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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의 소리 풍경 시리즈의 두번째 공연인 <우주인을 위한 배경음악>이 지난 12월 14, 15일 LIG 아트홀에서 열렸다. 참여아티스트들로는 2012년 LIG 아트홀 레지던스-L의 작가로 선정된 최수환을 필두로 권병준, ninaian(니나이언), 김남윤, 최승훈이 소리를 맡았고 영상/텍스트에는 이세옥, 최수환 그리고 공간은 적극이 연출하였다.


 '우주인'이라는 상상 속의 개념이 현실로 다가온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우주에 관한 탐사가 결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61년 유리 가가린은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비행을 하여 최초의 우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69년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로 달에 인류의 족적을 남겼다. 이런 과학적인 성과는 인간이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 끊임없이 미래와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열망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나 싶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1898)을 비롯하여 이후 여러 SF 작가들의 공상 과학 소설들은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이러한 기반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로 구체화 되었다. 음악적으론 어땠을까?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데이비드 보위가 1969년에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맞추어 싱글앨범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를 발매한다. 우주비행사의 고립을 노래하는 곡이지만 재미있게도 BBC의 달착륙 중계에 배경음악으로 쓰이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 여파 때문이었을까 곡은 영국 차트 5위, 전미 차트 15위까지 등극한다.

 

 물론 이 곡은 형식적인 측면으로 우주를 노래했던 것이지 사운드적인 측면의 결과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참여 아티스트인 ninaian(니나이언)의 박현민이 소속되어있는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라는 밴드와 솔로엘범인<for a little cruise>(2010)에서 보여주는 몽환적이면서도 명징한 기타 톤과 사운드스케이프가 상대적으로 사운드적인 측면에선 충실한 결과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사운드적인 맥락에서 최수환이 말하는 가구음악으로써의 '배경음악'은 제약 아닌 제약이 되어 참여 아티스트들의 표현을 저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짐노페디 1번(Gymnopedie No. 1)으로 친숙한 에릭 사티가 창안한 가구음악(musique d'ameublement)은 경청하기 위한 것이 아닌 가구처럼 존재하는 음악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소리가 주가 되어서 의미를 상정하던 기존의 사운드아트와 퍼포먼스들을 봤을 땐 공연이 사운드적으로 소극적인 형태를 띠게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무대장치와 한 시간 동안의 공연에서 스토리를 갖추려는 퍼포먼스 진행은 이러한 부분을 메우기 충분했다. 객석의 좌석과 바닥에는 에어캡, 속칭 뽁뽁이가 깔렸었는데 마치 계절에 맞게 눈을 밟는 느낌을 주었다. 또 공연 중간마다 관객이 의도치 않은 노이즈를 발생시키도록 유도하여 연주자의 '배경음악'에 무질서함과 불규칙함을 더해주도록 했다. 마치 우주라는 공간이 그러하듯 말이다. 무대에는 각 아티스트들의 악기와 장비들이 미리 세팅되어 있었으며 전면엔 큰 스크린이 있었다. 특이하게 그 위에서도 공연할 수 있게끔 신디사이저들이 배치되었다. 제의적인 성격의 퍼포먼스를 더욱 부각하기 위한 무대 설정이라고 보였다. 공연이 시작하고 특이한 의복을 입은 세 명의 연주자가 스크린 상단으로 입장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가톨릭 축일인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성주간)때에 입는 고깔 두건을 입은 채로 각각 등불, 방울들이 달린 막대기, 사람 흉상을 들고 있었던 점은 다분히 우주인, 우주적인 존재를 묘사하는 퍼포먼스로 다가왔다. 객석이나 다른 무대와는 다르게 높은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말이다. 그들은 신디사이저들로 몽환적인 사운드를 냈는데 노이즈나 불규칙함을 떠올리기 쉬웠던 기존의 사운드아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멜로디가 있어서 친숙했으며 반복적인 형식을 띤 기존의 음악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연주를 십 분여간 들려주었다. 마지막에는 사람의 흉상에 세례를 하듯 무구같은 방울 막대를 흔드는 의식을 보여주며 퇴장하였다.

 

 다음으로는 스크린을 통해 영상을 보여주었다. 주된 내용은 공연제목을 관통하는 여러 개념이었는데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들을 엮으려는 다큐멘터리픽션적인 시도가 엿보였다. 우주적인 우연과 여섯 개의 우주상수에 관한 이야기는 마틴 리스의 <<여섯 개의 수>>에서 가져온 개념으로 보이며 명료하게 와 닿진 않았지만 인용한 여러 영화 클립들은 더욱 픽션의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과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만물의 이론과 우주의 음악이라는 주제에선 유니즌(unison)의 개념을 설명하며 과학과 음악의 교점을 이야기했다. 몽마르트르의 검은 고양이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이야기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19세기에 파리 시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던 카바레 이름인 르 샤 누아르(불어로 검은 고양이)는 가구음악을 창안한 에릭 사티가 피아니스트로 일하던 곳이었으며 짐노페디(1888)를 작곡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키백과를 인용하자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인데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미시적인 사건이 거시적 세계에 영향을 미칠 때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이처럼 '우주인'으로 이야기 가능한 우주적인 개념들, 이론들과 '배경음악'으로 이야기 가능한 음악적인 개념들을 잘 엮은 다큐멘터리픽션은 주제를 관통함으로써 음악으로 이야기하기 힘든 공연의 부연설명을 충실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각각의 개념들에 대해서는 불충분한 배경설명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영상 전반을 이해하는 덴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영화 클립들의 모호함은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보단 증폭시키지 않았나 싶다.

 

 이어진 ninaian(니나이언)의 연주는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연주되었다. 기존의 작업인 포스트락 형식의 곡들과는 다르게 앰비언트에 가까운 음악을 선보였는데 컴퓨터로는 기타의 피드백을 이용한 하울링 같은 소리를 지속해서 내었고 기타는 딜레이가 있는 공간감 있는 톤으로 우주적인 느낌을 표현하였다. 피아노는 기타의 선율을 따라가는 듯싶으면서도 극단적인 저음으로 불길한 이미지를 만들며 혼란스러움을 일으켰다. 밝고 단조로운 기타의 반복적인 코드진행을 파하려는 듯 보였다. 인상적인 건 단순하게 이펙터들로 공간감을 표현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음계의 변화와 소리의 강약변화로도 곡의 완급과 우주의 공허한 공간감을 표현하려고 시도했던 점이었다.




 권병준의 연주는 그가 보여주던 테크놀로지를 필두로 한 사운드 탐구의 연장선이었다. 다양한 기기들로 반복적인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트레이드 마크인 장갑 컨트롤러를 이용한 즉흥적인 노이즈 컨트롤을 선보였다. 러버콘을 이용한 악기도 중간마다 연주했는데 자체적인 진동과 도구를 이용한 마찰로 노이즈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추정된다. 즐비한 기계 장비들과 더불어 기계적인 소리들의 협연이 흡사 세기말 사이버펑크적인 느낌을 주는 퍼포먼스였다. 반복적인 기계음과 즉흥적인 노이즈의 대비는 예측 가능함과 불가능함을 대비시켜 우주의 무질서함을 표현하려는 듯 보였다. 다른 공연들과 이질적이긴 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우주적 사운드를 탐구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했다. 

 



 

 마지막으로 처음 스크린 위의 공간에서 공연을 펼친 세 연주가가 후드만 벗고 최수환과 밴드 연주를 선보였다. 높은 곳에서 연주했던 우주인 혹인 신적인 존재가 지상으로 내려와 연주하는 찬가 같은 느낌이었다. 기타 드럼 베이스 신디사이저의 4인조 구성으로 일반적인 밴드형태의 곡을 연주하였으며 상승하는 기타 코드들과 리듬감 있는 피킹과 통통 튀는 신디사이저의 톤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밴드 공연이 끝난 후 스크린 뒤에서 여러 횃불을 흔들거리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공연의 막을 내렸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참여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배경이 대단하기에 밴드스타일의 유기적인 협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최수환, 권병준은 인디 1세대이자 음악계에 몇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이고 ninaian과 '3호선 버터플라이'의 베이시스트 김남윤은 지금 그 페이지를 써내려 가고 있는 독보적인 아티스트 들이기 때문이다. <우주인을 위한 배경음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사운드아트에서의 즉흥성과 근래 포스트락의 서사적인 기승전결 위에서 우주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함께 표현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공연 자체는 신선했다. 사운드아트가 난해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고 쉽거나 익숙해서도 안된다는 것도 편견이라고 말하면서 그 편견을 탈피하기 위한 시도가 돋보였으며 다큐멘터리픽션을 차용해 여러 가지 개념들을 서사적으로 풀어내려고 했던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사운드를 위시한 행위들이 그들만의 언어가 아닌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언어로써 자리매김하기 위한 족적으로써 의미 있는 공연이었고 앞으로의 행보 또한 기대되게 만드는 즐거운 우주여행이었다. 




사진제공: LIG아트홀(photo by 이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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