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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문화 : 뉴 테크놀로지와 문화협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 23. 02:10

피에르 레비(Pierre Levy)의 저서 『사이버 문화』는 서문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유럽의회의 주문에 의해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어떤 문화적 의미를 갖는가?'라는 주제 하에 작성된 보고서이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Ⅰ장에서는 사이버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기술적 개념에 대해 언급하며 Ⅱ장에서는 그 개념을 바탕으로 사이버 문화와 관련된 여러 사안들에 대해 다룬다. Ⅲ장에서는 앞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골자가 되는 주장들을 갖고 다면적으로 살펴보는 형식을 띠고 있으므로 상당부분 혼재되어있으며, 중첩되어 있는 내용들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반복·강조된 개념은 ‘가상’과 ‘쌍방향성’이다. 피에르 레비는 “사이버 공간은 컴퓨터는 중심이 도처에 있고, 경계도 없다. 그것은 하이퍼텍스트적이며, 미완적이고, 산재되어 있고, 살아 있어 엄청난 수로 ‘우글거림’(proliferation, multitude)의 상태에 있다. 그것은 사이버 공간 그 자체다.”[각주:1]라고 언급하는 데 바로 여기서 그가 주장하는 ‘가상’의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의 랑그와 파롤 (Langue/Parole)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소쉬르의 정의에 의하면 랑그는 인간의 머릿속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며 저장되어 있는 말이며, 파롤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창조적인 활동으로서의 언어실행이다. 피에르 레비는 사이버 공간 안의 정보들이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면, 사용자는 직감적인 항해를 통해 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길을 만들며 비로소 완결성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공동 지적 자산(CI)’과 ‘사이버 예술’에 대한 개념을 언급하며 끊임없이 쌍방향성에 대해 강조한다. ‘공동 지적 자산(CI)'는 그의 개념 중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데, 그의 말에 따르면 CI는 다양한 이들의 “역량과 상상력 그리고 지적 에너지들을 더욱 가치 있게 하고, 최적으로 활용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일이다. 이러한 CI의 이상적 형태는 분명 기억과 상상력 그리고 경험의 공유, 지식 교환의 대중적 실행,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유연한 조직과 협력을 거치게 된다.”[각주:2] 즉, 그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삶의 전반에 걸친 분야와 방대한 지식들을 사이버를 통해 어떻게 결집 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지식들이 중심에서 뻗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동일 선상에서 상호연결이 되어있기에 누구나 참여하며,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그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측면에 집중하였다. 일방적으로 작품을 수용하고, 기껏해야 의미 해석의 부분에만 관여할 수 있던 기존 예술에서의 관객의 역할은 이제 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부분으로까지 확대가 되었다. 혹자들은 이를 ‘저자의 종말’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피에르 레비는 일방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쌍방향적인 놀이를 하며 과거의 전통을 되찾아간다고 여겼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는 Ⅱ장 6절, ‘획일적 전체성 없는 보편, 사이버 문화의 본질’이다. 사실 이 부분만 이해해도 이 책의 절반 이상을 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보편성이라는 것은 문자라는 것이 생겨나고, 인쇄술의 발달한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문자에 의해 공간의 특수성과 맥락을 벗어난 이해가 가능해졌고, 여러 상황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 보편성을 이용해 군중들을 ‘통제’하고, 동일한 의미를 설정하려는 전체주의적 태도가 등장하게 된다. 그동안의 TV나 신문 등의 미디어들은 중앙에서 내려온 정보들이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수용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전체주의적인 보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이 나타나게 되면서, 늘 결합되어 있었던 전체성과 보편성이 해체되게 되는 일대의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사이버 공간은 미결정성을 유지하며 거대한 맥락 속에서 개별의 의미를 생성해낸다.


실제로 사이버 공간의 출현으로 나타난 주요한 문화적 사건은, 보편성과 전체성이라는 이 두 사회적 조작자 혹은 추상적 기계(이는 개념을 훨씬 넘어선다!) 사이의 단절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이버 공간은 문자의 발명 이후로 보편성과 전체성을 결합시켰던 커뮤니케이션의 환경을 해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온라인 기억 장치의 상호 연결과 실시간 역동성으로 인해 통신 참여자들이 동일한 맥락이나 생생하고 거대한 공동의 하이퍼텍스트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나 다른 규모나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문자 이전의 상황[구술적 상황]으로 되돌아간다.[각주:3]


『사이버 문화』는 우리의 실생활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어 미처 사유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하지만 10여년 적에 써진 책이기 때문에 이미 너무 보편화된 기술들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개념적이라서 마치 사자성어의 뜻풀이를 먼저 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사이버 문화에 대해 방대한 논의를 끌어왔다는 점과 그것이 낙관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이상적인 방향을 보여준다.

 

 

황민교(앨리스온 수습 에디터)

  1. 피에르 레비, 김동윤, 《사이버 문화》, 문예출판사, 2000, 70면 참조 [본문으로]
  2. 위의 책, 232-3면 참조 [본문으로]
  3. 위의 책, 167면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