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티스토리 툴바


6월 13일부터 6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은 <소음인가요>라는 전시제목으로 사운드아트 전을 열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19팀의 작품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사운드아트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저조한 국내 예술계에서 꽤 이례적인 전시로, 앨리스온에서도 이번 전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야기는 앨리스온 수습 에디터들이 <소음인가요>를 관람하면서 나눈 이야기다. 가볍게 던진 관람 후기가 치열한 토론으로 치닫게 되기까지를 살펴보는 게 관전 포인트이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두 명의 수습 에디터가 전시를 관람하면서 나눈 의견은 비단 이들만의 견해가 아닐 것이다. 그럼 두 사람이 이번 사운드아트 전시를 어떻게 관람했는지 한 번 들어보자.



#1. 내 입맛대로 듣기? VS 어시장 생선가게?


<19작품을 모아 이뤄진 소음인가요 전시>


태환: (전시를 보고 나오며) 어땠어?

미라: 재미있었어! 그 동안 사운드아트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이번 전시로 많은 사운드아트 작품을 접할 수 있었던 거 같아. 한 번에 이렇게 다양한 사운드아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는 보기 드물었잖아. 특히나 내가 맘에 들었던 작가의 사운드가 담긴 CD도 전시장에서 직접 만들어 주니, 집에서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어. 넌 CD 안 받아가?

태환: (잠시 고민하다가) 받아갈까? 그냥 가자. 집에 가서도 어차피 안 들을 거 같아. 집 밖에 나가면 널린 게 소음인데 집에서까지 듣고 싶지 않아. 

미라: 넌 이 전시가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태환: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어. 사운드아트가 뭔지는 알겠는데 그게 흥미로움을 주는 전시는 아닌 거 같아. 그냥 여러 사운드아트 작품을 묶어서 펼쳐놓은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보라는 건지...

미라: 관람객이 다양한 작품들을 직접 선택해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지. 작품 수가 많으니 다양한 사운드아트를 느껴 볼 수 있잖아. 이 점이 기획자가 이 전시를 기획한 의도로 보이지 않니?

태환: 물론 그렇지만 난 사실 더 혼란스러워. 이 많은 작품들이 다 사운드아트라고 하는데 이 개별 작품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운드아트로 받아들여지는지 알 수가 없어. 그리고 함께 전시되어있는 서로 다른 작품들이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시장에서 진열해 놓은 여러 종류의 생선들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 관객들에게 사운드아트라는 것이 뭔지 알 수 있는 세밀한 기획력이 없어서 아쉬워. 대중에게 사운드아트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구체적인 관점을 가진 전시가 됐으면 좋겠어. 예를 들어, 사운드아트의 연대기나 장르별로 묶는다던지 그렇게.
      

     

<CD 제작하여 제공된 전시작품>
       




#2.  다양성의 지(知) VS 선택과 집중


<입구바닥에 놓여있는 전시 관람법>


미라: 네가 말하는 것도 틀리진 않지만, 사운드아트에 대해 잘 모르는 나와 같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연대기적인 전시는 다소 지루하고 교과서적이라 느껴질 수 있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사운드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관람객에게는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박물관 전시와 같은 연대기, 장르 등의 분류기준으로 구성한 전시가 필요하듯이 이런 전시도 필요하잖아. 또 이 전시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사운드아트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이미 분류해 놓은 것을 학습하는 방식이 아닌, 관객이 직접 소개된 작가들을 나름대로 사운드아트 지형도에 대입시켜 그려 볼 수도 있을 거야. 전시제목도 <소음인가요>잖아. 전시명이 말해주듯이 대중들이 갖기 쉬운 기존의 ‘‘사운드아트는 소음이다‘는 식의 편견이 과연 소음이 맞을까요?’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에 대해 고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 전시는 어떠한 결론으로 이끌기 위한 관점이 없는 게 관점인 거 같아. 관람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애초에 하나의 결론을 배제한 거지.

태환: 음...... 너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적어도 이 전시의 의도가 대중에게 사운드아트가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기획된 전시라면 난해한 작품 여러 개를 보여주는 것 보다  누구나 한 번쯤 혹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들을 전시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야. 그 많은 작품을 듣기위해 이어폰을 일일이 끼워야만 하는 작품 전시 방식도 불편하고 말이야. 내 생각에 이 전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운드아트를 소음이라 여기는 그 생각을 따라가는 것 같이 보여. 전시제목이 <소음인가요>인데 이 전시를 둘러본 후 ‘이게 소음이 아니고 뭐야?’라고 생각하는 관람객도 분명 있을 것 같아. 적어도 이 사운드아트 작품이 ‘아트’라고 불릴 수 있는 맥락 정도는 보여줘야지.  

미라: 만약 적은 작품의 수를 집중력 있게 소개하려 했다면, 크지 않은 이 공간에서 고작 한 두 작가의 작품 정도밖에 소개하지 못했을 거야. 사운드아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과연 그 한두 점의 작품을 어떤 것으로 선정해야 하느냐는 정말 어려운 문제이지 않았을까? 더 많은 작품을 소개 할 방법이 있다면 굳이 그럴 이유도 없을테고. 난 이번 전시가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했다고 생각해. 또 이어폰으로 관람하는 방식이 낯설지도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입구 바닥에 관람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제공하잖아. 게다가 우리가 다른 전시장에서 비디오영상 전시를 볼 때, 영상작품이 2점만 되어도 이 둘 사이의 사운드가 섞여서 때론 작품 관람에 방해가 되기도 하잖아. 그런데 이 전시는 ‘사운드아트’를 위한 전시이니 작은 모니터 속 영상과 사운드를 이어폰으로 관람하는 방식은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태환: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작은 모니터 속 영상이 조금 아쉬워. 사운드아트는 사운드가 주이긴 하지만, 사운드만을 제공하는 작가보다 영상과 함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더 많아. 영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사운드아트 작가도 많다구. 하지만 작가마다 사운드와 함께 다른 매체를 활용하는 작품에 대한 전시설명도 부족한데다가 왜 굳이 있으나 마나한 영상도 함께 보여주는 전시방식을 선택했나 싶어. 이건 사운드아트가 소음과 같은 사운드만을 만드는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편견을 더하는 거 아니야? 

     

<헤드폰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3. 전시 인터페이스를 생각하다




<모니터 영상과 함께 관람이 이루어진 전시>   


미라: 너에게 이 전시가 너무 많은 작품을 진열해 놓은 것 같다고만 느끼듯이, 관람객들에게 작은 공간속의 많은 작품 수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어. 그런 상황에서 사운드에 더해 다른 매체의 활용에 대한 내용도 전시에 더해진다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더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안그래도 사운드 자체도 낯설고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초등학생에게 미분 적분을 가르쳐주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사운드아트라는 장르 자체가 낯선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합니다.’는 식의 설명은 혼란만 가중시킬 수가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영상작업을 배제하고 숨길 이유도 없으니, 함께 전시하는 방식을 선택했겠지.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전시장 벽면의 프로젝터에 영상작업이 아닌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는 것도 관람객에게 이해를 더해주기 위한 선택이었을 거야.

태환: 다른 매체가 첨가 되서 혼란스러움을 느끼지는 않아. 오히려 그것이 익숙한 매체라면   사운드 아트를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겠지. 사운드와 비주얼의 만남은 사운드의 추상성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해 줄 수 있고 어쨌든 시각적인 재미를 줄 수 있잖아.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넣어서 관객의 이해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난 구구절절 많은 설명을 늘어놓는 전시는 그리 좋은 전시라고 생각하지 않아. 뭐 어찌됐든 전시는 큐레이팅으로 설명을 해야겠지.

미라: 길라잡이 역할, 그걸 위해서 작은 모니터 속 영상을 함께 준비한 거겠지. 길라잡이는 말 그대로 주를 위한 길라잡이 역할이어야지, 주가 되어서는 안되잖아. 그렇기 때문에 그정도 선에서의 자료를 제공한 걸거고, 작은 공간, 많은 수의 작품에 길라잡이의 역할소개까지 더하면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격이지 않을까? 비주얼 작품은 관람객이 작품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작품 자체만으로도 온전한 감상이 이루어지지만, 소리는 비물질적이라 미술관에서 소개하기에는 집중도가 낮아질 수도 있으니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거야. 이 전시는 조그마한 공간 안에서 한국의 사운드아트를 소개하는 의도로 기획됐고 이러한 전시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고려해야해. 난 이 조건에서 이러한 전시 구성이 최선이었다고 봐.  

태환: 전시 공간의 한계는 인정해. 하지만 기획의 측면에서 왜 하필 소음에 초점을 맞춘 컨셉 을 잡았는지 조금 아쉬워. ‘사운드아트는 소음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라고 말하는 전시기획이었으면 더 좋았을 거야. 미라 너 같이 사운드아트를 잘 모르던 관람객에게는 지금까지 너가 말한 여러 가지 이유로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전시였을지 몰라도, 이미 사운드아트에 관심이 있었던 관람객이 보기에는 사운드아트의 다양성을 충분히 제시한 전시인지에 의문을 가질 수 있어. 사운드아트가 왜 노이즈만 있을거라 생각해? 사운드아트 안에는 노이즈말고도 다른 많은 장르들이 있어. 전시명을 보면 노이즈만을 염두에 둔 전시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전시장 벽면의 프로젝터>






#4. 지속가능한 사운드아트 전시를 위하여
 


미라: 사실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들어보면 사운드아트가 노이즈만 있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 구분에 대한 확신이나 정확한 명칭에 대해 알기 힘들긴 했어. 또 전시명 만을 보았을 땐, 노이즈만 소개된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이 전시장에 들어오는 모든 관람객들이 많은 수의 작품을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지는 않을 거라는 점에선 사운드아트의 종류 정도쯤은 제시해주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작가 및 작품의 선정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을 거야.

태환: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 전시이긴 했지만, 미술관에서 그동안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사운드아트를 소개해준 점은 충분히 고무적인 것 같아. 전시 관람법 소개라던가 CD를 제공한 점은 사운드아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전시장에 선뜻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던 건 분명 사실이고.

미라: 그래, 이 전시는 너가 말한 아쉬운 점들이 있는 것처럼 가진 장점도 많은 것 같아. 이 전시가 가진 장점을 살려서 앞으로 사운드아트를 비롯한 아직 덜 알려진 여러 장르의 미술을 미술관에서 소개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런 전시가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미술의 다양성을 소개만 하고 만 것 같잖아. 이 전시를 시작으로 태환이 너가 말한 사운드아트의 세부적인 면면을 보여주고, 제시하는 시도가 계속적으로 이뤄진다면 이 전시가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태환: 맞아. 그리고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민도 더 진행되어야 할 것 같아. 더욱이 아까 너가 비디오아트를 예로 들어 말했듯이, 인터페이스는 사운드아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각예술 전반적으로 고민하면 더욱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겠지.

미라: 그래. 이러한 고민이 우리나라 미술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거야. 전시 둘러보고 너랑 열띤 토론까지 했더니 너무 배고파. 우리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글 및 진행 / 편집 : 김미라, 임태환 [앨리스온 수습에디터]






저작자 표시
신고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