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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예술의 쟁점들 : 진중권 _column

yoo8965 2012. 10. 3. 19:16


헤겔에 따르면 시대정신은 예술에서 종교를 거쳐 철학으로 발전해 왔다.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기꺼이 ‘철학’을 ‘과학’으로 고쳐 썼을 것이다. 과학적 사유가 주요한 상징형식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17세기에는 예술마저 이성적 활동으로 간주되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전주의자들은 시와 회화를 합리적 규칙의 체계 속에 가두어 놓았다. 이 독단주의 미학은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치면서 약화되고, 그 과정에서 ‘미학’이라는 분과가 탄생한다. 미학은 감성을 복권하되, 그것을 유사이성으로 만들어 다시 이성의 아래 복속시키려는 합리주의적 기획의 일환이었다.

결정적 변화가 생기는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다.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낭만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예술과 과학을 날카롭게 대립시키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이 과학보다 우월한 사유형식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칸트에 따르면, 예술은 이성이 아니라 영감의 문제이며, 예술가는 장인이 아니라 천재이며, 천재는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을 제정하는 사람’이다. 나아가 하이데거는 예술이라는 세계를 열어 보여주면---이른바 세계의 개시(Welterschließung)--, 학자들은 그렇게 열린 세계 속에서 개념들을 정돈할 뿐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최근 과학과 예술은 서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의 원인은 물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야기한 패러다임 변동이다.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에 인간은 상상을 기술로 실현한다. 이른바 ‘기술적 상상력’(techno-imagination)이 시대의 새로운 상징형식으로 떠오른 것이다. 예술에서 기술적 상상력은 주로 ‘뉴미디어 아트’를 통해 발현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뉴미디어 아트’의 작품 중에서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진술을 남긴 것은 유감스럽게도 그리 많지 않다. 이는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결합의 어려움은 과학과 예술이 두 개의 상이한 상징형식이라는 데에 있다. 예술에서 우리는 지각적(perceptual), 정서적(emotional), 지적(intellectual), 영적(spiritua) 효과를 기대한다. 하지만 과학이 연구하는 것이 객관적 지각이라면, 예술이 주제화하는 것은 체험된(lived) 지각이다. 과학은 정서를 배제하기에 세계관(Weltanschaung)을 줄지는 몰라도, 세계감정(Weltgefühl)을 주지는 못한다. 예술이 주는 지적 충격은 과학보다는 철학적 성찰에 가깝다. 과학을 통한 영적 체험이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극히 예외적 현상이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시도하려면 이 이질성부터 명확히 의식해야 한다.



1.
과학과 예술은 세계를 탐구한다. 하지만 과학은 세계를 그 자체(an sich)로 탐구하나, 예술은 그것을 우리에 대한(für uns) 관계 속에서 탐구한다.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관찰행위 자체가 세계의 상태를 변화시킨다고 하나, 그때조차도 과학은 그 변화를 계량적으로 측정한다.) 예술이 다루는 것은 자연과학적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이른바 ‘생활세계’(Lebenswelt)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면, 과학은 대상을 그저 우리 앞에 있는 것(das Vorhandene)으로 표상하나, 예술은 그것을 우리와의 복잡한 실천적 의미연관 속에 놓인 것(das Zuhandene)으로 표상한다.

예술은 과학의 이론에서 세계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인식을 생활세계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우리에 대해 의미를 갖는 진술로 변환하지 못할 경우, 예술은 한갓 정보의 시각화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실제로 뇌 과학, 진화생물학, 복잡계 이론 등을 외삽함으로써 사실상 과학적 시뮬레이션이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로 전락한 작품들을 종종 본다. 물론 예술에 끼치는 과학의 영향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을 통해 매개된다. 이 매개가 없을 경우, 작품은 생활세계 속에서 우리에게 유의미한 진술이 될 수 없다.

광학과 인상주의, 무선통신과 절대주의, 양자역학과 폴록의 확률론적(stochastic) 회화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누구나 알다시피 광학, 무선통신, 양자역학은 현대인의 지각과 사유를 혁신함으로써 현대의 예술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인상주의와 절대주의와 액션 페인팅이 당대 과학의 성과를 그대로 예술에 외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대 과학의 영향을 수용하여 작품에 반영하는 데에 그친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진술을 자기들이 속한 ‘생활세계’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진술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나아가 과학과 결합한 예술은 ‘예술세계’ 속에서도 유의미한 진술이 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유파들은 모두 미술사 속에서도 중요한 미학적 진술이기도 했다. 가령 인상주의는 현대 회화의 출발이었으며, 절대주의는 기하학적 추상의 완성이었으며,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전후 미국 회화의 출발점이었다. 과학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갖추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이 생활세계와 예술세계에 대해 갖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과학적인 쇠라의 분할주의조차도 “색은 반사광에 불과하다”는 광학적 명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
예술은 과학의 이론만이 아니라 관측도구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 가령 에른스트 헤켈의 현미경 그림, 한스 페터 블로스펠트의 현미경 사진, 최근의 전자 현미경 사진과 허블 망원경 사진을 생각해 보자. 렌즈를 통해 얻은 이 이미지들은 원래 과학적 목적에 사용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이미지들이 동시에 예술에 버금가는 미학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 칸트는 예술을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이라 규정한 바 있다. 원래 과학적 목적을 갖고 있던 이미지들이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순수한 형식, 즉 예술이 되어 버린 셈이다.

렌즈의 이미지들은 그 매혹적인 아름다움 때문에--때로는 평가적(evaluative) 의미에서, 때로는 축어적(literal) 의미에서--‘예술’이라 불린다. 오늘날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기술형상(techno-image)의 제작은 대부분 이 유미주의 전략을 따르는 듯하다. 그 사이에 망각된 것은 한때 이 이미지들이 ‘세계개시’(Welterschließung)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즉 렌즈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세계, 즉 육안의 한계 너머에 있는 미시와 거시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경이’의 감정이 따랐으나, 렌즈 이미지가 보편화한 지금 그 감정은 어느 새 잊혀졌다.  

렌즈의 이미지가 던져주었던 그 ‘경이’는 예술사 속에 자취를 남겼다. 과학의 도구가 예술적 지각의 세계를 변화시킨 것이다. 가령 헤켈의 현미경 그림이 ‘아르 누보’에 끼친 영향, 블로스펠트의 현미경 사진이 초현실주의와 신즉물주의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라. 하지만 최근에 제작되는 기술형상들의 미학이 이런 수준에 도달했는지는 의심스럽다. 기술형상은 해석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자연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하이데거라면 이 역시 ‘존재망각’(Seinsvergessenheit)이라 부를 게다. 이 사실은 아직 뉴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 충분히 의식되지 않고 있다.


3.
과학은 예술에 표현수단으로 사용할 기술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뉴미디어 아트’의 가장 중요한 미학적 과제는 아마도 ‘어떻게 장치를 사용하면서 장치를 뛰어넘느냐’ 하는 것이리라.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카메라를 사용하는 예술가는 오직 그 장치가 기술적으로 허락하는 일만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예술가는 장치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 장치의 기술적 조건을 뛰어넘어야 한다.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거기에 실패하여 자신들이 사용하는 장치에 사로잡히곤 한다. 뉴미디어 아트 전시회가 종종 기술 시연장을 방불케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치를 사용하면서 장치를 뛰어넘는 것은 명백히 모순이다. 때문에 이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는 메카니코스(μηχανικός), 즉 교활한 속임수가 필요하다. 가령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의 눈을 찌른 후 “네가 누구냐?”는 거인의 물음에 ‘nobody'라 대답함으로써 다른 거인들의 추적을 따돌린다. 거인을 속인 오디세우스처럼 자연을 교활하게 속이는 자를 우리는 ’기술자‘(mechanic)라 부른다. 장인 ‘다이달로스’(Δαίδαλος)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날개를 달고 미노아의 미궁을 빠져나갔다. 다이달로스는 그리스어로 원래 ‘교활한 일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백남준의 위대함은 최초로 예술에 TV를 사용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는 그가 자신이 사용하는 장치의 기술적 한계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교활하게 속였다. 백남준이 신디사이저로 TV 영상을 합성했을 때, 그는 TV가 기술적으로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작업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시에 TV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었다. ‘수상기’(image -receiver)였던 TV를 슬쩍 ‘제상기’(image-maker)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장치로 이미지를 합성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을 백남준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냈다는 점이다. “올드 미디어의 아방가르드는 뉴미디어의 파이오니어다.” 다이달로스가 자신이 만든 날개로 크레타 섬을 빠져나가듯, 백남준은 아날로그 장치의 기술적 한계 내에 머물면서 동시에 아날로그의 섬에서 디지털의 대륙으로 날아올랐다. 이것이 백남준의 메카니코스(mechanicos)다. 오늘날의 뉴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속임수다. 



글.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



** 본 글은 대전시립미술관의 <프로젝트 대전 2012 에네르기> 학술행사에서 발표되었던 글임을 밝힙니다.


대전시립미술관, <프로젝트 대전 2012 에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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