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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뜬금없지만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의 작품 중에 <Blow out>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국어 제목은 <필사의 추적>인데 이 영화는 자동차 사고 현장을 녹음한 음향기사 잭이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이 사고가 사실 살인사건임을 밝혀내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잭이 사건을 재구성하는 모습이다. 그는 잡지에 실린 사건 현장 사진들을 하나씩 오려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그러자 풀숲에서 번쩍이는 총구가 보인다. 그는 자신이 녹음한 사건 현장의 음향과 사고 사진을 매치시키고 곧 그것이 살인사건임을 밝혀내는 완벽한 증거물을 만든다. 다시 말해, 영화적 운동성과 시각, 소리라는 서로 상이한 형식을 결합시켜 잭은 퍼즐처럼 뒤엉킨 사건 현장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필사의 추적 영화 포스터>                                <잭은 음향과 시각정보로 사건을 추리한다.>


<인터페이스 연대기>의 책 리뷰를 쓰려는 데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듯하다. 잭은 인간 인식의 한계를 시각과 청각이라는 상이한 감각의 결합으로 극복했는데 그것은 그 사건 현장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인터페이스 연대기>에서 서술하는 포커스도 사실 감각의 결합을 통한 인간 경험의 확장에 가까운 듯하다. 일상생활 속 테크놀로지 인터페이스가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그러한 물음들.
 
이 책의 1장 <전쟁과 디자인: 정보의 병참학>에서는 인포그래픽의 유래라고 불릴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너반은 “몇 달에 걸쳐 읽어도 시간이 부족한 정도의 분량”인 전쟁 데이터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시각화 작업을 진행한다. 추상성이 강한 정보를 명료하게 만든다는 것은 단지 그 정보를 요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입체적으로 구성함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업을 위해서 동원된 인력은 시각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건축가, 무대 디자이너, 애니메이션 제작자, 기술문명사 등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결합은 정보의 추상적 모드를 시각적 명료함의 모드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인간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보의 양이 곧 인간의 감각 안에 포섭될 수 있는 정보가 된 것이다.

5장 <인간과 컴퓨터의 공진화>에서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의 기원과 그에 따른 앨런 케이의 논의를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인간과 컴퓨터의 공생”이라는 개념이다. 그것은 컴퓨터가 단지 인간의 지적노동을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지닌 ‘신경의 힘’을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시켜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저변에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위계질서를 바로잡기 위함이 깔려 있다. 인간이 단지 컴퓨터 데이터에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와 같은 기능성 아니라, 컴퓨터와의 공생을 통하여 인간 지적능력에 대한 진화 욕망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인간 - 컴퓨터 사이의 인터랙션이 중요해지면서 그에 따른 인터페이스가 요구된 것이다. 앨런케이는 이를 위해서 행위 - 도상 - 상징이라는 인지심리학에 기반 한 표상양식에 주목했다. 이는 곧 컴퓨터라는 테크놀로지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인간에 관한 연구도 중요함을 말한다.

7장 <스크린, 디자인의 숭고한 대상>에서는 인간 - 컴퓨터 인터랙션에 관하여 조금 더 논의한다.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명확한 인과성을 바탕으로 유저에게 쾌감을 제공하여 스크린에 몰입하게 한다. 저자는 이를 <포르트 다 놀이> 다시 말해, 어린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나무 실패 놀이>에 비유한다. 아기가 나무 실패를 던지면 상실감을 맛보지만 다시 나무 실패를 감으면 충족감으로 채워지고 이는 곧 쾌감으로 전환되는 데 프로이트가 말한 이러한 쾌락의 원칙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 것이다. 컴퓨터 유저가 실제와 유사한 폴더나 아이콘을 클릭하면 매끄럽게 창이 열리고 이러한 인과적 괘감이 유저와 컴퓨터 사이의 인터랙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인터페이스 역사는 결국 인간에게 가장 최적화된 모드의 테크놀로지를 제공하기 위한 진화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지금껏 이 책을 살펴보아도 그와 관련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터페이스를 위한 인터페이스 역사는 없었다는 점이다.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각의 반경을 넓히기 위한 노력의 산물일 뿐이었다. 인간의 문제는 때때로 감각의 한계에서 직면했을 때 생긴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의 테크놀로지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최적의 조합을 통한 인터페이스로 또 다른 감각의 영토를 개발한다. 다시 말해 인터페이스의 욕망은 곧 인간의 결핍된 감각의 욕망과 그 궤를 같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앞에서 설명했던 영화 <필사의 추적>에서도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잭이 구사한 인터페이스의 기반에는 불충분한 정보를 완성하기 위한 욕망의 결과라는 점이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새로운 차원의 지식을 획득하고 그것을 토대로 또 다른 지식을 얻는다. <인터페이스 연대기>는 바로 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소개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한국 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의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홍익대, 국민대 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디자인 앤솔러지》(공역),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등을 번역했고,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 역사》, 《한국의 디자인 2: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 《D.T.1》, 《D.T.2: 현대 디자이너와 미술가를 위한 메소드》, 《디자인플럭스 저널 01: 암중모색》 등의 책을 기획·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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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태환 [앨리스온 수습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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