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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지난 십년을 되돌아보면 ‘문화예술의 격동의 십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약 십년간 한국은 미술, 영화, 만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굵직한 생산지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예술의 태동과 함께 대안적인 장의 토대도 뿌리를 내렸다. 나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하 아이공)을 2002년에 설립하여 대안영상예술의 새로운 흔적들을 탐구하는 큐레이팅 활동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 탈장르영상예술, 대안영화, 페미니즘 비디오예술, 소수자 행동주의 영상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대안영상의 특성상 대안적인 미술계, 문화예술단체, 독립영화계와 직간접적 연대사업과 네트워크 사업들을 약 십오년간 해오면서, 영상예술의 다양한 접목과 시도들을 목도하거나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 비엔날레, 대안영상예술교육 워크숍 등과 같이 주도적으로 대안영상문화의 장을 만들려 노력해왔다. 이 글에서는 한국 대안영상문화의 정치성과 미학성을 중심으로 한국 대안영상 미디어아트의 정책적 쟁점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Ⅱ.
  21세기의 영상예술의 흔적을 대안영상문화라는 용어를 빌어 사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안영상에는 기술적으로는 ‘디지털’, 문화적으로는 ‘대안문화’, 사회정치적으로는 ‘소수성’이라는 아젠다를 제안하며 영상문화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무빙이미지를 대안영상문화라는 용어를 통해 제안하고자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디지털은 기술적으로 아날로그의 새로운 대안성을 갖는다. 


  1980년대 말 이후 대중매체가 확산되며, 매체시장의 확장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달, 통신기술 및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 현상으로 사회의 정보화 경향이 나타났다. 컴퓨터 공학에 기반을 둔 디지털 기술은 물질의 물리화학적 조건, 즉 정보의 아날로그 처리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물질 처리 방식을 인간의 표현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등의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 영화,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비디오게임, 핸드폰, 인터넷 등 다양한 기기와 매체들이 등장한 것은 이런 정보기술의 발전 결과이며,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이미지 범람현상 역시 그 결과이다.[각주:1] 대안영상을 논의할 때, 여기서 사용하는 영상에 대한 개념을 먼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영상은 어떤 기술 수단으로 2차원 또는 3차원의 화면으로 재생, 표시된 시각 정보. 화상이라는 말과 엄밀한 차이는 없으나 기존의 영화나 텔레비전에서와 같이 일과성(一過性)인 것을 영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또 텔레비전에서는 영상 증폭기, 영상 송신기 등과 같이 신호 파형 비디오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에는 음극선관(CRT)상에 표시된 좁은 뜻의 화상에 사진, 팩스, 인쇄 등 하드 복사까지 포함시킨 넓은 뜻으로서의 영상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각주:2] 또한 영어 비디오Video[각주:3]와 비주얼 Visual이라는 단어가 한국어로 번역될 때 영상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한국어에서 영상은 이렇게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움직이는 그림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문화적으로 영상과 영화는 서로 다른 영역의 용어로 불리워진다. 영상이 문화영역을 넘어선 포괄적인 영역의 용어로 사용되는 반면, 영화는 한 문화영역으로 고착화되고, 시스템화되어 있다. 영화를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영화(映畵)는 순간을 기록한 장면을 연속하여 촬영하여 기록한 동영상을 같이 기록한 음성과 함께 편집하여 어떤 내용을 전달하게끔 꾸며서 만든 영상물이다. 초기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영어의 모션픽쳐(motion picture)를 직역하여 ‘활동사진’이라고 하였다. 그 밖에 무비(movie) ·시네마(cinema) ·필름(film) 등으로도 불린다. 종래에는 광학적인 방법으로 필름으로 촬영한 다음 편집 제작 과정을 거쳐 영사기를 통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영화관에서 상영하였다. 최근에는 텔레비젼과 멀티미디어 컴퓨터의 발달로 많은 영화가 제작부터 감상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방식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각주:4] 영상이 video, visual에서 시작된 용어라면, 영화는 film에서 시작된 용어로 그 과정에서 무빙이미지 활동사진이라 불리워진 과정까지 비슷하다. 그렇다면 필름과 비디오를 넘어 ‘디지털’로 제작되고 있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영상, 영화들은 무엇으로 불리워질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디지털로 뻔히 제작이 되고 있음에도 영화로 불리워지고 있고, 영화에서는 새로운 용어로 디지털 필름이라는 복합명사가 쓰인다. 비디오아트는 이제 뉴미디어아트로 영상작품들이 불리워진다. 영화는 이미 견고한 문화산업과 예술로서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거대한 상업영화 시스템일 뿐이다. 상업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어필되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최종목표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역시 대중성 확보로 인해 극영화, 다큐멘터리영화를 중심으로 영화정책을 펼치고 있고, 예술적 성격이 강한 추상 애니메이션과 실험영화, 대안영상들은 점점 독립영화에서도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영화, 영상,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는 기술발명에 의한 영상예술의 역사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은 그 용어가 갖고 있는 기의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화는 영화영역에서, 영상은 영화, 미술, 산업 등 모든 영역에서 쓰이는 포괄적인 용어로, 미디어아트는 미술 용어로 개념화되어 있다. 똑같은 백남준의 작품도 미술에서는 비디오아트로 소개가 되지만, 영화 영역에서는 확장영화라는 용어로 개념화한다. 즉 아이공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업들은 영화 영역에서는 대안영화, 미술 영역에서는 뉴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소개되고, 문화전반적인 영역에서 소개할 때는 대안영상이라는 용어로 제안한다. 아이공이 설립이 될 때 비디오문화운동에서 시작이 되어 영화film보다는 영상video과 visual로 개념화한 것은 그 변화에 빠르게 대처한 것이라 본다. 제작환경의 변화에 있어, 아날로스 시스템에서 디지털/뉴미디어 영상 제작 시스템의 변화는 일상생활에서 영상제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를 낳았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대중의 창작활동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기존의 창작 활동들이 예술적 리터러시의 한계로 스테레오타입의 예술장르와 형식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1인 미디어 시스템과 장르의 자율창작성은 다양한 기반의 영상예술의 가능성을 형식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자율창작성의 활동들은 다양한 관점의 미디어작품제작으로 확장되며, 소수자적 관점(성별, 인종, 계급, 학력, 장애, 직업, 성적지향성, 지역의 차이) 등이 내용적으로 확장되고 넓어지게 되었다.[각주:5]


  두 번째로 대안문화는 문화적으로 상업문화의 대안성을 갖는다.


  대안영상을 논의할 때 ‘대안’과 ‘영상’의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 대안은 ‘어떤 일에 대처할 방안’이라 정의한다. 즉, 정해진 목적 또는 목표달성을 위해 창출(創出)되는 여러 방안으로 어떤 문제의 해결이나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해결방식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서 문제의 성격이나 상황에 의해 정해진 기준 내지 준거(準據)에 따라 가장 합리적이며 효과 있는 대안이 선정된다. 근자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체제접근(體制接近)의 한 과정에서 대안 창출의 절차가 포함된다.[각주:6] 한국에서 ‘대안’이란 용어는 대안학교, 대안문화, 대안공간, 대안교육, 대안미디어와 같이 기존의 체제 문제를 보완하고, 새로운 체제를 도입하는 모색에서 대안이라는 용어를 차용하는 듯하다. 199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한국의 대안문화는 대안공간, 대안교육, 실험연극, 실험퍼포먼스, 인디음악, 라이브클럽 문화, 테크노클럽 문화와 더불어 아이공이 제시하고 있는 대안영상 등 기존의 주류문화의 일방향적인 문화하고는 다른 쌍방향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대안문화는 기존 고급예술에서 보여준 학연, 지연, 연줄로 이루어진 문화의 행태가 아닌 관객이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활로의 장을 열어주었다. 한국에서는 주류문화에 대한 대항문화로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용어는 인디문화( Indie-Culture)이다. 인디문화는 영화, 미술, 무용, 연극,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적인 문화의 장을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문화자본으로서 한국의 문화를 폭넓고 다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독립문화란 독점자본의 지배나 영향에서 벗어나 소수자본으로 문화적 생산물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디문화는 흔히 ‘독립문화(Independent Culture)’라고도 하며, 미국 헐리우드 영화 산업의 저항형태로 등장하여 저예산 독립영화를 제작하던 1970년대 영화운동에서 출발하였다. ‘대안문화(Alternative Culture)’는 반상업주의와 무정부주의적 자유주의를 지지한다. 이 문화의 대표격이면서 1990년대 중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얼트 록은 ‘대안적 록’을 추구하는 청년문화의 욕망을 담고 있었다. ‘얼트문화’의 뿌리는 1960년대 이른바 반문화운동의 히피 및 펑크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반문화’는 개념상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에 기반을 두면서 제도예술 및 고급예술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1990년대 후반에 홍대앞 언더그라운드 카페를 중심으로 전개된 인디씬 문화, 테크노 문화와 같은 음악문화, 기존 갤러리라는 고급예술에서 벗어나 젊은 미술작가들 중심으로 전개된 대안공간 문화, 자생적이고 자율적인 대안영상 문화들이 새로운 대안문화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미술진영에서는 민중미술을 지나 대안공간 문화와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 문화가 형성되면서 젊은 작가들과 비디오아트 작가들이 갤러리와는 차별화를 지닌 작가와 공간들로 대거 소개되었던 시기였다. 아이공 역시 다양한 대안공간에서 미디어아트와 대안영상 작품을 중심으로 게릴라식 기획활동을 해왔으며, 미디어아트 웹진 앨리스 온 역시 한국의 미디어아트 담론 문화를 형성해오고 있다. 나비아트센터와 지금은 사라진 일주아트하우스는 미디어아트센터를 표방하면서 한국의 다양한 미디어아트 문화를 선보였다. 또한 쌈지스페이스, 대안공간 루프, 대안공간 풀, 사루비아 다방, 스페이스 빔 등 다양한 대안공간들이 ‘디지털’적 감성을 지닌 젊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기존의 갤러리와는 차별화된 색깔을 지니게 되었다.

  세 번째로 소수성은 사회정치적으로 자본주의, 가부장제, 이성애중심주의, 국가이데올로기 등 거시적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미시적 사회정치로서의 대안성을 갖는다.


서구에서 소수자 액티비즘 영상은 약 194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소수자와 행동주의’의 개념을 도식적으로 정리하며 영화를 제작했다기 보다는 사회문화적 변동과 배경 등의 요소가 짙다고 할 수 있다.[각주:7] 서구에서 소수자 행동주의 영화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작가는 미국의 마야 데렌(Maya Deren)이다. 그녀는 여성주의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1940년대 ‘댄스필름’이라는 대안적인 영화장르를 개척하며 하위문화와 새로운 영상 형식의 결합성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당시에 함께 교류하던 예술가, 비평가, 실험영화 감독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40년대부터 게이 영화를 제작해온 케네스 앵거는 그의 작품에서 소수자 행동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실험영화를 제작했다. 기존 이성애자 고전 내러티브 영화 관습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게이를 표상하는 다양한 상징물을 미장센에 포함시킴으로써 새로운 영화 읽기와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영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게이 정체성을 갖고 있는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토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전갈의 등장 Scorpio Rising>(1963)은 1960년대 미국 청년 하위문화 영화에 돌풍을 일으키며, 청년 하위문화와 새로운 영화 언어의 새로운 틀의 결합과 재창조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한국의 1990년대 중반은 기존의 주류 영상 이외에 다양한 작은 영화들이 등장한 시기였다. 이 시기 새롭게 등장한 작은 영화제들인 인디포럼(1996), 인권영화제(1996), 서울국제노동영화제(1997), 서울여성영화제(1998), 퀴어국제영화제(1998), 독립예술제(1998))에서는 상업영화와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형식과 내용, 감수성을 가진 영상과 예술들이 소개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다양한 영상문화는 그 나름이 표현의 자유를 내걸며 사회적 아젠다를 갖고 영화에서 나아가 영화운동의 목적을 띠며 국내 관객에게 소개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영화의 다양한 범위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 영화문화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1990년대는 80년대 변혁운동의 성과를 톡톡히 맛본 시기로 군사독재에 의한 권위주의적 사회통제가 이완되고, 1993년의 문민정부, 1998년의 국민의 정부 출범으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도입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30여년 만에 지방자치제도가 다시 도입되어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났고, 80년대에 뿌리를 내린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이외에 환경운동, 여성운동, 문화운동 등 ‘신사회운동’이 등장하면서 민중운동 이외에 시민운동도 활성화했다.[각주:8] 이 시점에 나는 비엔날레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2003,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세계 약 40여 편의 여성주의 비디오 행동주의 예술을 소개하는 큐레이팅 작업을 했다.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 비엔날레에서 바바라 해머, 마사 로즐러, 샹탈 아커만, 시실리아 컨딧, 바날린 그린, 샤디베닝, 슈리칭, 수잔 오프터링거, 이리, 데즈리 림, 앨런 포우, 트린T민하, 아녜스 바르다 등 전세계 여성작가들을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 대안영화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여성주의 문화 안에서 ‘영상’에 대한 중요한 핵심적인 흐름이 잡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또한 페미니스트 그룹 입김의 아방궁 프로젝트,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등 기존 미술계에서는 없었던 여성주의적 흐름들이 읽혀지기 시작했다. 

  미디어가 갖고 있는 ‘주류’와 ‘대항’을 읽기 위해서는 언어와 언어 작용을 해독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자매체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인간은 미디어에 의해 학습하고 전유되어왔다. 한국의 주류 미디어에서 ‘외국인’은 보통 백인 서구인들을 지칭하고, 이주노동자는 제3세계 빈민국에서 온 노동자를 지칭한다. 주류 미디어에서 송출되는 텍스트와 이미지들은 시청자들에게 고정관념을 낳는다. 이러한 고정관념으로 광고이미지에는 유색인종, 흑인보다는 코카서스 백인들이 많이 등장하는 데 백인 서구인들은 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회 내에서 ‘타자’나 ‘타인’의 위치로 전락한다는 것은 사회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의 위치에서 어느덧 이들 주체들의 보호를 받고나, 경계나 경원의 대상이 되거나, 격리되는 대상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모든 사회적 의제나 이슈에서 이들 의제나 이슈들을 제안하고 발의하는 위치가 아니라, 바로 이들 의제나 이슈들의 대상이 되는 위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권력 과정에서 권력화를 주도하는 위치가 아니라 권력화의 대상이 되는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들의 위치는 중심 세력의 집단들의 보호대상이 되거나 경계대상이 되어간다.[각주:9] 대안영상문화의 장의 중요한 역할은 타자화 되었던 소수자를 주체로 호명하는데 있다. 대안영상문화 기획을 통해 호명된 소수성은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 주체로서 자존감을 획득한다. 이 안에 미학성과 정치성의 전복적 테제가 녹아있다. 폭넓은 동시대의 통찰력을 관객, 작가, 기획자, 비평가에게 제언하는 과정인 것이다.


글. 김장연호(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표,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축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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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Moving on ASIA - 아무르강에서 태평양으로 흐르는 시간』, (루프프레스, 2012)의 필자의 글을 정책 글에 맞게 재편집하여, 제12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대안영상문화네트워크맵핑프로젝트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이며, 아직 미완의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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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의 특성상, 글을 2파트로 나누어서 발행합니다. 다음 편은 일주일 후, 발행될 예정입니다~^^



  1. 강내희,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 문화과학사, 2003, pp.226-227 1990년대 후반의 이러한 문화환경의 변화는 이전에는 없었던 대안문화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본문으로]
  2. 다음백과사전,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5XXX10996 [본문으로]
  3. 비디오(video, 문화어: 비데오)는 전기 신호를 이용한 영상 (신호)의 처리 기술과 그것을 이용한 주변 기술 전반에 관련되는 용어이고 오디오에 대응하는 분야이다. 인간 의식으로서의 내적 이미지에 대하여 렌즈를 통하여 형성되는 물적 이미지이다. 비디오는 사진, 영화뿐만이 아니라 방송, 영상디자인 등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상은 영상을 표현하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영상문화는 20세기 후반을 상징하는 새로운 문화적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오랜 역사를 가진 언어문화, 그중에서도 활자문화는 흔히 대비적으로 설명된다. 영상은 각기 재생 메커니즘에 따라 전달양식을 달리하지만, 어떤 양식이든 인쇄, 영화, 방송들의 미디어에 의한 복제 수단이다. 오늘날 매스커뮤니케이션 문화는 지나치게 거대화, 획일화한 영상의 대량반복으로 대중의 일상심리에 깊숙이 심고 있다. 빛을 사용하는 것으로 컴퓨터의 디스플레이 장치 등 텔레비전에서 쓰이는 영상 신호가 아닌 화상을 이용하는 기기 전반에 이용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기본적으로는 동영상(footage)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 위키백과,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144725 [본문으로]
  4. 위키백과,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95513 [본문으로]
  5. 김연호 책임편집, <새로운 상상 새로운 쓰임-한국 뉴미디어아트의 십년>,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2011.05.11 [본문으로]
  6. 교육학 용어사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하우동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10412 [본문으로]
  7. 개인적인 추정으로 194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유럽과 미국의 가부장제 교육을 받아온 남성 중장년층 세대가 전쟁터에 나갔던 시기이다. 이 공백을 매우기 위해 영화 <그들만의 리그>(감독 페니마샬)처럼 여성, 주변인, 청소년, 소수자들이 사회문화계를 매우고, 그 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자아 존중감을 찾았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에 수많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이성애자 남성의 공백으로 인해 하위문화들, 여성문화, 청년문화, 소수자문화, 게이문화에 권력의 분배가 새롭게 시작된다. 이 변동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했던 국가에서 1960년대 반전운동, 저항운동, 소수자운동 등이 그들의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8. 강내희,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 문화과학사, 2003, pp. 224-225 [본문으로]
  9. 백선기, 미디어, 그 기호학적 해석의 즐거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p.9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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