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아트센터 나비에서는 변사 최영준을 초청하여 무성영화 변사극 ‘아리랑’을 선보이는 자리를 가졌다. 이어서 래퍼이자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를 진행하는 UMC/UW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2014년 1월), 비쥬얼 아티스트 Vakki의 '비디오 댄스 프로젝트'(2월), 구자범의 '언어와 음악'(3월), 프리재즈 듀오 미연&박재천의 '조상이 남긴 꿈'(4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날개 안상수의 '세종과 쿠텐베르크 사이'(5월), 영상감독 닐스 크라우스의 '골, 골목, 도시들'(6월), 장고주자 민영치와 이석종의 '장고; 이중주'(7월),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시’(8월)가 공연과 함께하는 강연, 토크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매달 진행된 이 프로그램들의 내용과 초청 인사를 살펴보면,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인사들을 흥미로운 주제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다소 파격적인 만남인 아트센터 나비의 '조우encounter'는 이미 9회째를 달리고 있다. 장르간의 벽을 넘나들고 동서양 문화를 횡단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실천을 시간 기반의 공연 혹은 퍼포먼스 성격의 예술형태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조우는 변사, 힙합, 프리재즈 등 기존 주류예술 문화를 넘어서는 예술적 수행을 공공에 소개하고 확산하는데도 그 취지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이루어졌던 조우를 살펴보며, 이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좌) 변사 최영준은 첫번째 '조우encounter'에서 전설의 필름 나운규의 아리랑(1926)을 토대로 제작한 이두용 감독의 아리랑(2003)을 변사극으로 재탄생시켰다. (우) 공간에 전시된 무성영화 변사극 포스터들을 설명하는 변사 최영준
UMC/UW는 본래 팟캐스트 진행자로 ‘그것을 알기 싫다’를 진행하며 고정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팟캐스트 자체를 대안으로서의 미디어로 보는 그에게는 팟캐스트 행위 자체가 랩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그만의 문학과 철학, 미디어에 대한 의식이 담겨있다. 이날 공연장에는 팟캐스트들을 전시로 디스플레이 하기도 하였다. 또 그가 힙합이라는 국한된 장르를 넘어 한국말에 맞는 힙합적 라임을 쓰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한국의 힙합은 LA에서 흘러 들어온, 즉 수입된 힙합이 주를 이루는데, UMC/UW가 고민하는 것은 한국말에 맞고 한국적인 방식으로 대입할 수 있는 한국의 라임이었다. 더욱이 힙합에서 언어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해야 되는 문학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따라서 힙합과 문학이라는 생소한 만남은 곧이어 자연스러운 그리고 힙합의 또 다른 매력을 살펴볼 수 있는 측면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장르간의 횡단과 실천을 주목하는 과정이 조우의 기획 취지이기도 하다.
(좌) 공연 진행 영상 화면 (우) 두번째 조우 프로그램의 진행 장면
(좌) 비주얼아티스트 빠키의 작업 영상과 설치가 어우러진 토크 현장 (우) 빠키 제작 뮤직비디오의 주인공 Love x Stereo 밴드의 깜짝 공연
(좌), (우) 서양음악의 지배 아래 우리 고유의 언어구조와 음악적 표현이 어그러진 채로 오랜 시간을 지내온 맥락을 이야기하는 구자범. 강연의 사이사이를 메우는 피아노 연주는 관객들의 이해와 공감을 끌어냈다.
(좌) 강의하고 있는 박재천, (우) 미연의 연주 장면
안상수에게 말은 의사소통 수단이며 특정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주된 요인이다. 따라서 디자인이라는 외래어 대신 그는 멋 지음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디자인은 무엇인가를 멋지게 창작자의 정신적 노력으로 지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 그리고 노력의 결실인 PATI(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는 세상을 바꿀 가장 강력한 무기가 교육이라는 만델라의 말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교장이라는 존칭어 대신 날개라는 단어를 쓰고, 경쟁 대신 공생과 같이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그의 학교에서의 실천들 역시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다. 실천가 안상수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여섯 번째 조우였다.
(좌)빨간 모자와 작업복 차림으로 강연하는 안상수, (우) 조우 프로그램의 진행 스케치
(좌) 자진모리와 휘모리를 연주하는 이석종 장고주자, (우) 장고 이중주: 민영치, 이석종
(좌) 연주하는 김광석 기타리스트, (우) 조우 프로그램 진행 스케치
위의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에서 조금씩 언급했듯, 조우는 가면을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쉽고 편한 모습의 가면을 쓰지만 속에는 진하고 깊은 여운을 담고 있다. 가장 본질적으로 예술의 모더니즘적 성격에 대한 고민, 그리고 장르의 횡단, 동서양의 문화 수용에 대한 고찰, 전통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 등 우리가 조우할 다양한 측면을 모두 만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런 욕심을 내기 위해 아트센터 나비에서는 더욱 열정적으로 기획의 전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장을 방문하여 들어 본,아트센터 나비 최재원 학예팀장의 다음 인터뷰 답변 내용을 통해 조우에 대한 자세한 사항과 아트센터 나비의 소식을 살펴보자.
Q. 조우 기획취지는 무엇인가요?
기획의 근본적인 의도는 대중과의 만남보다는 모더니즘 예술에 대한 반성으로서 기술과 삶, 예술이 분리되지 않고 보다 더 긴밀하게 관계하고 우리에게 체험될 수 있도록 하며, 정말 관객과 소통을 하고 싶었던 차원에 있습니다. 예술의 경직된 관계보다는 풀어가는 형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예술이 예술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조우는 형태는 시간기반의 공연, 퍼포먼스 성격으로 기획하였고, 안의 콘텐츠는 공연이나 쇼가 아닌 장르간의 이해관계나 텍스트가 경직되어 조명되지 못하거나 저평가되는 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의 문화를 녹여내는 것,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문화에 대한 이방인으로서 서양의 문화에 자꾸 맞추려고 하는 경향을 벗어나 고정관념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조우의 초청인사와 장르를 보면 더욱 더 극명하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Q. 조우라는 명칭 이전에 Creators' Night 란 말로 쓰였었는데, 혹시 변경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초기에 진행될 때는 ‘크리에이터’에 주목을 맞추는 패러다임이었는데, 행사가 진행되면서 관객의 적극적인 반응이 있었고, 그들과의 관계가 긴밀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대와 관객의 분리를 조금 더 좁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공연의 즉흥성에 초점을 두고자 하였습니다. 더불어 한명의 크리에이터 혹은 아티스트가 또 다른 조합의 아티스트를 만나서 풀어가는 현장에서의 즉흥성이 중요하다는 인식 또한 있었습니다. 즉, 조우에 와서는 한 명의 크리에이터에서 나아가 그들의 만남(아티스트간의 만남 혹은 관객과의 만남)이 어떠한 조우일지가 궁금해진 것입니다.
Q. 혹시 조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었거나 참고가 된 다른 행사가 있을까요?
참고한 행사는 없습니다. 다만 조우가 타작마당에서 대부분 진행이 되는데 그 형태에 있어서는 독일의 하우스 콘서트(house concert), 즉 제도권 공연에서는 할 수 없는 실험적인 예술이나 조금 더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점을 바탕으로 했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하우스 콘서트는 집에 모여 현악4중주를 들으면서, 공연장에서 하지 못했던 공연을 하고 관객과 와인 한잔 즐기며 얘기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저희가 주목하는 예술의 형태가 한마디로 인기 많은 것만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어서 관객과의 소통이 더 긴밀해야 하기 때문에 하우스 콘서트의 형태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 자체는 참고한 행사가 없습니다. 사실 다른 곳에서는 이러한 다 장르의 예술을 포괄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비는 아트센터이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형태의 여러 장르들을 수용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인드로 진행을 한 측면도 있는 샘입니다. 함께 변화를 모색하는 발맞춤을 하는 것이죠.
Q. 앞으로 아트센터 나비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개인 메이커들은 창조적인 작업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에 환희를 느끼지만, 먹고 사는 돈의 얘기로 넘어가면 개인들은 파편화 된다고 봅니다. 아티스트는 아직도 모더니즘 잔재의 예술을 해야 할 것만 같고, 국공립기관이나 정부의 기금을 받아야만 잘 나가는 예술가인 것처럼 치부되곤 합니다. 저는 아트센터 나비가 기술이 변했고, 과학이 달라지고 있고,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는 그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서 아트센터로서 능동적으로 그 메이커들(그들이 아티스트이든 새로운 아티스트 개념의 크리에이터들이건 실천가이건 간에)과 파트너가 되고 협업할 수 있어 그들이 조금이라도 의지할 수 곳이 되길 바랍니다. 이념보다는 현장에 대응하고 그러한 아젠다를 구성해서 제안하는, 또 어떤 창조적인 사람과 협업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아트센터 나비는 능동적이고 구체화된 인터페이스를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트센터 나비 최재원 학예팀장과의 인터뷰 내용 中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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