노(Didier Faustino)가 고안한 세련된 장치 <빈 건물을 위한 장치>(2010)와 이세옥의 <통로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을 위한 당김음>(2012), 시메트리한 형태를 가진 사운드 조각과 설치작업으로 잘 알려진 김기철의 <소리보기_(바람)>(2012)은 소리를 통한 이미지의 형상적 재현에 다다르고 있다. 일본 작가인 유코 모리(Yuko Mori) <오프나 플라워 센터>(2012)와 테츠야 우메다(Tetsuya Umeda) <처음엔 움직이고 있었다>(2012)는 움직이는 오브제와 그것들을 비추는 광선, 서로 부딪히는 마찰음을 통한 시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요란한 드럼 소리가 전시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안리 살라(Anri Sala) <대답 좀 해>(2008)는 남녀의 이별 장면을 과거 냉전 시대 상황과 절묘하게 빗대어 역사적인 긴장의 메타포로 읽힌다.

1950년대 진지하고 회의적인 자유주의자와 1960년대 낙관적이며 즐길 줄 아는 혁명가 중 누가 사회를 더 변화시켰을까? 백남준은 후자라고 말했다. 존 케이지가 진지한유럽 미학을 내던지면서 그 때부터 해프닝과 팝아트 그리고 플럭서스 운동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970년대 비디오의 시대의 문을 백남준과 그의 동료들이 활짝 열어 젖힌 후, 오늘날 500만 명 이상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전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각주:3] 새로운 예술가들에게 소리와 영상과 다른 감각에 대한 존 케이지가 일으키고 백남준이 확장시킨 파장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사운드 설치작업에서 새로운 매체와 새로운 맥락,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감각과 만나 또 다른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이 전시 기획의 주제의식으로 파악된다.

Otomo Yoshihide_Without Records_Sound Installation_2008


Susan Philipsz_Woods so Wild_Sound Installation_2009

백남준은 종종 그의 해프닝을 비롯한 활동을 알리는 기사와, 그의 유럽 및 미국의 최신 예술과 음악을 소개하는 기고문을 통하여 1960~80년대에 한국의 실험미술과 비디오 아트의 흐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쳐왔다. 주로 음악 관련 한국과 일본의 잡지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케이지와 플럭서스 운동을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잘 정리한 미디어 보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협업도 이루어졌는데, 특히 1970년 서울신문사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1회 서울국제현대음악제에서 정찬승, 차명희는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백남준의 국제 우편 형식의 지시서(Introduction)에 의해 <콤포지션>을 실연하였다. 이 행사는 단지 음악행사가 아니었고, 국내 예술의 종합화 운동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각주:4] 이 작품은 두 명의 벌거벗은 남녀가 검은 장막을 덮은 체 성행위를 암시하는 해프닝을 벌이는 동안 남녀의 다리가 피아노 건반 위로 내려와 무작위의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게끔 연출되었다. 이 작품은 이미 8년 전 존 케이지에 의해 연출되었던 플럭서스 멤버 오노 요코(Ono Yoko, 1933~) <음악 산책>[각주:5]을 연상케 한다.   

일반적으로 비디오 아트로 지칭되던 백남준의 오디세우스적인 여정이 사실상 그의 출발점인 소리 영역에서의 집중조명 된 점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미디어 상황을 미리 예견한 <랜덤 어세스(Random Access)>(1963)가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관람자들은 벽에 임의로 잘라 붙인 녹음 테이프 위를 재생장치의 헤드로 문질러서 녹음된 소리의 순서와 템포를 조절할 수 있었던 이 장치가 함께 전시되었다면 후반에 함께 전시된 최근 작가들과의 연결 맥락이 조금 더 시사적이고 탄탄해지도록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가정해보며 이 글을 마친다.


                                                                                                                                   글. 최흥철(큐레이터미술이론)

전시제목 : x_sound : John Cage, Nam June Paik and After

전시기간 : 2012. 3. 9 - 7. 1

전시장소 : 백남준 아트센터 NJP Art Center



  1. 김홍희 편, 『플럭서스-The Soul of Fluxus』, API, 1993 [본문으로]
  2. Chaile Gere, 『디지털 문화』, 임산 역, 루비박스, 2006. [본문으로]
  3. 백남준, 에디트 데커 & 이르멜린 리비어 편,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임왕준/정미애/김문영 역, 백남준아트센터, 2010. [본문으로]
  4. 김미경, 『한국의 실험예술』, 시공사, 2003. [본문으로]
  5. 김미경, 「1960~19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한국의 행위예술』, 국립현대미술관, 200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