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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과 절망.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창작자들에게 선사한 두가지 감성

 



PressPausePlay  : A Film about Hope, Fear and Digital Culture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접어들 무렵, 전 세계는 '디지털'로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시도했다. 모두가 디지털을 말했고, 디지털 방식으로 생각하자 강조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전화기의 다이얼과 손목시계의 초침은 전자 숫자판으로 바뀌었고, 조심스레 조정했던 라디오 주파수 다이얼마저도 리모콘의 버튼으로 대체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침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진행되었고 우리는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쫒기에 급급했다.


권아람, , scan image, 2006

시작은 달콤했다. 디지털 기술의 침투와 함께 세련된 디자인의 각종 디지털 콘텐츠의 소비 기기들이 등장했으니까. 그러나 소비자들이 행복하게 새로운 기술의 온기를 느끼고 있을 무렵, 생산자와 창작자들이 처한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초기 저항의 몸짓과는 별개로 여기저기에서 탄성과 푸념이 들려왔다. "스튜디오의 카메라들을 모두 디지털로 교체해야 지경이야", "영상 편집용 컴퓨터를 새로 구입해야겠어", "이제 악기 배울 필요가 없어졌네" 등등. 긍정적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 새로운 디지털 기기로의 교체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창작자들이 마주한 변화는 기기의 교체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더욱 근본적인 창작 환경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영상 에이전시 'House of Radon' 제작한 <Press Pause Play>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디지털 혁명에 의한 변화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다양한 문화-예술-산업계 종사자들의 인터뷰로 구성되는데 뮤지션부터 비주얼 아티스트, 영화감독, 팝 밴드 멤버 등 다양한 창작자들이 마주한 변화된 창작 환경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영상은 몇 가지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첫 번째 파트인 '기술은 위대하다(Technology is Great)'의 경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제공한 민주적이고도 개방적인 창작 환경의 변화를 소개한다. 디지털 기술은 예술 창작품이 지닌 미스테리를 벗겨내고 예술가들(혹은 예술가가 되려는 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2007년 타임지가 뽑은 그해 최고의 인물이 '당신(you)'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2000년대를 넘어 초기 디지털 혁명의 충격이 가시면서 소비자는 생산자의 위치로 전이되었고, 이제 예술은 특정한 누군가의 생산전유물이 아닌 누구라도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변화되었다. 바야흐로 UCC(User Creative Contents)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Mantra TV(뉴욕 맨하탄에 소재한 예술 전문 방송)''pop-up project'와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한 한국 작가 권아람은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만한 작가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사무기기로 친숙한 '스캐너(Scanner)'로 자신의 초상을 프린트했다. 별다른 전문기기나 기술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스스로의 예술 욕구를 표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디지털 기기는 이전까지의 숙련도가 필요했던 기기의 인터페이스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작업에 필요한 시간마저도 단축시켜 버렸다. 좋은 화질을 얻기위해 수천만원의 전문 장비가 필요했던 영상 작업도 이제는 가정용 DSLR로 커버가 가능하다. 심지어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장비조차 필요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사진을 전공한 토마스 루프(Thomas Ruff)는 인터넷에서 발견한 저화질의 전쟁 이미지를 확대하여 다시 사진 이미지로 만들어내었다. 디지털 이미지의 특성 상, 확대된 픽셀(pixel) 이미지는 참혹한 전쟁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추상적 이미지로 감상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현실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미디어가 담아내는 매개된 현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Thomas Ruff, <jpeg bo02>, 2004


디지털 기술은 예술 산업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앞서 소개한 디지털의 이점이 곧바로 산업계의 문제거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숙련된 기술 없이, 특정한 장비 없이도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은 그간 전문화되어온 해당 산업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영상에도 소개된 저술가이자 마케팅 전문가인  쎄스 고딘(Seth Godin) 2000년에 <Unleashing Idea Virus>란 책을 이북 형태로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했고, 자가-출판하여 아마존에 40$에 올렸다. 책의 내용이 아이디어의 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출판사에 무료 온라인 버젼을 출간할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노트북과 인터넷 만으로 오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을 읽게 만들었고, 아마존에 유료로 올린 책 또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 세계로 출간되어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성공은 그 자신이 이전에도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디지털 기술이 창작자의 생산 및 유통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즐겨듣는 mp3를 언제부터 유료로 다운받게 되었는지를.

 


Tacit Group, <Convex Composer>, 2010

 

아티스트는 더 나아가 스스로 기업을 만들고 자신의 브랜드를 소유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영상 제작을 위한 분담 구조는 감독과 후반작업, 편집팀, 홍보팀 등의 구성이었다. 각각의 파트는 분리되어 있었고 담당하는 일의 경우에도 상이했다. 음반 제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구분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의욕과 시간만 투자한다면 누구라도 혼자서도 이러한 과정을 콘트롤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일렉트로닉 사운드 그룹인 태싯그룹(Tacit Group)의 경우, 공연과 전시, 음반작업과 기술워크샵 등을 진행한다. 작품의 형태 또한 퍼포먼스와 음악, 비주얼 작품이 혼합된 형태이기 때문에 기존의 산업 구조에서 그들을 수렴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태싯 그룹은 자체적인 매니지먼트 기능을 갖추고 현재 활발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의 경우, 이러한 사례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창작 과정에서 '기법(Craft)'에 대한 인식과 창작을 분리시켰고 확장시켰다. 이제 훌륭한 사진가가 되기 위해서 현상 / 인화의 원리와 카메라의 구조, 그리고 값비싼 하드웨어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음악가는 더이상 악기 연주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변화에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 디지털 기술은 어떤 이들에게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주는 유용한 '도구' 이상의 것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절망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기술'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콘텐츠의 창작자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과 기법이 아니라 그들이 표출하고 싶은 (예술) 정신이며 주제 의식이다. 때문에 영상 첫 부분에 등장했던 의미심장한 나레이션은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다시금 핵심적인 명제가 된다.

 


"인간의 정신, 그것이 예술을 통해서 표현될 때, 어김없이 위대함을 창조해냅니다.

매체가 무엇이던 상관없어요. 경제적인 상황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수단으로 전달하던 관계 없습니다."

 


 


 * 본 글은 월간 Muine 3월호에 기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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