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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재구성 : 헤세와 그림들 전 _alic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9. 15. 22:30


기술 복제 시대 이전에, 예술작품의 복사물들은 수작업적인 복사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예술가 자신이 동일한 작품의 다양한 해석판을 제작하거나 복제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계승자, 학생, 조수, 도제나 위조자들이 더 많이 만들어 내었다. 손으로 만든 복제물은 노동집약적이며, 시간 소비적이고, 값비쌌기에 소수이며 원본과 똑같지 않다. 엄밀히 말해 복사물들은 원본의 해석물이거나 번역물인 것이다. 더 널리 보급하거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이미지나 디자인을 복제하는 것은 고대부터 수세기 동안 많은사람들의 열망이었다. 음각된 금속으로 동전이나 메달을 찍어내는 방법이나 모래석고 틀을 통해 녹은 금속을 주조하는 방법으로부터 시작된 3차원 복제의 방법은 15기 이후에 이르러 유럽에서는 잉크, 압착기구, 목판을 이용하여 종이에 이미지를 인쇄하거나 금속판에 새기게 되었다. 그 이후 복제과정은 급속도로 발달해 사진, 영화, 레비전과 비디오, 컴퓨터가 만들어지는 이미지 등의 사진 기술적이고 전자적인 방법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중의 방법들이 앞의 과정을 완전히 대치하지는 않았지만, 잡지의컬러 이미지들, 광고판, 영화, TV의 컬러 이미지들은 지배적인 복제과정이 되었다[각주:1].


우리는 최근 소설이나 만화가 영화로, TV 오락물과 영화가 컴퓨터게임 또는 이동통신 매체로 미디어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형식으로 재현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디지털을 통한 새로운 매체에서는 거의 모든 문화텍스트의 재매개(Remediation)가 가능하고, 이러한 재매개성이 거의 모든 문화생산 부문에 있어 새로운 주체적 이미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미술 작품의 이미지를 재매개하여 디지털 미디어로 표현한 다양한 창작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은 동서양의 명화와 산수화를 애니메이션과 결합한 비디오아트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확립하였다.


이이남, 모나리자, 비디오, 2009


이이남, <-박연폭포>, 비디오2011


의 미디어 아트 작품 <신 박연폭포>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 <박연폭포> 원작을 디지털 복제하여 이미지의 주요한 요소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의미를 발생시키고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킨다. 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겸재가 그린 <박연폭포>는 그림 자체에서 폭포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원화는 1미터 정도 되는 아주 작은 그림이었습니다. 실제 원화는 작지만, 박연폭포인 자연 그 자체의 웅장함을 미디어를 통해 극대화해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회화가 디지털로 바뀌는 자체가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처음 제가 미디어를 이용해 작품을 창작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무관심이었습니다. 당시 미디어를 이용한 작품들도 많지 않았지만, 정말 관심이 없다는 것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미학자 다니엘 아라스(Daniel Arasse)"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딱 5분만 머물렀음 좋겠다"라는 말을 했는데, 저는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의 작품 앞에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한 끝에 대중들이 익숙한 그림인 명화를 미디어를 통해 창작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관람객들이 저의 작품 앞에서 5분 정도라도 관심 있게 서서 봐줄거라 기대하면서요.”[각주:2]


유명 화가의 작품을 재생산한 예는 상업적 창작물인 텔레비전 CF에서도 수없이 시도되었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 음악, 미술,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연계시키는 아트마케팅(Art Marketing)’이 활발해지고 있다.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소비생활의 트랜드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TV광고에서는 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 의 모나리자(Mona Lisa)나 앤디워홀(Andy Warhol)의 팝아트(Pop art), 그 외 고흐(Vincent van Gogh), 마네(Edouard Manet), 모네(Claude Monet)등의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회화들이 인용 혹은 차용되고 있다.

고흐의 회화 작품은 TV광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 중 하나이다원본 이미지에 나타나는 독특한 색감과 테크닉은 물론 작가를 둘러싼 드라마틱한 삶이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반 고흐, <삼나무가 있는 밀밭>, 캔버스에 유채, 1889         더 페이스 샵, <아르쌩뜨>, 텔레비전 CF, 2005 (부분)


고흐의 미술작품을 재해석한 미디어 체험전 <반 고흐, 10년의 기록>도 눈여겨 볼만하다. 201410~ 20153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본 전시회는 70대의 프로젝터로 300점의 작품을 전시했고, ‘고흐의 명화를 미디어 아트 기법으로 재해석해 관객과의 소통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25만 관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반 고흐, 10년의 기록> 전시 장면 


반 고흐가 작가로써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10년의 연대기를 따라 전시의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작가 정보 및 작가의 글 전시, 대표 회화 작품을 재해석하여 디지털 복제하고 변형시킨 미디어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회에서는 이렇게 기존에 있던 그림을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 하여 제작한 것을 컨버전스 아트(Convergence Art)’라는 용어로써 표방하고 있다. 원작의 작품 크기와 달리 4m 이상의 스크린에 확대되어 전시된 고흐의 그림 이미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의 부분적 요소들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다. 확대된 이미지들은 입체적인 공간 위에 디지털 맵핑 기술로 투사되어 관람객이 마치 반 고흐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작품에서는 작품 속 인물 또는 다양한 오브제들에 움직임을 부여하여 생동감을 연출했다. 또한 손의 터치로 미디어 캔버스 위에 고흐의 붓 터치 기법과 유사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하면, 패드를 조작해 관객이 직접 작품의 밝기를 조절하는 등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통한 체험 요소를 부가함으로써 관람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본 전시회를 기획, 연출한 본다빈치는 이러한 전시 경험을 바탕으로 두 번 째 컨버전스 아트 프로젝트로 올 해 5월부터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헤세와 그림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전시회를 선보이고 있다.

본 전시회 역시 전시의 형태면에서 앞서 전시한 <반 고흐, 10년의 기록> 과 유사하다. 전시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그림 작품을 디지털 복제하고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모션그래픽 기술로 정지된 회화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재현했다. 소수 작품에서 관람자가 터치스크린을 터치하면 보다 큰 이미지 및 텍스트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의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적용되었다. 그 외 그의 회화 작품 원본, 문학 작품 초판본, 작가 사진, 유품 등이 함께 전시되었다. 전시 공간은 헤르만 헤세의 일대기에 따라 '헤세의 초대', '방황/고통', '우정/사랑', '치유/회복', '평화/희망' 의 총 5개 테마존으로 구성되었다. 회화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작가의 글, 유명 문학 작품 속 문구를 재구성한 미디어 작품들이 각 공간에 배치되었다


<헤세와 그림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전시 장면 


<헤세와 그림들> 전시 작품 'Verso Arasio' 


회화 작품을 원본이 아닌 디지털 복제 및 변형을 통해 재매개하는 미디어 제작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우선 오래 된 작품의 원본을 디지털 복제하는 것 자체는 잦은 원본 전시를 통한 작품 훼손을 방지하고 세계 곳곳의 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해당 작품의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물 회화 작품을 디지털화 하여 이미지, 플래시, 동영상 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는 복제 이미지의 변형은 원본 이미지의 의미를 확대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이미지를 재생산 하는 제작자는 원본 이미지의 예술적, 사회적 가치의 부가로 재생산된 이미지의 가치 또한 동반 상승하여 경제적 효과 또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작품 감상에 있어서는 작품에 대한 제작자의 해석에 주목해 봄으로써 감상에 자극제 역할을 하여, 보다 원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해석 방식이 될 수 있다. 또 첨단기술을 활용, 실물 작품 크기 이상의 작품 크기로 정확성이 높게 재현된 작품 감상을 통해 실물 작품에서 간과하기 쉬운 작품의 부분을 재발견하거나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 탐구할 수 있다. 또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요소인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가 부여됨으로써 몰입도와 흥미를 높일 수 있다. 디지털로 재매개된 이미지의 다매체적인 성격은 다양한 시각적 즐거움 또한 제공한다.

한편 정지된 2차원 회화 작품으로 제작된 원작의 작품의 조형요소 및 의미 등 작품성을 왜곡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또 이러한 미디어는 원작에 대해 해석이 이뤄진 새로운 창작물이기 때문에 원래 작품에 대한 다양한 감상을 오히려 가로막는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


<헤세와 그림들> 전시 장면


나의 경우 <헤세와 그림들> 전시를 보고 나서 전시 제목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헤세의 삶과 회화에 주목하는 전시라기보다는 헤세의 삶과 헤세의 글 또는 유명 문학 작품 속 문구가 부각되고 오히려 그림이 배경 역할을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전시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 헤세의 그림을 복제하고 변형한 영상물로, 그의 그림 속 인물과 오브제들에 부여된 움직임과 배경 사운드는 회화의 작품적 요소를 부각시킨 것이라기보다는 감각적 요소를 연출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상에는 움직이는 회화 작품과 함께 작가의 글 또는 작가의 유명 문학작품 속 글귀가 함께 삽입이 되어 있는데, 미디어 작품 속 헤세의 글은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진 바 없는 회화 이미지에 비해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또 미디어 작품이 전시된 공간 사이사이에는 회화 원작이 전시되고 있었음에도 전시의 디스플레이는 오히려 원작에 제대로 ‘주목’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부족했다. 더군다나 A4용지 보다 작은 사이즈가 대부분인 회화 원작들은 오히려 동영상, 헤르만 헤세의 문학 작품 인쇄물들 사이에서 마치 들러리와 같이 느껴졌다.


<헤세와 그림들> 전시 장면


현대 우리는 어떤 전시를 원하는가? 대부분의 미술 전시회에서 작품의 일반적인 진열 방식과 단순주입식의 의미 전달은 생활수준의 향상과 사회 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기를 원하는 일반 대중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반 대중은 다양한 정보의 홍수 시대에 적응되어 좀더 극적인 효과를 주는 새로운 전시 형태의 정보전달 공간으로서의 전시 공간을 요구하게 되었다.

<헤세와 그림들> 전시회에서는 관람자들이 멈춰있는 회화를 조용히 관조하고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식이 아니라, 회화 속 오브제들이 먼저 움직이며 관람자들을 자극한다. 움직이는 영상으로, 배경 음악으로, 텍스트를 읽어주는 사람의 음성 사운드 등으로 더욱 감각적으로 관람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원작을 재매개한 디지털 미디어 작품이 중심이 된 전시회에서 조차도 관람자가 원하는 것은 일시적인 감각적 즐거움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작품과 관람자, 전시회와 관람자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작품의 의미, 전시회의 의미가 관람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삶과 그의 그림을 조명하는 전시회라면 원래 작가의 삶, 회화 원작의 작품성을 왜곡하지 않고, 작가의 일대기와 작품의 내용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헤세와 그림들> 전시 장면 -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적용된 전시물들

<헤세와 그림들> 전시 공간과 이어지는 아트숍 내부 - 작품 이미지를 복제하여 디자인한 다양한 아트상품들


이번 <헤세와 그림들> 전시의 기획사에서는 오는 1127일부터 <모네, 빛을 그리다>라는 또 다른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앞으로 이와 같이 유명 예술 작품을 재매개한 디지털 미디어 작품들을 전시하는 예술을 재구성하는 시도들은 곳곳에서 더욱 다양한 형태로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작을 재해석한 디지털 미디어의 '제작'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직접적으로 재현되는 '공간의 디자인'에서도 더 많은 고민이 반영된 보다 발전된 모습의 전시회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김아름 [앨리스온 에디터]



<헤세와 그림들> 전을 기획한 본다빈치의 2015년 '컨버전스 아트' 전시 시리즈 참고 영상


 




  1. John A. Walker (1994). Art in the age of mass media. 장선영 옮김 (1999). 매스 미디어와 미술. 시각과 언어. p 109 [본문으로]
  2. 앨리스온 (2015. 6. 6) 이이남 작가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