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Artist

‘눈’으로 세상을 담는 비디오 아티스트 육근병_inter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5. 13. 18:58


  설치 형식의 비디오 조형작업을 한 육근병은 상파울루 비엔날레, 리옹 비엔날레 등에 초대되며 국제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92년 한국 작가로는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로 카셀도큐멘타에 초대되며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사회 문제를 다루거나 문명을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을 주로 선보였던 육근병은‘눈은 우주와 인간의 축소체이며 역사와 세상 만물을 거짓없이 직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 해왔다. 그는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대한 수용과 근본적인 인문학적 연구를 병행하며 매체를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의 개인전과 해외의 장소성 기반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관람자와 더 많은 소통을 꽤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Q. 조형 설치 작업에서 비디오, 오디오에 이르기까지 여러 미디어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첫 질문은 역시 작업을 진행해 오신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또한 어떤 변화와 함께 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A. 미디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사실 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에 첫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재를 눈으로 결정한 뒤 어떤 매체로 표현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눈을 표현하는 것은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는 등 간단했지만 그것을 크게 확대하여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그 당시 비디오는 없었고 VTR(혹은 VCR)이 있었습니다. 그 매체의 속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중고를 사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정말 눈이 크게 진짜로 움직이는 것이 제 의도와 알맞았기에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Q. 초창기 작업인 <>시리즈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에 주목하였습니다. 초창기의 작업은 지금과 관점은 동일하되 표현하는 매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곧 없어질 정미소에 불을 질러 남은 것을 조립했던 것이 <> 작업인데, 이는 곧 소멸될 것을 눈에 보이게 한 것입니다. 불을 질러 제사의식을 지낸 것이기도 하지요. 무덤 앞에는 정승처럼 토우모양과 같은 것을 많이 만들어 진열하였습니다. 주술적이어 보일 수는 있겠지만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예술은 바람, 사랑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주술적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에게 예술은 숨쉬기와 같은 것이고, 저는 바른 호흡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역사, 기억 등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시리즈가 작품의 주를 이루어왔습니다. ‘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지구는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70%가 물로 구성되는 점, 5대양 6대주를 가진 것과 인간이 오장육부를 가진 것 등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상징적으로 지구의 축소체로서, 눈은 사람의 축소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본다, 보이다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집약체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눈에 대한 이러한 이론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저의 작업에서 설득력이 생긴 것입니다. 사회적 통념이나 어떤 사상 때문에 착안한 것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주와 인간 그리고 눈의 관계에 대해 연결 관계를 고민했고, 이렇게 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 작품에서의 눈은 1인칭입니다. 보통은 관객이 작품을 바라보기 때문에 작품이 일종의 2인칭이 되는데 반해, 제 작품에서는 작품이 관람자를 볼 수 있고 1인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역사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작업의 묘지는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류의 과거, 역사를 잊지 말자는 차원에서 예술가로서 표현한 것이 바로 <>작품입니다.


<The sound of landscape+Eye for field=yin & yang>, clay+TV monitor, 1989  

 <survival is history>영상, 1995


Q. 작품에서 자주 보는 , 혹은 통로의 의미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이것은 95년도 리옹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Cave, 혈관, 탯줄의 의미라고 보면 됩니다. 저는 어머니의 뱃속을 전생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생과 태어났을 때의 이생을 연결하는 것이 탯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역사, 즉 근본적인 인식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배 모양이 무덤 형상과 비슷하기도 하고, 의미론적으로도 맞닿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굳건한,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강력한 쇳덩어리로 그것을 표현하였습니다. 그것은 진리이자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Teritory of mind>, Cylindrical by steel+Beam project+Rear screen, 1995

<survival is history>, Cylindrical by steel+Beam project+Rear screen , 1995


Q. 영상과 함께 조형적 특성을 지닌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병행하고 계십니다. 영상과 설치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제 작품의 호소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이 설치요소를 띈, 조각요소를 띈 영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냥 싱글채널 비디오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을 조금 더 명확히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Q. 일본과의 연고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최초에 왜 일본으로 가실 생각을 하셨나요? 더불어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상이 혹시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A. 일본은 도서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에 처음 가게된 것은 1989년도에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우연히 저를 좋게 본 가나자와 상(미술관 관장)덕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초청으로 일본에 방문하게 되었고, 기획전도 여러 차례 열며 일본과의 연고가 시작된 것이지요. 위안부 문제와의 연관성은 없습니다. 불교방송의 해진스님이 심도 있는 영상 만들기를 제안하셔서 함께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진실하게, 가슴 아프게 다루었습니다. 그들의 호흡을 담고 싶어 한 분씩 모두 만나서 진정성 있게 찍었었지요.


(좌) <Japan project>, the wall, 1993

(우) <spring 2002 vol1. artist in residence program>, fallen tree branches+TV monitor, 2002

 

Q. 해외의 예술 환경과 국내의 상황을 비교해주신다면,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특히 미디어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그러한 차이점이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국내의 상황은 시스템의 부재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외국의 시스템이 부러울 따름이지요. 따라서 한국 작가들은 억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력에 비해 조명되기 어려운 시스템, 지원받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일명 스타작가가 되기에 어려운 구조라고 봅니다. 그것이 아쉬워 15-6년 전부터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얘기만 전달하는 자리를 1년에 4번씩 주기적으로 갖기도 합니다.

   

Q. 최근 오디오가 영상에 많이 등장합니다. 또한 이 결합이 점점 더 주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가요?

A. 작품을 위해 사운드 작업을 하는 경우가 생겼고, 크게 분야의 구분 없이 작품 표현을 위해서 사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관람자의 몰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인데, 회화에서 비유를 들자면 한 번 더 페인팅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의미 전달을 위해 필요하겠다고 생각이 들면, 모르는 것도 배우면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 결합에는 때에 따라서 어떠한 변화든 열어둘 수 있습니다.


Q. 작년의 일민미술관에서의 신작들 및 최근 진행 중인 작품들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도 알고 싶습니다.

A. 역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망각되기도 하고, 이것을 굳이 상기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에도 있다고 보고 최근에는 작업을 했습니다. 지금 사는 곳이 자연을 경관으로 한 곳이어서 삶에서 깨우친 것이기도 합니다.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늘 존재했던 자연의 역사를 드러내 보이는 작업을 하였는데, 예를 들어 커튼이 바람에 날려 움직이는 그 순간, 비 내리는 모습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분명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순간이지만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것을 사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향후에는 유진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있고, UN프로젝트, 아트선재에서의 개인전, 해외에서의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The sound of landscape=site energy>, c-print color, 220x146.67cm, 2010


<Transport>,운송용 나무상자, 빔 프로젝터, DVD, 레어스크린, 488x215x85cm, 2012


Q. 달라진 미디어환경에 대해 초기와 지금이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A. 옛날과 지금의 미디어환경 차이는 큽니다. 그러나 저의 작업에서 그 자세는 변화한 것이 없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VTR/VCR을 관심 갖고 작업했듯이 지금도 달라진 미디어의 매커니즘을 배우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3D 작업, 코딩 등 전반적으로 공부를 했지요. 하지만 저는 인문학 공부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특히 역사 공부는 굉장히 열심히 했지요. 새로운 지식은 새로운 기술이기도하기 때문에 인문학과 기술 등 항상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먼저 달라진 기계 매커니즘을 받아들이고 그 기술력을 칭찬은 하되, 철저히 분석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Q. 후대 아티스트(특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A. 열심히 하시되, 무작정 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새기는 작업을 하셔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자신을 알아야 작업도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어떻게 그것을 할지는 본인이 연구를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인터뷰 진행/글: 이진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