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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은 비디오,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와 내러티브 구조를 이용해 작업하고 있다. 특히 시공간 위에서의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이 교차하는 지점과 함께, 조형 물질로서의 사운드와 텍스트, 이미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김아영의 작품은 56회 베니스비엔날레 (베니스),  퀸 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베를린), 176/자블루도비치 콜렉션 (런던),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트 (런던), 리움 삼성미술관 (서울),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 (뉴욕), 사치갤러리 (런던), 뮤지엄 오브 모던 아트 오브 리우 데 자네이루 (리우 데 자네이루),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송주앙 아트센터 (베이징), 리빙톤 플레이스 (런던), 부다페스트 쿤스트할레 (부다페스트), 스트릿 레벨 (글라스고), 다름슈타트 사진페스티벌 (다름슈타트), 랸저우 사진페스티벌 (랸저우) 등에서 선보여졌다.


Q1. 안녕하세요. 작가님께서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안녕하세요. 막상 저에 대해 소개하려니 어렵네요. (웃음) 간단하게 소개 드리자면, 현대미술가 김아영이라고 합니다.


Q2. 작가님께서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셨는데 그곳에 소개된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이곳에 소개된 건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3 Zepheth, Whale Oil from the Hanging Gardens to You, Shell 3>(2015)라는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2014년 봄에 있었던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 ‘오작동 라이브러리’라는 전시에서 처음 파일럿 형식으로 보였던 작업이 발전된 3번째 버전이에요. 

  현대음악 작곡가인 김희라 작곡가와 함께 해 온 이 작품은 여전히 발전 중에 있고, 그 버전이 달리해 오면서 형식적인 확장이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 버전의 경우는 4채널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으로 12명의 보이스 퍼포머들의 합창이 4채널의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구조로 전시가 되었었고, 두 번째 버전은 부분적으로 음악극의 형식을 갖고있는 공연으로 7명의 라이브 퍼포머와 3명의 연극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의 형식으로 갔었습니다. 그래서 내러티브가 조금 더 강조되었고, 지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있는 버전 3은 다시 전시의 포멧으로 40분 분량의 혼성적 사운드가 6채널 스피커에서 흘러나옵니다. 총 15개가량의 챕터로 나뉘어 있고, 7명의 보이스 퍼포머의 목소리와 합창, 그리고 각종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성우나 배우의 목소리 등, 이것들을 제가 만든 스크립트에 따라서 실험적 음익극 성격의 사운드 시퀀스로 펼쳐낸 것 같은 작업입니다. 사운드 설치 외에도, 어둡고 텅 비어있는 전시 공간에 전체 작업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는 벽 다이어그램이 한쪽 벽면을 꽉 채우고 있는 그런 작업이에요. 

  이 작업은 형식적으로는 사운드의 음악적 구고, 서사의 내러티브 구조에 대한 실험인데, 그 내용의 측면에 대한 설명을 드리자면, 1970년대 두 차례 있었던 석유파동 이후 한국 경제가 힘들어지면서, 석유 수입에 타격을 받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방안으로 건설회사들을 중동에 다수 진출시켜 건설 수주를 따내고, 그로써 석유를 수입해 올 수 있는 자본을 획득하려는 그런 흐름이 있었어요. 1970년대 부터 80년대 말까지에 걸쳐 아주 짧게, 약 10년 정도만 지속됐던 ‘중동 특수’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줬던 독특한 이슈를 돌아보게 되면서, 석유 자본이 21세기에 가지고 있는 의미, 그리고 사실 석유라는 것이 고대 문헌과 성경에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지구에 존재하던 물질인데, 이것이 20세기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에너지원으로 쓰이면서 막강한 상징적, 물리적 파워를 갖게 된, 근대의 발명품으로서의 석유를 돌아보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3, 2015


Q3.작가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함께 참여하신 다른 한국 작가님들의 작품을 포함해서 현지에서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A. 오랜만에 한국작가가 세 분 참여하게 된 이례적인 기회이기도 했고, 한국 파빌리온의 작가분이 두 분이셨고, 또 위성 전시전에서도 한국 작가분들이 참여한 다양한 전시 등이 있다보니 당연히 국내 미디어의 관심도 뜨거웠고 많은 수의 매체에서 취재를 오셨어요. 사실 저희 팀은 5월 5일 전시 오픈 전까지의 1~2주 동안 설치와 퍼포먼스 리허설을 진행하느라 다른 상황에 대해서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136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본전시의 경우 늘 필요인력이 부족해서 상황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전시 오픈 후 지금에 와서야 피드백들을 조금씩 듣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artsy’라는 온라인 아트 매거진에서는 주목할만한 젊은 작가 5명의 작업에 대한 리뷰를 간단히 정리했는데, <제페트 3>에 대한 리뷰도 있었습니다. 오프닝 기간 중 문자화된 즉각적 리뷰를 읽게 되니 고무적이었습니다. 


Q4. 많은 작가들 중에 본전시에 참여한 아시아 작가들의 비중은 어느정도였나요? 한국작가가 세 분이나 같이 초청됐다는 건 어떻게 보면 굉장히 고무적인데요. 그 과정에서의 비하인드스토리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10팀이 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 마침 광주비엔날레 오프닝이 있기도 했던 8월 말~9월 초에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감독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한국에 들렀었고, 그때 작업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가 기관 수준의 교류가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어요. 또한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이러한 거대 이벤트들에서는 그 기저의 네트워크와 보이지 않는 역학관계가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시 구성의 동선 문제를 포함한 그 모든 것들이 이유 없이 결정되는 것이 없다 보니, 치밀한 예측과 대층, 준비만이 좌충우돌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 비엔날레에서의 한국관 수상, 올해 임흥순 작가님의 은사자상 수상 등 잇따른 쾌거를 계리로 앞으로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한국작가가 참여하게 되는 일이 그리 놀라운 이슈가 아닌 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Q5. 베니스비엔날레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합니다. 작가님의 초기작업은 사진에서부터 시작해서 영상, 사운드 설치로 작업 성향이 변해왔는데, 이러한 방향성을 갖게 된 데에는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과거 사진 작업을 진행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관심사, 작품의 내용에 깔려있는 시선들은 일관돼 왔다고 생각되는데, 형식적인 실험이 동반되었어요. 현대미술에서, 내용과 형식이 맞물려서 새로운 무언가가 개발될 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점에서 ‘내가 추구하는 내러티브 구조의 실험, 담고자 하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에서 흩어진 파편 같은 것들을 어떻게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합니다.

  사진 작업 이후 영상을 시도했던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어요. 현대사진을 공부하고 사진 작업을 할 때에도 ‘스트레이트(straight) 사진’이 아닌, 사진들을 오려 낸 것들로 무대장치를 구성해서 이를 다시 사진으로 촬영해 내는 3차원 포토몽타주 혹은 콜라주 같은 형식으로 형식의 확장을 꾀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함축하고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 구조가 있었어요. 이를 펼쳐 내 타임라인 안에서 영상으로 표현해낸다면 내러티브가 어떻게 변용되거나 확장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렇게 시작했던 작업이 <모든 북극성 Every North Star>(2010)이라는 작업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제가 촬영한 영상 더하기 텍스트들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 이미지로서 제공되는 작업이었어요. 그 이후의 <PH Express>(2011)라는 작업은 조금 더 오랜 시간동안 리서치 했던 결과물로, 베를린에서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진행한 프로덕션 규모의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만든 텍스트에서 출발한 거문도 - 포트 해밀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상작업을 3년정도(2010~2012) 진행해 오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동반되었는데, 이후 사운드 작업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2012년보다 훨씬 오래 전이긴 했어요. 

  저는 과거의 기억들을 리서치하면서 얻은 공적 기록, 사적 기록 등에서 또다시 발췌한 자료를 혼합 직조하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는데, ‘마치 이것들이 어떻게 보면 유령 같은 목소리들인데 이들을 정말 이미지 없는 목소리만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사운드 작업에서는 목소리들이 중요합니다. 긴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목소리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사운드스케이프의 성향을 띤 작업도 있었지만, 역시나 사람의 목소리가 갖는 힘에 기대고 있거든요. 이미지 없는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 - 어떻게 이미지 없이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컸고, 그다음 두 번째로는 매우 현실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영상화될 때, 너무나 큰 예산이 필요했어요. 제 영상작업이 제작비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본을 순환시키는 유통과 배급 구조 안에 놓여있지 않았고, 이의 해결책을 찾지 못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 내러티브를 사운드로 직조해보자. 공간과 시간을 제약을 받지 않고 논리의 결여와 비약이 용이한 새로운 서사가 구축될거 같다’는 생각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Q6. 김아영 작가님이 근대라고 표현하시는 시기가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A. 저는 거칠게 19세기부터 현재까지를 통틀어 근대로 보고 있는데, '모더니티(modernity)’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끝나지 않은 모더니티 속에 저희가 놓여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포스트-모던(post-modern)부터 최근의 알터-모던(alter-modern) 같은 담론들도 모더니티 안에 포함된 지류 같은, 혹은 커다란 집합 안에 속해 있는 지점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모더니티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Q7. 우리가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컨템포러리 아트’ 라고 상정하잖아요. 일반적으로 본인 소개를 “한국 현대미술가 입니다” 라고 했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근대미술가와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데, 작가님의 ‘근대’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이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전에 누군가가 쓴 ‘What is contemporary?’ 라는 짧은 에세이를 봤어요. 늘 현대성, 동시대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우리가 어떤 미술품을 이해하고 판단할 때 무의실중에 ‘이것이 충분히 컨템포러리 한가?’라는 기준을 작동시키잖아요. 그렇다면 ‘그 컨템포러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여러 가지 문헌을 봤었는데, 그때 읽었던 내용은 컨템포러리한 인물의 개념을 아방가르디스트(avant-gardist)와 동의어로 쓰고 있었습니다. 컨템포러리 한 인물은 그 세상 본인이 속해있는 동시대에 완전히 융화되지 못하고, 반목하고, 앞서 있으므로 시대착오적인 인물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 확인했었습니다. 

  제가 컨템포러리라는 개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것은, 현대미술에서의 컨템포러리 개념은 지역마다 다 다르게 발현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제가 생각하는 컨템포러리라는 어떤 개념이 있을 것이고, 또 북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컨템포러리,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생각하는 컨템포러리 등 분명히 동시대를 살아가고는 있지만 지리적으로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기 흡수하고 있는 어떤 교육, 관습이나 제도 때문에 형성하게 된 개념이 다 다를 것이란 점에 있어서 컨템포러리는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보입니다.


Q8. 주로 작품에서 한국 근대의 역사적 사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영상작업을 3년 정도 하셨는데 첫 작품도 그렇고, 근대를 배경으로 주로 어떤 ‘사건’에 집중을 하셨어요. 이런 사건들을 처음 맞이하게 된 스토리, 혹은 그 계기를 알고 싶습니다.

A.예전에 처음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만들었던 사진의 경우, 그 소재가 되었던 것들은 지하철에서 무료로 나누어주던 신문이었어요. 작업 소재들이 무료 신문들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아주 하찮은 이야기들이었거든요. 그 사진 작업의 시리즈 이름이 <Ephemeral Ephemera>(2007~2009)였는데, ‘Ephemera’가 갖고있는 뜻이 하루살이, 덧없고 단명하는 무언가라는 뜻과 함께, 하찮은 인쇄물, 포장지나 리플릿 등처럼 짧은 효용가치를 다 하면 금방버려지는 것들을 의미해요. 중요한 이슈이므로 뉴스화된 것이지만, 누군가가 얘기하기를 ‘뉴스는 가장 상하기 쉬운 상품’이라고 했던 듷 합니다. 벌어진 일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면서 매우 가까운 과거에서부터 19세기의 이슈들로까지, 차츰차츰 폭을 넓혀왔던 것 같아요. 

  모더니티에 관심 갖게 되었던 것은, ‘컨템포러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심을 갖다가, 그렇다면 나는 발달된 컨템포러리 아트의 개념을 공부하기 위해 유럽에 유학을 왔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공부하기 원하고, 자국에는 없고 타국에는 있는 무언가를 위해 온 것인데,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그것이 다원성이라면, 다원화된 신(scene)에 노출되고 싶어 한다면, 최근 다원화되었지만 오랜 기간 유럽과 북미에서 신을 주도해 왔잖아요. 현대미술이라는 것 또한 모더니티의 산물이고, 근대의 가장 강력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석유 자본이라는 것이 근대의 발명품인 것과 마찬가지지이지요. 미술의 컨템포러리성의 의미에 대해 비판적으로 거리 두고 고민하려면 모더니티 그 자체의 기원으로 가봐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 현대의 문제들도 저 먼 과거 근대의 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봤을 때, 오늘의 사건을 통시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단서들이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에둘러서 생각해보기 위해 모더니티에 대한 관심을 하나의 장기간의 토픽으로 잡게 되었어요. 원래 역사, 지나간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좌) PH Express, 2011 / (우) 리움미술관 전시전경, 2012


Q9. <PH Express>는 역사 기록지에서 얼핏 보았을 때 스쳐 지나갈 법한 해프닝적 사건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이에 주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섬’이라는 개념에 대해 무작정 추상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 베를린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근대의 시차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피터 오스본(Peter Osborne)이라는 영국 평론가가 쓴 표현이 있었는데, 정확히 그거에요. 제가 종종 인용해오던 문구인데 ‘지리적으로는 차별적이지만, 시기적으로는 동시대에 놓여있는 두 지점 사이에 나타나는 비동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거문도를 놓고, 진보한 해군력으로 거대한 헛소동을 벌였는데, 한국은 거기에 대해 무지했거나 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이슈에서 누락되거나 소외되어 있는 이러한 비동시성들.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당시 독일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께서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라는 사람에 대해 찾아보라는 조언을 주셨습니다. 묄렌도르프는 조선에 몇 년간 머물렀던 독일인 외교관인데, 중국의 이권을 대변해 파견되서 온 후 처음으로 조선에 세관을 만들고 화폐개혁을 일으켰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거문도 사건 즉 포트 해밀턴 사건에 연관이 있었어요. 그때 거문도사건에 대해 알게 된 후, ‘이렇게 커다란 이슈가 있었는데 왜 연구가 된 자료가 별로 없을까?’라는 생각에 찾아나가기 시작하다 보니 정말 방대한 자료들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리서치를 지속할수록 초기의 뼈대는 사라지고 다른 가능성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저는 이렇게 초기 계획과 예측을 빗나가는 리서치가 작업에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서치를 진행하다 보니 그런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Q10. 베를린에서 리서치를 진행하셨던 거잖아요. 그 당시 한국에서의 자료는 많이 있었나요? 근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리서치 하실 때, 주로 국내 자료보다는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자료가 더 많은 편인지 궁금합니다. 

A. 국내에서 연구된 자료들을 제가 다 읽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노력해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료는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반면 작업에 참고한 대부분의 자료들은 영국 공문서에 풍부히 남아 있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신문들, 그리고 미국에서 출판된 거문도 - 포트 해밀턴에 관련된 영국과 미국의 외교문서 기록이 있었어요. 그 밖에도 거문도에 관련된 다양한 논문들을 찾아냈어요. 대부분이 국외에서 발간된 자료입니다. 

  국내에 남아있는 사료도 부족했지만, 거문도 사건 같은 경우에는 한국이라는 주체가 무력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대한 이야기이나 자국의 목소리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영상을 만든 것도 역설적으로 보이기 위한 하나의 의도이기도 했어요. 


Q11.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기에는 다큐의 형식을 빌릴 수도 있을텐데, 이보다는 상상이 더해진 서사가 가미된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저는 서사를 분절, 해체하고 재직조, 교합하는 데에서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예술에서는 진실성이나 리얼리티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또 재미있게도, <PH Express>의 경우, 스크립트 대사의 99%가 19세기 말의 사료와 신문에서 추출한 인용구들입니다. 제가 상상한 것이 아니지요. 이 사실만으로도 이는 리얼리티에 근접한 다큐멘터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관객은 이를 픽션으로 인지하기도 합니다. 작업을 블랙코미디, 풍자 활극으로 꾸민 연출상의 애티튜드 때문일 것입니다. 재미있는 아이러니입니다. 


Q12. 이렇게 극화된 영상 작품들을 보면 관람자의 입장에서 그 내용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를 일부러 의도하신건지, 그 의도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관람객이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A. 저는 관람객이 이걸 픽션으로 보든, 논픽션으로 보든 전혀 상관이 없어요. 예술작품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지 시작할수록 그 의미가 다중화되지 않습니까? 작품을 1:1로 수신하는 건 아니니까요. 작가가 많은 것들을 함축해놓고, 많은 것들을 담아놓았을 때, 그중 이쪽의 일부를 가져가는 독자들도 있고, 저쪽의 일부를 가져가는 독자들도 있고, 전혀 생각지 못 했던 다른 해석을 도출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밀푀유라는 불어 단어처럼 천 겹의 해석과 심상을 매개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Q13. 역사라는 것도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역사 또한 쓴 사람의 사견이 개입되었을테고,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님은 이를 작업 속에서 어떻게 반영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A. 역사를 누락된 기록을 복원하고자 하는 성실한 역사가의 시점에서 작업을 해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게는 역사가 굉장히 풍부한 재료로 보여요. 그런데 모든 역사는 주체의 사견이 개입된 선택된 기록이므로,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라는 사람이 역사가들이 프랑스 대혁명 등의 주요 역사서를 편찬 할 때 적용했던 문학적 - 서사적 글쓰기 방법에 대해 정리했었는데, 누군가는 풍자극 형식으로 역사를 다루고, 누군가는 대하드라마 혹은 서사시를 만들고, 누군가는 로망스라는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고 씁니다

  제가 만드는 것들도 공적 기록에 대한 조사에서 시작하지만 이미 그 또한 취사선택된 공적 기록이고, 작업은 다시 한 번 필터를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사건이나 사실들에 매혹되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모든 북극성>의 경우, 경마장 여기수의 자살 사거, '북극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과의 관계, 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단서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사건 원인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능성들을 더듬어 보고,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지만 어렴풋한 정서를 북돋워 줍니다. 깊은 애도의 마음과 매혹이 공존합니다. 


    

모든 북극성, 2010


Q14. 리서치 베이스로 작업을 하시는데 리서치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과 자료를 접근하여 작품에 녹여내기까지의 작가님만의 방법론이 궁금합니다. 

A. 누구나 그렇겠지만 작업할 때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시작하진 않아요. 저를 당기는 토픽들이 있고, 이슈들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만 될것같아’라는 불가항력의 무언가가 생기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막막할 때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길이 보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를테면 찾아낸 자료들을 100으로 봤을 때, 작품에 적용되는 건 20~30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만,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은 기저에 녹아 있다고 믿으므로 일단 풍부한 자료를 최대한 섭취하는 것이 작업의 풍부함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관점이란 것이 생기기 위해서는 이슈를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큼의 앎과 자신감이 있어야 하니까요. 

  리서치 기간은 매번 다른데요. <PH Express>같은 경우에는 리서치에만 꼬박 반 년 이상, 제작기간을 포함하면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어요. 제페트 시리즈의 리서치도 계속 진행하고 있구요. 이것도 1년 조금 넘었어요. 


Q15.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작가님께서 새롭게 보여주실 작업이나 방향성, 전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10월초에 개인전을 할 예정입니다. 그간 극장에서의 설치나 공연 형식으로 개인전을 대체해 오다가, 오랜만에 전시 형태의 개인전을 만들려 해요. 그리고 11월부터 내년 6월까지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운영하는 파비옹(Pavillon)이라는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일단 10월 개인전에서 영상이 접목된 인스톨레이션이 소개 될 예정이고요. 제페트 시리즈의 또 다른 버전, 네 번째 버전으로 소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제게 텍스트는 너무 중요하고, 영상, 음악, 혹은 사운드, 그리고 사진과 이미지 또한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언어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조합해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형식적 측면에서의 다양성도 시도하는 김아영 작가님의 계속된 발전을 기대합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미라 (더 스트림 연구원)


한국 비디오 아트 아카이브 [더 스트림 THE STREAM] 은 지난 4월 온라인 플랫폼공식 런칭 후, 한국 비디오 아트 및 영상 예술에 대한 아카이브 연구를 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이다. 정연두, 이행준 작가를 시작으로 동명의 영상예술 비평 전문지를 출판하였으며, 매월 오프라인 공간에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본 인터뷰는 지난 5월 28일에 진행된 한국 비디오 아트 아카이브 더 스트림[THE STREAM]www.thestream.kr 의 스크리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앨리스온이 더 스트림의 컨텐츠를 공유함을 알립니다.


* 김아영 작가의 작품을 '더 스트림'에서 만나보셔요.

   [THE STREAM] www.thestrea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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