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꿈꿀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청사진 : 드림소사이어티 _exhibition reveiw

yoo8965 2013. 6. 26. 17:34


   인간은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현실을 도피하고자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왔다. 현실의 쳇바퀴가 버거웠던 것은 어제오늘일 만은 아닐 터,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예술’이라는 매체에 담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술을 비롯한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탈욕구를 보다 더 심층적으로 풀어주는데 일조하였다. 그만큼 예술은 인간이 꿈꾸는 작은 이상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현실을 넘어선 또 다른 자아를 찾고자 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렇게 물음을 던지고 실천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자 다른 생명과는 구분되는 행동이다. 이렇게 인간의 현실을 넘어선 또 다른 세계를 표현해 주는 전시가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문화역 서울 284에서 지난 4월 19일~5월 26일에 열렸던 전시 <드림 소사이어티>는 동시대 한국작가 및 해외작가 10팀(개인 포함)의 디자인, 영상, 설치, 패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놓고 인간이 꿈꾸는 21세기 이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사실 미래연구가 겸 소설가인 롤프 옌센의 책 제목과 같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지만 ‘미래 사회에 대해 예견한다.’라는 맥락은 모두 일치한다. 이것은 현재를 통해 바라보는 작업으로 단순히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 이전에 현재를 진단하는 중요한 과정으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는 현재가 모여 만드는 시간이므로 우리는 예측이라는 과정을 통해 현재를 반성해보기도 하고 다가올 시간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전시장은 근대 서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서울역에 위치한다. 구 서울역사라는 이름하에 ‘문화역 서울 284’가 공식 출범한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이곳은 서울을 상징하는 하나의 랜드마크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문화역 서울 284는 과거의 시간에 멈춰 있지만 결코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의 장소에서 미래를 이야기하고 현재를 진단하는 최적의 장소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전시가 열리는 장소성이 단순히 대중의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는 장점 이외에도 시간성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드림 소사이어티>는 꿈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고 본다. 





1. 무거운 옛 건물의 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가면 수십 대의 모니터에서 펼쳐지는 낯선 이미지가 펼쳐진다. 이미지들은 플라스틱적이고 고혹적이다.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이 이미지는 사진작가 김용호의 작품이다. 작가는 그간 활동해오면서 촬영했던 현대자동차 광고의 이미지를 분절시켜 TV모니터 속에 설치했다. 작가는 소비를 통한 자아의 실현과 욕구 충족은 진정한 꿈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처럼 세속적인 삶의 덧없음을 내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TV모니터 속의 이미지를 소유하려면 소비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또 다른 꿈의 실현일지언정 정말 진정한 꿈의 실현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김용호 작가는 200개의 모형 로봇을 똑같은 모양과 배열로 설치한 ‘모던보이’를 선보였다. 이들은 현대인을 상징하며 아이디어와 지식을 기반으로 자아를 형성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표상한다. 하지만 모던보이들은 그야말로 몰개성적이고 획일적이다. 각 줄에 나란히 서있는 모던보이는 하나의 전선으로 이어져있다. 누군가 스위치를 통해 불빛을 통제하는 순간 모던보이는 모두 빛을 잃고 만다. 관람객들은 모던보이를 위에서 바라본다. 모던보이들이 작은 탓도 있지만 이것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사회적 강자를 체험해 보는 하나의 구조인 것이다. 모던보이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바라본다면 우리의 미래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임선옥 작가는 패션디자이너로서 패션아이덴티티에 대해 고민한다. 작가는 작은 런웨이에 그녀의 옷을 설치해 놓았다. 보통 패션쇼에서의 런웨이는 상당히 중압감을 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런웨이에 서있는 모델들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그들의 당당하면서도 새로운 옷의 디자인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임선옥 작가의 런웨이는 매우 작으며 그 주체가 모델이 아닌 옷이다. 옷은 하나의 정지된 포즈로 런웨이를 가득 채운다. 작가는 옷이 가지고 있는 조형성, 조각적 요소에 주목한다. 그것은 마치 토르소를 보듯 표정은 없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새로운 조각의 제안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입을 수 없는 옷이지만 전시되는 옷으로서의 또 다른 가능성은 예술과 패션의 새로운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DJ KUMA는 오세인 설치 미술가와 협업하여 사운드의 이미지화를 실현했다. 사운드의 다양한 실험을 꾀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사운드가 가지고 있는 본질과 비주얼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함께 작용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즉, 사운드가 가지고 있는 시간성과 비주얼 작업이 가지고 있는 시각성과 공간성을 하나의 융합적 컨텐츠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새로운 음악과 미술의 경계에 대해 실험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일련의 사운드는 함께 참여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의 이미지를 사운드화 시키거나 작가의 목소리를 이용하여 새로운 사운드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오세인 작가는 그가 만들어낸 사운드를 바탕으로 시각화 하여 소리가 가지는 이미지를 찾고자 하였다.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스피커들은 서로 여기저기로 뻗어나가는데 마치 선 드로잉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관람객들은 각각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사운드를 체험해보면서 이미지를 연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4. 동선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극장과 같은 공간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건축가 조민석의 작품이 상영된다. 조민석은 미디어아트 작가 서현석과의 협업을 통해 건축적 아이덴티티를 실험하였다. ‘줌 아웃/존 아웃(Zoom out/Zone out)이라는 이 작업은 40개의 전세계의 건축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축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신비한 음악과 내레이션, 그리고 반복되는 줌/아웃되는 건축물을 통해 우리는 실제에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느끼게 된다. 마치 환상의 동화 속 나라를 연상키라도 하듯 아름답고 황홀한 이미지를 보게 된다. 이미지에 익숙할 때쯤, "What can you see?"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아름다운 건축의 겉모습을 넘어 인간에게 필요한 진짜 건축, 나아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무엇인지 의문을 던진다.





5. 전시장 안쪽 복도에 길게 전시되어 있는 네온사인 간판 작업들은 관람객들에게 매우 흥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원색의 색감, 압도적인 크기, 반복적인 문구 등 시선을 압도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업들은 그래픽 디자이너 ‘슬기와 민’의 작업으로,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근원적인 문제를 유쾌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작가 집단이다. 그들이 선보인 네온사인 작업은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대화를 이미지화 하였다. 하지만 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미건조함이 느껴진다. 반복적인 문장 속에서는 답답함이 느껴지고 띄어쓰기의 공간에는 알 수 없는 특수기호들이 난입해있다. 작가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바를 특수기호의 이미지를 빌려 사용하고 있다. 암호와 같이 난입해있는 이 대화 속에서 소통의 해독 불가능성을 경고한다.





6. 한국의 팝아트 작가로 손꼽히는 이동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가 꿈꾸었던 작품의 현실화를 제시하였다. 그는 2001년부터 ‘박스 로봇’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그려냈던 작품은 캔버스의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의 3차원적 공간에 존재하게끔 재탄생 시켰다. 즉, 그림으로써 존재했던 이미지가 현실화되는 작업을 통해 꿈의 실현을 이룩한 것이다. 꿈이면서 현실인 동시에 현실이면서 꿈인 이 작업은 도시라는 획일화되고 딱딱한 구조물 앞에 서있다. 그가 바라보는 박스 로봇은 아마도 이상향인 동시에 현시대의 피난처로 보인다. 아마도 따뜻하고 감정적인 로봇은 현시대의 차가운 인간들의 모습을 꼬집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7. 다이토 마나베는 이번전시에서 모토이 이시바시라는 공학자와 협업하여 예술과 공학이 만나는 지점을 모색했다. 그가 선보인 ‘포인츠(Points)’라는 작품은 관람객이 스크린 앞에 서게 될 때 센서에 의해 실루엣의 정보를 얻고 이 정보대로 에어건의 총알이 종이에 발사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모든 과정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며 정보에 따라 에어건이 달리 움직이는 것이다. 에어건은 컴퓨터의 명령에 따라 정확한 위치에 총을 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데이터의 합산으로 또 다른 정보를 만들어 냄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술적 데이터에 의해 움직였던 에어건이 쏜 흔적은 감성적이다. 차가운 에어건이 그려낸 것은 드로잉적 요소가 다분하며 이것은 마치 인간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율동과 에너지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또한 전시장 작은 모퉁이에는 ‘얼굴 전기자극(Electric Stimulus to Face)’이라는 제목의 영상작품을 선보인다. 음악을 전기 신호로 바꾸고 이 신호를 인간에게 연결하게 되는데 전기 신호에 의해 인간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을 촬영한 영상이다.
이 모든 과정은 과학적 힘을 빌려서 상당히 정확하고 규칙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화면 속 인간에게 보는 것은 이러한 규칙적이고 기술적인 모습이 아닌 자연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표정인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감정’의 코드를 읽을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반드시 감정적인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결국 차가운 기술도 따뜻한 감성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8. 정연두 작가는 현실과 꿈 사이의 묘한 간극을 조절하는 작품을 해왔다. 이번에 그가 선보인 작품은 실제 자동차를 이용한 설치 영상 작품이다. 관람객은 특수 처리된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창문 밖 스크린을 응시한다. 그러면 스크린에서는 마치 지금 운전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진짜 같은 허구의 공간이 펼쳐진다. ‘나’라는 실재 인물이 허구의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내가 바라보는 스크린속 나의 모습은 카메라가 비춘 또 다른 나의 모습일 뿐이다. 어릴 적 오락실에서 보았던 레이싱 게임이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허구의 공간에서 실재적 경험을 하는 것과 같은 착각은 대상으로부터 또 다른 환영을 느끼게 해 주는데 있다.





9. 하이브리드 스페이스 랩은 독일에 기반을 둔 복합 문화연구소이다. 이들의 모토는 융합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역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그들만의 언어로 과거와 미래를 융합시키는 작업을 선보였다. 서울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구시대적 의미는 과거를 상징하는 하나의 코드가 되었으며 미래의 이미지인 디지털 인쇄와 화려한 색채에 대비시켜 과거와 미래가 마주하는 결과물을 가져왔다. 관람객은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의 결합은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10. 마지막 전시장의 제법 큰 공간에는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세 개의 리어스크린 속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으며 이들은 몸짓으로 의사를 전하고 있다. 세 개의 스크린은 서로 독립된 공간으로써 존재하지만 모두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어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즉,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공간을 몸짓언어로 표현하면서 그것이 결국 역사임을 반복적 구조로 표현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관객들이 작품을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작품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게 되는데 마치 스크린 속 무용수의 또 다른 몸짓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스크린이라는 공간의 역할이 매우 크다. 반복적 오늘의 흐름이 결국엔 미래이고 내일이라는 사실은 특별할 것 없는 사실이지만 진리임에는 틀림없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미래를 예견하고 현재를 바라보고자 기획된 전시다. 그 중심에 융합과 새로운 발견이 있었고 특히 현대자동차의 아트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되어 기업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모습을 보였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단순히 꿈꾸는 사회를 넘어 우리가 가고자 하는 실현가능한 미래의 모습이며 좁게는 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예술의 새로운 형태까지도 보여준 전시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대자동차의 이번 실천이 과도하게 드러내놓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또 다른 광고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끔 한다. 기업이 예술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중적 관심을 유발하므로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상품의 하나로 인식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대중의 그릇된 인식을 야기할 수 있는 점은 분명 생각해 볼 요소로 꼽힌다. 이러한 방식이 예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으로 제안되는 것인지 아니면 고도의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취급되는지는 조금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의 <드림 소사이어티>는 다소 협업에만 국한되어있는 것이 아쉬움을 산다. <드림 소사이어티>라는 전시제목처럼 훗날 예술이 지향하고자 하는 꿈은 아마도 무경계의 실천일 것이다. 물론 이미 실천하고 있고 다양한 접근의 실험을 하고 있지만, 정말로 예술의 ‘드림 소사이어티’를 꿈꾼다면 한 발짝 물러나 한 발짝 다가가는 미덕이 필요할 것 같다. 어쩌면 모두가 꿈꾸는 새로운 영역이란 이미 존재한 곳에서부터 시작될 지도 모르니까.


글. 이진영(앨리스온 수습에디터)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전시 홈페이지(http://brilliantart.kr/)에 공개된 작품 이미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