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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장여울 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2. 1. 06:00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장여울, 강, 2006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은 있을까?

세상은 참 변덕스럽다. 세상을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 하나하나가 다 변덕스러운 탓이다.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는 매일이 너무 두렵다고 했다. “어제는 어쨌든 지나갔지만 오늘은 아직도 이렇게 남아있고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내일은 그저 불안할 뿐”이니까. 그래서 인간이란 존재는 늘 변덕스럽다. 하지만 존재의 불안과 변덕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변덕은 때로 역동적이고, 속도감 있으며, 쾌감이 넘친다. 매일을 새로운 것에 몰두하는 사이, 사람들은 자신이 정작 무엇에 불안해하고 있었는지 쉽게 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죽일 놈의 변덕’을 ‘대중문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다. 한없이 줏대 없는 인간들이 존재의 불안을 외면한 채 즐기는 시간. 대중문화란 그런 것이다.

  한 ‘아가씨’가 있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고민하다 말이 어려우니 글을 쓸까 했단다. 그런데 ‘아가씨’의 글이 어쩐지 통했다. 사람들과 통하고, 미디어와 통하니 대중문화와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대중문화를 해체하고 읽어주는 작업, 이 ‘아가씨’가 해냈다. 정여울의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책의 부제는 어렵다. “미디어 디스토피아에서 미디어 유토피아를 상상하다.” 제목에서 희망을 봤다면서 무슨 소린가. 화를 내기 전에 우선 지금의 미디어 디스토피아 상태를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의 홍수. 혹자는 그렇게 불렀다. MMS, DMB, UCC... FBI나 쓸 작전 코드명 같지만 전부 지금의 미디어 대란에 앞장선 대표주자들이다. 베스트셀러 10위권의 소설 몇 가지, 요즘 집에만 가면 본다는 그 드라마만 봐서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시대는 갔다. 대중은 더 나은 것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일상&철학, 연애의 테크놀로지, 상처, 산책자, 소통 임파서블, 안녕 휴머니즘. 차례만 봐도 대중문화의 디스토피아를 현란한 연구 결과로 진단하고 있는 논문은 아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생각의 단편들을 몇 개의 부제 안에 던져 놓은 모양새지만,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괴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질적 판타지들이 벌이는 동상이몽의 축제 드라마 <파리의 연인>, 최동훈식 사기의 미학 <범죄의 재구성>, 타인의 내면을 투사하는 카메라 옵스 큐라 <진주 귀고리 소녀>. 정여울의 발랄하지만 정돈된 문체가 묘사하는 친숙한 미디어의 흔적이다. <공간>, <씨네21>, <출판저널> 등에서 책과 미디어에 대한 리뷰를 써온 필체의 즐거운 힘은 책에 그대로 살아나 있다. 판화 느낌의 삽화와 어울리는 편안한 문체는 어려울 법한 미디어 담론도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함께 실린 ‘<아는 여자>와 김선일씨의 죽음’ 편에 가서는 분석과 감상이 주된 미디어 담론에 그치지 않고 미디어가 세상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길을 잠시 안내하기도 한다. 시트콤 <프렌즈>를 앤소니 기든스의 현대사회와 섹슈얼리티 분석을 통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전, TV 드라마, 영화, 현대사회, 그리고 소소한 일상을 넘나들며 넓지만 깊기도 한 그녀만의 ‘미디어 보는 눈’을 빌려준다. 정여울이 경험한 미디어는 적당히 친숙하고, 적당히 어려워서 누구나 가까이 다가가고 또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런 그녀라도 궁극적인 ‘미디어토피아’만은 ‘미디어리스 엔터테인먼트(Media-less Entertainment)’, 즉 미디어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통하기 위해 미디어를 끼고 살지만, 어느 샌가 미디어 자체에 짓눌려 버린 사람들. 모든 속박을 벗어나 세상 모두와 자유롭게 소통하게 되는 날, 그 날은 올 수 있을까? 
 
오늘 저녁에도 어김없이 드라마를 볼 것이다. <주몽>인지 <황진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이의 첫사랑의 죽음으로 훌쩍 눈물을 보이는 철없는 인간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미디어로 소통하는 중이다. 그래서 변덕쟁이에 철도 없는 대중이지만 그들의 문화가 결코 시시하지는 않다.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그들의 변덕으로 만들어진 가벼운 배신 사이에서 드라마 제작자들은 목이 타겠지만, 그래서 더 괜찮은 소통법이 등장한다면 그들을 조금쯤 괴롭혀 나쁠 것은 없다. 공감하고 또 공감하면 미디어의 틀을 깨고 우리는 자유롭게 갖가지 감정을 나눌 것이다. 나도 이 울창한 대중문화의 숲에서 문득 희망을 본 것만 같다.


글. 이효정(olive9기획홍보 sonnzeoo@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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