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Dynamic Structure & Fluid _ exhibition review

Ueber 2014. 5. 30. 00:16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 아르코미술관은 오는 3월 6일(목)부터 5월 9일(금)까지 2014 아르코미술관 협력기획전 <Dynamic Structure & Fluid>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예술과 과학의 공동창작 및 융복합을 키워드로 뉴미디어 영역의 프로젝트를 지속해 온 외부 기획자 김경미 대표(뉴미디어아트연구회)와 홍성욱 교수(서울대학교 과학사 과학철학협동과정)의 제안을 바탕으로 아르코미술관 학예팀이 협력하여 발전시킨 전시입니다. 

 아르코미술관은 융복합이라는 시대적인 화두를 안고 시각예술중심 융복합 창작 기반 조성을 목표로 예술과 다양한 분야 간 심층적인 결합과 협업을 장려하는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Dynamic Structure & Fluid>는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김영희, 김태희, 박미예, 이상민, 전상언, 이강성&고병량, 노드.클래스-의 작업 7점을 신작 창작하고 전시합니다.

 - 전시서문 中-

 

 융복합이 시대적 화두라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의 통합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사실 자주 거론되는 단어인 ‘통섭’은 19세기에 생겨난 단어다. 정확히는 1840년에 윌리엄 휘엘의 <귀납적 과학>에서 통섭(統攝,Consilience)란 표현이 처음 사용되었다. 통섭은 20세기 말까지 사회적으로 대두되지 않았으나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1998년 저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윌슨은 저서에서 과학, 인문학과 예술이 사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문들이 분리된 각 분야의 세세한 부분을 체계화시키는 데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깊이 숨겨진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간단한 자연의 법칙들로 설명하고자 함에 공통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Dynamic Structure & Fluid>는 이런 맥락을 배경으로 하여 기획된 프로젝트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예술과 과학의 상호 작용이 인간 세계와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어떠한 근본적인 역할을 하였는지를 살펴보는 학제 간 연구 프로젝트라는 점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파트로 나뉜 프로젝트도 그러하였다. 각각은 '제 3의 문화 :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컨퍼런스, 수리 과학과 유체 역학의 원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워크숍, 아티스트와 사이언티스트의 협업 과정과 결과물을 모은 전시로 구성된 이번 행사는 일상에 숨겨진 자연과학의 법칙을 다방면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본 글에서는 그 중 전시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전시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의 형태였다. 협업이 이루어진 과정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담아낸 아카이빙적 자료. 그리고 일반적인 설치물들이었다. 설치작품은 과학이론들을 미디어아트의 인터페이스로 재매개(remediation)하고 있었는데 이는 또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바로 볼터와 그루신이 이야기한 재매개의 두 가지 양상인 경의(respect)와 경쟁(rivalry)이다. 설치작품의 인터페이스가 수리과학과 물리학적 이론들을 단순히 차용하고 모방하고 있던 것은 경의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론들을 차용은 하되 그 부분들이 인터페이스를 개선하려는 형태를 취하고 있던 것은 경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런 구분을 통해 작업의 위계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 작품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 되었는지 바라보는 여러 시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작품들을 마주해 주었으면 한다.

 

아르코미술관은 두 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1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작업은 전상언 작가의 <플라토닉 괘> 였다. 


플라토닉 괘 (Platonic Trigrams) 

전상언 (Sangun Jeon) 


 

104 x 104 x 177 cm, 2014

네온관 12 mm, 아크릴파이프, 3d printed PLA tube

관련이론 : 플라톤 입체 Platonic Solids

  

 <플라토닉 괘>는 철학자 플라톤의 정다면체들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발광하는 네온관에 의해 N면체로 변하는 이 작품은 순차적으로 4, 6, 12, 20면체로 변한다. 이는 플라톤이 이야기한 고전적인 4원소 불, 흙, 하늘, 물에 각각 대응된다. 플라톤은 불이 뜨겁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가장 날카로운 다면체인 4면체에 대응시켰다. 6면체는 구형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흙으로 나타냈다. 물은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작은 공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하여 20면체로 표현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니는 N면체들의 순환이 정해진 부피 내에서 이루어지는 부분도 흥미롭다. 구형에 가까운 구조물은 마치 한정된 공간과 자원을 상징하는 지구와 같아 보이고 네온관이 만들어내는 N면체들의 변화는 마치 자연의 흐름, 각 원소들의 순리적인 흐름을 떠올리게 했다.

 

<플라토닉 괘>에서 뿜어져 나온 밝은 빛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비늘>이라는 작품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터페이스로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비늘 (Scales)

김경희 (Younghui Kim)

 

 

160 x 168 x 50 cm, 2014

서보모터, 센터, 아두이노, 전선, 프로파일, 나무시트지, 아크릴 

관련이론 : 피보나치 수열 Fibonacci number

  

 <비늘>은 관람객의 입김에 반응하는 인터렉티브 인스톨레이션이다. 작품 전면에 설치된 고리에 바람을 불면 <비늘>은 그 습도를 감지하여 움직인다. 마치 습도에 따라 비늘이 변하는 솔방울처럼 말이다. 실제로 작가는 솔방울의 비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솔방울의 비늘처럼 무수한 피라미드 다면체를 가지고 있다. 자연의 솔방울이 갖는 메커니즘을 차용한 것은 신선했다. 하지만 그 인터페이스가 단지 관객의 호기심에 반응하는 수준에 그친 점이 아쉬웠다. 동일 평면상에 나열된 비늘들도 마찬가지였다. 솔방울 같은 경우는 꼭지에서부터 피보나치 수열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평면에 펼쳐진 본 작품은 이 비늘들이 배열이 어떠한 방식으로 유의미한 형태를 띠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비늘>의 뒤편에는 박미예 작가의 <들로네의 삼각형>이 전시실 한쪽 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들로네의 삼각형 (Delaunay Triangle)

박미예 (Miye Park)

  


6 x 7 m, 2014

ABC판 CNC컷 아크릴판 CNC컷, 조인트나사, 와이어 

관련이론 : 들로네 삼각분할,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Delaunay Triangle, Voronoi diagram

 

 <들로네의 삼각형>은 '들로네의 삼각분할'로 만들어진 삼각형을 이용한 설치작품이다. ‘들로네의 삼각분할’이란 평면 위의 점들을 삼각형으로 연결하여 공간을 분할 할 때에 그 삼각형들의 내각의 최솟값이 최대가 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들로네의 삼각형>은 이차원 평면 위에서 볼 수 있었던 도형을 입체적으로 삼차원에 구체화 시켰다. 동시에 ‘들로네의 삼각분할’을 통해 산출할 수 있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삼각형의 내부에 빈 공간으로 표현하여 전시물의 입체감, 공간감을 부각했다. 이런 패턴은 자연의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기린이나 거북이의 점박 패턴에서부터 단백질의 결합방식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세계와 관련이 있는 이론임에도 작품을 통해 자연 속에 존재하는 수학적인 질서를 연상시키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이런 추상적인 구조가 함의할 수 있는 감각적인 부분도 있다. 그러나 작품에 적용된 이론들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조금 더 구체화한, 개선된 형태의 인터페이스가 제공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다음 작품은 1전시실의 마지막 작품이자 영상과 음향으로 주의를 끌던 <기억의 흐름>이다.

 

기억의 흐름 (Flow of Memory) 

이강성 & 고병량 (Gangseong Lee & Pyoungryang ko)

 


6 x 4 m, 2014

PCs, Projector, Audio Interfaces, Loudspeakers, Sensors 

관련이론 :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Vornoi diagram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이용한 사운드 인터렉티브 인스톨레이션 작품 <기억의 흐름>은 우리 기억의 흐름, 그 변화에 주목한 작업이다. 기억은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오지만 시간에 따라 퇴색되거나 망각되기도 한다. 또 특정한 상황을 통해 다시금 떠오르기도 한다. <기억의 흐름>은 이런 회상의 장소를 제공한다. 관객이 넘겨볼 수 있게 제공된 책자인 ‘기억의 책’은 마치 옛날이야기가 담긴 책, 혹은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는 앨범과 같은 역할을 한다. 관객이 '기억의 책'의 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작품 전면의 스크린에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으로 구성된 영상이 보인다. 스크린에는 형형색색의 이미지가 추억을 상기하듯 아련하게 펼쳐지는데 그와 동시에 관객의 주변에 무엇이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앞서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단백질의 결합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에 관한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뇌내 세포 간의 활동을 통해 기억에 관한 활동이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관객이 '기억의 책'을 넘겨보는 행위는 추억의 매개체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기억활동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작품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영상과 음향의 형태로 재매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실 2층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던 작품은 노드.클래스(node.class)의 <차원위상변환장치>였다. 복도형태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전시실 입구와 가깝게 배치되어 있어서 관객이 가장 먼저 작품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차원위상변환장치 (Dimensional Phase Transformation Apparatus) 

노드.클래스(신믿음, 이재옥, 최지원)

node.class(Medeum Shin, Jae Ok Lee, Jiwon Choi)

 


4.2 x 6 x 3 m, 2014

프로젝터, 카메라, 컴퓨터, 키넥트

 관련이론 : 차원 Dimension

  

 긴 복도의 형태로 설치된 <차원위상변환장치>는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차원의 위상 변화를 복합적으로 표현해주는 작업이다. 현대물리학에서는 11차원의 영역까지 연구, 규명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차원들은 논리적인 개념에 기반을 둔 형태나 기하학적인 모델, 시각적인 상징들을 통해 경험되어진다. 팀 노드.클래스(node.class)가 <차원위상변환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경험도 이와 같아 보인다. 작품은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차원에 대한 논리적인 개념, 시각적인 상징들을 벽면에 프로젝션시킨다. 영상들은 시시각각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움직이기도 하며 텍스트와 조형의 형태로도 전이된다. 물론 작품의 인터페이스는 움직임에 반응하는 일차원적인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삼차원에 존재하는 아날로그적 관객의 인풋값이 카메라를 통해 디지털의 값으로 변환되고 그 값이 컴퓨터를 통해 연산 되는 과정과 결과에 따른 영상들이 상위차원의 벽면으로 투사되는 흐름 또한 차원의 변위과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차원위상변환장치>의 끝에는 동굴 같은 형태의 <숨겨진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숨겨진 공간 (Hidden Space) 

이상민 (Sangmin Jade Lee)

 


4 x 4 x 2.4 m, 2014

거울필름, LED, 광섬유, 렌즈, 아크릴, 기판, 센서

 관련이론 : 초끈이론 Superstring theory

  

 <숨겨진 공간>은 물리학의 ‘초끈이론’에 기반을 두어 우주 차원들을 구조물로 구체화한 작업이다. 작품의 내부는 인간이 인식하거나 짐작하기 어려운 여분의 6, 7차원을 나타내었다. 그 여분차원에 대한 유효모델인 ‘칼라비-야우 다양체(Calabi-YAu manifolds)’를 이용하여 구조물의 안쪽을 구성하였다. 작품의 내부는 마치 조각난 거울 같았는데 어두운 내부 조명에 어렴풋하게 관람객의 모습이 비치는 것이 퍽 어지러웠다. 단조로운 외부와 달리 어지럽고 현란한 내부 구조는 숨겨진 다른 차원의 공간이 이렇게나 난해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는 표현으로 보인다. 그리고 구조물 중앙에 달려있던 모형은 ‘초끈이론’을 구체화하였다고 한다. (‘초끈이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소립자나 쿼크 등의 구(球)체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작으면서도 끊임없이 진동하는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본다는 이론이다.) 어렵고 상상하기 힘든 물리이론들을 외현화한 <숨겨진 공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세계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는 '숨겨진 공간'으로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작업이었다.

 

 <숨겨진 공간>을 빠져나오면 천장에 달린 다수의 스피커와 바닥에 일렁이고 있는 영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김태의 작가의 <프롬나드>는 마치 시냇가를 형상해 놓은 형태였다.

 

프롬나드 (Promenade)

김태희 (Taehi Kim)


  

12 x 3 m, 2014

스피커 유닛, 오디오케이블, 디지털앰프, 오디오 인터페이스, 비디오 프로젝터, 센서, 컴퓨터 

관련이론 : 유체역학 Fluid Mechanics

  

 <프롬나드>는 관객의 움직임을 소리와 영상에 결합하여 새로운 흐름으로 보여주는 인터렉티브 오디오 비주얼 인스톨레이션이다. ‘바닷가나 물가를 산책하다’라는 의미의 작품명처럼 관객이 직접 작품 사이를 거닐 수 있게 설치되어있다. 그리고 관객의 움직임은 천정의 센서로 감지되어 영상과 오디오에 반영된다. 관객의 자취가 바닥에 흐르는 물과 천정을 따라 흐르는 소리로 변환되는 것이다. <프롬나드>는 이런 흐름에 관한 이론인 ‘유체역학’을 중점적으로 사용하였다.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들은 ‘Bezier curve’를 이용하여 유선형을 이루도록 설계하였다. 그리고 바닥에 프로젝션 된 흐름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에는 ‘Navier-Strokes Equation’을 이용하여 시뮬레이션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고 한다. <프롬나드>는 전체적으로 유체역학의 이론들을 전시의 인터페이스에 차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하게 배치할 수 있는 천장의 스피커도 유선형으로 매달아 놓은 부분이나 유체의 흐름을 시각화한 영상을 바닥에 투영하여 작품명처럼 '바닷가나 물가를 산책'하는 인터렉션을 의도한 부분이 매우 감각적이었다.

 

 2전시실 끝에는 아티스트와 사이언티스트의 협업 과정을 담은 아카이빙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 한쪽에는 전시에 쓰인 이론들에 대해서 강연하는 영상을 볼 수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전시 참여자들이 회의하거나 강연하는, 협업의 모습들이 이미지로 나열되어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설치된 작업들은 재매개의 두 가지 양상인 경의(respect)와 경쟁(rivalry)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정도는 각각 달랐지만. 이론을 외현화 해보고자 하는데 비중을 둔, 경의의 작품이 있었던 반면에 그 이론을 통해 작품의 인터페이스를 개선하려는 형태를 취한, 경쟁의 작품이 있기도 했다. 물론 이 경향들이 정오나 호오의 척도는 아니다. 단지 여러 접근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과학 이론을 이론가의 입장에서 좀더 쉬운 인터페이스로 매개해준 것도 분명 의미 있는 결과물이었다. 복잡한 이론들을 물성을 가진 무언가로 외현화 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속에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전시작품의 형태에서 개선된 과학이론의 인터페이스를 접할 수 있던 경험도 흥미로웠다. 기존에는 어렵기만 하다고 여겨졌던 공식들이 예술적으로 승화된 작업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과학과 예술의 깊이에 대해, 그리고 그 이종이라고 생각했던 학문 간의 융합에 대해서 반추해보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작품 내적인 부분을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작품 외적인, 전시인터페이스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기획의 관점 보다는 전시의 관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가장 큰 문제는 각각의 작업에 대한 레터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마주하고 있는 작품명조차 바로 알기 어려웠다. 작품의 배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전시실 입구에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해 놓은 책자가 있었다. 그런데 1전시실과 2전시실 모두 작품들의 특성 때문에 모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관객이 작품 앞에서 책자를 살펴보기는 매우 불편했다. 동선도 그러하였다. 전시장 측에서는 앞서 말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작품의 이미지와 간략한 정보를 벽면에 프로젝션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위치가 전시장 2층의 구석이었고 작품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발견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또 관람객의 눈높이보다 높게 투사되고 있어서 한눈에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었던 점이 아쉬웠다.

 

 서문에서 이야기했듯 이런 학문 간의 융합은 사회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관련된 전시도 오래 기획됐다. 아르코미술관에서도 그러하였다. 지난여름에 열린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는 과학자, 미디어아티스트, 건축가 간의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고 제주도 김녕마을에 구조물들을 설치하기도 했던 행사였다. 그리고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2의 공화국’이라는 전시에서는 예술작품에서 일어나는 협업에 대해서 조명했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이런 융합이라는 맥락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움직임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융합 프로젝트가 단지 시도의 의의만 갖는 행사로 그치면 안 될 것이다. 학계 간의 만남에만 초점을 두는 건 융합의 역사만큼이나 고루 해진 접근법이라고 생각된다. 이제는 그다음 단계를 논할 때라고 본다. 이미 아이폰과 같은 제품디자인에서 통섭, 융합이 거론된 적이 있다. 그리고 사회에선 이런 흐름이 미래를 그려나가기 위한 초석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물론 사회의 트랜드를 따라가야 할 필요는 없을뿐더러 그게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각화된 사회와 급박해진 변화의 흐름 속에서 예술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