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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없는 콘서트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사건·배경이라고 외워왔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소설을 구성하려면 필수적으로 위의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한 장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필수요소가 존재한다. 콘서트는 어떨까? 하나의 콘서트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음악가, 관객, 음악이라는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 물론 장소 및 장비도 콘서트를 구성하는 요소로 꼽히지만 가수가 거리에서 무반주로 노래를 해도 최소한의 ‘콘서트’는 성립되니 장소와 장비는 필수적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가수 없는 콘서트’가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 본다면,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신개념의 콘서트가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뜻하고 콘서트의 핵을 담당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나 보던 복제 가수가 콘서트에서 공연을 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시대가 왔다. 기술발전에 따라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이른바 S급 짝퉁은 세상 도처에 널려있다. 이 ‘짝퉁’이 콘서트의 핵인 가수라면 어떨까.

국내 최초로 홀로그램으로 공연을 볼 수 있는 전용 콘서트장이 개관한지 두 달 남짓 되었다. 에버랜드와 YG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하고 디스트릭트에서 제작한 홀로그램콘서트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콘서트를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그동안 단발성 홀로그램 콘서트는 있었지만 전용 콘서트홀에서 상설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번 사례가 처음이다. 홀로그램이란 ‘완전하다’라는 뜻의 'holo'와 '그림(메시지, 정보)'이라는 뜻의 'gram'이 합쳐진 말이다.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홀로그램은 대상의 3차원 입체상을 의미한다. 즉, 입체성을 가진 사진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본래 피사체의 일부만 담고 있어서 완벽한 피사체의 모습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영상이 가지고 있는 3차원의 방식을 도입하여 보다 완벽한 사진을 구축하는 것이다. 영상과 사진의 경계에서 완벽한 정보를 담기 위한 매체로 역할을 하게 되면서 현재 다방면에 사용되고 있다.

본 공연은 정식 오픈을 앞두고 시범 서비스로 진행하고 있으며 공연은 회당 30분가량 이어진다. 이 공연이 다른 공연과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속임수’에 있다. 공연장에 진짜 실존하는 것은 관람객뿐이다. 콘서트의 요소 중 가수와 음악이 모두 진짜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가수는 없다. 지난 해,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싸이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화려하게 등장을 하지만 실존하는 싸이가 아닌 가짜 싸이다. 즉, 가수로 등장한 싸이는 하나의 이미지이자 영상이다. 가짜 싸이는 가짜라는 칭호가 무색할 만큼 너무나 진짜 같은 것이 특징이다. 비록 허상에 불과하지만 똑같은 크기와 재현 방식은 마치 사실주의 회화를 처음 보고 감탄사를 뿜었던 느낌과 유사할 것이다. 현실이라는 환경을 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더 놀라운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우리가 3D 영화를 보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습에 전율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치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관람자들은 본인의 얼굴을 촬영한다. 이때 찍은 사진이 콘서트에 사용되는데 사진 한 장을 찍음으로써 관람객은 콘서트의 객체(관람객)가 아닌 주체(공연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관람객의 얼굴데이터를 모아 댄서의 얼굴로 바꾸면서 몸치도 강남스타일을 신명나게 추는 댄서가 된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콘서트의 주인이 되며 스스로의 얼굴을 찾는 과정에서 가수와 함께 무대에 함께 있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사실 관람객 하나하나는 무대에서 춤을 춘 것은 아니다. 객석에서 스피커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흥을 올리고 춤을 추었더라도 진짜 댄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속임수와 착각 속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판타지 세계에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하며 서로가 ‘진짜’라고 외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무엇이 진짜인가.


싸이 홀로그램 콘서트 공연장면, 관람객의 얼굴을 데이터로 하여 직접 콘서트에 참여하도록 연출한다.
출처 : 에버랜드 홈페이지(http://www.everland.com/)



인터넷 시대가 열린 이른바 밀레니엄 시대부터는 가상세계라는 개념이 대중화 되면서 이를 응용한 예술작품도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예컨대 웹페이지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초기의 공간활 용을 넘어서서 최근에는 웹에서 작품을 직접 제작하여 동시에 불특정 다수와 작품을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환경변화는 상상도 못할 예술을 만들어주는데 일조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기술개발이 활발해지는 최근, 예술과 기술이 서로의 기술을 넘나들며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가 대중화되었고 ‘어플(app)’을 통해 누구나 작품을 만들 수도 있으며 내가 만든 작품을 실시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기술개발의 확대로 말미암아 표현의 한계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가상의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공연예술 또한 변화하게 된 것이다. 과거의 예술이 ‘아우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현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예술 환경은 복제와 대중성을 키워드로 움직이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 Benjamin,1892~1940)에 따르면 19세기에서 20세기의 예술의 패러다임에서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아우라(aura)의 붕괴’라고 한다. 물론 20세기 이전에도 예술의 복제품은 언제나 존재했다. 수련과 연습을 위해 모작을 그리거나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작품에 아우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벤야민이 말했던 예술작품에서의 아우라란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혼과 흔적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원본이 가지고 있는 ‘진짜’라는 코드가 상실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는 그야말로 복제의 시대라고 할 만큼 복제가 양산되어 있다. 원본이 복제를 낳고 그 복제품이 복제를 낳아 끊임없이 확산시키는 이러한 구조가 이미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다. 원본의 오리지널에 대한 가치에 대한 논의 보다는 모두가 손쉽게 소유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서 예술에서도 다양한 형태 변형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 원본의 가치는 이전보다 많이 상실되게 된다. 진짜, 즉 원본은 어딘가에 고유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이를 표방한 가짜도 진짜 못지않게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진짜의 위치는 더 위태로워진다. 원본은 절대로 붕괴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현혹시키는 판타지는 이제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백여 년 전부터 시작되어왔으며 현대에는 기술발전의 힘으로 새로운 가짜의 판타지가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가짜를 보고 진짜라고 착각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안목도 높아졌을 뿐더러 쉽게 현혹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짜를 소유함으로써 진짜와 함께 있으며 더욱 친밀해 졌다고 느낀다.

홀로그램콘서트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로써 보다 쉽고 가깝게 원본에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하였다. 진짜 싸이의 콘서를 방문하여 공연을 보게 된다면 적지 않은 비용에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홀로그램콘서트는 실제 싸이와 똑같은 가짜 싸이와 더불어 실제 공연장 보다 훨씬 가깝게 그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저비용으로 가까이에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진짜 공연과는 큰 차이이자 메리트이다.

싸이 홀로그램 콘서트 공연장면, 출처 : 에버랜드 홈페이지(http://www.everland.com/)


일본은 우리보다 조금 더 앞선 기술과 기획으로 홀로그램 콘서트 시장에 한 발 앞서나갔다. 가장 큰 예로 하츠네 미쿠라는 가상 가수의 콘서트를 홀로그램으로 진행하였으며 세션은 모두 실제 사람이지만 가수인 하츠네 미쿠는 ‘캐릭터’이다. 사람들은 캐릭터가 실제와 같이 노래를 하는 모습에 열광을 한다. 이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인 캐릭터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공연을 하고 있다. 즉, 실시간으로 관객과 함께 음악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것은 캐릭터 가수가 아무리 가상의 존재라고 할지라도 과연 가짜이며 아우라가 없는 실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사례이다. 싸이 홀로그램 콘서트의 경우 진짜 싸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리얼한 것이 특징이라면 하츠네 미쿠는 처음부터 가상성을 가진 채 탄생한 창조적 산물인 것이다. 가상에 존재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것과 똑같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하츠네 미쿠 공연 동영상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채웠던 공연이 어느새 끝나고 조명이 꺼진다. 화려했던 무대도 가수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까만 무대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전부이지만 스스로 열광했던 대상이 진짜가 아니라 일종의 허상이었다는 사실에 허탈하다. 빛에 의해 탄생되는 가짜가수는 이렇게 또 다른 형태로 새롭게 탄생된다. 예술은 언제나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시대와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이전에 없던 양상을 보인다. 벤야민이 언급한 기술 복제의 시대는 아우라가 상실되어 예술성이 모호해졌다면 현대의 예술은 진짜와 가짜가 호흡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가수없는 콘서트가 상상이 되지 않고 말이 되지 않은 이야기라면 이제는 그것마저도 가짜가 아닌 진짜의 시대 아닌가.


이진영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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