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Do It Yourself / 사물학II : 제작자들의 도시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4. 15. 01:08


Do It Yourself / 사물학II : 제작자들의 도시_exhibition review

 언제까지 사물을 만드는 기쁨을 작가, 디자이너, 또는 기술자만이 누리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우리나라는 2012년 첫 회 메이커페어 이후 해마다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메이커들과 2015년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인 정부주도의 메이커스페이스 구축사업의 열기 가운데 최근 '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만들기'는 더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본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다시금 만들기가 재조명되는 이유는 만들기의 방식이 극적으로 바뀌고, 이것이 사회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이 만들기의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혹자가 '제 3차' 산업혁명'이라고도 부르는 개인 제작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존의 만들기(제작)가 소수 정예, 즉 장인 개개인의 기술과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었다면, 지금의 만들기는 누구나 가능하다. 기술의 발달과 공유(오픈소스)로 인해 개개인이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혁신을 일으키는 게 가능해졌다. 예컨데, 풀뿌리 기술혁신의 확산이 만들기 인구를 키우고 있다. 개개인의 아이디어가 제작까지 손쉽게 연결되는 지금, 소규모 제작의 영역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로봇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드론, 인공위성, 우주선까지도 확장된다.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흐름을 통칭하는 말로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라는 용어 또한 생겨났다. 메이크 매거진의 창간자 데일 도허티가 화두를 이끌어낸 후 디지털 제조업, 풀뿌리 기술혁신의 확산과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메이커들이 온오프라인으로 DIY 프로젝트와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생기는 커뮤니티, 그리고 물리적인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혁신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들면서 생긴 개념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이들을 '메이커(Maker)'라고 한다. 2005년 창간된 <메이크> 매거진을 통해서 대중화되기 시작한 말로, 새로운 만들기를 이끄는 새로운 제작 인구를 가리킨다. 발명가, 공예가, 기술자 등 기존의 제작자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손쉬워진 기술을 응용해서 폭넓은 만들기 활동을 하는 대중을 지칭한다. 기술의 사용이 새로운 만들기 인구 확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 쓰일 때는 취미공학자라는 의미가 강했지만, 지금은 공유와 발전으로 새로운 기술의 사용이 더더욱 쉬워졌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 전부를 포괄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메이커, 즉 제작자들과 이들의 제작 행위에 주목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사물학II: 제작자들의 도시전시회는 예술가디자이너제작공동체 등 15/팀이 참여하여 다양한 협업의 형태로 오늘날의 제작 문화에 관한 실험적이고 비평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본 전시회는 기계로 만든 제품들로 채워진 현대의 산업도시 속에서도 꾸준히 무언가를 자신의 손으로 제작해온 사람들, 또는 현재 제작문화에 관심을 갖고 제작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여기서 제작의 범위는 아날로그적인 수작업과 디지털 제조기술 활용 제작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들의 제작 결과물과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의 도큐멘테이션을 제작 도구, 도면, 설명서, 각종 재료 등을 통해 보여줌으로써제작/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 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팀은 삶의 실천적 문제를 고민하는 문화 연구자이자 기록 생산자들이다. 제작이 가지는 공유가치와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는 동시에 제작과정 중 형성되는 인간관계망에 대해 탐구한다.


전시장은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section 1 지역성과 제작문화에서는 도시의 소외된 공간에서 지속되어온 제작 소상공인들의 노동과 삶에 주목하여 도시 공간을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을 진행한 염승일, 인사이트씨잉, 박경근과 한국의제작 문화가 지닌 특성을 연대기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김상규의 아카이브 작업을 소개한다.


김상규 <제작연대기 : 1967-2014>, 2015, 아카이브, 서적, 영상 등 도큐멘트


section 2 기술과 제작에서는 동시대의 다양한 제조 기술들이 사물의 제작 과정, 개인과 사회 그리고 사물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태윤, 송호준, 디디랩, 미디어버스와 신신, 토머스 트웨이츠의 작업을 통해 사유하도록 한다.

section 3 제작 공동체에서는 비평적 관점의 만들기와 제작을 통한 실천적 행위를 촉구하는 리슨투더시티, 청개구리 제작소, 다이애나 밴드, 그리고 새로운 창작(제작)자 네트워크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이광호 & 서플라이 서울의 작업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section 4)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오픈소스의 공간카피룸 CopyRoom’이 제로랩에 의해 연출된다. 이곳에서는 참여 작가들의 작업에 참고가 되었던 다양한 자료들을 열람 또는 복사할 수 있으며,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도큐멘테이션 영상을 상영한다.

이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예술가, 디자이너, 제작공동체 등 작가/팀의 제작 행위를 조명하기 위해 제작된 결과물 보다도 오히려 제작 과정 중에 쓰이는 다양한 툴, 작가의 스케치, 노트, 기록물, 각종 재료 등 과정의 산물들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태윤 <손으로 만든 컴퓨터>, 2015, 아카이브, 서적, 영상 등 도큐멘트


이러한 전시 형식은 작년에 열린 영국디자인뮤지엄의 <In the making> 전시와도 유사하다. 본 전시회는 Barber & Osgerby 스튜디오의 창립자인 에드워드 바버(Edward Barber)와 제이 오스거비(Jay Osgerby)가 디자인뮤지엄(Design Museum)을 위해 기획한 전시로, 2014 1 22일부터 5 4일까지 진행되었다. 전시는 2파운드 동전을 크리켓배트로 변형시키는 등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단계의 미를 보여주는 제품 20여 점을 담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범위의 제품들이 흥미로운 생산과정을 보여준다. 전시된 각 오브제들은 최종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갖추기 전에 순간, 시간, 날짜에 있어서 예기치 못한 특징을 가진다는 이유로 선정되었다. 에드워드와 제이는 지금까지 작업하는 내내 제작과정에 대한 기술적인 호기심과 매력을 느껴왔다고 한다. 물건이 만들어지는 방법은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고,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고 있다. 미완의 제품들은 그들 작업의 통합적 부분으로 전시를 통해 늘 그렇지는 않지만 미완성의 제품들이 완성품보다 더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In the making> 전시는 이렇듯 제작의 과정 단계에서 틀에 박히지 않은 독특한 시간의 조각을 잡아내는, '제작 과정'에 주목한 전시였다.

그러나 <제작자들의 도시>에서는 이러한 과정의 산물을 전시하는 데 있어서 제작의 '행위', 행위에서의 '실천'과 '노동' 의 측면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전시는 개개의 삶의 실천적 문제들에 만연해 있는 합리적 관점에 준거한 삶의 태도를 돌아볼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제작'이 지니는 함의를 살펴본다. 


첫 번째 섹션 '지역성과 제작문화'의 작품들 중 염승일의 <메이드인 문래> 작업은 작가가 문래동에서 2년간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작업실의 주변 환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작가는 문래동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는 작곡가, 조각가, 소공인과 함께 문래동의 일상 소리와 늘 접하는 소재를 모아 문래동 거리의 풍광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인사이트 씨잉의 <성수동 프로젝트>는 몇십년 간 성수동이라는 공간에서 신발을 제작해온 제작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프로젝트이다. 도급제라는 제작문화가 일반적인 성수동에서 제작자 혹은 기술자로 또는 관리자로,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가지게 된 일에 대한 신념, 가치관, 그리고 관계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며 유기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각 제작공정 간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드러내고자 했다.

김상규의 <제작연대기: 1967-2014>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정부 시책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한국에서의 '만들기 문화'를 제작연대기 형식으로 보여준다. 기능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67년부터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면서 개인들의 제작 문화의 형성을 설명하려 했다.


염승일, <메이드인문래>, 2014, 오브제, 도큐멘트, 퍼포먼스

인사이트씨잉, <성수동 프로젝트>, 2015, 사진, 오브제


이어서 두 번째 섹션의 '기술과 만들기'에서 <베이커 미디어>를 작업한 디디랩의 경우 제작은 무형의 에너지를 쏟는 행위노동의 의미와도 비슷하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만들기라는 행위가 일어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욕망, 재료, 기술, 노동, 보상 등)과 일련의 과정을 베이킹(빵 만들기)을 통해 사유해 보고자 했다. 

토머스 트웨이츠의 <토스터 프로젝트> 작업은 대량 생산을 통해 소비와 공급이 이루어져 온 일상의 사물 '토스터'를 직접 제작하기 위해 원재료 채취로부터 시작하여 그가 거쳐야 했던 무모한 모험기를 영상과 도큐멘트, 아카이브, 서적을 통해 총망라한다. 토스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는 외부 효과와 규모의 경제, 환경 오염에 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제작자로서의 능력을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을 돌아본다. 결국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시대에 놓여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소비 문화의 문제점과 그 안에서 우리가 점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다.

최태윤의 <손으로 만든 컴퓨터>와 송호준의 <OSSI-1 인공위성 제작기술들>에서는 각각 컴퓨터와 인공위성을 직접 만드는 제조 기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복잡한 기계를 작가가 손수 만들면서 가지게 된 실질적인 지식 - 노하우라 불리울 수 있는 것들은 이론으로 정리되어 있는 동작원리보다 찾기가 힘들다. 제작 중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산물들을 보고 있으면 제작 행위의 열정이 관람자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지는듯 하다. 


디디랩 <베이커미디어>, 2015, 오브제, 영상설치

토머스 트웨이츠 <토스터 프로젝트>, 2009, 아카이브, 서적, 영상 등 도큐멘트

송호준 <OSSI-1 인공위성 제작 기술들>, 2015, 아카이브, 서적, 영상 등 도큐멘트


세 번째 섹션 '제작 공동체'에서 리슨투더시티는 2009년에 낙동강을 답사하면서 도시가 만들어지고,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 무엇이 희생되고 있는지를 알게되면서부터 강의 변화, 강과 그 주변의 동식물에 대해 공부하고 드로잉, 채색화, 오브제 등을 통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본 전시에서는 <강과 생명>이라는 작품에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역사를 기록하고 싶은 의지를 담았다. 청개구리 제작소는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작업에서 자연이 사회간접자본으로 다루어지는 시대에 벌어지는 여러 기술들 - 자연스러운 자연을 위한 기술 - 을 리서치한 책 '일반 자연을 위한 매뉴얼'을 공간적으로 펼쳐 보인다. 

제작의 목적은 사회적인 기능과 가치 성립만이 아니라 순수한 제작 동기도 있을 수 있다. 다이아나밴드는 제작을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표현방식으로 삼았다. <사물행진>에서는 사물과 우리의 관계에 주목하여 "사물과 우리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고, 우리의 상황은 관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메세지를 담고자 했다. 이미 사물들에 부여된 기능과 관계를 끊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실험으로, 일상 속의 사물들을 재조합해 놀이를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광호&서플라이서울은 이광호를 포함한 총 6명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서플라이어가 참여한 그룹으로, 각자 6가지 특정 사물의 제작을 위한 안내도를 만들고 이를 데이터화시켜 전시장에 제공한다. 누구나 이들이 제공한 안내도를 출력하여 쓰임새에 맞게 스스로 제작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작 행위를 보통 사람들과 공유하고 서로 간의 영향을 주고 받으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리슨투더시티 <강과 생명>, 2014-2015, 드로잉, 채색화, 오브제 등

청개구리제작소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15, 오브제

다이애나밴드 <사물 행진> 부분, 2015. 오브제 가변 설치

이광호&서플라이서울 <제작을 위한 안내> 부분, 2015, 작가의 안내도, 오브제, 도면을 출력할 수 있는 프린터 설치


마지막으로 네 번째 섹션 제로랩의 <제작을 위한 제작> 작업은 전시 공간 전반의 연출을 위한 전시 집기의 디자인 및 제작, 일부 참여작가의 공간 연출 협업, 그리고 아카이브 섹션의 집기들로 이루어진다. 본 작업은 특정 기능과 성능을 목표로 하는 수공업적 생산활동으로 제작이란 행위의 도구적 이용과 노동을 통한 순수한 제작, 즉 의미가 배제된 최소의 형태와 기능을 수반하는 '물건'을 만드는 데 있다.  


제로랩 <제작을 위한 제작> 작업실, 2015, 각종 전시 집기, 가구, 공간 연출 등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사물학 II : 제작자들의 도시> 전시는 관람자로 하여금 새삼 미술관에서 관람하는 작품의 결과가 아닌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을 갖고 집중해보게 만든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의 제작자의 '행위', 행위의 '노동'적 속성, 행위의 개인적 또는 사회 문화적 '동기', 그리고 이를 위한 '실천'의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한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와 우리 주변의 제작된 '사물' 에 대해 스스로 진지한 관심을 가져본다. DIY - Do It Yourself - 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독립해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 보라는 제작자들의 메세지가 들리는 듯 하다.  

언제까지 사물을 만드는 기쁨을 작가디자이너또는 기술자만이 누리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글. 김아름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