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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컴퓨터 나라의 앨리스 

" 그때였다. 눈이 분홍색인 흰 토끼 한 마리가 앨리스 옆을 쌩 하니 지나갔다. "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앨리스에게 회중 시계를 차고, 말을 중얼거리는 흰토끼는 나른한 오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존재였을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루한 일상에서 '흰토끼'를 만나는 것 그리고 흰토끼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 생각해보니 앨리스에게는 새로운 것에 관한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용기'가 있었다. 필자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한 흰토끼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지인들의 성화에 못이겨 발을 들여놓은 '게임'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처음에 '게임'은 피곤한 행위에 불과했지만 막상 빠져들고 나니 승패와 상관없이 즐기는 휴식처가 되었다. '게임'을 휴식처라 여기는 필자가 제주도에 가서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 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섬(제주도)에 가면 입장료만으로 다양한 게임을 실컷 즐길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은 분홍색 눈동자를 가진 흰토끼가 되어 필자를 컴퓨터 나라로 이끌었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 전경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넥슨 컴퓨터박물관은 제주도에 위치하고 있다. 공항과도 가깝고 한라수목원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 않았지만 '제주'라는 거리가 만만치 않음은 분명하다. 넥슨 컴퓨터박물관은 '제주까지 와서 웬 컴퓨터 박물관?'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고 있는데, 질문에 대한 답은 컴퓨터박물관을 방문하고 나면 명쾌하게 해결될 것이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형식적으로는 '오픈 소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오픈 소스란 초기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유용한 코드들을 공유하는 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넥슨 컴퓨터박물관은 유용한 코드를 공유하여 더 좋은 프로그램들이 탄생하게 했던 오픈 소스 정신을 바탕으로 '수집, 보존, 연구, 교육'의 기능을 관람객에게 개방된 전시장에 옮겨 놓았다. 관람객들은 박물관의 성장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동시에 참여를 통해 성장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01. 컴퓨터는 게임이다? 

      이상한 일이다. 필자는 분명 '게임'을 위해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찾았다. 컴퓨터 박물관을 만든 넥슨은 게임회사다. 그렇다면 게임회사에서 왜 '게임' 박물관이 아닌 '컴퓨터' 박물관을 만들었을까? 우리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개관 전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개관 전시는 '컴퓨터는 게임이다'라는 개념을 토대로 기획되었다. 컴퓨터와 게임의 상호작용 양상을 미디어 이론가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구르신은 '재매개'라고 명명한다. 게임은 컴퓨터를 재목적화하고, 컴퓨터는 게임의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차용하였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초기 개인용 컴퓨터에 흥미를 가졌던 사람들이 지금의 IT 업계를 이끌며 새로운 온라인 환경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고 보고 관람객들이 컴퓨터 박물관의 전시, 교육 등을 매개로 당대의 영감을 재현하고 새로운 영감을 받는 것을 전시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첫 번째 전시를 통해서 게임과 컴퓨터가 무관하지 않음을 나아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하고자 하였다.

      넥슨 컴퓨터박물관은 컴퓨터에 관련된 여러 소장품을 수집할 뿐 아니라 컴퓨터 게임에 관련된 여러 소장품을 수집한다. 소장품은 복수 취득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하나는 보관용 또 하나는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는 체험용으로 두려는 것이다. 관람객용으로 수집된 소장품이 따로 있을만큼 박물관 측은 옛 게임들을 복원하는 것에만 의의를 두지 않고 관람객들이 적극적으로 실행시켜 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전시나 워크샵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컴퓨터 박물관이 수집한 컴퓨터와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기, 가정용 아케이드 게임기, 컴퓨터 게임 등의 흔적을 함께 보고 있노라면 '컴퓨터는 게임이다'라는 공식이 그리 과하지 않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컴퓨터라는 '기기'에서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주목함으로써 관람객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해내고, 상호작용의 집약인 게임을 통해 관객참여형 전시라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02. 컴퓨터 나라 살펴보기

      컴퓨터 나라에 대해 전반적인 소개를 했으니 컴퓨터 나라를 찬찬히 둘러 볼 필요가 있겠다. 본격적으로 입장을 하기 전에 실외 주차장 언덕 즈음에서 발견한 <넥슨 작은 책방>은 이름 그대로 아담한 규모의 책방이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작은 책방은 넥슨 작은 책방 76호점으로 '추억의 만화방'의 컨셉으로 만화책만을 소장하고 있다. 신발을 벗고 책방 내부로 들어가면 다양한 종류의 만화책이 꽂혀 있다. 명탐정 코난, 미스터 초밥왕에서부터 메이플스토리까지 만화책으로 가득찬 책방은 시간을 멈추게 만들었다. 

넥슨 작은 책방 76호점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재미로 가득찬 책방을 나와 컴퓨터 박물관에 입장하면 도스체제의 컴퓨터를 연상시키는 디지털 방명록을 마주하게 된다. 도스체제 컴퓨터를 추억하며 장엄하게 이름을 남겨보았다. 사실 처음엔 마음껏 게임을 즐기기 위한 사심을 가득 품고 컴퓨터 박물관에 입장했으나 (어느 위치에서 게임을 만끽할 수 있는지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갔다.) 막상 입장하고 나니 각 층별로 알차게 구성된 콘텐츠를 살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총 네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층마다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있었고, 해당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가 구성되어 있었다. 각 층은 게임을 연상하게 하는 -Stage식으로 네이밍 되어 있었다. 이러한 네이밍은 관객이 게임의 방법론을 차용하여 각 스테이지에서 어떤 모험을 하고, 어떤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지금부터 최초의 컴퓨터를 볼 수 있는 지상 1층 Welcome Stage, 게임 역사가 집약된 슈팅게임의 계보를 정리한 지상 2층 Open Stage, 컴퓨터와 일상의 즐거운 만남을 목격할 수 있는 지상 3층 Hidden Stage,  재미있는 게임도 마음껏 즐기고 특별 전시실과 카페, 레스토랑 등 편의 시설이 있는 지하 1층 Special Stage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지상 1층 - Welcome stage


1층 Welcome Stage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1층 웰컴스테이지는 브렌다 로럴 (Brenda Laurel)의 동명의 저서컴퓨터는 극장이다에서 모티브를 얻어 컴퓨터의 마더보드(Motherboard)를 신체 사이즈로 재현한 공간이다. 1층은 Welcome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초창기 컴퓨터의 하드웨어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Apple사의 최초 컴퓨터이자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인 Apple1은 관람객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인기 소장품으로 자리매김 했다. 

     

Apple 1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이밖에도 최초의 마우스,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라는 이름을 사용한 IBM의 PC5150,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마그나복스 오디세이(Magnavox Odyssey) 등 컴퓨터 하드웨어의 역사를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의 경우 부모 세대의 추억과 자녀 세대의 호기심이 만나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변천사와 더불어 주지해볼만한 것은 최초 온라인 게임인 넥슨의 <바람의 나라>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온라인 게임의 복원 과정은 단순히 게임이 개발되는 과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초기 컴퓨터 게임 개발 프로세스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지상 2층- Open Stage 

2층 Open Stage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2층 오픈스테이지는 '게임,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어'를 주제로 컴퓨터의 발전을 이끌어 낸 게임의 역사를 조망하는 공간으로 가장 오래되고, 대중적이며, 게임의 발달사를 집약한 게임 장르인 '슈팅게임'을 면밀하게 다루는 전시공간과 세상의 모든 게임을 수집, 보존하고자 하는 NCM 라이브러리로 구성되어 있다. 슈팅게임은 플레이어의 순발력을 이용하여 총기를 쏘거나 탱크, 비행기 등의 탈 것을 조작하여 각 스테이지의 적을 섬멸하는 게임 장르로 <퐁 Pong> 이후로 초기 전자 게임에 가장 많이 등장한 장르이며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장르이다. SONY의 플레이스테이션, SEGA의 새턴 등 유년 시절 친구 집에 모여 플레이 하던 콘솔게임과 부모님을 졸라 차곡차곡 모았던 게임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NCM 라이브러리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NCM 라이브러리에는 여러 종류의 게임 잡지가 수집되어 있다. 게임 잡지는 게임 스킬과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친구들끼리 각각 다른 종류의 게임 잡지를 사서 돌려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류하게 되어 게임 잡지의 인기는 사그러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이브러리에 소장된 자료들은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컴퓨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어 왔고, 어떤 방식으로 향유되어 왔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매개가 되어준다. 


지상 3층- Hidden Stage

    

3층 Hidden Stage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3층 히든 스테이지는 컴퓨터가 우리에게 준 "일상을 변화시킨 즐거움"을 살펴보는 공간으로, 컴퓨터가 제공하는 일상의 즐거움을 다각도에서 체험할 수 있는 3개의 NCM lab과 오픈 수장고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박물관의 수장고는 깊은 곳에 위치하여 잘 공개하지 않지만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경우 오픈 수장고를 관람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3층 공간으로 옮겨왔다. 단순히 전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루 2회 가량 소장품을 제한적으로나마 가까이서 보고 만질 수 있는 스닉 프리뷰(Sneak Preview) 프로그램도 기획하여 관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오픈 수장고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NCM lab은 1.0, 2.0, 3.0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전시, 체험, 교육 프로그램, 워크숍 등을 제공하고 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키보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 할 수 있고, 오래된 게임팩 게임을 실현해 볼 수도 있어 해당 게임을 즐겼던 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공간이다. 3층에서는 교육 프로그램, 워크샵 등의 상설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진행하고 있어 관람객들이 지속적으로 박물관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3층 전시관은 '히든 스테이지'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관람객들이 수동적 전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전시관의 숨은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지하 1층- Special Stage

지하 1층 Special Stage_(C)2014 nexon computer museum all rights reserved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스페셜 스테이지는 말 그대로 특별하다. 우선 동전을 넣을 필요없이 무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오락실'이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게임을 즐기고 있노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박물관의 주제가 '컴퓨터'이고, 컴퓨터는 곧 게임이니 오락실의 오락기 배치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지하에 위치한 오락 기기들

      게임을 매개로 다양한 세대 구성원들이 다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컴퓨터'라는 미디어가 우리 문화에 가지는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하에는 오락실 뿐 아니라 특별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고, 키보드 와플과 마우스 빵 등 컴퓨터 박물관에 어울리는 음식을 파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위치하고 있다. 음식도 컴퓨터를 매개로 색다른 즐거움이 되고 있었다. 

      03. 컴퓨터 나라를 나오며 

      필자는 함께 제주 여행을 온 친구 3명을 어렵게 설득하여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컴퓨터에도, 게임에도 관심이 없다고, 정말 '제주까지 와서 웬 컴퓨터 박물관?'이냐며 입장을 거부하던 친구들은 입장을 하는 순간부터 입, 손 그리고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방명록을 쓰면서 도스 체제를 떠올리게 한다며 본인 이름을 입력했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며 즐거워 했고, 자신이 알고 있는 컴퓨터에 관한 모든 지식을 꺼내 소장품과 연관 시키기 바빴다. 2층에 있는 슈팅 게임 관련 소장품을 관람하면서는 극도로 흥분하며 추억에 잠겼다. 지하로 내려와 게임을 실컷 하더니 오랜만에 '운동'을 한 것 같다며 배고픔을 호소했다. 게임을 연상시키는 카페와 기념품 가게의 물건들을 하나 하나 사진으로 남기며 즐거워했고 박물관을 나서면서도 감탄사를 멈추지 않았다. '게임'도 '컴퓨터'도 별로 관심이 없다던 친구들이 신나서 관람하는 모습을 보면서 '컴퓨터는 게임이다'라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첫 전시 슬로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게임 세계는 현실과는 분명히 다른 간극이 존재한다. 마치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갔던 것처럼 게임 세계에 접속 하면 컴퓨터 화면 안에 나를 대신한 작은 아바타가 쥐가 건넨 부채로 부채질을 해서 단숨에 작아져버린 앨리스가 된다. 열심히 게임 세계를 누비며 현실과 병치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나기도 하고, 이러한 가상의 존재들은 다시 현실로 회부되어 현실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컴퓨터는 게임이다'라는 슬로건은 '게임'이 컴퓨터의 특성을 잘 함축하고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임이 화이트큐브 공간에 전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작금의 시대에 '컴퓨터'를 '게임'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좋은 '미디어'로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 이용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온라인 홈페이지,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홈페이지 <www.nexoncomputermuseum.org>

  • 블로그 <blog.nexoncomputermuseum.org>

  • 페이스북 <facebook.com/NexonComputerMuseum>


글. 공다솜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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