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온에서는 최근 진행되었던 일민미술관의 <탁월한 협업자들>과 아르코미술관의 <2의 공화국> 이라는 전시를
살펴보며, 현재 국내 미술계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협업의 형태를 관찰해볼 것이다. 협업이라는 형태는 예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과정에서 주요하게 취급되었던 단어이자 작업 형태였지만, 현대 예술에서의 협업은 그 자체로 새로운 주제이자 소재가 된다.
특히, 미디어 문화 예술에서의 협업은 이전까지의 독자적으로 수행되었던 예술과는 달리 작가주의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총체 예술을
구축할 수 있는 전제로 기능한다. 따라서 현재의 미디어아트 및 현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그에 따른 시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 국내 미술계에서는 ‘협업’을 암시하는 제목의 전시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일주 & 선화 갤러리의 한국
현대미술 연속 기획전에서는 2인의 컨템포러리 작가들을 묶어 조명하고 있으며, 일민미술관과 아르코미술관은 보다 직접적으로 협업의
형태를 제시하는 타이틀(<탁월한 협업자들, 일민미술관>, <2의 공화국, 아르코미술관>)의 전시를 선보였다.
아트선재의 《아트선재 오픈 콜 #2: 쭈뼛쭈뼛한 대화》은 조금은 색다른 협업의 형태를 제시했는데, 예술가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라는 비창작자를 창작의 주체로 끌어들였다. 지난 해 국내의 문화 예술계 전반을 조명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3 문예연감>에서 지난 해의 대표적 특징으로 기술한 ‘장르 간 협업’의 흐름(특히, 국악, 양악, 무용 등
공연계)이 미술계에도 불어닥친 것일까? 올해에는 시각 예술에서의 협업의 형태가 전시의 주제와 소재로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내 미술계에서의 협업 형태의 연이은 등장은 카셀 도큐멘타 초청작가인 문경원-전준호가
선보인 효율적인 협업 시스템의 선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갈수록 심화되는 현대 예술에서의 복합적 장르 혼합 현상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이 더욱 타당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이종의 예술을 혼종시켜 제시하기에는 예술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역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매체 예술 장르로 국한해서 보자면, 이와 같은 협업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형태이다.
새로운 기술 매체를 사용해야 하는 까닭에 예술가들의 과학-기술자들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전제가 되었으며, 매체를 적극적으로 예술
영역에서 수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견지되어온 자세였다. 과거 한 인격 안에서 결합되기를 꿈꾸었던 예술+과학이라는 다빈치적
이상향이 보다 효율적인 전문가들의 창작 시스템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으로 보자면, 현대 예술에 있어 이종간의
혼합, 장르간의 넘나듦은 일종의 트렌드적 현상이다. 당연하게도 매체 예술의 경우에도 현대 예술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더군다나 디지털이라는 근본 속성은 서로 다른 예술 장르의 언어들을 일련의 숫자로 정착시켰다.
협업이란 말 그대로 힘을 합치는 행위이며, 같은 종류의 생산,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술계에서 기대하는 협업은 단순히 수학적 연산이나 물리적 변화의 차원을 넘어선다. 오히려 그러한 수식적인
도식에서 벗어난 보다 초월적이고 감성적인 그 무엇이다. 과거로부터 이종 장르 간의 혼합과 뒤섞임은 예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존재해왔다. 그러나 예술은 여타의 분야 및 장르와는 달리 뚜렷한 목적이나 수치로 제어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때문에 ‘협업’이라는 단순한 단어조차도 예술계에서 사용되는 순간, 황홀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된다.
1. 탁월한 협력자들 / 일민미술관 : 2013. 6/28 - 8/25
2013
년 6월 28일부터 8월 25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는 “탁월한 협업자들” 전시가 열렸다. 전시에는 권병준, 데이비드디그레고리오,
장영규, 정영두, 최춘웅의작업들이 소개되었다.각각 사운드 아티스트, 뮤지션, 음악감독, 안무가, 건축가인 이들이 전시 소개 작가로
선정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시 현장에서 나눠준 전시의 소개문에는 그 기획 의도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영상,
퍼포먼스, 무대연출, 리서치 등의 다양한 창작 및 작품 생산 과정에서 타 분야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은 동시대 시각미술 내에서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이 전시는 이러한 작품 창작과 생산의 영역에서 협업체제가 형성하는 집단적 창의성의 영역, 그리고 전통적으로
작가 1인의 영역이 공고했던 미술 현장에 협업 체제 이후의 복합적인 영향관계 속에 형성되고 재고되는 저자성의 영역을 질문하고자
기획되었다. (중략) 이번 전시는 일차적으로는 각 아티스트 개별 작업과 협업의 결과물들을 모아 아카이브를 구성하여 각 아티스트별로
작품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중략) 또한 협업의 프로세스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들을 일부
전시하여 이를 통해 관람객은 결과물에 가리워지는 창작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예술 장르나 아티스트 간의
상이한 성향들이 서로 만나고 엮이는 협업의 영역-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협업 과정과 결과물의 복합적인 영역을 좀더 이해하고
가깝게 살핌으로써 아티스트들간의 고유한 영역들이 어떻게 만나고 수용되고, 번역되며, 적용되거나접합되는지 접근해 볼 수 있다.”
전시 소개문은 (1) 각 예술가의 개별 작업과 협업의 결과물들을 모아 아카이브를구성하고, (2) 협업의 프로세스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들을 일부 전시하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관람객이 (1) 각 아티스트별 작품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하고, (2) 결과물에 가리워지는 창작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며, (3) 협업 과정과 결과물의 복합적인 영역을 좀더
이해하고 가깝게 살필 수 있게 해,(4) 아티스트들간의 고유한 영역들이 어떻게 만나고 수용되고, 번역되며, 적용되거나 접합되는지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중간 목표로 삼았다. 이를 통해 “탁월한 협업자들” 전시는 궁극적으로“집단적 창의성의 영역과 저자성의
영역을 질문”하는 것을 전시의 주제로 삼았음을 밝혔다.
전시 구성
“탁월한
협업자들”은 소개문에서 밝힌대로 각 예술가의 개별 작업과 협업의 결과물들을 모았고, 협업의 프로세스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들을
일부 전시하는 전시구성방식을 사용했다. 전시는일민미술관의 1, 2, 3층으로 나눠 진행되었다. 1층에는 정영두, 최준웅, 장영규의
작업들이 소개되었고, 2층에는 데이비드디그레고리오, 최준웅, 장영규의 작업들이 전시되었으며, 3층은 권병준 작가의 설치작업이
단독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1층 전시장 앞 로비에는 최준웅 작가가 디자인한 기둥 서점의 책장이 서있었다. 흰색조의 두
기둥에는벽감식으로 여러 개의 책장칸을 두어 여러 책들을 꽂아두고 있었다. 두 기둥 책장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단순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었다.그러나 밋밋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하여 무난하게 느껴지도록
만든 것으로 보였다.
1층 입구에는 안무가인 정영두 작가가퍼포머로서촬영에 참여한<추상적으로 걷다-한 지점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나선형의
운동>2012 영상이 투사되고 있었다. 해당 작품은 김소라 작가의 기획 하에, 장영규 감독의 음악이 더해진 작업이었다.영상
속에서 천천히 비틀거리듯 움직이는 정영두 작가의 모습은 배경의 마른 잡초들과 건물들에 대비되어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
사람 크기와 비슷한 크기로 투사된 영상은 바로 문 밖에서 어떤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이와 함께
내부에는 서호도 작가의 <함녕전 프로젝트-동온돌> 2012이 모니터 화면을 통해 전시되고 있었다. 역시 정영두 작가가
퍼포머로 참여한 이 영상에서 그는 고종이 보료에 어떻게 누웠을지를 고찰해 보여준다. 밝은 방 안에는 3채의 보료가 깔려 있었고, 그
안에서 정영두 작가는 천천히 보료에 눕는여러가지방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일상적인 모습이지만, 고종이 그 침전에서
보냈을 말년을 생각하며 보니 정영두 작가의 움직임들이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그 외에도 전시 공간에는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정영두 작가가 했던 무용작업들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에 대해 구상한 그의 노트와 무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무가로서 소중한 구상
노트를 이렇게 선뜻 공개한 점은 인상깊었다.
1층 안쪽에는 장영규 음악감독이 그동안 작업했던 영화 음악과 무용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벽의 중간 높이에 불룩하게 대가 튀어나와 있었고,그 대에는 사운드 단자를 꽂을 수 있는 구멍들이 뚫려있었다. 사운드 단자 5개를
한 묶음으로 그 옆에는 음악 이름을 적은 라벨이붙어 있고,여기에 헤드셋과 의자를 비치해 관람객이 음악을 선택해 꽂아 들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2층 오른편 전시공간에는 건축가 최준웅이 그동안 디자인했던 건축물들이 스케치와 축소 모형의 형태로전시되어 있었다.상하 농장 미니
축사는 사람 키 높이만한 크기의 모형으로 만들어져 전시장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 오른편에는
점촌중학교, 마텍 공장, 상하농장,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광주 비엔날레 전시 디자인을 위한 모형과 사진, 스케치들이 대에 놓여
있거나 벽면에 붙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건축가다운 합리적인 구상이 돋보였다. 특히스케치에는 공간,동선,채광에 대한 메모가 간간히
적혀 있었다.
2층 왼편에는 장영규 감독의 여러 협업 결과물들이 다양한 형태로 상영되고 있었다. 상영된 작업은 안무가 안은미의 공연을 편집한
영상들과, 김지현 독립영화 감독과 협업한 <요세미티와 나>2011, 박찬국 감독과 협업한<복수는
나의것>2002,어어부프로젝트와 협업한 자막만이 투사되는 오디오형 소설 작업인<안성철> 2004, 임민욱 작가와
협업한 <S.O.S-채택된 불일치> 2009, 정각스님의 바라춤과 나비춤을 임민욱 작가가 열영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다라니•향화게> 2013 등이었다. <S.O.S-채택된 불일치>와 같이 어떤 상영물은 소파에 앉아 볼 수
있도록 벽면에 투사되고 있었고, <복수는 나의 것>같은 상영물은 바닥에 앉아 보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사다라니•향화게>의 경우 다른 작업물들과 떨어진 전시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 유독 그 비중이 더 크게
느껴졌다.열영상으로 찍은 영상은 마치 내가 뱀이 되어 춤의 에너지 흐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2층 한편의 방에는
데이비드디그레고리오의 사운드 아트 작업인 <방은 앨범이다 Room is an Album> 2013 가 계속 반복해서
틀어지고 있었다. 방 밖에는 이주요 작가와 협업한 비디오 작업 <한강에 누워> 2003-2006 등이 상영되고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방 안의 <방은 앨범이다>였다.제목 그대로 방 자체가 음악을 듣는 공간임과 동시에 한
장의 앨범인 이 작업에서, 디그레고리오는 일주일 단위로 매일 다른 곡들을 CD플레이어로 틀어주었다. 필자는 토요일날전시를
방문해서 <진흙 마검>이라는 음악을 들었다. 아프리카 음악인지 북아메리카 음악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국적인 선율과
음색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3층 전체는 권병준 작가의 설치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방금전까지 무언가 작업을 하다가 작가가 떠난 자리처럼, 전체적으로
어두운 전시 공간에는 여러 일상사물, 설치물, 투사된 이미지들이 펼쳐져 있어 구성물들이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마네킹과
인형들, 시간에 맞춰 켜졌다 꺼지는 불빛과 소리들, 작업 도구들이 그대로 놓여있는 책상들, 난해한 도식들과 문자들이 투사되는
벽면, 기타와 스피커, 각종 팜플렛과 메모들, (아마도 외국 작업실인 듯한) 작가의 작업모습 등. 전체적으로 권병준 작가의
설치물은 한 위치에서 관조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분산된 지각 속에서 체험하도록 놓여져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시 평가
전시를 보고 소개문과 같이 결부시켜 생각해 보면서, 과연 “탁월한 협업자들” 전시가 소개문에서 밝힌 중간 목표들을 제대로 달성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선 ‘협업’이라는 주제 자체가 미술관에서 전시라는 형식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막연한 주제가 아니었는가 하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협업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이는 시간성을 기본으로
한다. 전시장에서 보여준 각각의 전시물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물들 대부분이 과정의 일부분인 무보, 설계도, 모형
등만을 보여주거나 결과물만을 내놓은 것들이었는데, 이것만으로는 긴 협업 과정을 관객이 이해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준웅 작가의 기둥 서점의 경우, 전시 주제인 ‘협업’을 같이 생각하면, 그 책장 자체만으로는 어떤 협업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그리고 그 협업의 의의가 무엇인지 모호하게 느껴졌다. 건축과 출판의 협업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건축가와 미술관의 협업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이는 2층에 전시된 모형들이나 스케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관련 관계자들과의 협업인지, 사회 전체와의 협업인지 모호했기
때문이다. 정영두 작가의 작업들의 경우, 전시 구성상 안무나 무용에 조예가 없는 일반 관객들이 그 참된 가치를 느끼긴 어려워
보였다. 단순히 그 동안 안무가가 구상했던 일종의 설계도들을 보여주고, 관람객은 거기서 자신의 능력껏 해석하고 감동을 느끼라는
듯한 전시 방식은 못내 아쉬웠다. 사진 같은 시각 이미지에 과잉 경도된 오늘날 문화가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실제 상연시의 모습
등을 많은 이미지로, 혹은 큰 화면으로 보여줬어야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랬다면 좀더 협업의 과정을 관객이 파악하기
용이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장영규 작가의 1층 음악 작업 아카이브의 경우, 이런 전시 구성은 너무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해당
영화의 포스터나 스틸컷이 들어가거나, 아니면 보다 나아가 해당 녹음 작업을 할 때의 사진을 같이 전시했다면 더 알찬 구성이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시각 이미지에 치중될 것이 우려되었다면, 제작 과정을 설명한 그렇게 되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쉽다. 2층에
전시된 작업들은 이미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결과물만을 보여준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필자는
“탁월한 협업자들”의 전시물 중 데이비드디그레고리오의 작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주술사의 노래와 성가곡을 뒤섞은 듯한 음색에
크게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작업에 대한 만족과는 별개로, 앞서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김성환 작가와 협업을 했다는 전시
설명문 만으로는, 어떤 협업 과정을 거쳤고 그 협업의 가치가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권병준 작가의 전시는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전체 전시물들 중에서는 가장 제작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업으로 보였다. 막 작업하다 떠난듯한
공간이 관객에게 제작 과정을 유추할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투사된 영상에는 어떻게 외국에서 작업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협업이라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고 느꼈다. 다만 그 이외의 부분들(시간에 맞춰 켜고 꺼지는 사운드, 기호로
가득한 영상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했다.
마치며
결과적으로, “탁월한 협업자들” 전시는
“집단적 창의성의 영역과 저자성의 영역을 질문”하겠다는 궁극 목표는 분명 달성한 듯 보인다. 그러나 명쾌하고 만족스럽게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관객이 모호함을 느끼며 의문을 가지기는 했을 듯하다.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분명 달성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그 “집단적 창의성의 영역과 저자성의 영역을 질문”함으로써 전시를 본 관람객들과,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 측이 무엇을 얻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관객이 협업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전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면 모를까. 그러나 이 전시가 건축이나 무용같이 기존 미술관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예술 형식들을 전시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이미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미술관에서 건축가들이나
사진작가들의 전시를 보여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맥락에서 협업은 생산성의 증대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이는 다수의 사람이 동일한 노동과정을 수행하거나, 그 과정은 다르나 결과적으로 함께 결합이 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협업을 통해 생산성의 증대만을 기대하진 않는다. 지식정보사회에 들어선 오늘날에는 흔히 이야기하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시너지 효과를 얻고자 한다. 이런 요구가 존재하는 시점에서 일민미술관과 아르코미술관에선 각각 '탁월한 협업자들'과 '2의 공화국'이라는 전시명으로 예술에서의 협업을 조명했다.
아르코미술관은 '2의 공화국'이라는 전시명 답게 2인 체제로 작업 활동을 하는 팀들에 주목하였다. 듀오들은 급조된 팀, 부부, 친구, 동료로 다양했으며 구성원이 몸담은 분야도 건축, 패션, 디자인, 미디어아트로 다채로웠다.
<Interacted>
COINOIA(김기호 + 하시가미 모모코
COINOIA는 한국인 디자이너 김기호와 일본인 디자이너 하시가미 모모코의 듀오 브랜드며 그룹명인 COINOIA는 그리스어 'Koinoina (나눔, 관계, 소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된 작업은 한지가 들어간 합성섬유 소재의 옷이다. 그런데 이 결과물은 의류디자인에서의 협업 물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예술적인 맥락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개념미술의 차원에서 상품, 물질적인 의미를 거부한 것도 아닌 듯하였고 옷이나 천을 오브제 삼아 어떤 네러티브를 풀어내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전시주제에 치중한 나머지 기획자가 듀오 작가의 작품을 모으는 데만 의의를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대장정 / The Grand Journey>
GONZALES INTERNATIONAL (구민자 + 윤사비)
곤잘레스는 철수나 영희처럼 막연하지만 실체가 있는 이름이며, 실체는 있지만 대상은 불분명함을 전제로 시작한 임의의 현대미술 단체라고 한다. 우리는 보통 협업을 통해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하고 그것이 완성의 형태에 이르러서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협업을 하기 위해서 소비한 내역들을 인쇄하여 종이접기를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다른 작업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협업을 생산이 아닌 소비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다. 협업을 통해 생산적인 활동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비도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소비의 과정을 통해 협업을 형상화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칠흙 정자>
CAHE-PEREIRA ARCHITECTS (최-페레이라 건축)
(최성희 + 로랑 페레이라)
최-페레이라 건축은 최성희와 로랑 페레이라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이다. 도시와 건축 설계를 통해 이름을 알린 그들답게 <칠흙 정자>라는 비례와 균형에 충실한 간결한 구조물을 만들어 냈다. 특이 하게 양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은 전시되는 시점에서의 협업을 의도하였다. 작품이 놓일 자리를 정하지 않고 전시장에서 발생하게 되는 어두운 공간에 놓이길 요구한 것이다. 기존의 작업들이 구성원들 간의 협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면 이 작업은 작품이 전시되는 시점에서 다른 작품들과의 협업이 발생하길 바랐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차이나타운에서 가져운 정물, 혼합매체> (2007)
<합의의 지점 / A Converging Point>
KIMCHANG PRACTICE!!
(김민경 + 장윤주)
KIMCHANG PRACTICE!!는 김민경 장윤주의 협업 프로젝트로서 도시, 공간, 커뮤니티, 채집, 리서치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전시, 출판 웹사이트의 다양한 매체로 결과물을 드러낸다고 한다. <차이나타운에서 가져온 정물, 혼합매체>는 이런 그들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품명처럼 차이나타운이라는 도시, 공간, 커뮤니티에서 물건들을 채집(?)하여 사진을 찍었는데 그 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르는 과정을 벽에 나열한 사진들로 형상화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의사 조율 과정을 <합의의 지점 / A Converging Point>이라는 균형을 찾아가는 시소의 모형을 만들어 냈다. 작품은 일반적인 시소처럼 단일의 널빤지가 아닌 다수의 널빤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협업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의사들을 형상화 한 듯 보인다.
The SWBK
(이석우 + 송봉규)
SWBK는 이석우와 송봉규가 공동으로 설립한 디자인 회사이다. 그들은 라이프 스타일과 IT기반의 제품디자인 및 회사의 브랜드와 서비스 디자인 컨설팅까지 넓은 범주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은 영상과 인쇄된 작업 결과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상은 그들이 일을 진행하는 방식과 협업에 대한 생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고 있다. (http://www.swbk.com/?p=10251)
Betabüro 베타뷰로
(Rob Martin Murphy + Valli Lakshmanan)
베타뷰로는 Writer이자 크리에이터로 활동했던 호주 출신의 Rob Martin Murphy와 기업경영/마케팅 분야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Valli Lakshmanan가 만나 설립한 2인 소셜 디자인 컴퍼니다.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그들은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협업이 이뤄질 수 있는 이상적인 협업의 사무실을 꾸며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각국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를 걸어 놓았고 실제로 전시장 측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작업 결과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이 작품 또한 원거리 의사소통을 통해 이견이 조율되고 협업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베타뷰로는 SWBK처럼 디자인 컴퍼니를 넘어서서 어떠한 예술적인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워 보였다. 각각은 그들의 본업인 디자인의 연장 선상에서의 협업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The Kim Kim Generalist>
Kim Kim Gallery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킴킴 갤러리는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가 창립한 갤러리이자 미술 작업이다. 그들은 이 작업을 통해 본인들이 생각하는 협업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책상위에 놓인 추상적인 조형들과 마주하고 있는 마네킹 그리고 화이트보드의 그림으로 그들이 협업을 구체적이지만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간의 작업 결과물들이 아카이빙된 서적을 배치하여 작업의 방식과 협업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까지 한데 엮어 내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물론 작업이 어떤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친절하게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서적을 통해 지금까지의 행보를 살펴볼 수 있던 점이 미흡한 과정에 대한 설명을 보충해주고 있었다.
<The EyeWalker>
exonemo
(Kensuke Sembo + Yae Akaiwa)
EyeWriter는 루게릭병에 걸린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위해 시작된 오픈소스 프로젝트이다. 아티스트,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만들어 낸 이 결과물은 몸이 마비된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exonemo는 이 EyeWriter를 통해 어떠한 작업을 하였는지 영상으로 담아내었다. 부부인 두 작가가 어떻게 협업을 하는지에 대한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EyeWriter 프로젝트 http://www.eyewriter.org/)
이렇듯 아르코미술관에 전시된 작업들은 크게, 협업의 과정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거나, 작업 과정이나 협업에 대한 생각을 영상에 담거나, 협업의 결과물을 전시하는 방식이었다. 두 전시가 협업을 조명하고자 하는 방식은 상이했다. 일민미술관은 선정된 작가의 협업 결과물들을 아카이빙하는데 초점을 두었고, 아르코미술관은 듀오 작가들의 결과물을 한 자리에 모으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전시 모두 협업을 통한 작품 자체에 집중한 듯 보였고 정작 협업이라는 키워드를 풀어내는 방식은 비교적 정제, 통일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관객들은 분업을 넘어선 협업의 시너지를 엿보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술에서의 협업을 새로이 조명해보려고 했다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전시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