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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음악은 항시 존재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음악은 언제나, 공연이 벌어지는 그 장소에 가야지만 들을 수 있는 것이었으며  명성 있는 음악가를 궁중 오케스트라 소속으로 모시는 것은 당대 왕들의 권력과 예술에 대한 감각을 가늠 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되곤 하였다.[각주:1]모짜르트의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마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던 사람들에게 공연이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 그 자체였을것이다. (음악 천재가 아닌 이상, 그 모든 멜로디와 악기의 소리들을 한번 듣고 머리 속에서 매번 완벽히 재생 하지 못할 테니까.. )

하지만 21세기에 음악 그 자체의 목적을 듣는 행위에 둔다면, 사실 스튜디오에서 최첨단 음향장비로 실수 없이 연주가 녹음된 음악을 듣는 것이 더 훌륭한 청취 경험을 제공한다. 언제,어디서나 MP3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음악을 청취하는  오늘날에 우리가 굳이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일상이 된 음악을 단 하루 아주 특별하게 경험하고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서 아닐까?

음악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소리와 멜로디로만 독립적으로 존재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다양한 매체와 인터페이스의 청각,시각,촉각의 통합 과정 만큼이나 콘텐츠의 소리와 영상, 이미지들의 통합은 필연적이다.그 일례로, 싸이의 젠틀맨은 결코 음악만으로 성공한 음악이 아니다.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비슷한 사운드에 비슷한 비트의 곡들은 넘쳐 흐른다. 비슷 비슷한 음악의 홍수 속에서 뮤직비디오의 독특함과 싸이라는 뮤지션의 캐릭터 이미지가 통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각인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의 음악 공연의 동향 또한,  더 이상 음악을 듣는다에 집중한다기 보다 음악을 통한 새로운 경험제공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휴대폰이나 디지털 기기를 통해 원하는 순간 매번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일상이란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특정한 시간대에 특정한 장소에서 뮤지션이 직접 연주하며, 기존에 듣던 음원 파일과는 새롭게 연주되는-단 한번 음악공연은 일상에서 탈출하는 낯선 경험인 것이다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낯선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고심 되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음악이 연주 되는 공간이다. '시간예술'로써의 음악은, 음악이 진행되는 그 시간에 펼쳐지는 공간과의 조우가 필연적이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음악공연이라면 소위 '시공간의 자연스러운 통합'을 통해 관객의 낯선 감각을 일깨운다.  


욘시<Jonsi>의 Go Live 공연: 욘시의 솔로 프로젝트 Go live 의 무대는 59 production과의 콜라보를 통해, 솔로 앨범의 음악의 컨셉을 무대예술로 공연경험을 극대화 시켰다.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은 한편의 음악 레크레이션, 초현실적인 순간을 공연으로 구현한다.이들의 초현실적인 음악은, 거대한 풍선, 사이키델릭한 영상과 함께 어우러져 공연에서 가장 그 본질을 잘 드러낸다. 

음악 공연이 시작되고, 공간을 따라 흐르는 음악.그리고 그 공간에 들어 서는 순간- 관객은 현실의 자신의 시공간에서 잠시 벗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음악가가 펼쳐놓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어떤 공간에서 음악이 연주 되느냐에 따라 그 날의 공연의 경험이 과연 특별하게 기억 되느냐 혹은  어느 순간엔가 일상에 밀려 기억 저편 구석진 곳에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결정 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사운드 아티스트 조은희가 홍대 CGV 스크린 엑스(ScreenX)에서 선보인 <송 에 뤼미에르(son et lumiere)>는 음악공연 공간의 특수성이 뮤지션이 의도한 감각을 관객에게 얼마나 잘 전달 할 수 있는 있는지에 대해 가늠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음악 공연이었다. 
공연을 보러 가기전, 가장 기대되었던 부분은 조은희의 음악과 ScreenX라는 독특한 공연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어우러 질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사운드 아티스트 조은희는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사운드 아트,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까지 경계를 확장하는 작업을 해온 작곡가로써, <사운드 오브 박스 (sound of box), 2012>에서는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소리를 녹음해서 실시간으로 음악을 만들거나, <위시 피스 (Wish Piece),2012>에서는 보컬(김선영), 안무(손정현)가 결합된 실험적인 공연을 선보여왔다.이번 <송 에 뤼미에르 > 공연은 작가의 첫 번째 솔로 공연으로써 지금까지 시도 해왔던 음악들을 대중들에게 펼쳐놓는 장이기도 하다.

첫 번째 솔로 공연으로 선택한  CGV Screen X 공연장은, 기존의 공연장과는 인터페이스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CGV 카이스트의 산학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ScreenX 기존 중앙 1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던 환경에서 벗어나 상영관 좌우 벽면까지 3면을 스크린화하며 이야기의 공간을 확장시키고 감정의 몰입을 더해주는 상영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화면을 보고 있더라도 좌우 2개의 벽면을 통해서 화면을 확장할 있고(파노라마), 완전히 다른 와이드 화면을 동시에 구현할 있으며(분할 화면), 상영관 내의 각도를 이용해 새로운 공간을 형성이 가능함으로써  영상 콘텐츠 제작자에게는 새로운 영상 언어를 실험해 볼 수 있는 문법을 제공하였으며, 동시에 관객에게는 3D 안경이란 불편한 매개체 없이도 영상안에 들어온 몰입감을 체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보통 음악 공연장은, 음악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공간을 통해 효과적인 사운드 전달에  우선순위를 두고  선정됨에 불구하고, 조은희는 영상이 우선적인 공간인 영화관-그것도  실험적인 요소가 다분한  ScreenX라는  특수한 공간을 음악공연을 위해 선택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고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러한 공연 기획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품고, 들어간 홍대 Screen X공연장은 200석 규모의 아담한 소극장 느낌의  규모였으며 공연이 시작 되기 전까지는 새로울게 없어 보이는 평범한 공간이었다.



<사운드 아티스트 조은희>


무대위로 놓여진 신디사이저 하나와 노트북 하나가 조용히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고, 무대가 어두워 지면서 사운드 아티스트 조은희가 등장하였다.

어둠속에서 ,  부유하는 소음들이 들려오고 중앙의 메인 스크린에는 어디론가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가 나타난다.  첫 곡< 글래셔(glacier)>는 제목처럼 사운드 덩어리가 바다 위를 떠 다니는 묵직한 빙하 처럼  공간을 떠다닌다. 그러나 익숙한 신디사이저의 피아노 멜로디는 마치 낯선 사운드들 안에서 길을 잃어 버릴지도 모를 관객에게 이 곡을 들을 때 헤매이지 않도록 관객의 손을 따스히 잡아끄는 길잡이 같은 인상을 주었다.



메인 스크린에서 시작된 영상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푸르름과 하얀 구름이 가득찬 하늘에 도달하자, 양 측면 사이드까지 3면으로 푸른 하늘이 확장되었다. 영상이 확장되는 순간, 부유하는 소리들과 함께 하늘의 공간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했다. 영상 작가 GAB은 어디로 떠날지 모를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비행기 안, 그리고 그 밖에 펼쳐진 고요하고 푸른 하늘을 곡과 매치 시킴으로써 이 곡이 담고 있는 앰비언트 적인 요소들을 영상과 함께 몰입하여 감상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앰비언트적인 소리 덩어리들의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이< 글래셔(glacier)> 였다면, 두 번째 곡인<웜 오어 콜드(Warm or Cold)>는 일렉트로닉 성격이 짙은, 역동적인 전자음과 비트의 향연이었다. 영상을 맡은 '가가 트랙(GAGA TRACK)' 검은 배경에 흰 선을 모션의 메인 컬러로, 암적응을 깨지 않는 붉은 색을 서브 컬러를 선택함으로써 자칫 빠른 비트와 싱크를 이루는 모션 그래픽이 시각적으로 산만해 질 수 있는 부담을 줄이고,   마치 3면의 화면 안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시를 효과적으로 유도한다.

세 번째 곡, <스토리 오브 사운드(Story of Sound)>는 웨이브를 사운드를 이용해, 비트와 리듬만으로 미니멀하게 구성된 곡이다. 멜로디컬한 요소가 최대한 배제 되어 있어 보이는 영상을 배제하고 사운드만 들었을때는 01의 반복적인 비트의 넘실거림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영상은 특이하게도 ScreenX 3면을 쓰지 않고, 메인 스크린 하나에 네델란드 화가 히로니 뮈스 보스(Hieronymus Bosch(1450 ~ 1516))가 그린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을 리듬에 맞춰 훑어 보여 주고 있는데, 영상을 담당한 '57STUDIO' 3면의 스크린을 활용한 다른 영상들과 차별점을 두고 싶어 메인 스크린 하나만으로 영상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흐릿해지다 뚜렷해지는 블러 효과를 이용해 마치, 관객은 쾌락의 정원을 망원경을 통해 몰래 살펴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며 이러한 영상의 이미지로 인해  미니멀한 사운드와 조금씩 어긋나는 리듬이 기묘하게 들렸다.

네 번째곡 <NSS_0010>은 두 번째 곡처럼 일렉트로닉적인 비트와 멜로디로 이루어진 곡으로,  상업적인 제품의 프로모션 배경음악으로 쓰여도 무관할 정도의 대중성을 갖췄으며, 상업적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작곡자의 역량도 보여지는 곡이었다. 영상을 담당한 'VJ TERRY' 점점 증폭되는 전자음악 사운드에 맞추어 영상 또한 ..면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에 집중하여 영상을 만들었고, 한국 산업 기술대 KPU 아트센터 열린 공연에서도 이 영상을 선보였었다. 산기대 KPU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영상을 ScreenX용 영상으로 만들면서, 3면의 영상환경을 십분 응용하지 못한 점이 한가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UvN3nz8HXfg , https://www.youtube.com/watch?v=1a1Afk_qWoI 이 주소로 들어가면,  산기대와 ScreenX 각 공연 영상을 비교해서 볼수 있다.)

이어지는 곡,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은 댄스필름으로, 연출가 김제민(극단 거미 대표)의 영상과 함께한 곡이다. 이 곡과 영상은, 이번 공연에서 ScreenX라는 공간이 주는 몰입감을 가장 최대한으로 활용한 작품으로 관객은 사슬과 물로 채워진 낯선 지하실 아래에 들어와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이 채워진 어두운 공간을 헤매는 남자(안무가 신창호)가 관객이 앉아 있는 공간으로 손전등을 이 곳 저곳 비추며 화면이 시작되며, 물속을 벗어나 고자 하는 남자의 거친 몸부림과 물의 긴박한 움직임을 영상은 우아하게 포착한다. 이내 멈춰진 몸부림, 물 소리-대신 짧은 고요가 공간을 감싸고, 심장 고동과 같은  비트가 낮게 깔리며 엇박을 통해 사운드는 영상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차가운 사슬이 남자의 손위로 끌어 올려지고, 사슬에 묶이느냐 혹은 벗어나느냐를 건 긴박감이 안무가 신창호의 손끝과 움직임을 통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물이란 매개체를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영상이 전하고자 하는 낯선 공감각을 극대화 하고자 한 사운드는, 차갑게 마찰되는 물소리와 함께 어우러지고 적절한 사운드의 공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작가의 감각이 돋보였다.



마지막 <슬리핑 선(Sleeping Sun)> 영상작가 김세진의 영상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곡의 이미지가 먼저 존재하고 만들어진 곡이다.알수 없는 감정의, 불안한 표정을 감춘 얼굴 하나가 메인 스크린에서 관객과 마주한다.  빛이 빛나는 하나의 첨탑, 그곳을 향해 회색의 도시를  헤메이는 여인. 잡으면 바스락 하고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도시의 이미지 사이에서, 드뷔시와 사티의 인상을 가진 피아노 음색이 도시 사이를 유유히 흘러 밤과, 그리고 공연의 끝을 맞이한다.

이번 공연을 직접 기획한 조은희 작가는, 자칫하면 시각적인 요소로 인해 음악이 뭍혀버릴 수 있다는 우려때문에 ScreenX 라는 공연장 선택에 고민을 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걱정과는 달리 음악과 영상은 과연 이 중 어떤것이 먼저 만들어 졌는가?에 대해 헷갈릴 정도로  잘 어우러 졌으며, ScreenX는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 중인 사운드 아티스트에게 어울리는 실험 공간이었다.

다만 공연에서 가장 큰 아쉬움은, 시각적으로 특수한 공간 경험을 주는데에 비해 사운드 자체는 공간감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관객에게 입체적인 사운드 경험까지 함께 줄 수 있었다면 오히려,영상에 비해 음악 자체가 더 강렬하게 인식되지 않았을까. '사운드를 통한 공간 디자인'은 다음 조은희 작가의 공연에서 더 깊이 고민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다음 공연에서 공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좀 더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이탈로 칼비노의<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영감을 받아 준비 중이라고 한다.[각주:2]

이번 공연 <송 에 뤼미에르>를 통해, 공연의 제목처럼 빛과 음향을 통해 자신이 펼쳐 낼 수 있는 음악적 역량과 다양성을 펼쳐 놓았다면 , 다음 공연에서는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자신의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탐구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시원스럽게 웃는 조은희 작가.

음악과 소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만이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탐색하고 차근 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녀의 다음 행로가 기대된다. 마치, 첫 곡 <Glacier>의 부유하며 떠돌던 낯선 사운드 속의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구경했던 파란 하늘 속 에서의 묘한 기대감처럼. 

그녀의 곡의 다음  종착지는 또, 어디일까?”


글. 문명진 (앨리스온 에디터)


<송 에 뤼미에르 (Son et lumiere) 공연 전체 영상 > 

  1.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궁정음악가 륄리의 관계가 있다.예부터 오랫동안 왕의 측근들이 즐기던 '궁정발레'는 춤을 즐기던 루이 14세대에 이르러서는 왕 자신만을 위한 '왕의 발레'로 그 성격이 변했고, 루이 14세는 발레를 통하여 권력 유지에 필요한 자신의 좋은, 이상적인 통치자로서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여기에 륄리의 음악은 루이 14세가 국민들에게 비춰지기를 바라는 이미지와 루이 14세 자신이 닮고자 하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그대로 담아냈다. [본문으로]
  2. 본 공연의 리뷰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조은희 사운드 아티스트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인터뷰를 통해 나온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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