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봉합된 흔적들: Film Montage _exhibition review

kunst11 2015. 11. 14. 03:20



봉합된 흔적들: Film Montage 



‘진정한 몽타주란 연속과 결합이 아닌 충돌로써 제3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 에이젠슈테인



우리가 매일 접하는 무한한 이미지들은 속도의 경쟁 속에서 현재를 스펙타클한 이미지의 사회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새로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우리의 지각과 함께 재편되기 마련이다. 결국 현실 세계는 조작된 이미지들로 바뀌고 그 이미지들은 우리의 현실적 환경으로 인식되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도상을 제안한다.


코리아나 미술관의 <필름 몽타주>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11점의 작품들은 새로운 현실이라는 이미지의 서사와 지각의 재편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전시 주제의 전면에 드러나는 몽타주(Montage)는 원래 불어의 ‘monter’ 즉 ‘조립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온 건축용어이다.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몽타주는 ‘어떠한 요소들을 수집하고 모아 다시 조립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따로따로 촬영한 필름 단편을 그 목적에 따라 연결하여 한 편의 작품으로 정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편집(Editing)을 지칭하며, 프랑스에서는 편집 일반을 몽타주라고 부른다. 이미 1915년 독일의 다다이스트 사진가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가 사진의 단편을 붙여 모아 포토몽타주라고 호칭했는데, 영화에서는 20년대 초기 프랑스의 이론가 레옹 무시나크(Léon Moussinac)에 의하여 사용되었고, 특히 레프 쿨레쇼프(Lev Kuleshov), 푸도프킨(V. I. Pudovkin), 세르게이 아이젠슈테인(Sergei Eisenstein) 등 소련 영화인들의 손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 후 몽타주는 영화 창작 상의 기본요소가 되어 단순히 편집이라는 기술적 조작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몽타주론으로서 무성영화의 대표적 이론이 되었다.



엘라자베스 프라이스, <울워스 콰이어 1979 The Woolworths Choir of 1979>, HD Video(Color, Sound), 17min50sec, 2012

Courtesy of Elizabeth Price, MOT International, London, and LUX




쇼반 데이비스, 데이비드 힌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 All This Can Happen>, Single Channel Video, 50min, 2012

ⓒ Courtesy of British Pathé




() 하룬 파로키, <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 Workers Leaving the Factory>, single-channel video, 35min, 1995 © Courtesy of Harun Farocki 

()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 노동을 비추는 싱글쇼트 Labour in a single shot>, Natural History Museum,Lodz, 2013 © Courtesy of Magda Kulak, Antje Ehmann and Harun Farocki


<필름 몽타주>전은 이러한 몽타주를 기반으로 새로운 차원의 해석이 가능한 영상작품 11점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과 함께 다큐멘터리와 웹, TV에서 발췌한 영상을 모으고 이를 새롭게 편집하면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경향을 소개한다. 작품들 중 상당수는 소위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형식의 몽타주 필름을 제시하고 있다. 파운드 푸티지는 기존의 필름 영상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창작 영상에 사실감과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적 차용은 몽타주가 가지는 현실의 전체성과 진실성을 조각냄으로써 영화적 리얼리즘을 약화시킨다는 점을 보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초기 영화는 프레임이라는 영화의 가시적 영역의 한계를 넘어 편집을 통한 이야기 전달과 표현 영역의 확장이라는 방향에 따라 발전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간성과 공간성의 동시성과 비동시성을 동시에 현실감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영화의 미학적 구성 원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몽타주란 단순한 쇼트의 연결인 기술적 의미의 편집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과 공간의 재편성을 통해서 시공간의 연속성을 비연속적으로 다시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개별적 이미지들은 봉합되어짐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고 새로운 서사는 충돌로써 새로운 제 3의 의미를 생산한다.


서로 다른 이미지 중 예를 들어 두 이미지의 단순한 콜라주는 하나의 연결 혹은 원래의 이미지들에서는 부재하는 의미를 나타나게 한다. 몽타주의 자유로운 방식을 사용하여 사고의 토대 - 관객들에게 강렬한 감정이나 새로운 지각방식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지각은 우리가 대상과 마주한 각각의 경험적 환기를 제공한다. 공간의 동질성을 뚫고 새로운 공간으로 - 상상적 세계에 현실을 통합시킴과 동시에 그 현실을 대치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전체 이야기의 논리에 필요한 장식과도 같은 트릭, 혹은 부차적인 책략으로 그 사건의 실재성을 믿을 수 없게 하기도 한다. 가상과 실재, 현실과 비현실로 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대신하고자 하는 이러한 전략은 스크린을 재생산하게 하고, 상상력이 현실의 경험을 초월하는 데서 오는 새로운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스테판 서클리프, <아웃워크 Outwork>, 3 channel Video, 23min, 2013 ⓒ Courtesy of Stephen Sutcliffe and Rob Tunfnell



그러나 현재의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 몽타주 미학은 또 다른 논쟁을 낳는다. 레프 마노비치는 컴퓨터 합성 시대에 필름의 몽타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기본 요소는 필름 쇼트들의 편집이 아니라 픽셀 데이터의 수치적 조작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봉합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디지털 이미지들의 몽타주는 아날로그 필름의 몽타주와는 봉합이 더욱 매끄러워지며 한마디로 디지털 합성은 컷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연속적인 1인칭 서사를 구사한다. 이는 필름의 미학이 주는 시간의 연속성에 따른  몽타주라면 디지털 시네마는 공간 몽타주를 보여줌을 의미한다. 몽타주를 통해 보다 풍부한 의미와 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건과 쇼트 안에 담긴 물리적 대상의 구성이 다양해야만 한다. 여러 이미지로 어지럽게 섞어 놓은 몽타주는 사건의 정보를 전달함과 동시에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김아영, <돌아와요 부산항에 Please Return to Busan Port>, 3 Channel Video, 5min, 2012 © Courtesy of Ayoung Kim



울루 브라운, <파크 Park>, Single channel Video, 5min20sec, 2011 © Courtesy of Ulu Braun



전시 작품 중 2012년 영국 터너 미술상을 수상한 비디오 아티스트인 엘리자베스 프라이스는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이미지, 뉴스 클립 속의 충격적인 사건 사고 등을 색다르게 변주해낸다. 이번에 상영됐던 <울워스 합창단 1979 (The Woolworths Choir of 1979)>은 1979년 영국 맨체스터 울워스 백화점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 영상작품으로 텍스트와 영상, 음악을 신선하게 구성해낸다. 이러한 몽타주의 미학적 실험을 넘어 파편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이질적 공간 안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채우기도 한다. 안체 에만(Antje Ehmann)과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작품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 Workers Leaving the Factory>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동명의 영화에서 출발한 것으로, 영화사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인 노동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한다. 일을 마친 후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쫓고, 노동을 둘러 싼 권력과 감시와 자본의 문제, 노동자들의 투쟁 등의 보이지 않는 사회 정치적인 문제를 제시하는데 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감독인 데이비드 힌튼(David Hinton)과 안무가인 쇼반 데이비스(Siobahn Davies)의 작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 All This Can Haappen>은 로버트 발저(Robert Walser)의 소설 <걷기 Walk>를 바탕으로 작가가 아카이빙한 영상을 몽타주한 작품이다. 화면 분할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이미지의 편집은 마치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보여준다. 박민하 작가의 <전략적 오퍼레이션>은 캐나다 모하비 사막의 헐리웃 영화 세트장과 그곳에서 진행되는 군사 훈련,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연상시키는 하이퍼리얼의 공간 사이에서 마치 실재와 가상이 모호하게 섞여 새로운 판타지적 공간을 드러낸다. 같은 맥락에서 디지털적 몽타주를 시도하는 울루 브라운(Ulu Braun)의 작품 <파크 The Park>는 비디오 콜라주로서 360도 돌아가는 사실적 풍경 이미지 안에 왜곡되고 인위적인 사람과 사건들을 삽입하는데, 하나의 장면 안에 다른 시간과 공간, 사건들의 병치는 낯설면서도 친숙하여 유희할 수 있는 새로운 판타지적인 공간을 보여준다.



베아트리체 깁슨, <타이거스 마인드 The Tiger’s Mind>, 16mm film transferred to HD Video(Color, Sound), 23min, 2012

© Courtesy of Beatrice Gibson



박민하, <전략적 오퍼레이션-하이퍼리얼리스틱 Strategic Operation-Hyper Realistic>, Single Channel Video, 21min 33sec, 2015

 © Courtesy of Minha Park



베아트리체 깁슨(Beatrice Gibson)의 작품 <The Tiger's Mind>는 제작 방식부터 몽타주적인 구성을 취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실험적이다. 건축가와 피아니스트 등 6명의 예술가들은 각각 세트, 효과음, 특수효과, 내레이터 등의 역할을 맡아 마치 잘 만들어진 연극무대를 만들어내듯이 작품을 완성한다. 전통적인 영화의 서사구조를 벗어난 시도에서는 사운드가 극의 전개를 암시하며, 복선의 이미지와 사운드의 몽타주적 서술은 극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전체 전시의 주제를 관통하여 소개된 영상들은 몽타주 과정에서 매끄러운 편집 대신 이미지를 불연속적으로 조합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충돌시키는 등 논리적인 비약이 선택되는데 이는 원본의 권위를 없애는 대신 이질적인 관계 맺기 과정에서 친숙한 이미지를 낯설게 하고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중간중간 전혀 다른 시공간의 쇼트들을 충돌시킴으로써 제3의 의미가 파생되고 이러한 충돌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재편된 이미지들로 세상을 파악하고, 파편적이고 분절된 현실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 이미지가 보여주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처럼 새로운 환영으로써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런 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매개체들에 의존해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경향으로서 더 이상 세계를 직접 파악하지 못하고 ‘매개된 또 다른 세계’로 환기시킨다. 점철된 의식들 속으로 끊임없이 잠입해 오는 일련의 또는 무작위의 사건들, 그 낱낱의 사건들은 매개된 또 다른 세계로서 제시됨과 동시에 결국엔 우리가 볼 수 있는 현실 그 자체이자 새로운 현실의 부정이 된다.




글. 정세라 [앨리스온 편집위원]


*<필름 몽타주 Film Montage> _20150507-0711