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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 스기모토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 도쿄여행때였다. 미대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에너지 넘치게 도쿄의 온갖 미술관 박물관을 돌아다니다가 당연히 도달하게 된 것이 롯본기에 위치한 모리미술관이었다. <End of Time>이라는 전시제목으로 선보이고 있던 작가의 작업은 나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 당시 한국은 한창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에 따른 사진에 대한 관심 역시 들끓던 시절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첫 DSLR카메라를 마련하고 사진에 빠져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그 흐름에 때맞춰 알려진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은 그 열기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절제된 그 한 순간, 기하학적 구도, 그리고 어떠한 변형과 조작도 용인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그 긴장감은 "이게 바로 사진의 힘이야!" 라고 외칠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 또한 2004년 브레송의 타계 소식이 있었던데다 그 때를 기점으로 브레송에 대한 대형전시가 연이어 진행될 때였던 만큼 필자 본인 스스로 결정적 순간에 대한 사진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던 시기였다. 그러한 때, 스기모토의 작품과 마주하게 되었다.


Alaskan Wolves / Gelatin silver print / 119.4x185.4cm / 1994


전시장에 들어서 이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일단 '대형인화에 디테일이 굉장하다' 라는 지점에서 시작했다. 일견 내셔널 지오그라픽의 사진을 보는 듯한 이 사진은 무언가 묘한 분위기를 지닌다. 분명 깊이-입체감이 있다. 상황은 마치 늑대들 스스로가 자세를 취해주는 듯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이런 생태 사진들은 보통 먼 거리에서 망원렌즈를 사용해 촬영한다. 즉 피사체와 배경과는 포커스 레이어가 서로 다른 아웃 포커스가 발생되어야 하는데 근거리의 늑대로부터 원거리의 배경까지 모든 디테일이 살아있다. 그렇다면 원경은 사실이 아닌듯, 아니 원경 자체가 또 하나의 사진이다. 결국 늑대를 다시 되돌아보면 박제인듯 아닌듯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디오라마(Diorama)연작 중 하나인 <Alaskan Wolves>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알래스카 늑대의 생태에 대한 모형을 촬영한 것이다. 결국 위의 모든 상황은 실제 늑대 생태계를 임의로 재현한 허구적 모형이다. 스기모토는 이 모형을 조명 테크닉을 활용해 진짜처럼 보이게 촬영했다. 그리고 흑백사진이라는 것을 통해 정보를 제거, 추상화 함으로써 역으로 사진으로서의 진실성을 강조했다.[각주:1] 이처럼 스기모토는 사진의 가장 근본 중 하나인 '피사체' 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본 전시로 들어가는 입구인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왔을 때 공간을 가득 채우며 관람자를 맞이하는 것은 거대하고 촘촘한 빛줄기들이다. 우리가 매체나 교육을 통해 알고 있는 번개의 모양이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바라보니 그 관념과 사뭇 다르다. 전기 가닥들이 이렇게까지 촘촘했었나. 번개가닥이 이렇게 연이어 배치될 수 있나.


Lightning Field 012, / Gelatin silver print / 152.4 x 1443.6cm / 2009 


Lightning Field 연작 중, 2009 

다른 연작을 살펴보면 더더욱 의문이 생긴다. 저 털가죽같은 부드러운 면들은 뭘까. 전기 스파크가 저렇게 세밀하고 여러 지점에 걸쳐 만들어질 수가 있나. 인화방식이 전통적인 Gelatin silver print인데 디지털 합성은 아닐것 아닌가. 굵은 전류 줄기와 함께 존재하는 옅은 털가죽 표면을 연상시키는 미세전류의 궤적인 후자의 사진은 전기의 궤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식물과 동물이 뒤섞인 상상속의 생물을 연상시킨다. 

at Courtesy of Pace Gallery, copyright 2010 The new york times company.at Courtesy of Pace Gallery, copyright 2010 The new york times company. 등장인물은 작가본인.

이 <Lightning Field(번개치는 들판)>시리즈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촬영되었다. 전자의 경우는 작가가 직접 도체 구와 구를 놓고 40만볼트의 전기를 흘려 나타나는 스파크를 촬영한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인화지를 소금을 탄 전해질 용액에 담가놓고 그 용액에 전류를 흘려 노광된 결과물이다. 결국 위의 두 작업은 실제 번개를 찍은 결과물이 아닌 in vitro환경에서 세세하게 환경을 설정하여 찍은 정전기의 이미지이다. 

작가는 프랑스의 다게르와 함께 사진의 발명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영국의 탈보트가 사진과 함께 평생을 연구한 정전기에서 모티브를 잡고 이와 같은 실험을 진행하고있다. 그는 많은 작업들을 과거, 또는 전통에서 소급해오고 이를 지금의 예술 안에서 생각하고 표현해오고 있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사진이, 그리고 예술이 어떠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지속해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할 지점은 역시 피사체이다. 이 피사체는 실제하는 것인가. 전기도, 정전기도, 심지어 빛조차도 전자기파이다. 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를 이용한 많은 기계와 도구들을 사용하며 우리는 전자기파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비 물질적인 존재가 피사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심지어 전자기파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정의를 들여다보면 더욱 더 이 존재를 알 수 없게 된다.[각주:2] 작가는 이 시각적으로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피사체 전자기파(중 하나)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진으로 고정했다. 이 사진적 결과물은 자세히 관찰했을 때 이것이 진짜 그 사진의 '그 피사체'인지 단언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이고 또한 은유적으로 다가온다.


Aegean Sea, Pilion / Gelatin silver print / 111.9x149.2cm / 1990


바다 연작 전시장면


그의 <바다풍경> 연작 역시 그가 가진 사진과 피사체에 대한 시각이 돋보인다. 이 연작은 작가가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며 30여년간 촬영한 사진작품들이다. 제목을 통해 각 사진이 촬영된 장소는 알 수 있지만 정작 사진에는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담겨져 있지 않다. 바다풍경의 모든 연작들은 사이즈가 같다. 그리고 같은 정사각형 판형에 구도역시 중심에 놓은 수평선으로 같다. 장노출로 촬영된 이 사진들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또렷치 않고 이 두 피사체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져있다. 결국 구별할 수 있는 사물들은 사라져 장소성이 사라진다. 미묘하게 남은 것은 남은것은 그곳의 빛과, 바람에 의해 변화하는 수평선의 괘적차이뿐이다. 결국 그 장소의 시간이 담긴 하늘과 바다만이 남아있다. 이 지나칠정도로 정적인 사진 이미지는 관람자로 하여금 역으로 피사체가 가상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이 <인물사진(Portrait)> 연작은 재현에 대한 그의 재미있는 해석과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들은 1999년 독일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커미션 의뢰한 인물사진 연작이다.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생존. 자신의 사랑(욕망)을 위해 당시의 유럽의 수퍼 갑 로만 카톨릭을 차버리고 스스로 성공회라는 새로운 크리스트교 계열 종파를 세워 본부인과 이혼을 한 후[각주:3] 그 유명한 앤 불린과 결혼했던 헨리 8세의 드라마틱한 캐릭터와 여성편력만큼이나 충격적인 그의 6명의 부인들의 결말이다. 당시 헨리 8세는 결혼 전, 거리문제로 직접 볼 수 없었던 유럽 각지의 신부들의 얼굴을 알기 위해 잉글랜드 왕실의 궁정화가였던 한스 홀바인을 각지에 파견하여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그렇다함은 스기모토의 사진은 바로 그 초상화를 촬영한 사진일 터인데, 사진적 디테일은 둘째치고 사진에서 느껴지는 입체감은 실제 사람을 찍은 인물사진 그 자체다. 여기에서 혼동이 생긴다. 이 사진은 대체 어떻게 찍은 것인지. 이 피사체는 대체 무엇인지. 가짜인가, 진짜인가, 혼합된 합성인가.

정답은 한스 홀바인의 초상화를 마담 투소가 복제전문가를 통해 실제 인형으로 재현한 밀랍인형을, 조명기술을 통해 한층 진짜 인물처럼 보이도록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스기모토는 '당시대 인물 -> 16세기의 회화 -> 19세기의 회화를 기반한 밀랍인형 -> 20세기의 밀랍인형을 찍은 사진' 이라는, '재현'이라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역사와 그 구조를 단 한 장의 사진 속에 압축해 내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1999년을 기억해보자. 당시 사진에 대한 지배적 관념은 스트레이트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대변되는, 세계를 진실되게 담아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 이러한 관념은 이 연작에서 깨어진다. 원 피사체를 복제한 것을 복제하고 그 복제한 결과물을 다시 촬영한 이 작품은 복제에 복제를 거쳐 사진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을 이용하고 뒤흔들며, 사실과 거짓의 관계를 흐리게 한다. 또한 사진은 피사체를 채집하고 재현함이 아니라는 그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Henry VIII / Gelatin silver print / 149.2x111.9cm / 1999


Henry VIII 작품 디테일

참고: 한스 홀바인의 헨리8세



Accelerated Buddha / 3-channel video / 2013 


그의 또다른 신작 가속하는 부처(Accelerated Buddha)는 그의 역사에 대한 관점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버젼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3채널 비디오 <가속하는 부처, 2013>와 비디오의 원본인 사진 <부처의 바다, 1995>이다. <가속하는 부처> 비디오는 3면의 벽에 가득 채워져 서서히 명멸하며 가속해간다. 점점 빨라지는 1001개의 부처이미지의 교차는 점점 추상화되는 이미지로서 관람자를 압도하며 수백만개까지 겹쳐서 표시되며,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백열광만이 남는다. 마치 죽음 이후를 표현하듯. 이 장소를 빠져나와 보이는 사진들 <부처의 바다>에서는 제한된 조명 아래 놓인 수 십개 행과 열로 배열된 부처들의 사진인데 지극히 이질적이다. 관람동선의 마지막에 이르러 관람자들은 또다시 의구심이 빠진다. 이들은 과연 진짜 피사체인가.    

<부처의 바다>는 13세기 초 건축된 실존하는 교토의 사찰 산주산겐도 내의 천수관음보살 1001개를 48장의 사진에 담은 연작이다. 작가는 13세기 헤이안시대에 이곳을 방문했을 교토의 귀족들이 느꼈을 그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이 시기 이후 추가된 모든 장식들과 인공조명들을 제거한 후 작품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작가는 '오늘날의 미술이 과연 이 천수관음보살처럼 800년의 세월을 살아남을 수 있을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800년의 역사를 사진을 통해 오늘, 관람자들에게 제시하며 그 세월과 현재의 사진을 한 데 겹쳐 환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산주산겐도 내의 천수관음보살 실제 설치 장면



작가는 결국 '사진의 의미'라는 것, 그 중에서 사진에 있어 가장 핵심인 피사체 그 자체를 건드린다. 그는 피사체에 대해, 피사체를 통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사진에는 과거가 재해석된다. 재해석된 과거는 피사체로서 위치하지만 피사체에서 그 사실을 지운다. 그는 사진을 찍는다. 그는 피사체를 찍는다. 그 과정 중에 그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피사체는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익히 존재해 온 것을 알고, 그 존재하는 것을 찍었지만 남은 흔적(trace)인 사진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지극히 생소하게 다가온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진이지만 그 피사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인위적인 피사체를 찍은 사진은 지극히 원 존재와 가깝게 보인다. 혹은 장소성, 시간성을 제거하고 그들을 흐리게 만들어 사진과 피사체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상식적인 인과를 흐리고 남는 것은 경계가 흐려진 이미지이다. 익숙하면서도 낮선 이들 이미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열차게 빨라지는 현대의 사람들의 시간을 붙들고 다시금 당연한 것들에 대한 사고를 유발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은 한층 더 나아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피사체와 마주하게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기억을 더듬고 경계가 흐려진 인식과 사물을 바라보게 한다.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more works


전시정보

전시제목 : 히로시 스기모토. 사유하는 사진

전시일정 : 2013.12. 5 ~ 2014. 3.23.

전시시간 : 10:30 ~ 18:00 (입장은 17:00까지)

전시장소 : 삼성미술관 리움

전시문의 : 02-2014-6900 


글. 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





  1. 그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컬러사진의 색은 단지 화학적인 색일 뿐이며 자연계의 색 재현은 불가능하다고 밝힌다. [본문으로]
  2. 전자기파는 광자를 매개로 전달되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두 가지 성분으로 구성되는 '파동'이다. [본문으로]
  3. 헨리 8세의 첫 부인이었던 캐서린은 로만 카톨릭의 수장인 교황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던, 유럽 최고의 권력자이자 스페인-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5세의 이모였다. 카를5세는 당연히 헨리 8세의 이혼요구에 폭발했고, 교황에게 압력을 넣어 이혼을 불허했다. 교황의 입지는 줄어있던 시기였지만 여전히 카톨릭은 유럽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종교였고 이를 거부하는것은 커다란 모험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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